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석의 집 1 (2권 끝) >
현석의 집에 도착한 류지혜와 류혜연은 어이없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아직 공사 중인 거 같은데요?”
“차라리 끝날 때까지 우리 집에 계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현석은 그녀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가 한창인 집으로 걸어갔다.
인부며 장비가 잔뜩 몰려 있었다.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현석은 그곳의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가서 봉투 하나를 건네주고는 두 여인을 돌아봤다.
책임자의 인사를 받으며 안쪽으로 들어가는 현석의 뒤를 황급히 쫓아가는 류지혜, 류혜연의 얼굴에 살짝 당혹감이 어렸다.
“정말 여기서 지낸다고요?”
현석은 대답 없이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다. 사실 건물은 제법 올라가서 이제 마무리만 남은 것처럼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대로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안쪽으로 들어간 현석은 바닥에 뻥 뚫린 구멍 앞에 섰다.
“이, 이건 뭐죠?”
구멍 안쪽은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류지혜는 그런 구멍을 보자 덜컥 겁부터 났다.
현석은 말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냥 지하실인 모양이었다.
류혜연은 겁도 없이 현석을 따라 얼른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류지혜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지하실로 걸음을 옮겼다.
“하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정말 오늘 벌어진 일 자체가 너무 정신없고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아니, 현실감이 없었다.
추경훈이 보낸 플레이어부터 시작해 현석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자마자 던전관리센터로 들어가 추경훈을 비롯한 50명의 플레이어들과 대치하던 상황까지.
정말 숨 돌릴 틈도 없이 쭉쭉 진행되는 바람에 상황과 현석에게 끌려 다니기만 했다.
그것도 모자라 현석을 집까지 데려가고, 또 집에서 나와 이렇게 현석의 집으로 이사를 결정한 것도 오늘이었다.
고작 하루 만에 벌어졌다기엔 너무 많고 격렬한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또 눈앞에 척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지하실이 있었다.
‘만일 던전이라는 게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이런 걸 사람들이 던전이라고 불렀을 거야.’
딱 이야기나 게임 속의 던전처럼 생긴 입구였다.
류지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계단을 하나하나 걸어 내려갔다.
중간쯤 가니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너무 깜깜해서 거기에 사람이 서 있는 줄도 몰랐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류혜연이었다.
“왜……?”
왜 안 내려가고 여기 서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질문을 꺼내지도 못했다. 류혜연 앞에 서 있는 현석 때문이었다.
“마력을 얼마나 잘 움직일 수 있지?”
“예?”
류지혜가 멍청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마력을 얼마나 잘 움직일 수 있느냐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현석은 류지혜의 대답을 바란 게 아니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앞으로 연습 좀 해둬야 할 거야.”
그렇게 말한 현석은 계단 옆쪽 허공에 손바닥을 뻗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빙글 돌렸다.
딸깍.
류혜연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는 놀라 언니인 류지혜를 바라봤다.
하지만 류지혜는 현석이 지금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녀는 결국 현석을 바라봤다. 여전히 놀란 눈을 지우지 못한 채였다.
현석의 눈이 빛났다.
‘확실히…… 마력에 반응하는 감도가 달라. 타이틀의 효과가 제법 대단한데?’
류혜연은 마력의 인정을 받은 타이틀을 보유 중이다. 마력의 주인인 현석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보통 플레이어보다는 훨씬 마력에 대해 민감하고 컨트롤 능력이 뛰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가 방금 나타났다.
이곳에는 현석이 애써 끌어온 투명 던전이 있었다. 이걸 끌어오기 위해 꼬박 사흘을 투자했을 정도로 가져오기 어려웠다.
이것은 현석이 회귀 후 들어간 두 번째 투명 던전이기도 했다.
[제23장교숙소]
던전의 이름이었다. 척 보기에도 군대에서 쓰던 숙박시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던전을 청소하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이 안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무수히 있었다.
수백 마리의 좀비와 스켈레톤을 처리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물론 고작 그것만으로는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
89레벨과 90레벨은 하나 차이지만 그 격차가 정말 까마득할 정도로 높았으니까.
어쨌든 현석은 장교숙소라는 이름이 붙은 투명 던전을 열었다. 이제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현석의 말에 류지혜가 어이없는 눈으로 현석이 가리킨 허공과 현석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지금 저 허공으로 들어가라는 건가요? 제법…… 높은 것 같은데요?”
물론 류지혜는 제법 레벨이 있는 플레이어니 여기서 뛰어내린다고 해도 다치진 않겠지만 말이다.
현석은 말없이 그저 류지혜를 쳐다보기만 했다. 류지혜는 결국 포기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하면.”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긴장한 표정으로 현석이 여전히 가리키고 있는 시커먼 허공을 보며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류지혜는 이를 악물고 그쪽으로 뛰었다.
물론 바닥으로 떨어질 거라 예상하고 뛰었다.
“헉!”
류지혜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멍하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커다란 건물 하나가 저 멀리 서 있었다. 그리고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류지혜는 그 울창한 숲 한가운데 조성된 공터 끝에 서 있었다.
척 보기에도 가운데 선 건물을 위해 만들어진 공터였다.
“이, 이게 뭐지?”
류지혜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하지만 생각을 길게 할 수는 없었다.
