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외의 만남 2 >
“대체 어느 던전을 털면 이런 게 나오는 게냐?”
황노인은 집요하게 물었다. 물론 현석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 말하려면 투명 던전의 존재에 대해 말해야 한다. 물론 말해준다고 그걸 찾을 수 있지는 않겠지만, 지식의 유무는 나중에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지 모른다.
현석은 이 중요한 무기를 남에게 공개하거나 넘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황노인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요즘 네놈이 여기저기 땅을 사들이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사람 뒷조사 좀 그만하고 다니시죠. 기분 나빠지려고 하니까.”
“크흠. 뒷조사는 무슨. 그냥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소문 몇 자락 주워 담은 것밖에 없는데. 이걸 내가 조사했을 것 같으냐?”
그 말에 현석은 굳어가던 표정을 풀었다. 황노인은 지금 그 말을 통해 자신에게 정보를 알려준 것이다. 뒤를 캐고 다니는 놈들이 있다고 말이다.
“한두 놈이 아니야. 힐링포션에 대한 정보가 새고 있어. 이미 자리 잡은 길드는 물론이고 새로 길드를 창설하려는 놈들까지 혈안이 되어서 힐링포션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으니까.”
“막느라 고생 좀 하셨겠네요.”
“뭐, 완벽하게 틀어막지도 못했는데 고생은.”
말은 그렇게 해도 정말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정보는 완벽하게 틀어막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정도만 해도 정말 굉장한 것이다.
“한데, 너 이 녀석, 진짜 무슨 꿍꿍이야?”
황노인은 마력수 한 병을 들고 그걸 이리저리 살피면서 물었다.
마력수는 얼핏 보기엔 그냥 물이랑 똑같다. 실제로도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그냥 물과 다르지 않다. 마셔도 된다.
하지만 황노인의 눈에는 뭔가 다른 점이 보이는 건지 병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뭐가 구분이 가긴 합니까?”
“그럼, 구분도 안 가는데 이 짓을 하고 있을까?”
현석은 그 말에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전 확실히 전달했습니다.”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다시 들었다. 그러자 황노인이 급히 말했다.
“그냥 가려고? 그 가방이나 한 번 보여줘.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보여주면 뭘 주시렵니까?”
보통 사람은 이런 걸 아무리 봐도 얻는 게 없겠지만 황노인쯤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마 황노인은 이 아티팩트를 면밀히 살펴 자신만의 특별한 기준을 새로 정립할 것이다.
황노인은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허! 내가 그동안 해준 게 얼마인데 고작 가방 하나 보여주는 걸로 유세 떨 거야?”
현석은 빙긋 웃으며 가방을 내밀었다. 그냥 농담삼아 해본 말일 뿐 고작 이런 걸로 유세 떨 생각은 없었다.
“크흠. 대가라기에는 좀 뭐하고…… 내가 살펴보는 동안 저 옆에 서 있든가.”
현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황노인이 팔찌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거 의뢰한 놈이 찾으러 오고 있어. 손님이 있다고 했는데 상관없다니 누군지 한 번 보기나 하든가.”
“그래도 됩니까?”
현석이 놀란 눈으로 황노인을 보며 물었다. 사실 허락을 구했다고 해도 이럴 때는 현석을 보내고 따로 보는 게 관례였다.
아마 그쪽에서도 은근히 그걸 바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해준다는 건 황노인이 상당히 마음을 써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쪽이야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을 거다. 그 정도는 되는 사람이니까.”
현석은 그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황노인 근처로 가서 섰다.
저렇게까지 말하니 누군지 궁금했다. 만일 플레이어라면 정보라도 확인할 수 있으니 괜찮을 듯했다. 중요한 사람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 힘이 되는 법이니까.
황노인이 마력수를 한쪽으로 차곡차곡 쌓는 걸 도와주는 사이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상당히 거대하면서 절제된 마력의 흐름과 패턴이 느껴졌다.
