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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53화 (53/326)
  • < 의외의 만남 1 >

    레드드래곤 길드의 성장은 눈부시게 빨랐다.

    그렇지 않아도 시작부터 삼현 그룹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소문 때문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시끌시끌했다.

    한데 이젠 레드드레곤 길드를 이끄는 길드마스터 한중현의 레벨이 공개되며 더 큰 불을 질렀다.

    공개한 한중현의 레벨은 무려 96이었다.

    한국 최고인 추광열이 마지막으로 공개한 레벨이 98이었다. 그가 공개할 당시 그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레벨이 높은 사람이 되었다.

    이제 100레벨을 넘었을 거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는 더 이상 레벨을 공개하지 않았다.

    추광열의 뒤를 잇는 플레이어는 많았다. 하지만 워낙 레벨의 격차가 커서 별 의미가 없었다. 90레벨을 넘은 사람도 없었으니까.

    한데 그 추광열에 근접한 플레이어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무려 96레벨이라는 어마어마한 레벨을 갖고 말이다.

    한중현은 단숨에 한국의 2인자가 되었다. 그리고 세계에서 20위 안에 드는 실력자가 되었다.

    물론 레벨을 공개하지 않은 고렙 플레이어도 있을 것이다. 그 수가 적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벨 측정을 하지 않고 버티는 건 자신도 레벨을 모른다는 뜻인데, 그런 궁금증과 호기심을 인간이 안고 살아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레벨이 공개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 정설이었다.

    어쨌든 그런 걸 다 포함한다 해도 전 세계에서 한중현을 능가할 만한 플레이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무려 96레벨의 괴물 플레이어이니 말이다.

    그런 뛰어난 실력자가 길드를 이끄는데 그 길드가 흥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레드드래곤 길드의 플레이어들 중 다수가 급격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무수한 플레이어들이 레드드래곤 길드의 문을 두드렸다.

    레드드래곤 길드 입장에서는 레벨이 높거나 잠재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들을 골라 차근차근 길드에 받아들였다.

    이제 레드드래곤 길드는 한국 제일의 길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길드원의 수도 몇 배나 늘었고, 평균레벨도 훨씬 높아졌다.

    한중현은 그 모든 과정이 담긴 보고서를 들고 쭉 읽어 내려갔다.

    보고서는 좀 더 자세히 각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또한 최근 받아들인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좋군. 관리센터 쪽은 요즘 분위기가 어떻지?”

    “신설 길드들이 관리센터 쪽의 인재를 사냥 중인지라 분위기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하긴, 인재를 구하려면 그쪽을 기웃거리는 게 제일이긴 하지.”

    던전 관리센터 소속의 플레이어는 공무원 취급을 받았다. 물론 진짜 공무원보다는 훨씬 위험했고, 보수도 막대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관리센터 소속 플레이어는 일반적인 다른 플레이어에 비해 훨씬 안전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온실 속 화초라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그런 관리센터가 요즘 흔들리고 있었다. 이는 사실 플레이어로 잔뼈 좀 굵었다는 사람이라면 예전부터 예상하던 일이기도 했다.

    “슬슬 관련 법안이 통과될 모양이니 훨씬 빨라지겠지.”

    한중현은 느긋했다. 어차피 레드드래곤 길드는 그쪽에 기웃거릴 필요가 없었으니까.

    레드드래곤 길드의 문을 두드리는 플레이어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물론 수가 많아지는 만큼 양아치도 많았고, 또 어중이떠중이도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잘만 골라내면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자나, 이미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보석 같은 플레이어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런 인재를 발굴해 받아들이는 일은 모두 진대호의 몫이었다.

    한중현은 자신의 레벨을 올리고 길드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는 걸로 소임을 다 했다고 믿었다.

    “채현석 쪽은 어때? 아직도 우리 길드에 들어올 생각이 없다던가?”

    “예. 지속적으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개인적인 팀을 만드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져 가고 있는 듯합니다.”

    한중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힐링포션을 팔면서 번 돈도 엄청날 것이다. 그 돈을 자신이 지불했으니 액수까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돈으로 끌어들이는 건 안 될 거고…… 다른 적당한 당근을 찾아봐. 아무리 생각해도 탐나는 녀석이야.”

    한중현은 현석이 힐링포션 말고 다른 패도 쥐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힐링포션 못지않게 이 바닥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작품이 될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예. 찾아보겠습니다.”

    한중현이 손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 실장만 꽉 믿고 있을 테니 알아서 잘 해봐. 난 슬슬 던전에 가봐야 할 것 같으니 가서 일 보고. 바쁠 텐데 말이야.”

    “예. 그럼.”

    진대호가 정중히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한중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이리저리 꺾으며 몸을 풀고는 장비를 챙겼다. 마치 사냥에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 * *

    종로 암시장에 들어선 현석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보름 만에 오는 것 같은데…… 정말 많이 달라졌군.’

    암시장 안은 플레이어로 바글거렸다. 각 부스도 물건으로 넘쳐났고, 장식도 훨씬 화려해졌다.

    지하 깊은 곳에 만들어진 장소인데도 마치 대낮에 돌아다니는 것처럼 밝았다.

    높은 천장에 밝은 LED등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그 빛이 모든 어둠을 몰아냈다.

    현석은 커다란 보스턴백 하나를 들고 있었다. 한데 무늬가 참으로 특이했다.

    새까만 색의 가방이었는데, 그 위에 기하학적인 금빛 문양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특이한 패턴을 가진 새 브랜드 가방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든 문양이 특정한 패턴을 가진 게 아니라 다 제각각이고, 모두 이어져 있었다.

    시중에서 파는 가방은 절대 아니었다.

