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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59화 (59/326)
  • < 훈련 1 >

    양세희는 현석의 말에 잠시 생각이 정지했다. 목숨을 걸 자신이 있냐니,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는단 말인가.

    그녀는 고개를 돌려 양동욱을 바라봤다. 한데 전혀 의외의 광경이 보였다.

    너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이다.

    ‘저 인간이 갑자기 왜 저래?’

    양동욱이 여기까지 쫓아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양세희가 걱정되어서 그런 것이다.

    그녀의 두 오빠인 양진욱과 양동욱은 아주 유명한 동생바보였다.

    당연히 그런 양진욱이 양세희를 이상한 놈에게 보낼 리 없고, 또 그녀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양동욱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한데 그 양동욱이 저런 말을 듣고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상식 속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현석을 다시 바라봤다.

    “어차피 플레이어로 살아가려면 목숨은 걸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까지 목숨 아끼느라 몸 사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녀는 당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뭔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꼭 나이로 평가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현석은 이제 고작 21세였다.

    양세희의 나이가 28세이니 무려 일곱 살이나 차이난다.

    원래 그녀는 현석 또래의 남자를 보면 더도 덜도 아닌 딱 애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또 생각하는 걸 가만히 보면 그녀가 보기엔 그냥 애나 다름없었다.

    한데 현석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애늙은이네.’

    양세희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현석을 향해 레이저 같은 눈빛을 마구 쏘아 보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황노인의 약속 때문이었다.

    이번 일에 협조를 잘 해주면 황노인이 아끼던 아티팩트 하나를 주기로 했다.

    그건 탱커인 그녀에게 있어서 보물과도 같은 아티팩트였다.

    ‘일단 분위기를 보아하니…… 첫 번째 미션은 해결한 것 같고…….’

    첫 번째 임무는 양동욱을 현석과 함께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한데 지금 분위기를 보니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양동욱의 표정에 지금까지 계속 떠올라 있던 현석에 대한 무시나 의심이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자신이 슬쩍 찌르면 휙 하고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냥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계획대로는 해야지.’

    원래 계획은 양세희가 현석과 함께 일하면서 양동욱이 그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따라붙게 만들려는 거였다.

    “일단 일주일만 같이 해보고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

    현석이 그렇게 말하자 양세희의 눈썹이 위로 살짝 올라갔다.

    ‘이건 또 뭐지?’

    어이가 없으면서도 신기했다. 한 번도 예상대로 따라오질 않으니 말이다.

    지금 저 말은 일주일이나 간보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일주일을 버티면 받아주겠다는 말인가?

    양세희는 현석의 표정과 말투를 통해 후자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이 양세희가 일주일도 못 버티고 나가떨어질 거라 이건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렇게 겁을 주는 거야?’

    양세희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현석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설마 저한테 죽고 싶을 정도로 수치를 주려거나 그런 건 아니죠?”

    양세희의 말에 현석이 정말 어이없는 눈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양세희는 현석의 시선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니, 뭐…… 그런 걱정 할 수도 있지, 그렇다고 사람을 그런 눈으로 보고 그래요?”

    그녀는 도움을 구하려는 눈으로 오빠인 양동욱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순간 이마에 핏줄이 빠직 돋아났다.

    양동욱은 오히려 현석보다 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조금만 과장하면 무슨 벌레 보듯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 인간 왜 저래?’

    양세희의 코에서 콧김이 훅 뿜어져 나왔다. 오늘 정말 일 안 풀리는 날이다.

    * * *

    “뭐야? 던전이네? 설마 이거 개별 던전인가요? 우와! 나 개별 던전은 처음 봐!”

    양세희가 호들갑을 떨며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검은 던전을 바라봤다.

    크기와 회전속도를 보면 브론즈 3등급 던전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현석과 양동욱, 그리고 류지혜를 바라봤다.

    양세희의 시선이 류지혜에게 잠시 머물며 의미심장한 빛을 띠었다.

    ‘그러니까…… 저 여우 때문에 나한테 그렇게 했다 이거지?’

    양동욱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금방 답이 나왔다. 현석을 만나러 밖에 나가자마자 류지혜를 본 것이다.

    류지혜와 현석이 한 팀이라는 걸 확인한 양동욱이 즉시 현석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이고 뭐고 상관없었다.

    사실 양동욱은 사람이 한눈에 반한다는 말을 들으면 항상 코웃음을 쳐왔다.

    한데 그게 자신에게 벌어지니 그동안 자신이 비웃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류지혜를 본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 가치관도 달라졌다.

    어린놈과는 함께 일하지 않겠다던 신념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는 현석의 실체를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양동욱이 류지혜를 바라보며 더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게 다 지혜씨 덕분이지.’

    류지혜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현석 아래에서 일할 리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런 기회를 언제 가져 보겠는가.

    류지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양동욱의 귓가에 양세희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척 보니 브론즈 3등급짜리네요. 고작 이런 걸로 테스트나 되겠어요?”

    양동욱은 어이없는 눈으로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봤다.

    “여기 개별 던전이거든?”

    “그게 뭐?”

    평소보다 훨씬 독이 오른 양세희의 반응에도 양동욱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몸을 움찔 떨며 질질 끌려 다녔겠지만, 류지혜와 함께 있는 이 순간만큼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개별 던전은 다 브론즈 3등급이야.”

