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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48화 (48/326)
  • < 던전관리센터 4 >

    현석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닥에 어른 주먹만 한 구슬을 던진 것이었다.

    쩡!

    쫘자자작!

    구슬이 깨지면서 바닥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4응접실 전체가 즉시 얼어붙어 버렸다.

    빙계열 내성이 없는 플레이어들은 대번에 몸이 굳었다.

    물론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버린 관절 때문에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빙계열 내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얼음 공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현석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다음 구슬을 꺼냈다. 이게 진짜였다. 바닥을 얼어붙게 만든 것도 다 이것 때문이었다.

    일단 구슬을 위로 슬쩍 던졌다.

    현석의 손을 떠난 구슬이 허공에 떠올랐다가 이내 아래로 빠르게 떨어졌다.

    그것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추경훈이 급히 몸을 날렸다.

    추경훈은 아티팩트 덕분에 빙계열 내성이 약간이나마 올라간 상태라서 그럭저럭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추경훈이 그러는 사이 현석은 옆에 있던 류지혜와 류혜연을 양팔에 한 명씩 끼고 위로 가볍게 점프했다.

    그 순간 추경훈이 구슬을 손으로 낚아챘다.

    “잡았……!”

    잡았다고 외치는 순간 구슬이 새하얗게 물들더니 그대로 깨져 버렸다.

    쩡!

    빠지지지지지직!

    사방이 뇌전으로 가득 찼다. 바닥을 굳이 얼린 것은 바닥을 타고 전류가 흐르기 좋게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끄으으으아!”

    빠지지지지직!

    “끄아악!”

    뇌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구슬이 깨진 자리에서 시작해 빠르게 동심원을 그리며 뇌전이 바닥을 수십 번이나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추경훈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추경훈의 눈이 위로 휙 돌아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이다.

    강렬한 벼락을 몸으로 받아냈으니 당연했다.

    추경훈뿐 아니라 방에 들어온 플레이어들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다들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래도 플레이어는 플레이어였다. 그것도 보통 플레이어가 아니라 고레벨 플레이어였다.

    게다가 던전관리센터에서 일하는 플레이어들은 경험도 많다.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체계적으로 던전을 공략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려 할 때, 현석은 류지혜와 류혜연을 4응접실 입구에 내려놓았다.

    입구는 봉쇄되어 있었다.

    애초에 천장과 벽이 열림과 동시에 문이 봉쇄되도록 설계된 방이었다.

    물론 탈출구는 있었다. 아무리 한 명을 상대로 다수의 힘을 쏟아 제압하는 장소라 해도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그에 대한 대비를 해 놓는 것이 당연했다.

    이곳 4응접실에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탈출구가 감춰져 있었다. 그리고 그 탈출구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사실 책임자급인 추경훈뿐이었다.

    물론 규격외의 존재인 현석은 그걸 모두 꿰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추경훈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유인했다. 탈출구는 추경훈이 앉아 있던 소파 근처에 있었으니까.

    현석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추경훈을 힐끗 쳐다보고는 류지혜에게 방패 하나를 건넸다.

    “이건 어떻게 가져오신 거예요?”

    당연한 의문이었다. 현석이 여기 올 때는 빈손이었다. 한데 어느새 이렇게 커다란 방패를 들고 있으니 놀랄 만했다.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옷 속에 넣어서.”

    류지혜는 상황이 급하다는 걸 알기에 얼른 방패부터 받았다.

    “잘 버티고 있어. 혹시 몰라서 주는 거니까.”

    그 방패는 보급창고에 있던 아티팩트였다. 당연히 최근 시중에 나도는 다른 아티팩트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류지혜는 방패에 일단 마력을 밀어 넣었다.

    우우웅!

    나직한 진동과 함께 우유빛깔의 투명한 막이 생겨나 류지혜와 류혜연을 감싸 안았다.

    두 여인은 깜짝 놀란 눈으로 자신들을 감싼 우윳빛 막을 둘러봤다.

    그러고 있는 사이 현석은 어느새 몸을 날리고 있었다.

    현석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탈출구 봉쇄였다.

    누구보다 먼저 그 자리에 도착한 현석은 바닥을 발로 힘껏 내리 찍었다.

    꽈앙!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특별한 장치를 조작해야 열리는 탈출구를 강제로 뚫어버린 것이다.

    현석은 그 안에 거무튀튀한 뭔가를 휙 던졌다.

    그게 뭔지 알아본 플레이어들이 기겁을 하며 뒤돌아 몸을 던지듯 피했다.

    “엎드려!”

    꽈아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탈출구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현석이 던진 건 수류탄이었다. 그것도 특수한 방법으로 강화한 수류탄이었다.

    안 그래도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폭탄을 강화했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비상 탈출구를 부순 현석은 일단 주위를 슥 둘러봤다.

    폭발에 휘말리지 않으려 몸을 피한 플레이어들이 질린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폭탄까지 가져왔을 줄은 몰랐다. 상대가 생각보다 훨씬 미친놈이라는 걸 알게 되니 절로 기세가 위축되었다.

    “끄으으응.”

    부하들에 의해 구석으로 피신해 있던 추경훈이 정신을 차리고 신음을 흘렸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플레이어 특유의 치유력과 강인한 체력 덕분에 어찌어찌 움직일 수는 있었는데, 이 몸으로 지금 당장 싸우는 건 무리였다.

    “너…… 너 뭐야? 너 대체 뭐냐고!”

    추경훈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그러면서 부하들의 상태를 재빨리 확인했다.

