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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41화 (41/326)
  • < 낚시 2 >

    진대호는 자신이 보낸 놈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물론 직접 만나 보고를 받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놈들은 레드드래곤 길드와는 전혀 관계 없는 녀석들이었으니까.

    “그래?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그 지원이 설마 너희 같은 스킬 보유자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진대호는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답을 듣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얼마든지 지원이 가능하지. 몇이나 필요하지? 스무 명을 감시해야 한다고?”

    진대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스무 명을 감시하기 위해 필요한 인원은 그 몇 배가 넘는다.

    일단 24시간 감시하려면 3교대만 해도 세 배수가 있어야 한다. 그 외에 다른 일까지 고려하면 최소 10명은 더 추가해줘야 원활히 임무가 돌아갈 것이다.

    “뭐가 그렇게 많아?”

    진대호는 자세한 설명을 추가로 듣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식이라면 모두 감시해야 하는 게 맞다.

    만일 한 명이라도 소홀하게 했다가 그놈이 진짜면 힘만 들고 얻는 건 하나도 없게 될 테니까.

    “즉시 보내줄 테니까 그놈들 위치랑 사진이나 전송해.”

    진대호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문자를 통해 위치와 사진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힐링포션만 틀어쥘 수 있게 되면 당장 여길 나가야겠어.”

    솔직히 여기서 일하는 게 그리 힘들진 않았다. 한중현은 이미 자신을 워낙 신뢰하고 있어서 뒤치다꺼리 할 것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레드드래곤 길드의 2인자로 남아 있기에는 진대호의 야망이 너무 컸다.

    그에게는 레드드래곤 길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뒷배가 있었다.

    그들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들은 던전이 열리기 전부터 진대호를 영입한 것이다.

    그들이 진대호에게 제시한 조건은 딱 하나, 레드드래곤 길드를 집어 삼키는 것이었다.

    이제 그 일이 거의 마무리 되어 간다.

    이대로 5년만 참으면 대미를 장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이 새로 창설한 길드로 레드드래곤 길드를 박살 낼 수 있는 그날이 말이다.

    “뭐…… 엄밀히 따지면 새로 창설하는 건 아닌가?”

    원래 있던 길드를 전면으로 내세울 뿐이니 새로 창설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진대호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셈이니 새로 창설하는 거라 봐도 무방했다.

    어쨌든 그렇게 5년이나 더 썩어야 했다. 한데 그 기간을 대폭 단축시킬 만한 물건이 등장했다.

    그게 바로 힐링포션이었다.

    “멍청한 놈. 이 물건의 가치를 몰라도 너무 몰라.”

    진대호는 당시 현석의 표정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그의 입가에 진득한 비웃음이 걸렸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기고만장한 꼴이라니.”

    당시 그는 확실히 봤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앉아 있지만 눈빛은 숨기지 못했다.

    “그런 좋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숨겼어야지.”

    진대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제 감춰둔, 아니 그에게 주어진 두 번째 힘을 슬쩍 써먹을 때가 되었다.

    * * *

    오명국은 길드로 출근하자마자 호출을 받았다. 한중현도 아닌 진대호의 호출이었다.

    ‘하긴, 또 던전에 갔겠지. 달리 광전사겠어?’

    한중현은 매일 던전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가 누군가에게 내세울 수 있는 건 레벨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어떻게든 레벨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들 광전사라고 불렀다. 사냥에 미쳤다고 해서 부르는 별명이었다.

    사냥하는 모습도 광전사라는 별명이 딱 어울릴 정도로 난폭하고 사납기 그지없었다.

    어쨌든 마스터가 항상 사냥에 미쳐 있으니 길드의 전반적인 업무나 관리는 대부분 진대호의 몫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호출하는 것은 참으로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명국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만일 현석이 따로 진대호에 대해 뭔가 언질이라도 줬다면 다른 마음가짐으로 만났겠지만 현석은 그에게 이번 일에 대해 일언반구도 해주지 않았다.

    그건 현석이 오명국에게 준 또 하나의 시험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오명국은 길드마스터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며 꾸벅 인사를 했다.

    마스터의 자리에 진대호가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 잠시만 기다려요. 이것만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명국은 소파에 앉아 30분이 넘게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진대호가 지금 하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중에 해도 충분한 일이지만 굳이 시간을 끌기 위해 저런 짓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라면 그런 방식이 조금이라도 통했겠지만 오명국은 아니었다.

    진대호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면, 오명국이 현석을 만나 레벨 한계를 돌파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현석 덕분에 잊고 살았던 자신의 본모습을 찾은 셈이었다.

    어쨌든 오명국은 일부러 초조한 표정을 연기하며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이런 걸 하니 나름 재미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갑자기 처리할 일이 쏟아지는 바람에…….”

    충분히 상대를 흔들었다고 판단한 진대호가 오명국 앞에 앉으며 말했다.

    오명국은 얼른 표정을 수습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한데…… 어쩐 일로 절…….”

    “아, 별 거 아닙니다. 어제 일에 대해 보고를 좀 받으려고요.”

    “어제 일 말입니까?”

    “예. 채현석 씨가 불러서 나갔지요?”

    오명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그것도 제가 받은 임무의 일환인지라…….”

    진대호가 손사래를 쳤다.

    “아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걸 가지고 뭐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임무인 거 저도 압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예?”

    “어제 채현석과 만나 뭘 하고 어디를 갔는지 보고해 주십시오. 대화한 게 있으면 그것도 좀 알고 싶군요.”

    오명국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진대호의 얼굴과 눈빛을 확인했다.

