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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46화 (46/326)
  • < 던전관리센터 2 >

    “아니, 자리를 옮기자면서 왜 그쪽으로 가는 건데요?”

    류지혜가 황급히 현석을 따라붙으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석이 지금 향하는 곳은 던전관리센터였다.

    그녀들은 방금 그곳에서 나왔다. 지난 사냥에서 얻은 물품을 처리하고 레벨 테스트도 할 겸해서 말이다.

    “아까 말했잖아. 볼일이 있다고.”

    “무슨 볼일인데요?”

    류지혜의 집요한 질문에 현석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류지혜와 류혜연을 한 번씩 쳐다봤다.

    그러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문득 류혜연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해졌다.

    [류혜연]

    [타이틀-마력의 인정을 받은, 마음씨가 고운]

    [레벨-50]

    [마력-500]

    [힘-15, 민첩-25, 체력-13, 지능-27, 정신력-25]

    [스킬-비단결 같은 손길]

    일단 현석은 살짝 어이없는 기분이 되었다. 저 희한한 타이틀은 대체 뭐란 말인가.

    ‘마음씨가 고운? 대체 저게 뭐야?’

    그뿐 아니라 스킬 이름이 대체 저게 뭔가. 꼭 누가 장난치느라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명칭 아닌가.

    현석은 일단 타이틀부터 확인했다.

    [마력의 인정을 받은-마력중독에서 벗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얻는 호칭. 마력을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마음씨가 고운-타인을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 때 얻을 수 있는 호칭.]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류혜연이 착하다는 건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다. 아마 언니를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이 저 타이틀을 주었을 것이다.

    어떤 원리로 어떻게 주어진 건지는 몰라도 말이다.

    플레이어의 세계는 모든 것이 마력을 기반으로 한다. 타이틀이 생겼다면 마력이 어떤 작용을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아마 착한 마음만으로는 저런 타이틀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추가된 마력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알고 있는 지식이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떠올리고 이용하고 했는데, 막상 그런 생각이 드니 엄청난 위화감이 밀려왔다.

    일단 타이틀의 존재 자체를 회귀 후 처음 알았다. 그 정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회귀 후의 현석뿐이었으니 당연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타이틀에 대한 지식은 알려지지 않는다.

    스킬은 얘기가 좀 다르다. 스킬은 그래도 사용하면 뭔가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그에 관한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

    현석의 표정이 한껏 굳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두 여인이 슬그머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 왜 그러세요?”

    류혜연이 나서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신을 빤히 보다가 저런 표정을 지었으니 그게 자기 때문인 것 같아서 좌불안석이 되었다.

    현석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몰입했다는 걸 깨닫고 표정을 풀었다.

    “아니야. 잠시 알아볼 것이 있어서.”

    “예?”

    현석은 대답하지 않고 류혜연의 정보를 더 확인했다. 이제 남은 건 스킬뿐이었다.

    [비단결 같은 손길-마음씨가 고운 사람이 마력의 인정을 받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스킬. 손에 마력을 집중해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 치료 범위와 깊이가 달라진다. 2/100]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치료스킬이었어?’

    치료스킬은 정말로 희귀했다. 또한 그 효용이 엄청나게 뛰어나기 때문에 나중에는 모시기 경쟁이 전쟁에 가깝게 벌어질 정도였다.

    아직 숙련도가 좀 낮긴 하지만, 그거야 쓰다보면 점차 올라갈 테니 걱정할 게 없다.

    아마 저걸 꽉 채우면 둘 중 하나의 길이 열리리라.

    ‘능력이 폭발적으로 향상되거나…… 다른 스킬이 생기거나.’

    현석은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류혜연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겠지?”

    “예? 뭘요?”

    류혜연은 그렇게 반문하자마자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지만 속으로는 설마 했다.

    그건 언니에게밖에 말해주지 않은 두 자매만의 비밀이었다. 그걸 현석이 알 리 없지 않은가.

    현석은 류혜연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치료.”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류혜연은 물론이고 류지혜의 얼굴까지 경악으로 물들었다. 두 사람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현석을 가리키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대, 대체…… 대체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 반응만으로 충분히 답을 들은 셈이 되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은 잘했어. 당분간은 비밀로 하자고.”

    현석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두 여인은 조금씩 멀어져가는 현석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얼른 쫓아갔다.

    지난 6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류지혜와 류혜연은 새삼 현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너무 오랫동안 그리워하기만 하고 보지를 못해서 감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원래 딱 저런 사람이었지.’

    친절하지도 않고 언제나 자기 할 말만 딱딱 하는 사람, 그리고 듣고 싶은 말은 다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하지만 절망에 빠진 두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사람이기도 했다.

    차가워 보이지만, 속에는 보이지 않는 정을 품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적어도 류지혜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리고…… 또 위험한 순간에 기다렸다는 듯이 딱 나타나서 구해주네.’

    아마 예전에는 종로 암시장에서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현석이 류혜연을 구해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건 진짜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류지혜는 현석의 등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일은 절대 우연이 아니야.’

    그녀는 확신했다. 이번에 현석이 그녀들을 구해준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같이 가요!”

    류지혜와 류혜연이 뛰어가듯 현석을 쫓아갔다.

