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낚시 1 >
세 명의 감시자들은 어느새 높은 빌딩이 거의 없는 지역으로 왔다는 걸 깨닫고는 크게 당황했다.
목표와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진 것이다.
이렇게 될 때까지 이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 더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일단 거리를 더 좁혀야 할 것 같은데?”
아까까지만 해도 빌딩들이 높아서 먼 거리를 무리 없이 관찰할 수 있었다.
그들이 가진 염탐 스킬은 꼭 상대가 눈에 보여야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염탐의 질을 높이려면 눈으로 직접 봐야만 했다.
사실 그건 그들이 스킬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마력 운용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거지만, 그 부분에 대해 아는 사람은 현재 없었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한데?’
사실 아까처럼 빌딩이 빼곡하게 채워진 곳은 오히려 더 상대를 관찰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빌딩과 빌딩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먼 곳에서는 시야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한데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마치 일부러 자신들이 관찰하기 좋은 곳으로만 골라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한 번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갑자기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졌다.
그렇게 아무 방해가 없었기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끌려오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들이 상대를 관찰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상대가 자신들을 유인한 것일 수도 있었다.
“우리, 오늘은 이쯤하고 돌아가는 게 어때?”
“미쳤어?”
“그 뒷감당은 누가 하고?”
“오늘 중으로 꼭 알아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좀…… 촉이 안 좋아서 그래.”
“촉? 우리가 언제부터 일을 촉으로 했다고 그래?”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또 그랬다. 지금까지 한 번도 촉이나 감 운운한 적이 없었다. 세 사람 모두가 그랬다.
아니, 오히려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경멸하곤 했다. 촉이니 감이니, 그딴 건 제대로 확실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놈들이 일을 대충하기 위한 핑계로밖에 안 들렸다.
한데 지금 자신이 그 경멸하는 놈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결국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보군. 좋아. 일단 거리부터 좁히자. 도청 감도가 너무 나빠졌어.”
그들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다시 움직였다. 주변에 높은 빌딩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목표에 좀 더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 * *
오명국은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치솟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었다.
‘대체…… 왜 이렇게 빙빙 도는 거지?’
그가 보기에 현석은 그저 똑바로 가면 되는 곳도 무슨 이유인지 다른 길을 이용해 멀리 돌아가곤 했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오명국은 결국 조심스럽게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저 슬쩍 던져본 말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석은 의외로 자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쫓아오는 놈들이 있어서 유인 중입니다.”
“예?”
오명국이 깜짝 놀라 현석을 바라봤다. 쫓아오는 놈들이라니, 그럼 지금 미행을 당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낌새는 없었는데?’
오명국도 나름 이쪽으로는 많은 경험이 있었다. 사실 플레이어가 되기 전에는 정보 쪽에서 일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미행이나 염탐에 대해서는 제법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또 평소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습관이 남아 미행을 확인하거나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는 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지속한다.
그건 현석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도 분명히 유효했다. 한데 그런 낌새가 아예 없었다.
또 수상한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상대가 아무리 능수능란한 미행자라 할지라도 그쪽 사람이라면 그들만이 풍기는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오명국은 다른 요원에 비해 그 부분에 대한 감지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미행에 잘 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미행이 따라붙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하긴…….’
오명국은 문득 얼마 전의 일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지금 상황을 수긍하고 말았다.
현석을 미행하다가 걸려 된통 당하지 않았던가. 그때도 오명국은 자신이 정말 완벽하게 현석을 미행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확률이 높았다.
‘진짜…… 세상은 넓고 인재는 별처럼 많구나.’
현석은 미행하는 놈이라고 안 하고 놈들이라고 했다. 즉, 여러 명이라는 뜻이다.
여럿이 미행하는데 자신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 오명국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미행을 당한 겁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 그렇게 오래요? 설마 우리가 차를 산 것도 그놈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습니까?”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만 한 게 아니라 듣기까지 했죠.”
“예? 도청까지 했다고요? 그럴 리가!”
오명국은 그 말은 절대 믿을 수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자신 주변에서는 도청이 불가능하다.
“전 항상 도청 방지장치를 들고 다닙니다. 도청은 절대 불가능해요.”
현석은 굳이 그 말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저들이 마력을 기반으로 이뤄진 스킬로 도청했다는 말은 해서 뭐 하겠는가.
그리고 지금 당장은 도청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현석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나마도 임시로 한 조치이기 때문에 금방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 전에 오명국을 조심시킬 필요가 있어서 잠시 그렇게 한 것뿐이었다.
“어쨌든 앞으로는 되도록 말을 하지 맙시다.”
오명국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긴가민가할 때는 안 하는 게 답이다.
두 사람은 다시 움직였다.
문득 오명국은 현석을 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대체 뭘 어쩔 셈이지?’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좁은 골목을 몇 번 지나며 걸음을 서두르던 현석이 갑자기 딱 멈췄다.
오명국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현석이 입을 열었다.
“혹시…… 연락 가능한 쓰레기들 없습니까?”
“예? 쓰레기들이요?”
당연히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명국의 뇌리를 스친 이름만 20명이 넘었다.
