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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43화 (43/326)
  • < 힐링포션 제작 1 >

    “낚았다.”

    현석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지금 현석은 학교 옥상에 서 있었다.

    그는 가차 없이 운동장에 모인 쓰레기들을 정리해 나가는 플레이어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심안을 이용해 각 플레이어들의 이름과 정보를 확인 중이었다.

    그리고 확인하면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익숙한 이름이 몇 개 보였다. 그들은 K나이츠 길드 초창기부터 진대호와 함께 한 인물들이었다.

    ‘전부 남은 건 아닌 모양이군. 아니면…… 여기 있는 놈들 중에서도 버릴 놈이 있었거나.’

    현석이 겪은 진대호라는 인물은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었다. 게다가 겉과 속이 다른 걸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놈이기도 했다.

    그의 겉모습에 속아 피눈물을 흘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크게 뒤통수를 맞은 인물이 바로 레드드래곤 길드의 마스터, 한중현이고 말이다.

    레드드래곤 길드는 K나이츠 길드에 의해 거의 와해되다시피 했다. 그것도 모자라 K나이츠 길드는 삼현 그룹의 스폰서 관계까지 가져가 버렸다.

    졸지에 한중현은 삼현 그룹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중현의 할아버지이자 그룹 회장이 세상에 남아 있었다면 그럴 일이 없었겠지만, 아쉽게도 당시 한중현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 뒤로 한중현은 폐인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세상에는 그렇게 알려졌다.

    하지만 현석은 그의 진짜 최후가 어땠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당시의 진대호도 현석이 그 사실을 아는 건 몰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무리 현석이 이용가치가 높아도 그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두지 않았을 테니까.

    ‘어쩌면…… 나도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똑같은 꼴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한중현은 실험체가 되어 비참하게 죽었다. K나이츠 길드는 고레벨 플레이어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수많은 실험을 자행했다.

    그렇게 얻은 것들이 바로 특수한 스킬들이었다.

    마력유도기도 그 비슷한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다. 물론 그걸 만든 건 K나이츠 길드가 아니라 다른 곳이긴 했지만 말이다.

    현석은 운동장 상황이 대충 정리되어가자, 조용히 자리를 떴다.

    쓰레기들은 따로 분리되어 운동장 구석에 나란히 무릎 꿇고 앉아 있었고, 컨테이너박스는 통째로 이송되었다.

    아마 저기 앉은 쓰레기들은 자신들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지금은 상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현석은 차가운 표정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 것까지 신경 써 줄 이유가 없는 놈들이었다.

    ‘죽을 놈은 죽어야지.’

    현석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칠성파나 레드독 길드와 상대할 때도 손속에 일말의 사정도 두지 않았다.

    그놈들은 진짜 죽어야 할 놈들이었으니까.

    * * *

    진대호는 허겁지겁 달려와 컨테이너박스 앞에 섰다.

    “후우우.”

    그는 일단 호흡을 고르게 조절하고 감정을 추슬렀다. 그리고 최대한 냉정함을 되찾은 다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마치 조폭 두목을 맞이하듯 허리를 90도 이상으로 푹 꺾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그래. 고생들 많다.”

    진대호는 대충 손을 들어준 다음 컨테이너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부서진 실험기구들이 보였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실험기구가 아니라 힐링포션 제작 도구들이었다.

    특별한 장비는 보이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재료였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배합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을 섞느냐가 힐링포션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할 테니까.

    “이게 재료인가보군.”

    한쪽 옆에 우그러진 캐비넷이 보였다. 그 안에 각종 재료들이 쌓여 있었다.

    척 보기에도 던전에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대단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 같진 않은데…… 이것만으로 과연 힐링포션이 만들어질까?”

    진대호의 중얼거림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말끔한 수트 차림의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될 겁니다.”

    “그렇게 단호하게 대답할 정도로 확신하나?”

    “100%는 아닙니다. 하지만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힐링포션을 만든다기에는…… 재료가 너무 보잘 것 없습니다.”

    “그 얘기는 이 재료로 만드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찾아낸 셈이 된다는 거로군.”

    “그렇긴 합니다.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이니까요.”

    사내는 벌써 이 재료를 모두 파악하고 어느 던전 생성지역으로 가야 이 재료들을 구하기 좋고, 또 어느 정도 레벨의 플레이어가 필요한지까지 모두 정리해 두었다.

    “결정적인 뭔가가 있습니다. 분명히.”

    “결정적인 뭔가라…… 마력감지기는 써봤나?”

    “시간이 촉박해서 준비만 시켰습니다.”

    진대호가 사내를 바라보자, 사내가 말을 이었다.

    “지금 확인할까요?”

    진대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일할 맛이 나게 해주는 놈이었다.

    사내는 바깥쪽을 향해 가볍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밖에 대기하고 있던 덩치 큰 남자가 마력감지기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정중히 돋보기 형태로 된 마력감지기를 사내에게 넘겼다.

    사내는 마력감지기로 컨테이너박스 안을 신중히 살폈다.

    “이쪽에 마력반응이 있습니다.”

    컨테이너 박스 구석진 곳이었다. 그곳에는 뭔가 액체가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력 반응은 그 액체로부터 오고 있었다.

    “저거로군.”

    진대호가 눈을 빛내며 바닥을 손가락으로 슥 훑었다. 손에 액체가 약간 묻어났다. 하지만 이것의 정체를 조사하기에는 양이 너무 적었다.

    “이게 뭔지 알아내.”

    “그러려면 채현석을 건드려야 합니다.”

