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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55화 (55/326)
  • < 의외의 만남 3 >

    새파란 빛이 주변 마력에 샤라락 달라붙었다. 모든 마력의 흐름을 보여주는 정말 대단한 아티팩트였다.

    사방이 새파란 빛으로 가득 찼다. 곳곳에서 푸른 빛이 일렁였다. 마력을 품은 곳이라면 당연하다는 듯 빛이 내려 앉았다.

    현석은 그걸 보며 눈을 빛냈다.

    ‘정말 대단한 아티팩트인데?’

    물론 자신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물건이긴 하지만.

    추광열이 당황한 눈으로 자신의 몸과 현석의 몸,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을 번갈아 바라봤다.

    현석의 몸에는 마력이 군데군데 뭉쳐 있었다. 착용한 아티팩트에서 나는 빛이었다.

    추광열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온몸을 간질이던 느낌은 여전한데 그게 마력 반응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현석과 자신을 이어주는 마력의 흐름도 없었다. 즉, 자신이 틀렸다는 뜻이다.

    “굉장히 훌륭한 아티팩트네.”

    추광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는데 어이없이 져버렸다. 지금까지 뭔가를 하고자 할 때, 이런 식으로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현석은 추광열이 들고 있는 팔찌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슬슬 그거 나한테 넘겨도 될 거 같은데. 뭐…… 약속 같은 거 잘 안 지키고 그러는 건 아니지?”

    추광열이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휙 던졌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찢어 버리고 싶어지니까.”

    현석은 팔찌를 받으며 피식 웃었다.

    “할 수 있으면 해보든가.”

    추광열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 정도 도발을 받았으면 응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의 몸에서 웃음만큼이나 사나운 기세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반면 현석은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표정도 기세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추광열은 오히려 그런 현석의 모습에 오싹함을 느꼈다. 그의 얼굴에 서린 미소가 더욱 사나워졌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 희열이 서서히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데?”

    추광열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막 마력을 움직이려는 순간, 황노인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뭣들 하는 게야! 여기가 어디라고!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

    그 말에 추광열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아무리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이곳에서 황노인과 핏대를 세우고 싸울 정도는 아니었다.

    황노인의 힘도 힘이거니와, 그는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다.

    현석도 한 발 물러났다. 어차피 추광열과 크게 싸우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이길 싸움인데 굳이 힘쓸 필요 없지.’

    현석은 오늘 추광열의 정보를 확인한 다음 확신했다. 앞으로도 자신은 마계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차이는 아마…… 갈수록 더 커질 거야.’

    물론 그에 따른 위험도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 모든 마계가 얼마 전 현석이 다녀온 곳처럼 단순할 리 없었다.

    아마 그곳은 마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그 팔찌…… 잘 보관하고 있어. 나중에 반드시 찾아갈 테니까.”

    현석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손가락에 끼운 팔찌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시든가. 나중에 올 때는 이거랑 비슷한 거 하나 더 가져오면 좋겠네. 그거 걸고 한 판 하겠다면 언제든 콜이니까.”

    그 말에 추광열이 사납게 웃었다.

    “라이언한테 빌어서라도 가져오지.”

    그 말을 남긴 추광열이 휙 돌아서서 가 버렸다. 그로서는 왔다가 괜히 아티팩트만 하나 잃어버리고 가는 셈이었다.

    그런데도 전혀 미련이 보이지 않았다.

    ‘인물은 인물이네.’

    저러니 한국 제일이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라이언이라…….’

    방금 추광열은 현석에게 힌트 하나를 던지고 갔다. 라이언을 언급하면서 말이다.

    라이언은 세계 제일의 플레이어다. 알려진 그의 레벨은 무려 107.

    지금의 추광열이 108까지 성장했으니 아마 그는 그보다 훨씬 레벨이 높을 것이다.

    ‘게다가…… 그게 다가 아니지.’

    라이언은 예전에도 특별한 장비로 더 유명했다. 레벨만 높은 게 아니라 장비도 상당했다. 또한 현석이 알기로 같은 레벨이라도 라이언이 훨씬 강했다.

    물론 그건 상대적인 비교였기 때문에 정확하진 않았지만 다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마계에 드나들고 있는 건 아니겠지?’

    현석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어쩌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내가 더 강해진다.’

    지금 당장은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강해질 것이다. 현석에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비장의 패들이 수두룩했으니까.

    “팔찌까지 얻었으면서 가지 않고 뭐 하는 게야?”

    황노인이 투덜거리듯 말하자, 현석이 피식 웃으며 그에게 팔찌를 내밀었다.

    황노인은 팔찌와 현석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뜻이냐? 이걸 나보고 가지라는 건 아닐 테고…….”

    “다시 확인할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나랑 장난하자는 건 아닐 테고…….”

    황노인이 더 뭐라고 하기 전에 현석이 얼른 그의 말을 끊고 할 말을 꺼냈다.

    “사실 이 아티팩트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게 좀 있거든요. 그 정보랑 맞춰보면 영감님도 뭔가 얻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황노인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놈이 이거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 왠지 의심이 안 가는데…… 의도가 아주 의심스러운데? 너 이놈, 대체 무슨 꿍꿍이야?”

    현석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순수한 호의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이놈아. 순수? 내 지금까지 살면서 너처럼 불순한 놈은 처음 보는데 그런 놈이 감히 순수를 입에 담아?”

    “그래서 안 보실 겁니까?”

    현석이 빙긋 웃으며 묻자, 황노인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크흠. 누가 안 본다고 했어? 그냥 그렇다는 거지.”

    황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현석은 그 위에 팔찌를 올려놓으며 간단히 설명했다.

    “영감님이 보신 게 맞아요. 이거, 제한이 걸린 겁니다. 특별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팔찌를 제대로 쓸 수 없어요.”