현석은 일하던 걸 멈추고 돌아서서 마력이 다가오는 쪽을 쳐다봤다.
“이놈아, 한 번 손댔으면 끝까지 해 줘야지. 왜 하다 말아?”
황노인이 병을 정리하며 말하자, 현석은 다시 정리를 도왔다. 일이 끝남과 동시에 큰 마력을 지닌 사람이 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탄탄한 몸과 강인한 인상의 얼굴을 한 사내였다.
현석은 그를 보자마자 눈에 마력을 돌려 심안을 발동시켰다.
[추광열]
현석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한국 제일의 플레이어 추광열이 의뢰인일 줄은 몰랐다.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이런 아티팩트를 얻지.’
추광열은 황노인과 현석을 번갈아 바라본 다음 말했다.
“의뢰는?”
황노인이 팔찌를 내밀며 말했다.
“실패야.”
“실망이군.”
황노인은 머쓱한 표정으로 추광열의 시선을 피했다. 사실 이런 적은 자신도 처음이었다.
“그래도 역시 당신에게 맡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추광열은 그렇게 말하며 팔찌를 이리저리 살폈다.
“지금까지 이걸 맡은 놈들은 말도 안 되는 감정결과를 내밀었거든.”
그 말에 황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팔찌는 뭔가…… 자격이 안 되면 건드리지 말라는 듯해서 만지기가 꺼려지더란 말이지. 그리고…… 뭔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별 거 아닌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제대로 감정을 안 돼.”
추광열은 그 말에 팔찌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현석을 발견하고는 황노인에게 물었다.
“저 친구는 누구지? 제자는 아닌 것 같고…….”
황노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냥 간단한 물건 몇 가지 거래하는 사이야.”
추광열의 눈이 빛났다.
“당신과 거래할 정도 사이라고? 안목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군.”
추광열은 그렇게 말하며 현석에게 팔찌를 내밀었다.
현석은 묘한 눈으로 추광열을 쳐다봤다. 팔찌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었나? 추경훈하고는 아예 다른 사람이군.’
현석은 눈에 마력을 더했다. 그리고 추광열의 이름에 집중했다. 이내 정보가 주르륵 떠올랐다.
[이름-추광열]
[타이틀-마력을 이해한, 회피의 달인]
[레벨-103]
[마력-1230]
[힘-92, 민첩-119, 체력-80, 지능-37, 정신력-49]
[스킬-절대회피, 섬격]
레벨이 무려 103이었다. 90레벨에 오르기 힘들듯 100레벨은 차원이 달라지는 기준점이라 할 수 있었다.
100레벨을 넘어간 플레이어는 이미 인간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강해진다.
게다가 타이틀을 두 개나 갖고 있다.
[마력을 이해한-마력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 마력에 대해 잘 알게 되었을 때 얻게 되는 호칭. 마력+200]
[회피의 달인-육체적 능력 이상의 회피력을 보여준 사람에게 주어지는 호칭. 민첩+4]
둘 다 만만치 않게 괜찮은 타이틀이었다. 현석은 내친 김에 스킬까지 확인해봤다.
[절대회피-상극이 되는 스킬을 통한 공격 외의 모든 공격을 10초간 100% 피할 수 있다. 한 번 쓰면 1시간 동안은 다시 쓸 수 없다.]
[섬격-마력의 절반을 빛속성으로 바꾸어 강력한 공격을 한다. 마력량에 비례한 파괴력을 낸다. 마력이 절반 이상 차있지 않으면 쓸 수 없다.]
절대회피는 엄청난 스킬이었고, 섬격은 애매한 스킬이었다. 마력에 비례한 파괴력이라는 말 자체가 애매하다.
‘아마…… 마력을 잘 다룰수록 파괴력도 더 올라가겠지. 이것도 제법 괜찮은 스킬이야.’
