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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44화 (44/326)
  • < 힐링포션 제작 2 >

    “내가 지금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데, 다시 한 번만 말해주겠나?”

    “제가 만든다고 했습니다.”

    황노인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그러니까…… 너밖에 모르는 비법이 있고, 그걸로 마력수라는 걸 만들면 그게 힐링포션의 주재료가 된다 그거지?”

    “네.”

    “그럼 난 그것들 받아다가 팔면 되고?”

    “그런 셈이죠.”

    황노인이 현석을 빤히 쳐다봤다.

    “속셈이 뭐야? 속 시원하게 터놓고 말해. 그래야 도와주든 걷어차든 할 거 아냐?”

    “짐작하시는 그겁니다.”

    황노인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현석을 위아래로 훑었다.

    “나보고 들러리나 서라고?”

    “그게 왜 들러리입니까? 독점이나 다름없는데.”

    “너랑 레드드래곤이랑 맺은 게 독점이지. 나랑 맺은 건 그게 아닐 거 같은데?”

    현석은 황노인을 가만히 쳐다봤다. 슬슬 간을 한 번 볼 때가 되긴 했다.

    “그 레드드래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노인이 씨익 웃었다. 갑자기 장사꾼의 얼굴로 바뀌었다.

    “정보를 사고 싶으면 값을 치러야지.”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정보를 사려는 게 아니라 팔려는 겁니다.”

    황노인이 피식 웃었다. 지금 황새 앞에서 뱁새가 뭐라고 지껄이고 있단 말인가.

    “누가 누구한테 뭘 팔아? 내가 누군지 잊은 거야?”

    현석이 황노인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제가 누군지는 잊었습니까?”

    황노인은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놈이었다.

    “진짜…… 웃기는 놈일세. 그래, 네놈이 팔려는 정보가 뭐냐?”

    “제대로 된 정보를 사고 싶으면 말씀해 주시죠. 레드드래곤 길드,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황노인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글쎄…… 아무래도…… 삼현 그룹의 지원 속에서 탄생하긴 했지만…… 회장이 죽고 나면 크게 위축되거나 흔들리겠지?”

    한중현의 재산도 만만치 않지만 레드드래곤 길드쯤 되는 거대 길드를 운영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길드 자체의 수익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데 한중현은 길드의 성장이나 수익보다는 자신의 성장을 중요시 여긴다. 나머지는 싹 진대호에게 맡겨둔 상태였다.

    진대호도 한중현의 의중을 잘 읽어 길드 운영은 개판으로 하면서 길드에 충성할 만한 플레이어를 길러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아마 더 크긴 힘들겠지.”

    황노인이 인상을 썼다.

    “그래서 더 괘씸하다는 거 아니냐! 그런 귀한 약을 왜 그딴 놈한테 줘? 그거 갖고 그놈이 뭘 할 거 같으냐? 다 자기 성장에 쏟아 넣을 텐데!”

    현석은 그 말을 할 때의 황노인을 아주 자세히 살폈다. 마력의 흐름부터 시작해 눈빛이나 얼굴 근육 하나하나를 확실하게 확인했다.

    “숨기는 거 하나 있으시죠?”

    황노인의 얼굴이 더 황당해졌다.

    “이…… 귀신 싸대기를 갈길 놈 같으니.”

    이내 포기한 듯 고개를 휘휘 젓는 황노인의 모습에 현석이 빙긋 웃었다.

    “그렇게 웃지 마라, 이놈아. 정들까 무서우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현석의 미소를 보고 나니 왠지 기분이 좋아진 황노인이 말을 이었다.

    “레드드래곤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 중에서 수상한 놈들이 몇 놈 있어.”

    현석이 눈을 빛냈다. 드디어 원하는 정보가 나왔다.

    “아마 몇 놈 정도가 아닐 겁니다. 최소 절반 이상일 겁니다.”

    황노인의 눈이 커졌다.

    “그것까지 알고 있어?”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전부는 아닙니다. 명단은 없고 대충 그쯤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니까요.”