    그제야 오명국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제 그놈들…… 진 실장이 보냈구나!’

    그 생각이 든 순간, 함께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과연 채현석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리고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대체 어떻게 생겨먹는 사람이란 말인가. 이 일을 자신을 시험할 기회로 여기는 게 분명했다.

    진대호가 그런 오명국을 보며 빙긋 웃었다. 다 예상했다는 듯이 말이다.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있었던 일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건 오명국 씨에게는 절대 불이익이 없다는 점, 약속드립니다.”

    오명국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진대호를 바라봤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명멸했다. 오명국은 섬광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생각들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정리했다.

    “일단…… 차를 사러 갔습니다.”

    “차?”

    “채현석 씨가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알기론 그 사람 면허가 없는데, 아니었습니까?”

    오명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도 매장에서 제일 비싼 차를 샀습니다. 그리고…… 제게도 한 대 사주더군요.”

    “차를 말입니까?”

    진대호가 눈을 빛내며 오명국을 바라봤다. 오명국은 목을 움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선물에 대해 왈가왈부할 리 없지 않습니까. 계속해 주십시오.”

    오명국은 그날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닌 것까지는 막힘없이 얘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여길 어떻게 각색한다?’

    감시당하고 있었기에 이야기를 거기에 꿰맞출 필요가 있었다.

    순간 오명국의 뇌리에 어제 일이 슥 스쳐 지나갔다.

    ‘아…… 그래서 쓰레기를 찾았구나.’

    어쨌든 혼란을 주려는 건 맞다. 하지만 현석은 거기에서 뭔가 원하는 바가 있었다.

    오명국은 그것을 정확히 짚어 현석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야 자신의 가치가 올라갈 테니까 말이다.

    “재개발 지역으로 가더니 사람을 계속 만나더군요. 제가 보기엔…… 다들 쓰레기 같은 놈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들과 뭘 하던가요?”

    “돈을 주고 과자를 샀습니다. 사실…… 겉만 과자지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렇겠지요. 대충 얼마 정도에 과자를 사는 것 같았습니까?”

    “눈짐작으로 보건대…… 천만 원쯤 되는 듯합니다.”

    “천만 원? 휘유, 굉장히 비싼 과자로군요.”

    “예. 그 이후는…… 별다른 일 없이 돌아왔습니다.”

    진대호는 그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습니다. 혹시 뭔가 다른 생각나는 점은 없었습니까? 수상한 행동을 한다거나…….”

    “음…… 확실치는 않은데…….”

    진대호가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세상에 확실한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모든 역사는 다 그런 짐작에서 시작되는 법이지요.”

    그 말에 용기를 얻은 오명국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 재개발지역…… 거기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가 있다?”

    “그냥 느낌입니다. 거기 들어가기 전과 후가 좀…… 달랐습니다.”

    진대호는 그 말에 눈을 번득였다. 그리고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가보셔도 좋습니다. 앞으로도 쓸모 있는 보고, 기대하겠습니다.”

    오명국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진대호는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재개발지역이라…… 확실히…… 뭔가 은밀한 일을 진행하기에는 그보다 좋은 곳이 없긴 하지.”

    진대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일단 재개발지역을 샅샅이 뒤질 계획이었다. 그리고 현석과 접촉한 모든 사람을 조사할 것이다.

    그의 얼굴에 씨익 미소가 떠올랐다. 왠지 일이 착착 풀리는 것 같아 더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 * *

    밤이 와 어둠이 내려앉았다. 현석은 그제야 집을 나섰다. 아주 은밀하게.

    아직도 현석을 스킬로 감시하는 놈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었다.

    아까처럼 가까이 다가온 건 아니었지만 스킬을 통해 끊임없이 현석의 모습을 살피고 소리를 도청했다.

    현석은 오늘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다. 그냥 있었던 게 아니라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그러니 그런 현석을 감시하던 세 사람은 오죽 심심하고 답답했겠는가.

    하지만 현석이 그냥 누워만 있었던 건 그들을 심심하게 해서 빈틈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염탐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얻기 위함이었다.

    미래에도 염탐은 정보전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길드나 국가 사이에서 활발하게 쓰이는 정보원의 필수 스킬이었다.

    그러니 그걸 막는 스킬도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염탐을 막아내는 스킬이 바로 혼란이었다.

    정보에 혼선을 줘서 제대로 된 화면이나 소리를 얻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스킬이었다.

    염탐이나 혼란은 타고나는 경우도 있지만 훈련에 의해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스킬이었다.

    말이 스킬이지, 사실 그에 맞는 마력운용법을 몸에 새기는 것이었다.

    미래에는 그런 식으로 마력운용법을 몸과 머리에 새겨 스킬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스킬의 종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이렇게 유용했다.

    또한 그걸 몸과 머리에 새기기 위해서는 마력유도기라는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다.

    현석도 예전 그걸 이용해 몸에 스킬을 새긴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달리 마력유도기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이후로는 그렇게 몸에 새길 수 있는 스킬을 마력유도기를 통하지 않고 홀로 새겼다. 돈도 돈이었고, 마력 컨트롤 훈련도 되었기에 그렇게 했다.

    그 덕분에 현석은 다른 플레이어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스킬을 새길 수 있었다.

    이번 혼란 스킬만 해도 보통은 최소 일주일에서 열흘은 마력운용법을 몸에 새기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현석은 꼴랑 반나절 만에 그걸 뚝딱 해치워 버렸다.

    ‘자, 그럼 써먹어 볼까?’

    현석은 혼란 스킬을 펼쳤다. 현석을 중심으로 강력한 마력장이 생성되었다.

    < 낚시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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