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47화 (47/326)

< 던전관리센터 3 >

추경훈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젠장. 놓치고 있던 게 이거였어!’

추경훈은 현석의 존재를 파악하고 그에게 감시자를 붙인 상태였다.

주기적으로 보고를 받았기에 현석의 얼굴이나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니며 누구를 만나는지 등의 일은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설마 채현석과 류지혜 사이가 이어졌을 줄이야!’

그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뒀어야 한다. 더구나 류지혜의 여동생인 류혜연의 미모는 언니를 한참이나 능가한다.

남자라면 저 미모의 두 여인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으리라.

그러니 미리 현석이 류지혜의 남자가 되었거나, 혹은 류혜연의 남자가 되었을 거란 예상을 해뒀어야 한다.

그렇게 염두에 둔 상태에서 계획을 세웠다면 이보다 훨씬 깔끔하게 처리가 가능했을 것이다.

‘대체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기회를 날려 버린 거야?’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이 자리, 4응접실에 저들이 들어온 이상, 힘으로라도 제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격히 안정되었다. 추경훈은 한껏 여유를 부리며 양팔을 크게 벌리고 웃으며 인사했다.

“하하하하. 이거 아주 귀한 손님들이 오셨군요. 제가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아시고…….”

현재 추경훈은 지방 쪽에 있는 걸로 되어 있었다. 물론 이곳 서울 센터에서 그의 사무실이 있다. 그러니 아티팩트를 보관한 금고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비밀이었다. 대외적으로 그는 경기도 쪽 관리센터에 있어야 했다.

추경훈은 그렇게 말하며 응접실에 있는 일행의 표정을 확인했다.

류지혜와 류혜연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저 둘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몰랐군.’

현석만 담담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대체 뭐야? 저놈.’

생각해보면 6개월 전에 처음 등장했을 때도 평범치 않았다. 그때 가볍게 넘긴 것이 실수였는지 모른다.

‘그때라면…… 좀 더 쉽게 끌어들이거나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랬다면 힐링포션 같은 희대의 발명품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떤 선택을 하건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추경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앙금을 털어 버렸다.

“자, 일단 그렇게 서 계시지 말고 앉으시지요.”

추경훈은 세 명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으면서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 앞에 앉았다.

현석이 먼저 자리에 앉자, 류지혜와 류혜연도 따라 앉았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걸 먼저 깬 것은 추경훈이었다. 그는 굳이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으니까.

“우선 용건부터 들읍시다. 날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이쪽 두 분은 안면도 제법 있고, 제가 러브콜을 하도 보내서 왜 오셨는지 대충은 짐작이 갑니다만…….”

류지혜는 그래서 온 거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일단 자리가 자리이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꾹 눌러 참았다. 그리고 현석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현석은 말없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탁자 위에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투둑!

그걸 본 추경훈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것은 우그러진 팔찌 두 개였다.

그냥 팔찌가 아니었다. 우그러지기 전에는 아티팩트라 불리던 팔찌였다.

그것도 뛰어난 탐지 스킬이 깃든 아티팩트였기에 사실 구하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은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추경훈 개인의 소유물이기도 했다.

한데 그 귀중하고 비싼 아티팩트가 이렇게 현석의 손에 의해 되돌아왔다.

추경훈은 떨리는 손으로 우그러진 팔찌를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펴봤다. 그의 레벨이 레벨이니만큼 우그러진 팔찌를 원래와 비슷하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이건 그래선 안 되는 물건이라는 점이었다.

너무나 쉽게 복원된 팔찌를 손목에 찬 추경훈은 그것을 다시 벗어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등을 소파에 기댄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더럽게 열이 뻗쳤지만 지금은 그걸 폭발시킬 때가 아니었다.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힌 추경훈이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걸…… 어디서 나셨습니까?”

“주웠습니다.”

“주웠다고요?”

추경훈의 눈에 순간 살기가 돌았다가 사라졌다. 주웠다니. 지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건 추경훈이 키운 정보원들이 쓰는 아티팩트였다. 특별한 계약을 통해 믿을 수 있는 자들에게만 지급하는 것으로, 임무를 띤 사람들이 돌아가며 쓰는 물건이었다.

딱 두 개 있는 건데, 그 두 개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화가 안 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누군가 절 몰래 감시하기에 그러지 말라고 잘 타일러 보냈는데 이걸 떨어뜨리고 갔더군요. 그래서 돌려주러 왔습니다.”

추경훈은 이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러니까…… 또 이런 피해 입기 싫으면 건드리지 마라? 하! 이놈 봐라?’

추경훈은 잠시 우그러진 팔찌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신 셈이로군요. 일단 감사드립니다. 용건은 그게 끝입니까?”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이 두 사람은 우리 팀원이 되었으니 부디 다시 건드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추경훈이 놀란 눈으로 현석과 류지혜, 류혜연을 번갈아 바라봤다.

“팀이라고요? 설마…… 새 길드를 창설하신 겁니까?”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저 팀일 뿐입니다. 어느 길드에도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팀이죠.”

추경훈은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생각해보니 괜한 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이쪽은 이미 준비가 끝났다. 그러니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된다.

일단 힘으로 찍어 누르기만 하면 그 뒤에 컨트롤할 방법이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팀이라…… 힘든 선택을 하셨군요.”

