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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52화 (52/326)
  • < 현석의 집 2 >

    건물은 온통 투명했다. 밖에서 볼 때는 거무튀튀한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안에서 보니 꼭 유리로 만든 집 같았다.

    투명한 유리와 불투명한 유리를 절묘하게 섞어 만든 건물이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3층 건물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천장이 엄청나게 높았으니까.

    두 여인은 뒤따라 들어온 현석을 보며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듣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류혜연의 말에 현석은 주위를 슥 둘러보며 말했다.

    “일단 방부터 골라.”

    그 말에 두 여인은 즉시 후다닥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건물 구석구석을 모두 살펴본 다음에 커다란 방 하나를 골랐다.

    2층에 위치한 방이었는데, 방안에는 침대를 비롯한 모든 집기가 갖춰져 있었다.

    그녀들이 방을 고르자, 현석이 그곳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지낼 건가?”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지내는 게 낫지 않나? 이 방에는 욕실도 하나뿐인데.”

    두 여인이 이 건물에 들어와서 가장 놀랐던 점은 모든 방에 따로 욕실과 화장실이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 공간이 어떻게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치 공간을 비틀어 뚫어 놓은 것 같았다.

    그저 얇은 벽인데 막상 문을 열면 그 안에 넓은 욕실과 화장실이 펼쳐져 있었다.

    솔직히 그 어떤 집을 구한다고 해도 이보다 더 좋은 방을 얻기는 어려울 듯했다.

    “방이 넓으니 둘이 같이 쓰는 게 마음이 더 편해요.”

    류지혜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오늘 류혜연이 하는 걸 보며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냥 방치하면 그녀가 무슨 일을 벌일지 상상하기도 두려웠다.

    ‘뭐……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긴 하지만…….’

    류지혜는 담담한 얼굴의 현석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자신들을 앞에 두고 저렇게 담담함을 계속 유지하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어떤 사람이건 남자라면 류지혜를 보고 눈을 빛냈으며, 류혜연을 보면 대부분 눈빛에 욕망이 드러났다.

    한데 현석에게는 전혀 그런 것이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럼 그러든가.”

    현석은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시선을 옆에 있는 불투명한 벽으로 돌렸다.

    “저기에 장비를 보관하면 될 거야.”

    “예? 저기에요?”

    류지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벽뿐이었다.

    화장실의 경우도 있고 해서 뭔가 문을 여는 손잡이라도 있지 않을까 유심히 살폈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

    현석은 류지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가져온 장비 중 하나를 얼른 건넸다.

    현석은 그 장비를 벽으로 가져가 그곳에 쑥 밀어 넣었다.

    “헐!”

    류지혜는 절로 그런 소리가 나왔다. 장비가 벽을 뚫고 안으로 쑥 들어간 것이다.

    “넣은 사람에게만 보이지.”

    류지혜는 신기한 눈으로 현석과 벽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내 현석이 장비를 다시 꺼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류지혜와 류혜연은 후다닥 달려가 벽에 자신의 장비를 쑥쑥 밀어 넣었다.

    정말로 신기하게도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 고이 자리잡은 장비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진열장에 장식이라도 해 놓은 것 같았다.

    “서로 물건 헷갈릴 일은 없겠네요.”

    류지혜와 류혜연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대체 정체가 뭔지 이제 정말 궁금해졌다.

    * * *

    현석은 류지혜와 류혜연을 응접실로 데려왔다.

    이 건물에서 가장 좋은 장소가 바로 응접실이었다. 사방이 투명해서 그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숲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건물 자체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가 응접실을 감싼 유리가 시야를 확대하는 효과까지 갖고 있어서 정말로 숲을 코앞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여기…… 던전 맞죠?”

    류지혜가 물었다.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그 정도는 유추할 수 있을 테니 굳이 감출 필요도 없었다.

    류지혜는 자신이 예상했던 사실을 확인하자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땅속에 있는 던전을 찾으신 거예요? 보아하니 원래 지하실이 있던 자리가 아니라 일부러 뚫은 것 같던데…….”

    현석은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투명 던전을 억지로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얘기는 결코 입 밖으로 꺼내선 안 되는 사실이었다.

    류지혜도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기에 그저 감탄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던전인데…… 안전한가요? 마수가 없는 던전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블랙홀의 경우 마수를 모두 토벌해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생겨난다.

    그걸 이용해 같은 마수를 무수히 사냥하는 플레이어들도 있을 정도니까.

    물론 그건 성장에 전혀 도움이 안 되기에 흔하지 않긴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마수가 다시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화이트홀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만, 화이트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진 게 없기에 오히려 더 위험했다.

    화이트홀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인식은 얻을 건 거의 없고 위험도는 어마어마하게 높은 던전이었다.

    그러니 만일 여기가 화이트홀이라면 그건 오히려 더한 불안요소였다. 물론 들어오면서 본 바에 따르면 화이트홀은 절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말이다.

    류지혜와 류혜연은 침까지 삼키며 긴장한 눈으로 현석의 답을 기다렸다.

    현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원래 없는 던전이다.”

    “예?”

    “그런 던전도 있어요?”

    류지혜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그녀가 쌓아온 던전에 대한 상식 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으니 그런 표정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현석은 오히려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던전에 대해 얼마나 알지?”

