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드드래곤 길드 3 >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모이는군.”
현석은 자동차 매장으로 이동하며 중얼거렸다. 전생에서는 차를 살 일도 없었다. 눈이 안 보이는데 운전은 어떻게 하겠는가.
안 보이는 눈으로 싸우는 것과 운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마수와는 싸울 수 있어도 운전을 할 수는 없었다.
마수에게는 마력이 있지만 차에는 마력이 없었으니까.
현석은 문득 가장 중요한 문제 하나가 떠올랐다. 아직 면허를 따지 않았다.
“일단 차부터 사고…… 바로 면허를 따야겠군.”
면허를 따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미 레벨이 90에 육박하고 있는 초인이 운전면허에 떨어진다면 제법 재미있는 개그가 될 것이다.
자동차 매장 앞에 도착한 현석은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오명국을 발견했다.
오명국은 현석을 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와 꾸벅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날 이후로 오명국은 길드의 일이 없을 때는 마치 현석의 개인비서처럼 행동했다.
그가 보기에 현석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고, 또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열린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자신 역시 위로 쭉쭉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레드드래곤 길드의 중추가 되라고 했지?’
오명국은 이제 그 말을 철석 같이 믿고 있었다.
마스터인 한중현에게 보고하기 전, 현석과 간단히 던전을 플레이 했는데, 그때 정체되어 있던 레벨이 올라갔다.
솔직히 그렇게 하고도 레벨이 안 올라가면 그냥 나가 죽으려고 했다. 그 정도로 힘들고 생사를 넘나드는 가혹한 플레이였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던전을 클리어했고, 그와 동시에 레벨이 올랐다.
오명국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현석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참으로 신기한 사람이었다.
일단 앞으로 함께 할 사람이니 뒷조사를 충분히 했다. 한데 정말로 나이가 21살이었다. 각성한 지 1년도 채 안 되었고 말이다.
그런데도 막상 만나서 대하다보면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가끔은 얼굴을 위장한 40대 아저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어쨌든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허술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차를 골라 달라니.
“귀여운 구석도 있네.”
오명국은 자신이 중얼거린 소리를 매장 안에서 현석이 똑똑히 듣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씨익 웃으며 현석이 들어간 매장에 따라 들어갔다.
현석은 매장에 들어간 지 채 5분도 되기 전에 계약을 마쳤다.
오명국은 대체 왜 자신이 여기 따라온 건지 회의감이 들었다. 아무 역할도 못한 것이다.
‘젠장. 이럴 거면 난 왜 오라고 한 거야?’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옆에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현석은 직원을 보자마자 지금 당장 받을 수 있는 차 목록을 가격에 상관없이 달라고 했다.
직원이야 얼씨구나 하고 순식간에 목록을 제공했고, 현석은 그 중 가장 비싼 차를 손가락으로 톡 짚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오명국의 역할은 그저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장식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현석이 오명국을 힐끗 쳐다봤다. 그의 뚱한 얼굴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적당한 걸로 한 대 골라보시죠.”
현석의 말에 오명국은 멀뚱멀뚱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이내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예? 저, 저 말입니까?”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고르고 나가죠.”
오명국은 멍하니 현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급히 리스트에서 차 이름을 확인하고는 얼른 그 중 하나를 골랐다.
사실 리스트에 있는 모든 차가 오명국 입장에서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쌌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는 몰라도 이런 선물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현석은 눈이 화등잔만 해져서 차를 고르고 있는 오명국의 모습을 차분히 쳐다봤다.
‘이제 족쇄 하나는 채웠고…….’
현석이 아무 생각 없이 호의로 차를 사주는 건 아니었다. 현석에게 아무리 돈이 썩어 넘쳐난다 해도 이런 고가의 차를 아무에게나 사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오명국은 장차 레드드래곤을 컨트롤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족쇄를 몇 개 채울 필요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차였다. 그냥 차가 아니라 현석이 특별한 조치를 취한 차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오명국의 차도 현석이 직접 받아서 주기로 했다. 그래야 차에 뭔가를 장착할 시간이 생길 테니까.
어쨌든 간단히 차를 계약한 현석은 오명국과 함께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향했다.
오명국은 그저 현석의 뒤만 졸졸 쫓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는 지금 한중현으로부터 특별한 지시를 하나 받은 상태였다.
현석과 친해지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쉽게 현석의 부름에 응할 수도 있고, 또 현석과 함께 뭔가를 도모하기도 쉬워졌다.
현석과 함께 하는 모든 일이 마스터인 한중현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셈이 되니 말이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오명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비교적 현석과 가까워진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건 사실 착각에 가까웠다.
차를 선물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현석에게 느끼는 친밀감이 늘어난 거지, 현석이 자신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아직 여전할 테니 말이다.
오명국은 그걸 명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매사 조심할 수 있었다.
“레벨업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명국은 그 말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며칠 전 겪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레벨업을 할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면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에…… 어제 거긴…… 이미 클리어 하지 않았습니까? 개별 던전은 쉽게 다시 생기지 않는 걸로 아는데…….”
현석이 눈을 빛내며 오명국을 쳐다봤다.
“개별 던전에 대해 좀 아는 모양이군요?”
