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50화 (50/326)
  • < 마족의 알 2 >

    “너무 당당하신 거 아닌가요?”

    류지혜는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류혜연은 좀 달랐다.

    “뭐 어때서 그래, 언니? 다른 분도 아니고 현석 오라버니인데.”

    류지혜가 황당한 눈으로 류혜연을 바라봤다. 류혜연은 그녀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류지혜는 그걸 보니 더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달아나 버렸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사실 그동안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류혜연이 얼마나 현석을 그리워했는지 누구보다 류지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한데 그런 현석을 이렇게 딱 만났으니, 그것도 그녀들이 위기에 빠진 상황에 만나 멋지게 모든 걸 해결해 버렸으니 류혜연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 기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에 류지혜는 그저 고개를 몇 번 젓는 걸로 이 상황을 끝내 버렸다.

    “자,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뭐 마실 것 좀 가져다 드릴까요?”

    현석은 류혜연의 환대를 받으며 그녀들의 집으로 들어섰다. 어찌나 자연스럽고 당당한지 마치 자기 집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물론 여기서 지낼 생각은 없었다. 현석에게는 머물 곳이 따로 있었으니까.

    현석이 여길 와본 것은 이들이 얼마나 보안이나 안전에 취약한 상황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현석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거실을 슥 둘러보고는 아무 방이나 일단 들어갔다.

    그리고 방을 쭉 확인하고 다른 방에 들어가 확인했다. 심지어 화장실까지 들어가서 둘러봤다.

    그걸 본 류지혜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현석은 대답하지 않고 집을 더 둘러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 결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취약했다.

    아마 아무리 던전 초창기라지만 플레이어가 이렇게 무방비로 지내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장비를 보관할 공간 정도는 마련해 둬야 할 것 아닌가.

    “장비를 저렇게 보관하는 건가?”

    현석은 침대 옆에 있는 협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보며 물었다.

    류지혜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눈을 흘겼다.

    “여자들이 자는 방을 그렇게 함부로 보셔도 되나요?”

    현석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류지혜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듯이 말이다.

    “그래요. 장비는 저기에 둬요. 언제든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 안심이 되니까요.”

    “침입자에 대비한 시설은?”

    류지혜가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대체 이 사람은 어딜 다녀왔기에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침입자라니. 그런 일이 벌어질 상황 자체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설마 추경훈 말고는 너희를 노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현석의 말에 류지혜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정확했다. 추경훈 말고는 그럴 사람이 없을 거라 여겼다. 아니, 추경훈이 너무 노골적으로 집적대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하리라.

    하지만 지금 현석의 말을 듣고 나니 자신이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지혜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을 때, 류혜연은 그녀와 달리 생글생글 웃으며 현석에게 다가가 팔에 살짝 매달렸다.

    “그렇게 혼만 내지 마시고 해결책도 알려주셔야죠. 그러려고 말씀 꺼내신 거 맞죠? 헤헤.”

    현석은 그런 류혜연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일말의 감정도 담기지 않은 담담하다 못해 차가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눈빛이나 표정만 그렇지 속으로는 살짝 당황한 상태였다.

    비록 예전의 그 마력과도 같은 미모와 매력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류혜연의 아름다운 외모와 풍기는 매력적인 분위기는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그런 여인이 이렇게 팔에 매달려 애교를 부리는데 흔들리지 않으면 남자가 아닐 것이다.

    현석의 표정이 조금도 변하지 않자, 류혜연이 살짝 실망한 표정으로 뺨을 부풀렸다.

    그 모습도 너무나 귀여웠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류지혜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류혜연의 이런 모습을 처음 봤다. 자기 여동생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도 지금 알았다.

    그녀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 그래서 어쩌라는 거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히려고 애썼지만 목소리는 떨려 나왔고, 말도 더듬었다. 그녀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현석은 그런 류지혜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우리 집으로 들어와.”

    “예?”

    류지혜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현석을 향해 소리쳤다.

    “지, 지금 제정신이세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다.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했을 뿐이고.”

    “그, 그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당신 집에 들어가는 거라고요?”

    현석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말이다.

    “전 좋아요!”

    류혜연이 한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혜연아!”

    류지혜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류혜연은 오히려 당당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양손을 허리에 척 얹고는 언니인 류지혜를 향해 말했다.

    “내 생각에도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인 거 같아. 우리 집을 둘러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오라버니댁에는 분명히 어떤 방비가 되어 있을 거야. 그렇죠? 오라버니?”

    류혜연은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현석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공사가 마무리 단계로 가고 있었다. 돈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기에 공사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일주일 안에 공사가 끝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방비도 끝날 것이다.

    물론 공사가 끝나기 전인 지금도 기본적인 방비는 충분히 되어 있다.

    “하지만…….”

    류지혜가 다른 말을 꺼내려 하자, 류혜연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언니가 걱정하는 일도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야. 그럴 거였으면 이미 난 끝났을걸? 안 그래?”

    류혜연의 당찬 말에 류지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이 맞다. 만일 현석에게 딴 맘이 있었다면 예전 류혜연이 아직 마력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때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남자를 잡아끄는 힘이 강력했으니까.

