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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35화 (35/326)
  • < 마력의 정수 1 >

    황노인은 현석의 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현석은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이놈이?”

    자신의 말을 무시한 현석의 태도에 황노인이 발끈했다. 그리고 냅다 현석을 쫓아갔다.

    지금 두 사람은 종로암시장에 있었는데, 현석은 거침없이 암시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황노인은 황당한 눈으로 그런 현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놈 대체 왜 저래? 내가 뭐 기분 나쁘게 했나?”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황노인은 이내 인상을 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잘못한 게 없었다.

    무슨 꿍꿍이냐고 물어본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황노인은 다시 암시장으로 돌아온 현석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

    “너…… 그건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냐?”

    현석은 등에 거대한 자루 하나를 메고 있었다. 마수의 가죽을 이어 붙여 만든 주머니였다.

    그걸 가지고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도 쉽지 않아보였다. 암시장으로 내려오는 계단은 그리 넓지 않으니 말이다.

    “가죠.”

    현석은 다시 걸음을 옮겨 황노인의 부스로 향했다. 그런 현석을 바라보던 황노인의 눈빛이 변했다.

    “이놈 봐라?”

    저리로 간다는 건 아티팩트를 거래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저 자루 안에 아티팩트가 들어 있다는 말 아닌가.

    황노인은 황급히 현석의 뒤를 따랐다. 이내 두 사람은 황노인의 부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석은 종로 암시장 안에서는 황노인의 눈을 절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굳이 밖으로 나가서 아공간을 썼다.

    밖에 나가서도 정말로 조심했다. 근처 빌딩 옥상으로 가서 주머니를 꺼냈고, 돌아올 때도 옥상에서 암시장이 있는 쪽으로 뛰어내려서 왔다.

    아마 황노인은 이 자루를 그 빌딩 옥상에 미리 숨겨놓았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게 현석이 상황을 짜 맞춘 것이다.

    “그거 뭐냐?”

    황노인은 그렇게 물으며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 하나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설마 저거……!”

    현석이 홀로 레드독 길드를 박살 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현석은 홀로 그런 대단한 일을 해냈다.

    그럼 그때 레드독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는 어쨌겠는가.

    ‘저놈이 몽땅 수거했겠지.’

    황노인은 현석이 옆에 내려놓은 거대한 자루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황노인이 대단해도 저렇게 많은 아티팩트를 한 번에 본 적은 상당히 드물었다.

    물론 경험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건 감정 실력을 더 올릴 기회이기도 했다.

    현석은 그런 황노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표정으로 자루를 휙 털어 안에 든 아티팩트들을 바닥에 쏟아냈다.

    아티팩트의 산이 만들어졌다.

    황노인은 황홀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그가 이곳에 암시장을 연 것도 다 아티팩트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아티팩트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뭔가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황노인의 마음을 잡아 끌었다.

    “저, 저걸 모두 팔 생각인가?”

    현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감정은 끝났다. 현석에게는 누구보다 쉽고 간단하게 아티팩트를 감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기에 수거와 동시에 성능 확인이 가능했다.

    이미 현석이 나중에라도 쓸 수 있을 법한 쓸 만한 아티팩트는 따로 분류해뒀다. 그건 팔더라도 필요한 만큼 써먹고 팔 생각이었다.

    마계에서 생각보다 아티팩트를 많이 얻지는 못했다. 마계에서 얻은 건 레벨과 경험, 그리고 무수한 마정석과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무기 정도였다.

    아티팩트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닌데, 썩 괜찮은 건 없었다. 오히려 레드독 길드에서 얻은 것들 중에 더 쓸만한 게 많았다.

    어쨌든 현석은 산처럼 쌓인 아티팩트를 힐끗 쳐다보고는 황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얼맙니까?”

    황노인은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이놈아, 아티팩트 감정이 그리 쉽고 간단하게 되는 줄 알아? 기다려 봐.”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거래는 퉁쳐서 하면 안 된다. 하나하나 가격을 매기고 확인해야만 한다.

    ‘황노인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사실 아티팩트 감정을 세계에서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바로 현석일 것이다. 현석은 직접적인 문자와 수치를 통해 정보를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황노인의 현재 수준을 누구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현석은 궁금증과 기대감이 뒤섞인 눈으로 황노인을 한 번 쳐다본 다음 몸을 돌렸다.

    “끝나면 연락하십시오. 시장이나 한 번 돌아보고 올 테니까.”

    물론 당장 돈이 필요할 일이 없으니 가진 물건을 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렇게 돌아다니다 운이 좋으면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곳으로 향하는 현석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황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아티팩트의 산을 바라봤다.

    “배포가 큰 건지…… 멍청한 건지…… 이걸 이렇게 쏟아놓고 나한테 그냥 다 맡겨 버리면 어쩌자는 게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황노인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 * *

    현석은 암시장을 쭉 둘러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에 다녀온 후로 마력에 훨씬 더 민감해졌다. 특히 특별한 패턴이나 흐름을 포착하는 능력은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이거 얼맙니까?”

    현석은 부스 앞 좌판에 쫙 깔려 있는 구슬들을 보며 물었다.

    부스 안에 앉아 현석을 힐끗 쳐다본 사내가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폈다.

    “5천.”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이 구슬들은 마수의 눈알이었다. 그것도 거미형 마수의 눈알이었다.

    한 마리 잡으면 여덟 개가 나오는데, 그 중에 저렇게 뽑아 팔 수 있는 건 네 개 정도뿐이었다.