그리고 좀 더 고민해보면 방금 떠올린 놈들보다 훨씬 더 악질적인 쓰레기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연락처도 안다. 나중에 혹시 모를 일에 정보원으로 써먹거나 이용하려고 준비해둔 인맥이었다.
보통 사람이 보면 그게 무슨 인맥이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정보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그것도 대단한 인맥이었다.
“있긴 있습니다만…….”
“연락하면 바로 옵니까?”
“돈만 있으면 어디든 옵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대답이었다. 현석은 만족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로 부르세요. 보수는 인당 천만 원. 하는 일은 별 거 없습니다. 간단한 심부름이면 됩니다. 과자나 좀 사오라고 하죠.”
현석은 스마트폰을 내밀어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에는 지도와 주소가 떠 있었다.
척 보니 대충 아는 곳이었다. 굳이 쓰레기들의 폰에 정보를 남길 일도 없을 듯했다. 그저 대포폰으로 전화만 몇 통 하면 끝날 일이었다.
“이들을 이용해 교란이라도 하실 생각이시면…… 아마 잘못 짚으신 거 같습니다. 이놈들은 아마 돈만 받고 입을 싹 씻을 겁니다.”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던 게 바로 그겁니다.”
오명국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싹 굳어졌다. 현석이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쓰레기들을…….’
어느새 오명국은 대포폰을 꺼내들고 있었다.
* * *
현석을 쫓는 세 사내의 표정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목표가 좁은 골목이 밀집된 지역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도청이 가끔 끊기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도청만 제대로 되면 뒤쫓고 염탐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한데 자꾸 노이즈가 끼고 도청이 끊어지니 추격이 점점 버거워져 갔다.
“대체 이런 데서 뭘 하려는 거지?”
“이런 곳이니 오히려 뭔가를 숨기고 하기가 좋겠지.”
확실히 그렇다. 보아하니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사는 집보다 더 많은 듯했다.
“개발 예정지로군.”
뭔가를 몰래 숨어서 하기도 좋지만, 그걸 오랫동안 할 수는 없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서 이들은 더 확신했다. 이곳에 분명히 뭔가가 있다고 말이다.
“좀 더 과감하게 갈까?”
그 제안에 나머지 두 사내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제대로 뭔가를 알아내려면 위험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세 사내는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은 다음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석과 오명국에게 조금씩 접근했다. 처음 지켜보던 것에 비하면 거의 바로 옆에서 보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다가간 것이다.
“이쪽으로.”
앞장선 사내가 근처에 있는 2층집 지붕으로 올라갔다. 근처에는 2층집이 하나도 없기에 몸을 낮추고 있어도 목표를 확인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저게 뭐지?”
목표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사내들은 염탐 스킬을 이용해 도청 감도를 높였다.
현석에게 다가간 자는 동네 건달이나 다름없는 복장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건들거리며 현석에게 다가가 과자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현석은 그 상자를 받고 말없이 돈뭉치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동네 건달은 그걸 받고 희희낙락하며 빠르게 사라졌다.
“저게 뭐지?”
세 사내의 시선은 온통 현석이 받은 과자상자에 집중되었다. 얼핏 보기엔 그냥 진짜 과자 하나를 갖다 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냥 과자를 누가 저런 큰돈을 주고 산단 말인가. 그것도 이런 장소에서.
“아무래도…… 저놈, 확인해야겠는데?”
“내가 가지.”
세 사내 중 한 명이 빠르게 움직여 방금 사라진 동네 건달을 쫓아갔다.
동네 건달은 그야말로 진짜 동네 건달 같았다. 만일 저게 연기라면 저놈은 배우로 대성할 수도 있으리라.
남은 두 사내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현석과 오명국에게 집중했다. 혹시 어딘가로 이동하면 이 거리를 유지하며 쫓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또 다가온 양아치 한 명 때문에 그들은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이번엔…… 사탕 한 봉지인가? 저 사탕봉지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 돼?”
“하나하나 포장된 사탕이라서…… 그 안에 뭐가 들었을지는 나도 모르지.”
그렇게 말한 사내가 양아치를 쫓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잠깐 사이 또 다른 놈 하나가 다가온 것이다.
그렇게 그날 현석에게 와 돈과 과자 혹은 사탕 혹은 음료수를 바꿔간 놈의 수가 무려 12명이나 됐다.
현석은 그렇게 받은 모든 물건을 미리 준비한 커다란 자루에 담고는 오명국과 함께 다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동네 건달을 쫓아갔던 동료가 다시 합류했다.
“그놈 서식처를 파악했어. 한데…… 진짜 동네 건달 같던데?”
“위장신분일 수도 있지. 일단 지원 요청부터 해. 우리들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만한 문제가 아니야.”
“오케이.”
그들은 서둘러 행동을 시작했다. 상부에 연락을 하면서 현석과 오명국의 뒤를 다시 쫓아갔다.
그들이 그 뒤로 확인한 건 현석이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리고 오명국은 현석으로부터 힐링포션 열 개를 받아 챙겼다.
세 사내는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봤다. 그리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오늘 채현석을 만난 놈들 중에 공급 책이 있어.’
< 낚시 1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