    ‘그런 혜연이를 보고도 괜찮았으니…….’

    류지혜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안감이 아예 사라질 수는 없었다.

    류지혜의 표정이 이리저리 변했다.

    현석과 류혜연은 류지혜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이내 류지혜가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현석을 바라봤다.

    “알았어요. 가요.”

    “만세!”

    류지혜가 허락하자, 류혜연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걸 본 류지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렇게 좋을까?’

    문득 류지혜는 불안한 시선으로 류혜연과 현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그리고는 막 떠오른 것처럼 현석에게 물었다.

    “아, 맞다. 이제 아까 일에 대해서 좀 설명해 주세요.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쯤은 알려줘도 되는 거 아닌가요?”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추경훈 쪽과는 이제 얽힐 일이 없다는 것만 알면 돼.”

    그뿐 아니라 얽히더라도 이제 현석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현석은 굳이 아까 일에 대한 걸 류지혜나 류혜연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 지저분한 일을 굳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거기에 대해 알게 되면 류혜연처럼 마음 약한 사람은 일말의 죄책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런 건 내가 다 짊어지면 되니까.’

    아까 깨뜨린 두 개의 구슬은 사실 그냥 구슬이 아니었다. 그건 구슬이 아니라 알이었다. 그것도 마족의 알.

    처음 깨뜨린 것이 빙마족의 알이고, 두 번째 깨뜨린 것이 뇌마족의 알이었다.

    그리고 빙마족과 뇌마족이 섞이면 정신계 마족이 태어난다.

    아까 현석이 벌인 일은 그 현상을 이용한 것이었다.

    추경훈 일행의 정신은 아까 그 일로 인해 정신계 마족에게 오염되었다. 그들의 정신에는 마족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마족이 현실로 튀어나와 난장판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의 머릿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적절한 환상을 심어주고 그로인해 그들이 뿜어내는 어둠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면서 말이다.

    현석은 그들이 볼 환상을 적절히 조절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건 마족의 알을 얻으며 그 정보를 확인했기 때문에 알아낸 방법이었다.

    회귀 전의 현석도 모르던 걸 이번에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주 적절한 시점에 그걸 써먹었다.

    사실 더 묵혀뒀다 쓸 수도 있었지만, 그랬으면 적절히 쓸 곳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마족의 알로 영향을 주려면 레벨이 80이하의 플레이어라야만 하니까.

    기본적으로 어둠의 에너지도 마력을 기반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마족이 활동하려면 플레이어가 아니면 안 된다.

    정말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이라 앞으로 다시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가장 적절한 시점에 써먹은 건 생각할수록 확실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여 4응접실 안에 가둬두고 그걸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환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아마 그 환상은 너무나 실감 나서 진심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추경훈에게 준 젤리 같은 덩어리는 다른 플레이어의 정신계 마족을 아우르기 위해 먹인 마족의 피였다.

    아마 추경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머지 50명의 플레이어들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자신들만 아는 약점이 생긴 셈이지.’

    인육파티를 벌였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고 있고, 그걸 이용해 협박을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벌이지 않은 일을 대가로 어떤 일이든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내가 말했잖아. 나 좋은 놈 아니라고.’

    현석은 그 모든 과정을 머릿속 깊은 곳에 구겨 넣으며 류지혜, 류혜연 자매를 향해 말했다.

    “장비 챙겨서 나가자.”

    두 여인은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사냥 가자는 거 아니죠?”

    “사냥? 가는 건 상관없는데, 나랑 같이 하려면 아직 더 성장해야 할 것 같은데?”

    현석은 이제 곧 90레벨이 된다. 그것도 그냥 90레벨이 아니라 실제로는 100레벨이 훨씬 넘는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강한 90레벨이다.

    그런 현석이 류지혜나 류혜연과 함께 사냥을 하면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

    당분간은 따로 다니는 게 맞다.

    그녀들과 함께 할 시기는 지금이 아니라 훨씬 나중이었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 화이트홀을 탐사할 때부터 함께 할 생각이었다.

    그때까지 두 사람은 안전하게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저 귀한 힐러를 내버려 둘 수는 없지.’

    힐러는 정말 귀중한 자원이다. 그러니 철저한 보호 속에서 키워야 한다.

    굳이 현석이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 뛰어난 장비는 레벨을 초월하는 법이니까.

    아무튼 현석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두 여인은 더없이 황당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장비만 달랑 들고 이사 가라는 거예요?”

    “여자들은 준비할 게 좀 많거든요?”

    현석은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말했다.

    “나머지는 새로 사.”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가버린 현석을 두 여인이 멍하니 바라봤다.

    “어이가 없네.”

    류지혜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류혜연의 반응은 좀 달랐다.

    “대박 카리스마.”

    류지혜가 어이가 세 배쯤 더 없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려 류혜연을 바라봤다.

    물론 류혜연은 그런 언니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류지혜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어려운 길로 들어선 것 같아.’

    < 마족의 알 2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