    어쨌든 그럼에도 나오는 수가 제법 많아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현석은 5천을 부른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5천 원?”

    “미친! 장난 해? 5천만 원!”

    “거미 눈을 5천만 원에 사라고? 50만 원을 잘못 말한 거 아니고?”

    현석의 말에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쳇, 초짜가 아니었군. 거 좀, 사람 헷갈리게 초짜처럼 하고 다니지좀 마쇼.”

    현석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럼 초짜는 대놓고 등쳐먹겠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얼맙니까?”

    현석이 다시 묻자 사내가 고개를 휙 돌려 별 관심 없다는 듯 가격을 툭 내뱉었다.

    “알면서 뭘 물어? 50.”

    이런 암시장에서 거미 눈은 50만원에 거래되는 게 보통이었다. 연구용이 아니면 쓸 데가 거의 없기에 사실 50만원도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중 하나를 집었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구슬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예뻤다.

    보통 거미 눈은 이렇게 예쁜 경우가 많아서 잘 가공하면 선물용으로 제법 괜찮았다. 물론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에게 말이다.

    플레이어라면 거미 눈을 보면 코웃음만 칠 테니까.

    “달랑 그거 하나 사시게?”

    현석은 그 말에 고개를 젓고는 구석에 있던 검은 색 눈을 하나 더 집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스 안으로 들어가 구석진 곳에 숨어있다시피 한 새하얀 눈알도 하나 집었다.

    사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현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돈을 내밀었다. 정확히 150만원이었다.

    “이거…… 뭔가 껄쩍지근한데? 왠지 150 받고 팔면 안 될 거 같단 말이야…….”

    그 말에 현석은 피식 웃고는 눈알 세 개를 다시 좌판에 내려놓았다.

    “거미 눈 파는 데가 여기뿐인 줄 아나.”

    그렇게 말하고 냉정히 돌아섰다.

    처음에 사내는 현석이 괜한 허세를 부린다고 여겼다. 한데 진짜로 멀어져가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이! 형씨! 기다려! 기다려 보라고!”

    사내는 현석이 내려 놓았던 눈알 세 개를 얼른 집어들고 달려갔다.

    그리고 현석 앞을 가로막으며 그것을 내밀었다.

    “아, 그냥 해본 소리에 여자처럼 토라지고 그러시나. 자자, 이거 세 알에 150이면 아주 잘 산 거야. 딴 데 굳이 가봐야 소용없다니까?”

    현석은 피식 웃고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돈을 건냈다.

    사내는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부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현석은 그런 사내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래. 아주 잘 샀지. 이거…… 좀 더 열심히 돌아다녀봐야겠는데?”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세 개의 거미 눈을 보며 눈에 마력을 담았다.

    [마력의 정수]

    [마력의 근원을 이루는 특별한 물질의 응집체.]

    아주 간단한 설명이다. 하지만 이 마력의 정수가 갖는 의미는 절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이건 원한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미래에는 이거 하나를 구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거 하나에 수천억을 선뜻 내놓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레인보우 엘릭서의 가장 중요한 재료 아이템이다.

    레인보우 엘릭서는 강제로 레벨을 하나 올려주는 효과가 있는 기적의 시약이고 말이다.

    강제로 레벨을 올린다는 건 지금 수준에선 정말 아무것도 아닌 효과지만, 아주 높은 레벨로 가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일단 150레벨이 넘으면 레벨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대부분 인식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레벨업 자체가 극악할 정도로 어려웠다.

    물론 어려운 만큼 얻는 것도 크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레벨 하나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

    그러니 그때의 레인보우 엘릭서가 가지는 가치가 어느 정도이겠는가.

    고레벨 플레이어라면 그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얻고 싶지 않겠는가.

    어쨌든 그런 마력의 정수를 무려 세 개나 구했다.

    ‘이거 어쩌면…….’

    현석은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이건 그저 가설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가설이 맞다면, 현석은 정말 어마어마한 기회를 얻게 된다.

    지금 당장 써먹을 기회가 아니라 나중에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뛰어오를 기회를 말이다.

    현석의 심장이 두근두근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걸음이 빨라졌다.

    감각을 활짝 개방해 사방에서 흐르는 마력을 파악하고 패턴을 확인했다.

    마력의 정수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일정한 모양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꼭 마수의 몸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던전을 돌아다니다가 핀 꽃에 깃들어 있을 수도 있고, 또 나무뿌리에 매달려 있을 수도 있었다.

    거미 눈은 가장 흔히 발견되는 케이스일 뿐,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현석의 감각권이 점점 더 넓어졌다. 급한 마음에 좀 무리하더라도 최대한 감각을 잘 이용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감각권을 점점 넓히며 암시장 안을 빠르게 이동하던 현석의 눈이 커다래졌다.

    ‘있다! 또 있어! 그것도 하나가 아니야!’

    이렇게 많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곳곳에 비슷한 마력 패턴이 흩어져 있었다.

    그것이 전부 마력의 정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소 절반 이상은 마력의 정수이리라.

    이로써 현석은 자신이 세운 가설이 맞을 가능성을 조금 높여 잡았다.

    ‘던전이 등장한 초창기일수록 마력의 정수가 발견될 확률이 높아!’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던전 초창기이고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두근거리던 현석의 심장이 훨씬 더 미칠 듯이 뛰기 시작했다.

    < 마력의 정수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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