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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6화 (36/326)
  • < 마력의 정수 2 >

    현석은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마력의 정수를 사 모았다. 개 중에는 정말 눈 돌아갈 정도로 비싼 재료에 마력의 정수가 깃든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 모든 재료를 싹 사들였다.

    현석은 그렇게 마력의 정수를 모으면서 정말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암시장은 말 그대로 암시장일 뿐이었다. 진짜 막대한 재료를 확인하려면 지금은 던전관리센터가 최고였다.

    던전관리센터의 창고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마력의 정수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모으는 것 외에 현석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아직 현석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레인보우 엘릭서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마력의 정수라는 것과 그 안에 들어가는 몇 가지 재료만 더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정확한 레시피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를 대비해 기회가 될 때마다 마력의 정수를 미친 듯이 모아야 한다.

    ‘뭐…… 당장 쓸 것도 아니니까.’

    어차피 시간은 많다. 최소한 150레벨이 넘었을 때부터 쓸 생각이었으니까.

    그 전에 쓰는 건 솔직히 낭비였다. 아니, 어쩌면 현석의 경우는 그보다 더 이후에 써야할지도 모른다.

    현석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인 속도로 레벨업을 진행 중이었다.

    과거의 지금은 아직 레벨이 40에도 이르지 못했을 때였다. 아니, 눈을 잃고 허우적대고 있을 때였다.

    아마 지금 현석의 레벨 정도면 한국 내에서 최고는 어려워도 최소 20위 안에는 들어갈 것이다.

    현석이 각성한 지 아직 1년도 안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그러니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현석의 예상으로는 170까지는 무난하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물론 100레벨에서 고비가 한 번 있겠지만 그건 그때 해결하면 된다.

    그러니 레인보우 엘릭서가 필요한 건 그 즈음 부터다. 아직 몇 년은 더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 차근차근 나아가다보면 모든 것이 손아귀에 아주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던전관리센터의 창고에 갈 기회를 한 번 만들어야겠어.’

    관리센터의 창고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면 또 얼마나 많은 마력의 정수를 얻을 수 있겠는가.

    현석은 암시장을 싹쓸이해서 구한 마력의 정수를 커다란 자루에 담아 어깨에 지고 다시 황노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현석이 암시장을 돌아다닌 시간이 제법 오래됐는지, 황노인은 모든 아티팩트의 감정을 마치고 심각한 표정으로 현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 하느라 이제 와?”

    황노인은 현석이 뭘 하고 있었는지 다 알면서 슬쩍 떠보듯 말을 꺼냈다.

    현석은 피식 웃으며 손에 든 자루를 흔들어 보여줬다.

    “이거 좀 구하느라고요.”

    이 안에는 마력의 정수가 무려 79개나 들어 있다. 이걸 잘 보관해 미래로 가져가면 수십조 원이 넘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황노인이 알게 되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게 뭔데?”

    “그냥 잡다한 재료들이죠.”

    황노인의 눈이 번득였다.

    “그냥 잡다한 재료를 구한다고 하기에는…… 너무 신중하게 고르던데?”

    현석이 빙긋 웃었다. 자신이 마력의 정수를 파악하는 방식은 아마 아무리 옆에서 지켜봐도 모를 것이다.

    심지어 미래, 그러니까 현석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인 20년 후에도 현석처럼 확실하고 빠르게 마력의 정수를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다.

    그때는 마력의 정수를 구분해 내기 위해 특별한 감지기까지 제작했다.

    하지만 그 가격이 상당했기 때문에 아무나 들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래도 규모가 큰 길드에서는 감지기를 한두 개 정도 장비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던전 사냥 직후에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마력의 정수를 찾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감지기도 실패확률이 있었다. 현석이 마력 패턴으로만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어쨌든 미래에도 그렇게 감지기를 이용하지 않으면 마력의 정수를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마력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현석조차도 과거로 되돌아와 마력의 주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전까지는 마력의 정수를 느낌으로 파악해 낼 엄두도 못 냈으니 말이다.

    “왜요? 감정 한 번 해보시게요?”

    현석의 말에 도발이 살짝 섞였다. 황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요놈 봐라?’

    황노인은 일단 처리할 일부터 처리하고 본때를 보여주기로 했다. 감정 실력으로만 따지면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신했다.

    그에게는 오랜 경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감이라는 무기가 또 있었다.

    황노인의 감은 사람을 보는 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아티팩트나 던전에서 출토되는 재료에도 해당된다.

    “일단 이것부터 처리하고 다시 얘기하자.”

    황노인은 현석에게 패드 하나를 휙 던졌다. 그것을 받은 현석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아티팩트와 감정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넓은 계단형 진열대에 현석이 가져온 모든 아티팩트가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다. 패드에 기입된 순서대로 말이다.

    “역시…….”

    현석은 황노인이 정리를 잘 해둔 덕분에 손쉽게 감정가와 가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황노인의 감정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모든 목록을 확인한 현석은 감탄한 표정으로 황노인을 바라봤다.

    ‘설마 나랑 같은 능력을 가진 건 아니겠지?’

    심안이라도 갖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어찌 이렇게 정확히 아티팩트를 감정해 낼 수 있단 말인가.

    “왜? 마음에 안 들어?”

    현석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뇨. 퍼펙트합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황노인이 피식 웃었다.

    “내가 감정만 몇 년을 해 왔는지 알아? 던전이 생기기 수십 년 전부터 이 일을 해온 사람이야.”