    “뭐? 그런데 뭘 그렇게 찾아다니고 비밀로 하고 그래?”

    “모양만 그러니까. 내용은 들어가 보기 전에는 몰라.”

    그제야 양세희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블랙홀과 현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거…… 테스트 맞죠?”

    양세희의 물음에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훈련입니다.”

    “훈련이라고요? 전 아직 같이 일하겠다고 말한 적 없는데요?”

    “그건 일단 일주일을 버티고 난 다음에 다시 얘기하죠.”

    양세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놈의 일주일. 내가 버텨준다. 어떻게든 버티고야 만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현석이 주는 겁이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그녀가 사냥하는 스타일은 전투 진형의 가장 앞에서 정면으로 마수와 맞서 싸우는 방식이었다.

    물론 타격을 주는 것보다는 마수의 공격을 막아내며 파티원들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 사냥을 수없이 겪어왔다. 처음 사냥을 할 때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익숙해졌다.

    양세희가 눈이 돌아가면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이유는 비단 그녀가 강해서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냥 방식 때문에 자연스럽게 얻은 살기와 투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마력과 결합해 자연스럽게 주변을 짓누르는 효과를 발휘했다.

    물론 그녀나 그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지금도 양세희 주변에 무거운 분위기가 깔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현석 때문이었다.

    현석은 특유의 마력 컨트롤 능력을 이용해 양세희가 발산하는 기세를 사방으로 흩어놓고 있었다.

    ‘1차 훈련이 끝나면 저 쓸데없는 마력 소모도 좀 줄어들겠지.’

    현석은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눈을 빛냈다.

    “자, 그럼 시작하죠. 여기 혼자 들어가서 다 박살 내 버리면 되나요?”

    양세희의 물음에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모두 함께 들어갑니다.”

    “예?”

    양세희가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녀만 놀란 게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심지어 현석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류지혜조차 놀란 눈으로 현석과 양동욱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기 동욱씨는 플레이어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 말에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다들 의아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알면서 저런 소리를 했단 말인가?

    던전 시대에 플레이어들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것은 그곳에 보통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마력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던전에 들어갈 수 없기에 던전에서 나오는 물건이 그렇게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한데 일반인인 양동욱이 대체 어떻게 저기에 들어간단 말인가.

    현석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미래에는 별 것 아닌 방법이고, 자주 쓰이던 간단한 수법이었지만, 지금은 이것 역시 깜짝 놀랄 만한 기법이리라.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는 함께 가야 한다. 이들은 배신할 확률이 지극히 낮았다. 그러니 그 정도는 알려줘도 될 것이다.

    ‘뭐…… 당분간 나 아니면 쓸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현석은 양동욱에게 1.5리터짜리 PET병을 내밀었다. 투명한 병이었는데, 그 안에는 깨끗한 물이 꽉 차 있었다.

    “이게 뭡니까?”

    양동욱은 PET병을 이리저리 흔들며 안에 든 물을 유심히 관찰했다. 특별히 뭔가를 탄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물이었다.

    어쩌면 소금이나 설탕 같이 물에 잘 녹는 뭔가가 첨가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겉보기에는 완벽한 물이었다.

    양동욱은 그걸 보다가 퍼뜩 뭔가가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홱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설마…… 설마 이거 마력수입니까?”

    마력수라는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마력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현재 현석을 제외하면 황노인과 양진욱, 그리고 진대수 일파밖에 없었다.

    현석은 양동욱을 보며 눈을 빛냈다.

    황노인이나 양진욱이 그에게 마력수에 대한 얘기를 해줬을 리 없었다.

    그렇다는 건 그가 직접 그걸 알아냈다는 뜻이다. 진대수 일파의 뒤를 캐서 말이다.

    아마 현석에 대한 조사를 하며 거기까지 알아낸 모양이었다. 현석은 새삼 양동욱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러니 종로 암시장을 이어받지.’

    양동욱은 미래에 종로 암시장을 이어받게 된다. 양진욱 대신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해결해야 하는군.’

    종로 쪽과 너무 깊게 얽히는 바람에 손이 좀 많이 가긴 하지만, 거긴 충분히 그 정도 투자를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 가치가 벌써 이렇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현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양동욱은 연신 감탄을 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마력수와 현석, 그리고 던전을 번갈아 정신없이 오갔다.

    “전…… 이걸 마시면서 들어가면 되겠군요.”

    그 말에 현석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인이 던전에 들어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체내에 마력을 품으면 된다.

    그렇다고 아티팩트를 들고 들어가겠다는 발상을 해선 안 된다. 아티팩트만 고스란히 던전에 헌납하게 될 테니까.

    마력수가 유효한 이유는 그것을 마시면 마력이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마력수를 마시면서 던전에 들어가면 마력 자체가 몸에 밴 상태로 인정되는 것이다.

    양동욱은 감탄과 존경이 뒤섞인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이건 현석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방법이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현석은 대답대신 류지혜를 보며 던전 쪽으로 턱짓했다.

    “너부터.”

    류지혜는 현석의 반말에도 이젠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던전으로 들어갔다.

    다음으로 양세희가 들어갔고, 양동욱이 병뚜껑을 열고는 던전 앞에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마력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차가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뭔가가 몸에서 급격히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바로 마력이었다.

    양동욱은 그걸 느끼며 던전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세상이 휙 뒤바뀌었다.

    < 훈련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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