    이곳에 있는 50명의 플레이어는 정말로 귀중한 자산이었다. 그와 함께 새 길드에 가서 기반을 다질 인재들이니까.

    다행히 아무도 죽지는 않았다. 물론 아직 움직이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도 몇 명 있었지만 그들도 고레벨 플레이어이니만큼 상식을 뛰어넘는 회복력을 갖고 있었다.

    ‘30분 정도면 다들 만전의 상태가 될 것 같은데…….’

    추경훈은 자신이 받은 충격을 기준으로 회복시간을 대충 가늠했다. 자신도 30분이면 충분하니 타격을 덜 받은 플레이어들은 훨씬 빨리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 이러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지. 솔직히 말해서 내가 뭘 하려던 것도 아니잖아.”

    추경훈은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봤다.

    “이거 다 네가 이렇게 만든 거라고. 우린 아무것도 안 했어.”

    하지만 현석은 그의 말은 듣고있지 않았다. 현석이 한 일은 추경훈 근처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의 표정과 태도, 움직임, 그리고 마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마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회복을 위해서였지만 그건 현석이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이런 일……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현석이 지나가듯 말을 툭 던졌다. 그 말에 몇몇 플레이어가 움찔했다. 그나마 이런 일에 덜 참여했기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나머지는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워낙 많이 벌어졌던 일이기에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역으로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이런 자리에 있다 보면 손에 피와 오물을 안 묻힐 수가 없지. 넌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세상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거야. 거기에 순응하면 살아남고, 거스르면 갈기갈기 찢기는 거지.”

    추경훈은 그렇게 말하며 강렬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이 상황에 순응하라는 뜻이었다. 따르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갈기갈기 찢긴다는 협박에 가까운 말이기도 했다.

    “나만 죽이면 끝나는 일이 아니야. 난 혼자가 아니니까. 내가 죽으면 그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나?”

    현석이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내가 그들에게 뭘 주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 말에는 추경훈의 안색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수습하고는 말했다.

    “그들이라고 나와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아? 똑같아. 널 핍박하고 고문해서 몽땅 뽑아먹을 거야. 그러니 차라리 내 밑으로 들어와. 그럼 모두가 편해지잖아?”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를 못 찾겠는데?”

    추경훈도 그 대답에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정해진 답이기도 했다.

    어차피 처음 류지혜, 류혜연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고, 현석이 4응접실을 언급했을 때, 추경훈은 힘을 쓰기로 결정을 내렸다.

    힘으로 저들을 눌러 원하는 모든 걸 쭉쭉 뽑아낼 계획이었다.

    그걸 현석이 모를 리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다짜고짜 공격해서 자신들을 이지경으로 만들었을 리 없을 테니까.

    그렇게 당연한데도 굳이 이렇게 한 것은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한데…… 너무 시간을 끌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추경훈이 이죽거리며 웃었다. 몸이 거의 회복되었다. 이제 약간의 후유증만 감안하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을 듯했다.

    자신이 이 정도이니 다른 플레이어들은 더 완벽하게 회복했을 것이다.

    이제는 현석이 그 어떤 재주가 있어도 안 된다. 아까야 기습에 당했지만 이젠 그런 기습에도 모든 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추경훈의 손짓에 일곱 명의 플레이어가 따로 떨어져 류지혜와 류혜연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굳이 지금 그녀들을 잡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현석의 신경을 조금이라도 분산시키고 혼란을 주기 위함이었다.

    소용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러다가 실낱 같은 틈이라도 만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왜? 아까 같은 거 또 써보지? 얼음이랑 벼락이 나왔으니까 이제 바람이나 불같은 걸 던지면 되겠네.”

    “그럼 그럴까?”

    현석의 말에 추경훈이 긴장했다.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설마 진짜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젠 충분히 대비 중이었다. 웬만하면 미리 막을 생각이었고, 그게 안 되면 최소한 피하기라도 할 것이다.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현석은 품에 손을 넣었다. 그 순간 다섯 명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현석은 재빨리 품에서 손을 빼 바닥에 뭔가를 던졌다.

    파삭!

    다들 일제히 뛰어올랐다. 현석이 워낙 빨리 던졌기 때문에 미처 막지 못했으니 이제 피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퍼버버버벅!

    현석에게 달려든 다섯 명의 플레이어들이 뒤로 나가 떨어졌다.

    바닥을 확인한 추경훈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바닥에는 처참하게 깨진 달걀이 퍼져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나가 떨어진 다섯 플레이어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제법 강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죽지는 않았다.

    현석은 분노에 몸을 떠는 추경훈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왜 너희만 시간을 끌었다고 생각하지?”

    “뭐?”

    추경훈은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자신이 시간을 끌었다고 여겼는데, 다른 관점으로 보면 현석이 그걸 유도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깨뜨린 구슬들이 뭔지는 생각해봤어?”

    그런 걸 생각해 봤을 리가 있는가. 추경훈의 표정이 한껏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현석이 이러는 것도 시간을 끌기 위한 일환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압해!”

    추경훈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현석이 손가락을 딱 튀겼다.

    따악!

    후웅!

    현석을 중심으로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 돌이 떨어져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듯 마력의 파동이 몇 번이나 흘러 나갔다.

    그리고 달려들려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멈췄다. 마치 그대로 몸이 굳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경악 어린 추경훈의 시선을 담담히 받으며 현석이 중얼거렸다.

    “체크메이트.”

    < 던전관리센터 4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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