“힘든지 안 힘든지는 지나봐야 아는 거겠죠.”

추경훈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습니다. 지나봐야 압니다. 사실 세상 모든 일이 그런 법이죠. 겪어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추경훈은 잠시 말을 끌다가 현석을 향해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꼭 겪어보지 않아도 너무 뻔해서 그냥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들도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그렇게 말한 추경훈이 강렬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은근히 제안했다.

“그 팀, 아주 매력적입니다. 제게 오지 않겠습니까? 모든 팀원을 데리고. 대우는 제가 업계 최고로 해드리겠습니다.”

현석은 그 말에 일부러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던전관리센터로 들어오라는 말로는 안 들리는데, 제가 잘못 들은 겁니까?”

추경훈이 씨익 웃었다.

“제대로 들었습니다. 조만간 전 여길 그만둘 겁니다. 제 사촌형도 함께 그만둘 예정이고요. 추광열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셨죠?”

현석이 차분한 표정으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흥미로운 얘기로군요.”

추경훈은 그런 현석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겉모습과 행동에서 오는 괴리감이 상당했다.

“사실 관리센터의 역량은 슬슬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혼자 모든 던전을 관리할 여력이 없는 거죠.”

추경훈은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원래 세상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는 겁니다. 파도가 치면 다음 파도가 밀려오는 법이죠. 이제 관리센터의 시대는 갔습니다. 그리고…… 길드와 기업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즉, 기업의 후원을 받는 길드들이 던전 시대를 이끌어가게 될 거라는 뜻이었다.

현석은 누구보다 그 흐름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미 그 과정을 몸으로 직접 다 겪어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원래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게 할수록 정보수집에는 유리한 법이니까.

“재미있는 논리로군요. 하지만 정부가 과연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알토란같은 사업일 텐데…….”

추경훈이 씨익 웃었다. 나름 회심의 미소였다.

“아무리 국가의 힘이 대단해도 돈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죠. 사실 이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이제 슬슬 관리센터의 힘이 줄어들기 시작할 겁니다.”

추경훈은 이미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판단했는지 그쯤에서 설명을 잘랐다.

“전 세 개 그룹이 동시 투자해서 만든 길드에 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마스터가 될 수는 없었지만 제법 그럴듯한 자리에 앉을 예정이고요.”

추경훈은 어떠냐는 듯 어깨를 쫙 펴며 현석과 류지혜, 류혜연을 한 번씩 바라봤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미래는 보장된 거 같은데.”

현석은 대답대신 류지혜와 류혜연을 쳐다봤다. 너희 생각은 어떠냐는 듯이 말이다.

두 여인은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싫었다.

그 반응을 본 추경훈이 피식 웃었다. 지금 자신들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전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두 분의 생각은 아주 잘 알았습니다. 하면 채현석씨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제가 보기에…… 좀 다를 것 같은데 말이지요.”

추경훈은 채현석이 나이답지 않게 생각도 깊고 상황 판단도 잘 한다는 걸 알기에 그의 답을 기대했다. 물론 어떤 답을 내리든 결과는 같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좋게 좋게 가는 게 나중을 위해선 더 좋은데 말이야.’

추경훈은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현석의 답을 기다렸다.

현석은 묘한 표정으로 그런 추경훈을 보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여기가 4응접실이었나?”

현석의 말에 추경훈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4응접실이라는 건 이름을 붙여서 구분하는 게 아니었다. 그건 내부자 중에서도 제법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였다.

물론 그건 지금이나 그렇지 나중이 되면 다들 공공연하게 알게 되는 정보였다. 그러니 현석도 그에 대해 제법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실제로 던전관리센터의 4응접실에 들어가 본 적도 많았다. 그래서 여기 오자마자 확 구분할 수 있었다.

들어오기 전부터 마력의 흐름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피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석은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노리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석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슥 둘러봤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니, 그들이 품은 마력이 느껴졌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천장에도 또 벽 뒤에도 잔뜩 있었다.

현석은 이번엔 고개를 돌려 추경훈을 쳐다봤다.

추경훈의 몸 곳곳에서 이질적인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아티팩트들이었다.

“아티팩트로 아주 도배를 하고 나왔군.”

추경훈이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아티팩트를 알아볼 방법이라도 아는 건가?”

현석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했다.

“여기가 4응접실인 걸 알면서도 내가 여기에 순순히 들어온 이유가 뭘 것 같아?”

“뭐?”

추경훈은 순간 당황했다. 지금 현석의 말만 들으면 이곳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 일부러 왔다는 뜻이 되니 말이다.

“어디 한 번 맞춰봐. 내가 왜 여기 들어왔을까?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걸 알면서 말이야.”

추경훈은 그제야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신호를 보낼 준비부터 했다.

제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이곳에 모인 고레벨 플레이어 50명이라면 이 세 사람 제압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다.

“신호부터 보내. 일단 다들 얼굴이나 좀 보자.”

현석의 말에 추경훈은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손을 몇 번 까딱였다.

그러자 사방 벽이 열리고 천장이 열리면서 무장한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그제야 현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여긴 지저분한 일을 하는 곳이라서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거든.”

현석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맺혔다.

< 던전관리센터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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