    “역시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지.”

    황노인은 역시 자신의 눈이 아직은 썩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리고 특별한 존재의 권능이 담긴 아티팩트입니다.”

    “특별한 존재? 그게 뭔데?”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 권능이 뭔지도 모르고요. 팔찌에 담긴 스킬이 권능의 하위버전일 것 같긴 한데…….”

    황노인이 눈을 반짝였다.

    “스킬이 담긴 아티팩트였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팔찌를 유심히 살피는 황노인의 눈은 열정적으로 빛나고 이었다.

    그걸 보는 현석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마 젊은 사람들도 저 정도 열정을 뿜어내긴 쉽지 않을 것이다.

    노익장이라는 건 딱 이럴 때 하는 얘기이리라.

    “그게 다야? 얼른 더 풀어봐.”

    “일정 공간을 붕괴시키는 스킬인데,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안 써봐서 모르겠네요. 뭐…… 생각보다 강하지 않을 거라는 추측은 가능합니다만…….”

    황노인이 눈을 번득이며 물었다.

    “이거…… 하나로 이루어진 아티팩트가 아니지?”

    현석은 황노인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습니까?”

    “척하면 착이지. 내가 이 바닥 물을 몇 년째 먹고 있는 줄 알아?”

    ‘그래봐야 던전이 열린 건 아직 4년도 안 되었습니다만…….’

    현석은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하긴 던전이 안 열렸다고 유물이 없는 건 아닐 테니까. 그리고 예전에 황노인도 지나가듯 말하지 않았던가. 특별한 아티팩트는 던전이 열리기 훨씬 전부터 있었다고.

    “척 보니 4개로 이루어진 세트 아티팩트로군.”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작은 힌트만 하나 듣고서 거기까지 파악해낸 황노인의 능력이 새삼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습니까? 보길 잘했죠?”

    황노인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팔찌를 더 유심히 살피더니 현석에게 휙 던졌다.

    “그 특별한 존재가 뭔지 한 번 나름대로 알아보마.”

    현석은 빙긋 웃었다. 딱 기다리던 대답이었다.

    “저도 혹시 알게 되면 알려드리죠.”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입 싹 씻으려고 했어?”

    “그럴 리가요.”

    현석은 황노인과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제법 즐거웠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때는 황노인이 이렇게 편하지 않았으니까.

    ‘그때는…… 사실 내가 마음을 닫고 있었지.’

    겪은 일이 하도 많고, 또 눈까지 안 보이니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렇게 날카로운 상황이니 황노인과 이렇게 한가로이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해봤다.

    현석은 황노인을 보다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마력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다섯 명의 사내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현석의 시선을 따라 그쪽을 쳐다본 황노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여간 약속을 했으면 시간을 딱딱 지켜야지. 두 시간이나 일찍 오면 어쩌자는 거야?”

    황노인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조금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손님도 온 것 같은데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마력수 가지러 온 놈들이죠?”

    현석의 물음에 황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석은 대답을 듣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기에 황노인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부스를 나섰다.

    “조만간 또 놀러오겠습니다.”

    “그래. 다음엔 좀 차분히 얘기를 나눠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연락해라.”

    현석은 황노인의 반응에 살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마침 빠르게 다가온 사내들이 부스 앞에 도착하는 바람에 딱 마주쳤다.

    생소한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누군지는 뻔했다. 진대호의 심복들이리라.

    진대호가 레드드래곤 길드를 엿먹이고 나갈 때 함께 데리고 나갈 플레이어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현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현석이 어느 정도 멀어질 때까지 부스 앞에서 기다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영감님, 마력수 받으러 왔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네놈들은 내가 약속시간을 정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

    “죄송하게 됐습니다. 급해서 그렇습니다. 위에서 어찌나 쪼아대는지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니까요?”

    “저 구석에 있는 거 가져가.”

    “예. 대금은 바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황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석은 느긋하게 걸으며 그 대화를 고스란히 들었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대어를 두 마리나 낚을 수 있겠네.”

    이미 미끼는 양쪽에 다 드리웠다. 그리고 양쪽 다 그걸 덥석 물었다.

    “진대호, 이번에는 네놈 마음대로 안 될 거다.”

    현석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잠깐 어렸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발걸음을 빨리한 현석이 이내 암시장을 나섰다.

    * * *

    “이게 제대로 만든 힐링포션들이라 이거지?”

    “예. 맞습니다. 성능도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쿨타임은 어느 정도나 되지?”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짧은 시간을 두고 사용이 가능하고, 어떤 사람은 좀처럼 다시 쓰기 어려웠습니다.”

    “강한 놈일수록 더 자주 쓸 수 있나?”

    “예. 대체적으로는 그랬습니다.”

    진대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머지 보고를 이어 들었다.

    힐링포션에 대한 성능은 한중현이 혼자 쓰고 있는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드디어 힐링포션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력수 공급에 대한 계약은?”

    “종로 암시장과 괜찮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독점계약을 한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물량 확보 자체가 어려운 물건인지라 우리 외에 다른 곳에 넘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향후 물량이 더 확보되면 최우선적으로 우리 쪽에 넘기기로 약속도 받아놨습니다.”

    진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꿀 같은 아이템을 다른 곳에 넘길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황노인의 약속은 믿어도 되지.”

    진대호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맺혔다.

    “일단 이번에 만든 건 전부 우리 애들한테 풀어.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좀 봐야겠다.”

    “예.”

    수하가 밖으로 나가자, 진대호는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눈빛은 결코 느긋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시작할 수 있겠어.”

    진대호 입장에서는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었다.

    “하늘이 날 돕는군.”

    진대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의외의 만남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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