“그저…… 큰 길드에 있다 보면, 이래저래 주워듣는 말이 좀 있습니다. 레드드래곤 길드도 개별 던전을 은밀히 확보하려고 이리저리 손을 쓰고 있다더군요.”
물론 그건 아직 오명국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정보였다. 하지만 또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했다.
개별 던전을 찾는 일 자체가 은밀히 진행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얘기가 하나도 없을 수 있겠는가. 다들 그냥 쉬쉬할 뿐이었다.
어쨌든 그런 개별 던전을 현석이 알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현석이 보여준 실력은 눈이 휙휙 돌아갈 지경이었다.
또한 옆에 있으면서 곁다리로 싸우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는 기분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죽을 맛이었고 말이다.
‘그 지옥 같은 데를 또 가야 한다니…….’
하지만 오명국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는 더 이상 성장의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바로 재능이었다.
그리고 그 재능을 능가하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하고 말이다.
지금 현석이 오명국에게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강제로 목숨을 걸게 만들어 한계를 극복시키는 것 말이다.
오명국을 뒤에 달고 걸음을 빨리하던 현석이 눈을 빛냈다.
‘미끼를 던지자마자 물어서 너무 싱거운데?’
저 멀리서 이쪽을 감시하는 플레이어의 기척이 느껴졌다. 더 정확히는 특별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뭔가 마력을 이용한 스킬을 쓰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큰 길드에 속한 플레이어라 그런지 대응법 자체가 다른데?’
아마 저들이 스킬을 쓰지 않았다면 현석도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정도로 멀리서 이쪽을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염탐 계열의 스킬인 듯했다. 들어가는 마력의 양이 엄청난 걸 보니, 등급이 아주 낮은 스킬이거나, 사용자의 역량이 모자라서 스킬을 제대로 못 쓰고 있는 듯했다.
‘확실히 아직 스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시기이긴 하지.’
스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차츰 마력 컨트롤 능력에 대한 중요도가 올라가게 된다.
물론 아직은 좀 먼 이야기이다.
어쨌든 현석은 저런 꼬리를 달고 자신이 파악한 개별던전으로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돈을 많이 번 이유가 중요한 개별 던전을 먼저 선점하기 위함인데 저런 꼬리를 달고 가면 저놈을 보낸 진대호에게 던전을 상납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뭐…… 저놈이나 진대호가 원하는 건 개별던전이 아니라 힐링포션이겠지만.’
현석이 내놓은 힐링포션은 사실 대단한 레시피를 가지고 만든 건 아니었다. 또, 대단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힐링포션의 주재료는 바로 마력이었다. 고도로 응축된 마력 말이다.
그것이 더욱 조밀하게 응축되면 성수가 된다. 하지만 힐링포션에서는 그렇게나 극도로 응축된 마력, 즉 성수는 필요치 않다.
그저 그 정도 촉매가 될 마력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 재료는 그 마력을 붙잡아 놓기 위한 것들이었다.
사실 미래에는 돈 없는 플레이어들이나 쓰는 저급 포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시기에는 거의 기적의 약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이 플레이어에게만 적용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그것의 원천을 캐고 싶은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더구나 진대호처럼 야망으로 똘똘 뭉친 놈은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현석은 어쩌면 진대호가 진짜 그의 길드인 K나이츠 길드를 만들기도 전에 제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베스트이고,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 레드드래곤 길드를 K나이츠 길드의 대항마로 성장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정도는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옆에서 따라오고 있는 오명국만 적당히 키워 놓는다면 말이다.
‘그래. 적당히…… 그러니까 한…… 80레벨 정도로만 키우면 되겠네.’
그 정도면 레드드래곤 길드가 제대로 K나이츠 길드의 대항마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물론 끊임없이 현석이 지원해줘야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석은 원래 가려던 곳에서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단 저놈들은 따돌리거나, 헛정보를 안겨줘서 진대호에게 빅엿을 하나 제공하기로 했다.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리고 걸음이 좀 더 빨라졌다.
* * *
높은 빌딩 옥상에 세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들은 옥상 끝에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서로를 바라봤다.
“이동 속도가 높아졌는데?”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여기서 저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눈이 마주쳐도 모를걸?”
“설사 상대가 추광열이라고 해도 이 거리면 안전해. 근데 아무리 봐도 저 놈이 추광열로 보이진 않는군.”
추광열은 한국에서 레벨이 제일 높은 플레이어였다. 현재 100레벨이 넘었을 거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이들은 감시와 염탐의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 아무리 추광열이라해도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걸 엿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쓸데없는 농담은 그만 하고 서둘러. 더 멀어지면 힘쓰기 어려워져.”
이들이 쓰는 스킬에 걸린 제약은 바로 마력이었다. 마력이 엄청나게 소모된다.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많은 마력이 소모되기에 최적의 거리를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여기서 더 목표와 멀어지면 마력부족으로 허덕일 게 뻔했다. 서둘러야만 했다.
세 사람이 일제히 옆 빌딩 옥상으로 점프해서 이동했다.
다들 레벨이 상당히 높은 플레이어였기에 이 정도 거리를 뛰어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이들은 현석과 오명국을 감시하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기록하며 빌딩과 빌딩을 계속 뛰어넘고 감시하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점점 빌딩이 드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들은 미처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레드드래곤 길드 3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