    * * *

    추경훈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눈앞에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고작 그거밖에 안 되나? 그 쉬운 일을 실패해?”

    “그게 아니라…… 방해자가 있었습니다.”

    “방해자?”

    “그 두 여자랑 아주 잘 아는 사이 같았습니다. 그리고…… 괴물 같은 놈입니다.”

    “괴물 같은 놈? 류지혜랑 잘 알고 있다고? 그런 사람이 있었나?”

    남자는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놈은…… 제가 스킬을 쓸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그걸 막았습니다.”

    추경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막아? 설마 스킬 발동을 막았다고? 강제로? 그게 가능한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괴물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놈이…… 제 스킬을 봉인했습니다.”

    추경훈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이건 점입가경이었다. 스킬을 막는 것도 모자라 봉인하다니. 그게 가능하다면 그놈은 플레이어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스킬을 아예 쓸 수 없나?”

    “예.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제가 스킬을 가진 건지 아닌지도 확신이 안 듭니다.”

    “그 정도야?”

    추경훈은 눈앞에서 덜덜 떨고 있는 남자의 효용가치를 잠시 계산해 봤다.

    스킬을 다시 되찾을 수만 있다면 충분한 효용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스킬이 사라진 거라면 정말 쓸모없는 놈에 불과했다.

    레벨에 비해 능력이 썩 대단치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놈이 누군지는 알아왔나?”

    남자의 떨림이 더욱 커졌다. 너무 두렵고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걸 알아볼 겨를조차 없었다.

    “모, 모르겠습니다.”

    추경훈이 한심하다는 듯 남자를 노려보다가 이내 손을 내저었다.

    “일단 가서 쉬고 있게. 나중에 부를 테니까.”

    “저…… 제 스킬은…….”

    “그것도 알아봐 주지. 그러니 일단 몸부터 추스르게.”

    “예. 가, 감사합니다.”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가자, 추경훈의 얼굴이 더욱 심하게 일그러졌다.

    “멍청한 놈.”

    추경훈은 나직이 남자를 욕한 다음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류지혜와 류혜연과 아주 잘 아는 괴물 같은 놈은 떠오르지 않았다.

    “종로 쪽에서 도와준 건가?”

    처음 류지혜가 종로 암시장의 황노인과 인연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녀에게 품었던 흑심을 일단 접었다.

    그저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종로 쪽과 그녀의 관계가 생각보다 밀접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슬금슬금 접근을 시도 중이었다.

    한데 만일 종로에서 나선 거라면 작전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추경훈은 계속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마치 체한 것처럼 뭔가가 턱 걸려서 생각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자신이 놓치고 있는 뭔가가 분명히 있었다.

    그 뭔가를 떠올리려 골몰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추경훈은 상념에서 벗어나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말했다.

    “흠흠, 들어와.”

    문이 열리고 그의 비서가 들어와 보고했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누군데?”

    “류지혜, 류혜…….”

    “뭐? 그것들이 찾아왔어?”

    비서는 채 보고를 마치지 못하고 일단 대답부터 했다.

    “예.”

    “일단 들여보내.”

    “알겠습니다.”

    비서는 일단 그렇게 말하고 아직 말하지 않은 사항을 덧붙였다.

    “그 여자들 외에 남자 한 명이 함께 왔습니다.”

    “남자?”

    추경훈의 뇌리에 조금 전 그녀들을 도와줬다는 괴물 같은 사람에 대한 얘기가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애들 싹 모아.”

    “예?”

    비서가 놀란 눈으로 추경훈을 바라보자, 추경훈이 다급히 외쳤다.

    “싸울 수 있는 애들 일단 주변으로 싹 모아. 그리고 손님들은 4응접실로 보내.”

    “4응접실 말입니까?”

    비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4응접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만든 장소였기 때문이다.

    적이 될지 모를 사람을 맞이해 다수가 한 사람을 공격하기 편하게 만든 응접실이었다.

    추경훈은 지금 그곳에서 손님들을 만나겠다고 말한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비서가 굳은 표정으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즉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비서가 후다닥 나가자, 추경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몸을 풀었다.

    그리고 사무실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거대한 금고가 놓여 있었다. 특수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특별한 금고였다.

    보관하는 물건이 특별했으니 금고도 당연히 특별해야만 한다.

    추경훈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금고 문을 열었다.

    금고는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각 칸마다 투명한 유리케이스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케이스 안에 아티팩트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그 금고는 추경훈의 장비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던전관리센터의 경기지부장인 추경훈은 당연히 뛰어난 아티팩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몇몇은 자신의 소유였고, 또 몇몇은 관리센터로부터 대여한 아티팩트였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는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

    추경훈은 눈에 띄지 않는 장비만 골라서 착용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능력이 상승했다.

    다시 금고를 닫은 추경훈은 장비를 한 번 점검한 다음 4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류지혜와 류혜연이었다.

    ‘더 예뻐졌군.’

    볼 때마다 예뻐지는 것 같아 참으로 흐뭇했다. 조만간 둘 다 자신의 사람이 될 것이다. 추경훈은 자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두 여인 옆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향했다.

    너무나 잘 아는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채현석?”

    현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추경훈을 똑바로 노려봤다.

    “날 잘 아나보네? 난 처음 보는 것 같은데.”

    < 던전관리센터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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