    가방을 든 현석의 모습은 사실 암시장 안에서는 그리 크게 튀지 않았다. 비슷한 크기의 다양한 가방을 든 사람이 무수히 많았으니까.

    다들 각자 가진 물건을 들고 와서 팔거나, 이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 가기 위해 온 사람들이니 당연했다.

    덕분에 현석은 별 위화감 없이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목적지로 갈 수 있었다.

    암시장 안에서 현석이 찾을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현석의 기억으로 그 사람은 20년 후에도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했다.

    현석은 능숙하게 길을 찾아 황노인의 부스에 도착했다.

    황노인은 현석이 온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별로 놀라지도 않고 하던 일을 계속 했다.

    황노인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아티팩트 하나를 감정하는 것이었다. 한데 뭔가가 잘 안 되는지 눈살을 찌푸린 채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석은 황노인이 손에 든 아티팩트를 힐끗 쳐다봤다. 제대로 세공되지 않아 투박한 보석이 빙 둘러 박혀 있는 팔찌였다.

    보석이 세공되지 않아 자칫하면 볼품이 없을 수도 있는데, 이 팔찌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투박한 보석들이 팔찌의 밋밋한 모양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오히려 절제된 멋을 풍겼다.

    현석은 그걸 보며 눈을 빛냈다. 자동으로 눈에 마력이 맺혔고, 팔찌의 이름이 떠올랐다.

    [네 번째 증표]

    현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팔찌에 걸맞은 이름이 아니지 않은가.

    ‘증표?’

    이럴 때는 마력을 더 밀어 넣어 자세한 정보를 보면 된다. 하지만 정보를 확인한 현석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 번째 증표]

    [????을 증명하는 네 가지 증표 중 네 번째. ????의 권능 중 일부가 깃들어있다. 90레벨 이상만이 사용 가능. 마력을 넘어선 자만이 사용 가능. 스킬 붕괴가 깃들어 있다.]

    현석은 심안으로 본 정보 중에 물음표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저건 뭐지? 아직 자격이 안 되어서 공개가 안 되는 건가?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막아 놓은 건가?’

    하지만 저 물음표로 가려진 것이 누군가의 이름이나 지위를 나타낼 거라는 사실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사실 썩 대단치 않은 아티팩트였다. 제한은 제한대로 심하게 걸려 있고, 얻을 수 있는 건 고작 스킬 하나였으니까.

    ‘무슨 스킬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석은 스킬도 확인했다.

    [붕괴-시야에 들어오는 일정 공간을 붕괴시킨다. 레벨과 마력의 조절 능력에 따라 위력이 달라진다.]

    상당히 애매한 스킬이었다. 일정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고, 또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마력을 넘어선 자는 또 뭐야?’

    직감적으로 마력에 대한 타이틀을 말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현석이 마력의 주인이니 그와 비슷한 타이틀일 것이다.

    문제는 마력의 주인이 더 위에 있느냐, 아니면 마력을 넘어선이 더 위에 있느냐이다.

    ‘내가 더 위인 것 같은 느낌이긴 한데…….’

    현석이 빤히 팔찌를 보고 있자, 황노인이 감정을 그만두고 뚱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뭘 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현석이 팔찌에서 눈을 뗐다. 저 팔찌가 감을 계속 건드렸다.

    별 거 아닌 아티팩트지만 반드시 얻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거 팔 겁니까?”

    황노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감정 의뢰를 받은 놈이야.”

    “잘 안 되시나 봅니다.”

    황노인이 팔찌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나도 갈 때가 다 된 모양이다. 어째 보이지가 않누.”

    현석은 새삼 황노인의 감정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의뢰한 건지 알 수 있습니까?”

    “뭐 그리 당연한 걸 물어? 될 것 같으냐?”

    현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알려줄 리가 없다. 황노인처럼 신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인이 의뢰인의 정보를 말해줄 리 있겠는가.

    현석도 얘기를 듣겠다고 물어본 게 아니었다. 어차피 굳이 황노인의 입을 통하지 않아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많았으니까.

    “물건이나 내놔 봐. 주문 시간 맞추려면 빠듯하니까.”

    현석은 그 말에 가방을 탁자 위에 턱 올렸다.

    황노인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애초에 주문한 물량이 이 정도 크기의 가방에 다 들어갈 리 없었다. 최소 이 가방의 열 배는 되는 크기라야 어찌어찌 양이 맞을 것이다.

    잠시 가방을 살피던 황노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너…… 너! 이, 이 가방 대체 어디서 난 거야?”

    “던전 좀 돌다가 얻었습니다.”

    “던전? 던전에서 이런 가방이 나왔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황노인의 말에 이번엔 현석이 놀랐다.

    저 말의 의미는 던전에서 나오는 모든 물건을 다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물론 관리센터가 보유한 던전 생성지역 내에 국한되긴 하겠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던전이 거기에 있으니 거의 모든 물품을 확인할 수 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물 건너온 것도 아닐 테고…….”

    던전에서 나오는 재료나 아티팩트는 국외로 반출될 때 너무 심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철저히 관리한다.

    그러니 그 정보를 입수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황노인은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정보망에 걸리지 않은 게 문제가 아니라 척 보기에도 이 아티팩트의 가치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거…… 이거 설마 공간확장 아티팩트는 아니겠지?”

    “이미 알고 계시면서 왜 확인을 하십니까?”

    현석이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고는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병에 담긴 마력수를 꺼내 탁자 위에 쌓기 시작했다.

    마력수가 담긴 병은 정말 끝없이 나왔다.

    탁자 위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투명한 병과 그걸 끊임없이 토해내는 검은 가방을 번갈아 바라보는 황노인의 눈이 점점 멍해졌다.

    < 의외의 만남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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