    “그놈들 의도가 뭔지도 알겠구나.”

    현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쪽에 넘긴 겁니다.”

    황노인의 눈이 또 가늘어졌다. 촉이 발동하는 모양이었다.

    “너…… 무슨 꿍꿍이야? 다 털어놔.”

    “도와주실 겁니까?”

    “이미 발 담그게 해 놓고 뭘 물어?”

    현석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대호가 배신자입니다.”

    “진대호? 그놈 비서실장 아니야? 한중현 오른팔 왼팔 다 해 먹는 놈인데?”

    “그러니 타격이 클 거 아닙니까?”

    황노인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레드드래곤 길드는 그냥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회장의 죽음과 동시에 와해될 수도 있었다.

    아마 한중현도 그런 일을 겪으면 망가져버릴 것이다.

    황노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여기까지 얘기했으면 이제 상황을 꿰맞추는 건 일도 아니었다.

    “너…… 진대호한테 힐링포션 레시피 넘긴 거냐?”

    현석이 품에서 투명한 병 하나를 꺼내 흔들었다. 안에는 투명한 물이 들어 있었다. 물론 그냥 물은 아닐 것이다.

    “이것만 빼고요.”

    황노인이 병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게 마력수렷다?”

    현석은 마력수를 황노인 앞에 내려놓았다. 사실 만들기 어려운 건 아니었다.

    들어가는 재료는 대부분 순수한 물이었다. 거기에 현석이 특별한 방법으로 마력을 응축해 넣으면 완성이었다.

    물론 마력이 물에 안착하려면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조차 구하기 어렵거나 하지 않았다.

    게다가 던전에서 발견해야만 하는 재료도 아니었다.

    아마 그게 무엇인지는 아무리 조사해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마력을 물에 결합시킴과 동시에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릴 테니까.

    황노인은 복잡한 표정으로 마력수를 바라보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진대호에게 돈을 쓰라고 이걸 만들고 그놈에게 레시피를 알려줬을 리가 없다.

    현석은 분명히 다른 걸 노리고 있었다.

    “너…… 설마 이상한 레시피를 알려준 건 아니겠지?”

    현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황노인은 왠지 그 미소가 더없이 섬뜩해 보였다.

    * * *

    진대호는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컨테이너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편안한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컨테이너박스 내부는 처음 발견되었을 때와는 달리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쓰레기들 처리는 어떻게 됐지?”

    “제법 쓸 만한 정보들을 물고 있더군요. 샅샅이 조사 중입니다.”

    “아직도 조사 중이야? 시간 너무 끄는 거 아닌가?”

    진대호의 눈빛이 사나워지자, 보고하던 사내가 화들짝 놀라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일단 1차적으로 알아낸 것들을 여기 정리해 뒀습니다. 혹시 숨겨진 것들이 더 있을지 몰라 재차 확인 중입니다.”

    물론 확인 방법이라는 것은 모진 고문과 정신적 세뇌, 그리고 약물이었다.

    아마 그 작업이 모두 끝나고 나면 사로잡힌 쓰레기들 중 제대로 사람처럼 살 수 있는 놈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뒤처리는 확실하게 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컨테이너박스 안에 꽉꽉 채워서 태평양 한가운데 버릴 계획입니다.”

    진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마 누구도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 것이다.

    “그럼 어디…….”

    진대호는 사내가 건넨 서류를 슥 훑어봤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순식간에 확인할 수 있었다.

    “마력수? 그 흘린 물이 마력수라는 거였어? 처음 듣는데?”

    “암시장에 종종 나온답니다.”

    “암시장? 그럼 던전을 통해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잖아?”

    “그놈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종로 암시장에서 구한 마력수라고 말입니다.”

    “종로라…….”

    진대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종로의 황노인은 아무리 진대호라도 좀 껄끄러웠다.

    “일단은…… 제값주고 사는 수밖에 없군.”

    나중에야 마력수를 어디서 구하는지 알아내면 되니 별 문제 없었다.

    그 정도야 진대호가 가진 능력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릴 뿐.

    “나머지 재료는?”