현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추광열을 쳐다봤다. 그러자 추광열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기분이 좀 이상한데? 너…… 나한테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현석은 그 말에 뜨끔했지만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담담하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확실히 100레벨이 넘어가니 그냥 다른 플레이어랑은 다르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석에게는 안 된다. 현석은 얼마 전 90레벨이 되었다.
추광열에 비하면 무려 13레벨이나 아래에 있다. 하지만 가진 스탯은 오히려 추광열을 압도했다.
현석이 추광열보다 못한 것은 마력과 지능뿐이었다. 그나마도 조만간 앞지를 것이 분명하다.
만일 현석이 100레벨은 넘기면 그 차이는 훨씬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이것은 모두 현석이 마계에서 레벨업을 했기 때문이다.
마계는 다른 던전과 환경이 전혀 다르다. 또한 위험도도 다르다.
보통 던전은 마계에 비하면 어린애들이 수련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 정도로 차이가 심했다.
스탯을 많이 올리려면 목숨을 내던지듯 사냥하면 된다.
플레이어는 정확히 목숨을 건 만큼 강해지게 되어 있으니까.
현석은 그걸 알기에 애써 마계를 찾아간 것이었다. 마계는 공기조차 플레이어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 또한 그조차 방심하면 위협으로 다가온다.
아마 추광열도 그걸 알고 있다면 절대 이렇게 쉽게쉽게 레벨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추광열이 위협적으로 현석에게 한 발 다가갔다.
하지만 현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위협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똑바로 말해.”
현석이 피식 웃었다.
“확신해?”
추광열이 현석에게 얼굴을 슥 들이밀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확신? 온몸이 이렇게 간질간질한데? 이보다 더한 증거가 있어?”
“몸이 가려우면 목욕을 해.”
추광열이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팔찌를 손가락에 끼워 빙글빙글 돌렸다.
“너 그거 뭔지 모르지만 계속하고 있어. 이 간지러운 느낌 사라지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현석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추광열은 팔찌를 계속 빙빙 돌리며 말했다.
“난 이 팔찌를 건다. 넌 뭘 걸래?”
“확인은 가능하고?”
“뭘 걸지나 말해. 납득할 수 없으면 내가 진 걸로 할 테니까.”
현석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가방을 쳐다봤다.
“저걸 걸지.”
추광열의 시선이 이번엔 황노인에게로 향했다. 황노인은 단호히 말했다.
“가방을 건 사람이 손해 같은데?”
그 말에 추광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품에서 작은 구슬 하나를 꺼냈다. 특별한 아티팩트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구슬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상당했으니까.
현석은 구슬을 확인했다.
[마력감지기]
[고차원적인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 마력의 분포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마력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아티팩트야. 어때? 확실하지?”
현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팔찌 잘 쓰지.”
추광열이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 그걸 네가 쓸 수나 있을 거 같아?”
추광열이 팔찌를 내기에 건 것은 그가 절대 쓸 수 없는 아티팩트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 팔찌는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을 의뢰했던 것인데, 그것까지 실패했으니 깔끔히 미련을 접기로 했다.
추광열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단호하기가 칼 같았다. 이미 포기한 물건이니 내기에서 져도 아무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내기에서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마력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 머저리들.’
추광열은 플레이어들을 그렇게 평가했다. 마력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진짜 플레이어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진짜 플레이어는 딱 한 명 만나봤다.
미국에 있는 라이언, 세게 제일의 플레이어이자 추광열의 목표인 사람이었다.
추광열은 온몸을 간질이는 이 묘한 감각이 마력에 의한 것이라 확신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 겪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추광열은 열기 어린 눈으로 현석과 검은 보스턴백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제 뭔지 모르지만 귀한 아티팩트인 건 확실했다.
‘이제 저건 내 거야.’
추광열은 구슬을 앞으로 내밀었다. 여전히 몸을 간질이는 감각은 그대로였다.
이제 이걸 작동시키기만 하면 끝난다.
우우웅.
마력감지기에 마력이 흘러들어갔고, 새파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의외의 만남 2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