    물론 그때는 유적에서 발굴된 예술품이나 보물 같은 것을 감정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황노인의 말에 현석의 눈이 번쩍 뜨였다.

    “던전이 나오기 전에는 아티팩트가 없었을 것 같지?”

    황노인은 현석의 표정이 달라진 걸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놈 얼굴에 언제 저런 표정을 만들어보나 벼르고 별렀는데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이놈아,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아.”

    “그럼 예전부터 아티팩트라는 것이 존재했단 말입니까?”

    “그래. 다만 마력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야.”

    현석은 놀란 표정을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기인이사가 얼마나 많겠는가.

    던전 등장 이전에도 기(氣)를 자유자재로 다뤄 내공이라는 힘으로 강력한 무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마법을 쓰는 마법사가 없으리란 법도 없었다. 아마 던전 등장 이전에 나왔다던 아티팩트는 그런 마법사나 연금술사에 의해 제작된 것이리라.

    ‘그런 사람이 플레이어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문득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심장이 또 달아올랐다. 아마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컨대, 그 사람들은 엄청난 강자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나도 그들 못지않아.’

    현석에게는 내공도 마법도 없지만 그들과는 전혀 다른 무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기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했다.

    ‘게다가 마력의 정수까지.’

    이래저래 현석은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나저나 그건 언제 보여줄 건데?”

    황노인의 물음에 현석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황노인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아 닳고 닳았는데도, 아이 같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저쪽으로 가시죠.”

    현석은 넓은 테이블로 다가가 그 위에 자루를 쏟았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은 없었기에 그냥 우르르 쏟아도 상관없었다.

    넓은 테이블이 순식간에 잡다한 재료로 가득 찼다.

    황노인은 눈을 빛내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허어. 거 참…….”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황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현석을 바라봤다.

    “이거 뭔지 말 안 해줄 거지?”

    현석은 어깨만 한 번 으쓱 했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얘기를 하면 할수록 상대에게 정보만 건네주게 되는 셈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에잉, 정 없는 놈.”

    황노인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속으로는 감탄을 했다.

    ‘저놈, 분명히 나이 속이고 있는 거야. 저 나이에 절대 저럴 수가 없어.’

    속에 능구렁이를 몇 마리나 키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뭐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하고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이래저래 황노인만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알 수가 없단 말이지…… 뭔가 묘한 느낌이 들긴 드는데…… 그래서 뭔가 있나 싶으면 또 그 느낌이 사라지고…… 이래서야…….”

    황노인의 중얼거림을 들은 현석은 속으로 정말 깜짝 놀랐다.

    ‘감정계의 귀신이라더니 진짜 그 말이 딱 맞네.’

    현석도 마력 패턴을 파악하고 심안을 통해 확인까지 하고 나서야 찾아낼 수 있었던 마력의 정수로부터 뭔가 느낌을 받고 있다니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황노인이 마력의 정수를 알아볼 일은 없을 것이다.

    마력의 정수는 그리 쉽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놈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감지기가 나오기 전까지 마력의 정수는 모조리 현석의 차지였다.

    황노인은 결국 포기하고 물러났다. 그러자 현석은 그 모든 물건을 싹 다시 자루에 담았다. 그리고 자루 입구를 단단히 묶었다.

    아공간 안에서 묶은 것이 풀리기라도 하면 진짜 땅을 치고 통곡하게 될지도 모른다.

    무려 79개나 되는 마력의 정수를 잃어버리는 셈이니 말이다.

    “아티팩트 대금은 계좌로 쏴주랴?”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금으로 주십시오. 컨테이너 박스에 담아서.”

    황노인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금이 무슨 동네 마트에서 파는 껌인 줄 알아? 이 많은 돈으로 금을 구하려면 얼마나 힘든데!”

    물론 현석은 황노인의 엄살에 대꾸하지 않고 꾸벅 고개를 숙이고서는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 멀어져가는 현석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황노인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대체…… 왜 금을 모으는 거지?”

    황노인 특유의 촉이 또 간질간질하게 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현석은 자루를 어깨에 메고 걸어가며 황노인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다.

    아마 황노인은 자신이 그 말을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애석하게도 현석의 청력은 보통 사람은 물론이고 웬만한 플레이어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뛰어났다.

    “아마 그것도…… 당분간은 못 알아낼 겁니다.”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씨익 웃었다.

    * * *

    레드드래곤 길드는 최근 한국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뒤에 삼현 그룹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길드의 문을 두드리는 플레이어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레드드래곤 길드의 마스터인 한중현은 길드의 운영 보다는 자신의 실력을 높이는 데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만이 실낱 같이 남은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래서 길드 운영 자체는 방만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일은 그 방만함이 가져온 유일하다시피 한 긍정적인 결과였다.

    “6개월이라…… 오래 걸렸군요.”

    “예.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중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했건 말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어쩔까요?”

    “제 답은 처음 이 사람에 대한 정보를 들었을 때 이미 드렸습니다.”

    그 말이 이번 일을 결정했다.

    한중현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 실장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거겠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오명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서 정중히 모셔오세요. 원한다면 제가 그쪽이 원하는 장소로 갈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움직이시면 됩니다.”

    그 말에 오명국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허리를 90도로 접으며 대답했다.

    “즉시 다녀오겠습니다!”

    < 마력의 정수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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