뒤에서 류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언니!”
류지혜는 급히 뒤로 돌았다. 류혜연 역시 놀라 눈이 동그래진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류혜연의 뒤에서 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류지혜는 정말 놀랐다. 현석이 마치 그 자리에 척 하고 생겨난 것처럼 나타났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있었는데 투명한 장막을 걷어낸 것 같기도 했고, 또 순간이동을 통해 이쪽으로 온 것 같기도 했다.
“따라와.”
현석은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류지혜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친절하게 설명 조금만 해주면 입이 부르트기라도 하나? 하여튼 까칠하고 무뚝뚝한 게 매력인 줄 착각하는 남자가 왜 이리 많은지. 드라마가 세상 다 버려놨어. 쳇.”
류지혜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옆에서 류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멋있다…….”
류지혜는 멍하니 현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린 동생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드라마의 피해자가 여기 또 있었다.
“얼른 가자.”
류지혜는 더 내버려 뒀다가는 동생의 정신을 붙잡을 수 없을 것 같아 얼른 손을 잡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류혜연은 언니가 당기는 대로 멍하니 끌려갔다.
사실 그녀도 지금 정말 놀란 상태였다. 그래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방금 그녀가 겪은 이 일은 사실 이전에도 수없이 경험했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이런 극적인 상황도 아니었고, 명백히 눈에 보이는 곳을 통해 이동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여긴 던전이야.’
류혜연은 그렇게 답을 얻은 다음 새삼스러운 눈으로 멀리 앞서가고 있는 현석을 바라봤다.
‘대체 얼마나 운이 좋으면 집 지하실에 던전이 생길 수 있지? 아, 그나저나 여기 안전하긴 한 거야? 어두웠으니까 블랙홀이었으려나?’
만일 화이트홀이었다면 안 보였을 리 없다. 화이트홀이 뿜어내는 특유의 하얀빛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블랙홀이라고 하기에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다. 아무리 깜깜했다고 해도 그녀가 블랙홀을 못 알아봤을 리 없다.
‘블랙홀도 그냥 새까맣기만 한 게 아닌데…….’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할 게 아니었다. 아까 현석이 손을 돌릴 때 들렸던 그 딸깍 소리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꼭…… 잠긴 문을 연 것 같았어.’
소리도 그랬지만 느낌도 딱 그랬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소리 때문에 그 느낌이 더 강해졌을 수도 있다.
한데 류혜연은 왠지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아까 언니의 표정을 보니 언니는 그 소리를 못 들었다. 그렇게 크고 확실하게 울렸는데 말이다.
류혜연은 기대감 어린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걸음을 빨리했다.
어서 이곳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현석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었다.
현석은 건물 앞에 서서 그녀들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냥 혼자 들어가 버리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건물 안에 못 들어온다.
이내 류지혜와 류혜연이 다가왔다. 그녀들의 눈빛은 비슷하면서 달랐다.
류지혜의 눈에 담긴 감정은 두려움에 가까웠고, 류혜연의 눈에 담긴 건 기대감에 가까웠다.
현석은 그녀들에게 투박한 반지를 하나씩 건넸다.
“이게 뭔가요?”
류혜연의 물음에 현석이 별 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열쇠.”
열쇠라는 말에 두 여인이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눈앞에 서 있는 웅장한 건물을 바라봤다.
5층쯤 되어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마치 미래의 건물을 보는 것 같았다.
외벽은 온통 검은 광택이 흐르는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창문도 없었다.
하지만 그냥 단순한 창고나 건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건물 외벽을 주기적으로 지나가는 희한한 문양의 빛 때문이었다.
현석은 살짝 옆으로 비켜선 다음 두 여인을 쳐다봤다. 현석이 비켜난 곳에 문이 있었다. 아니, 문처럼 생긴 것이 있었다.
문 모양의 빛나는 선이 네모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 그것이 문이 아니면 뭐겠는가.
‘왠지…… 열릴 거 같지 않은데…….’
류지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문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반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물론 류지혜는 그걸 보지 못했다. 그걸 본 건 그녀 뒤에 있언 류혜연이었다.
“언니! 반지!”
류지혜는 그제야 반지를 확인했다. 반지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다가 문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나타났다. 문이 그냥 사라진 것이다.
류지혜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현석을 쳐다봤다.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류지혜는 용기를 내서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안에는 밖에서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밖에 있던 류혜연은 발을 동동 굴렀다.
“왜에? 왜에?”
류혜연은 사탕을 바라는 아이 같은 표정과 눈빛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사실 그녀는 방금 본 광경이 정말로 신기했다. 류지혜는 그냥 벽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그랬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알고 싶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그리고 왜 언니가 안에서 저렇게 감탄을 했는지.
현석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여기까지 데려와 열쇠까지 줬다는 건 마음대로 안에 들어가도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아이처럼 허락을 구하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왠지 재미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즐겁고 가벼운 감정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 중 하나였다. 물론 현석은 얼른 웃음기를 지웠다.
순간 류혜연의 얼굴에서 아쉬운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건물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 언니와 똑같은 감탄사를 토해냈다.
“와아!”
현석은 자신도 모르게 빙긋 웃으며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현석의 집 1 (2권 끝)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