    “구할 루트야 뻔합니다만…… 그냥 암시장에서 한꺼번에 구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흔한 재료들입니다.”

    진대호는 대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그 마력수라는 것이 핵심이었군?”

    “예.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한데 좀 의외인데? 그 쓰레기들이 제법 많은 걸 알고 있어. 안 그런가?”

    “그 문제 말인데…….”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진대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얼른 말하라는 듯 눈짓을 했다.

    “그놈들 아무래도 그냥 이용당한 것 같습니다.”

    “이용을 당해?”

    “암시와 세뇌에 당해 일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진대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암시와 세뇌라니, 그럼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단 말인가.

    “사실 고문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많지 않습니다. 저놈들도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몰랐던 겁니다.”

    “그럼?”

    “세뇌와 암시를 통해 딱 정해진 일만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각자 다른 정보를 부분적으로 갖고 있더군요.”

    “그래서 우린 그걸 취합했고?”

    진대호는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냥 멍청한 놈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어. 아니, 어쩌면…….’

    진대호의 생각이 좀 더 가지를 뻗어나갔다.

    ‘어쩌면 배후에 제법 큰 조직이 있을 수도 있겠어. 그런 방식을 쓸 수 있다면 말이야.’

    사실 그런 방식은 진대호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손 내밀 수 있는 곳에 손을 뻗어봐야, 그쪽에서도 쉽지 않을 거라는 답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게 된다면 벌써 쓰고 있었겠지. 이렇게 유용한데.’

    정보를 은폐하고 상대를 교란시키기에는 아주 적절하다. 만일 자신에게 이런 기술이 있었다면, 고작 이따위 일에 써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좀 더 위험하고 이익을 많이 가져다 줄 일에 잘 써먹었을 것이다.

    ‘그럼 그것도 좀 알아봐야겠군.’

    진대호는 생각을 정리한 다음 사내를 쳐다봤다.

    “채현석은 어쩌고 있지? 아직 제대로 감시 중인가?”

    사내가 갑자기 당황했다.

    “예? 그, 그 부분은…… 중지시키신 걸로 판단해서…….”

    “내가 언제?”

    “이, 이쪽에 집중하라고…….”

    진대호가 이를 갈았다.

    “당장 채현석한테 사람 붙여. 그놈 뒤에 누가 있는지부터 그놈이 지금 뭘 먹고 있고 무슨 옷을 입는지까지 샅샅이 알아내. 내 말 알아들어?”

    “예! 아, 알겠습니다!”

    사내가 후다닥 물러났다.

    진대호는 소파에 다시 등을 편안히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이런 조용한 평화의 시간을 갖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한중현이 던전에서 나올 때가 되었으니까.

    “철부지 도련님 뒤치다꺼리 하는 것도 슬슬 지겹군. 뭐…… 나중에 삼현그룹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을 테니 투자 가치야 충분하지만.”

    진대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다시 일을 하러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 * *

    암시장에서 나온 현석은 살짝 복잡한 표정으로 종로 거리를 거닐었다.

    마지막에 나오기 전에 황노인이 해준 말 때문이었다.

    ‘너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그 가련한 녀석들은 어쩔 거야? 안 볼 거냐? 나한테 너 찾아달라는 의뢰까지 넣었는데? 내가 말해주랴? 보기 싫다고?’

    왠지 황노인은 류지혜, 류혜연 자매에게 정이나 연민 같은 걸 느끼는 모양이었다. 사실 좀 의외이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사람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또, 황노인이 어떤 과거를 가졌느냐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질 테니까.

    현석은 종로를 돌아다니며 서서히 마음을 정리했다. 애초에 류지혜에게 잘해준 이유가 무엇인가.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함 아니었던가.

    그녀는 비록 관리센터에서는 나왔지만 나중에 대단한 업적을 세울 것이 분명하다. 그 정도 재능과 능력은 있으니까.

    그렇게 마음을 정리해가던 현석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지금 당장 찾아갈 처지는 못 되는군.”

    현석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해갔다.

    < 힐링포션 제작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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