    진대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현석을 건드릴 때가 아니다. 그쪽은 미리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레드드래곤을 정리한 다음으로 미뤄야 한다.

    “그놈은…… 왠지 정말 빼먹을 게 많을 것 같단 말이야. 잘 아껴둬.”

    “하면…….”

    “밖에 있는 쓰레기들을 우선 족쳐봐. 혹시라도 뭔가 나오면 즉시 보고하고.”

    “만일 안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땐…… 채현석을 이용할 방법을 찾아봐야지.”

    진대호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걸 본 사내는 미리 그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하자고 할 때 제시하지 않으면 진대호가 정말 실망할 테고, 그러면 자신이 어떤 더러운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까.

    사내는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인사했다.

    “살펴가십시오, 형님.”

    진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슬쩍 흔들어주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몸을 일으킨 사내는 운동장 구석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놈들에게 다가갔다.

    사내가 입맛을 다셨다. 이제부터 진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사내의 눈빛을 받은 쓰레기들이 공포에 질려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었다.

    * * *

    재개발지역의 학교를 떠난 현석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종로 암시장이었다.

    ‘마계에 다녀온 뒤로 여길 제일 자주 오는 것 같군.’

    왠지 집보다 더 자주 오는 느낌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현석은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훨씬 더 번화해진 암시장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요즘 암시장 규모가 갑자기 커졌다.

    ‘예전에도 이랬나?’

    회귀 전의 현석은 이맘 때 눈을 잃고 한창 헤매던 시기인지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당연히 암시장에 올 일도 없었으니 그때 이랬는지 아닌지 알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20년이나 플레이어 생활을 하면서 들은 풍월은 좀 있었다.

    그 기억을 더듬어 봐도 암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하는 건 최소 몇 년 후였다.

    아직은 던전관리센터의 힘이 막강해서 그들의 아성을 절대 넘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역사의 흐름이 좀 달라졌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긴 해야겠군.’

    물론 큰 의미는 없었지만 말이다.

    역사가 바뀌건 말건 현석에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역사가 달라져도 사람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또 현석은 미래를 예측해서 뭔가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 정보를 이용해 스스로 강해지는 스타일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황노인의 부스 앞에 도착했다.

    “여기도 달라졌네.”

    황노인의 부스는 저번에 왔을 때보다 규모도 커지고 훨씬 화려해졌다.

    안에는 수많은 아티팩트들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다. 당연히 다 파는 것들이었다.

    그 면면을 살피던 현석은 피식 웃었다. 절반이 넘는 아티팩트가 현석이 판매한 것이기 때문이다.

    “뭘 실실 웃고 있어?”

    현석은 뒤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몸을 돌려 인사를 했다. 어차피 다가오고 있는 걸 알았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황노인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 보여서 좀 의아할 뿐이었다.

    “왠지…… 저한테 불만이 좀 있으신 것 같은데요? 아닙니까?”

    “눈치는 아주 귀신이네.”

    “눈치를 귀신처럼 주셨으니까요.”

    “말이나 못하면.”

    황노인은 고개를 휙 돌리고는 부스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현석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황노인 앞에 앉았다.

    “누가 거기 앉으래? 이놈아.”

    “왜 그러시는지 말씀이나 해 보십시오. 우리가 이럴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그래, 말 잘 했다. 우리가 대체 어떤 사이냐? 응? 그건 나보다 네놈이 더 잘 알 것 아니냐.”

    “그렇죠.”

    “한데 그 귀한 약을 낼름 뻘건 용한테 넘겨?”

    그제야 현석은 황노인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었다. 힐링포션 때문이었다.

    ‘근데 그걸 벌써 알고 있어?’

    현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황노인을 쳐다봤다. 아무리 정보 쪽으로는 우리나라 제일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빠르지 않은가.

    현석은 황노인을 빤히 쳐다봤다.

    “뭘 그렇게 봐? 이놈아. 정들까 무섭다. 눈 절루 치워.”

    현석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힐링포션 때문에 찾아온 건데 이거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뭐?”

    황노인이 자세를 바로 했다.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봤지. 이렇게 진국일 줄 알았다니까?”

    현석은 황노인을 좀 더 놀려먹으려다가 이내 피식 웃고는 본론을 꺼냈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할 일이 정말 많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던전도 좀 돌아야 하고 말이다.

    현석은 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뭔가?”

    황노인은 쪽지를 확인했다. 재료목록이었다. 그걸 본 황노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이거!”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힐링포션의 재료입니다.”

    “이, 이런 걸 막 줘도 되나?”

    “앞으로 그 재료를 사려는 놈들이 많을 테니 미리 쟁여두시라고요.”

    “여부가 있나. 한데…… 이 마력수(魔力水)라는 건 대체 뭔가?”

    현석이 씨익 웃었다.

    “그게 바로 힐링포션의 핵심재료죠.”

    “핵심재료?”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기 다른 재료들 보시면 대충 아시겠지만, 딱히 힐링포션에 도움이 될 거 같은 건 없을 겁니다. 그렇죠?”

    “하긴……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런 겁니다. 그러니 이 마력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다른 재료는 다 없어도 얼추 힐링포션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이 마력수가 없으면 절대 힐링포션을 만들 수 없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재료라는 건 알겠는데…… 근데 이건 어디서 구하나? 어떤 마수가 준다거나 어떤 던전에 가야 얻을 수 있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현석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황노인은 그 미소를 보자마자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현석이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만들 수 있습니다.”

    황노인은 멍하니 현석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힐링포션 제작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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