    류지혜는 입을 다물었다. 알긴 뭘 안단 말인가. 사실 현석이 그동안 보여준 것만 해도 자신이 아는 척 나서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화이트홀에 들어가 본 적은 있나?”

    류지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냥 블랙홀을 돌며 성장할 시간도 모자란데 말이다.

    “변종 블랙홀은 본 적 있나?”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그런 게 있다는 말도 지금 처음 들었다.

    “던전에 대한 걸 네 얄팍한 상식 안에 가두지 마라. 생각보다 훨씬 방대한 세상이니까.”

    현석이 지금 한 말은 20년 후의 미래에는 흔히 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초보 플레이어가 되면 가장 먼저 저 말과 함께 기본 지식을 교육받는다.

    던전은 20년 후에도 여전히 신비로운 존재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 고작 던전 시대가 시작된 지 4년이 다 되어갈 뿐인데 저렇게 겉만 보고 단정해 버리는 게 얼마나 우습고 또 위험한 일인지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었다.

    류지혜와 류혜연은 현석의 말을 들으며 마음 깊은 곳이 크게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알았어요. 명심할게요.”

    두 여인은 거의 동시에 그렇게 대답했다.

    현석은 그제야 빙긋 웃으며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이 던전은 기본적으로 드나드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지.”

    “문을…… 연다고요?”

    이것 또한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녀들은 일렁이는 눈빛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어떻게 이다지도 생소한 얘기만 할 수 있는지 보면 볼수록, 또 겪으면 겪을수록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걸 제대로 연습하지 않으면 앞으로 들어오기 쉽지 않을 거야.”

    두 여인은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현석이 왜 자신들의 집에 와서 보안과 안전을 얘기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산다면 보안이나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정말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던전을 열고 잠그는 걸 연습해야 돼. 들어온 다음에 잠그지 않으면 플레이어는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을 테니까.”

    그건 정말 중요한 얘기였기에 두 여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몇 시간에 걸쳐 마력을 이용해 던전을 열고 닫는 훈련이 시작되었다.

    딱 이들이 머무는 집이 있는 투명던전에 국한한 방법이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투명던전은 다 다른 방식으로 잠겨 있었고, 그걸 모두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현석뿐이었다.

    제대로 던전을 열고 닫으려면 마력의 흐름과 패턴을 눈으로 직접 보듯이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류지혜도 류혜연도 그런 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말 그대로 주먹구구식으로 무식하게 배울 수밖에 없었다.

    딱 한 곳만 열고 닫으면 되기에 쓸 수 있는 방식이기도 했다.

    현석은 강제로 마력 흐름을 만들어 던전을 여는 법을 가르쳤다.

    그저 마력의 흐름과 패턴을 강제로 몸에 각인시키다시피 했기에 그걸 가르치는 것만 해도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걸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두 여인이 계속 반복훈련하는 걸 도와야 했다.

    물론 계속 현석이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 뒤로는 알아서 숙달해야 할 문제니까.

    현석은 딱 자신이 해야 할 일만 마무리 하고는 응접실에서 나갔다.

    류지혜와 류혜연은 숲 한가운데서 수련하는 기분으로 끊임없이 마력을 움직여 가상 던전을 열고 닫는 걸 반복했다.

    * * *

    “어떻게 되어가나?”

    진대호가 연구실에 들어가자마자 물었다. 최근 힐링포션을 얻은 뒤로 미친 듯이 사냥에 몰두하는 한중현 덕분에 이렇게 따로 시간을 내기가 쉬워졌다.

    진대호를 발견한 연구원들이 저마다 일어나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인사는 됐고, 보고나 해.”

    그러자 책임연구원이 득달같이 달려와 보고했다.

    “성공했습니다.”

    진대호의 눈이 번득였다. 생각보다 빨리 성공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하긴, 재료에 방법까지 모두 취합했는데 늦어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진대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마력수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대량생산을 하려면 물량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진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종로 쪽이랑 얘기 중이니까. 제작 속도는 어느정도지?”

    “기본적으로 숙성 시간이 필요해서 한 번 만드는 데 48시간은 필요합니다.”

    “48시간이라…….”

    진대호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건 지속성이니 꾸준히 재료를 공급하면 해결될 문제로군.”

    “맞습니다. 다만…… 시설을 좀 더 확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대호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해.”

    책임연구원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진대호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연구실을 지켜보다가 이내 밖으로 나갔다.

    연구실 밖 공터에는 새로운 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각종 재료를 보관할 장소부터 완성된 힐링포션을 보관할 금고까지 한꺼번에 만드는 중이었다.

    “아쉬워. 재료만 제대로 뽑아낼 수 있으면 던전 세상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지금 생산하는 정도로는 진대호 혼자 쓰기에도 빠듯하다. 물론 개인이 쓰겠다는 게 아니라 진대호가 향후 만들게 될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함께 쓰는 것이다.

    길드의 성장이 곧 자신의 성장이나 다름없으니 그 정도는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었다.

    “투자가 많아졌으니 길드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더 강하게 얽어매야겠어.”

    진대호의 눈에 야망의 빛이 일렁였다. 이제 슬슬 시작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레드드래곤 길드를 제대로 엿 먹일 계획만 확실하게 세워지면 바로 시작할 계획이었다.

    “정말 기대되는군.”

    진대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섬뜩하게 웃었다.

    < 현석의 집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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