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성파 2 >
현석은 정말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건 현석을 쫓아가는 자들이 보거나 느끼기에 그럴 뿐이고, 사실 현석은 속도를 적절히 조절해서 달리는 중이었다.
아예 작정하고 몸을 빼려고 마음먹었다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저들 모두를 따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적이 그게 아니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멀리 가지도 않았다. 그저 근처를 빙글빙글 맴돌 뿐이었다.
현석의 목표는 명확했다.
칠성파가 아닌 자들의 눈을 가리는 것이다. 그걸 위해 근처를 빙글빙글 돌며 기회를 노렸다.
가장 먼저 노린 건 레드드래곤 길드에서 나온 걸로 추정되는 자들이었다.
현석은 넓은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골목으로 휙 꺾어 들어갔다.
그 뒤를 빠르게 칠성파 놈들이 따라 들어갔다.
골목은 짧았고, 끝은 세 갈래 길로 갈라져 있었다. 칠성파 놈들은 인원을 나눠 각각 한 갈래씩 맡아 달렸다.
잠시 후, 골목으로 레드드래곤 놈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골목에 완벽히 들어온 순간, 위에서 현석이 떨어져 내렸다. 그들의 뒤에 말이다. 그들은 전혀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현석은 그들의 목에 각각 가늘고 긴 침을 하나씩 박아 넣었다.
세 명의 사내가 그대로 정신을 잃고 풀썩풀썩 쓰러졌다. 아마 이들은 다시 깨어나도 자신이 언제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현석이 이들에게 쓴 건, 마계에서 구한 바늘호랑이의 털이었다.
바늘호랑이는 털이 모두 가느다란 바늘로 이루어져 있는 마수였다. 마치 고슴도치와 호랑이를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바늘호랑이의 털은 정말로 유용한 아이템이었다. 특히 이렇게 무기로 쓰기 좋았다.
강력한 마취 성분이 있어서 웬만한 수준의 플레이어들은 찔리면 그대로 잠들어 버린다.
현석은 쫓아오는 자들의 레벨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썼고, 제대로 성공했다.
현석은 정신을 잃은 세 사람을 한꺼번에 겹쳐 어깨에 들쳐 메고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현석이 몸을 피하자마자 황노인의 수하 두 명이 골목으로 조용히 들어섰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서둘러 움직였다.
이렇게 목표를 놓쳤을 때는 최대한 빨리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 * *
현석은 근처 인적 없는 빌딩 옥상에 세 사내를 숨겨두고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황노인의 부하들 차례였다. 칠성파까지 같이 끌고 다니면서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석의 능력은 이제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상태였다. 좀 까다롭긴 해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훨씬 쉬웠다.
황노인이 보낸 자들과 칠성파 사이의 실력차가 워낙 커서 조금만 빠르게 움직여도 두 집단의 간격이 훅 벌어졌다.
현석은 그렇게 만든 다음 유유히 황노인의 조직원 두 명을 바늘호랑이의 털로 제압했다.
털이 박혀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마취액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다시 깨어날 염려가 없었다.
현석은 그들도 적당한 건물 옥상에 감췄다. 아마 현석이 다시 깨워주지 않는 한, 이들은 죽을 때까지 여기서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두 조직을 처리한 현석은 마지막으로 칠성파를 다시 유인했다.
이제 좀 더 편안하게 칠성파를 상대할 준비가 된 것이다.
현석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것이 신경 쓰였는지 칠성파 조직원들의 움직임이 좀 더 거칠어졌다.
특유의 성질머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여간 저것들은 세상이 달라져도 변하는 게 없군.”
현석은 코웃음을 치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칠성파 조직원들이 우르르 움직이는 기척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몇 번의 증원을 통해 조직원의 수가 이제 스물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 뒤로도 속속 더 많은 사람이 도착하고 있었다.
“칠성파 보스가…… 강중태였나?”
칠성파와는 전생에도 제법 악연이 있었다. 레드독에 있으면서 그놈들에게 얼마나 당했는지 모른다.
레드독이 칠성파의 하위조직이고, 현석은 그런 레드독의 노예나 다름없었으니 당연했다.
현석은 한동안 레드독에서 인간 취급도 못 받았다. 그러니 칠성파에서도 현석을 제대로 된 사람으로 다뤘을 리 없지 않은가.
덕분에 당하면서 칠성파가 어떤 쓰레기들이 모인 조직인지 아주 잘 알게 되었다.
칠성파는 현석의 기준으로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놈들의 모임이었다.
그때 칠성파에서 현석이 만난 모든 사람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인간쓰레기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놈들이었다.
그래서 현석은 이번 결정을 상당히 손쉽게 내릴 수 있었다. 칠성파는 이미 이 시점에 인간이 해선 안 될 짓을 너무나도 많이 했으니까.
적당한 속도로 움직이는 현석의 감각에 수많은 사람들의 기척이 잡혔다.
플레이어의 수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이거…… 나 하나 잡자고 대체 몇 명이 움직이는 거야?’
칠성파가 정말 단단히 마음먹었나보다. 지금까지 현석의 감각에 들어온 사람만 해도 서른 명이 넘었다.
한데 이게 끝이 아니라 더 오고 있는 듯하니 이러다가 정말 칠성파 전체가 몰려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좀 이상했다.
칠성파도 현석에 대해 나름대로 파악하고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정보야 적당히 흘렸으니 그에 기초해서 대책도 세웠을 것이다.
한데 그 정보에 기초해서 일을 벌이는 거라면 저건 너무 과했다. 마치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길드나 조직을 상대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현석은 이들 외에 자신을 함께 감시하던 자들이 문득 떠올랐다.
어쩌면 칠성파는 그 조직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자신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그 조직들까지 한꺼번에 상대하고 견제하려면 이 정도 숫자로도 모자라긴 한다.
‘만일 그렇다면…… 더 온단 말이지?’
현석은 칠성파를 유인하면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만일 자신의 예상대로 칠성파의 상황이 그런 거라면 이건 칠성파에게 거대한 타격을 줄 찬스였다.
‘아예 강중태도 왔으면 좋겠군. 그 오른팔이라는 김상우도 같이 오면 더 좋고.’
강중태와 김상우는 칠성파의 구심점이다. 그 두 사람이 사라지면 칠성파는 내분으로 망할 확률이 높았다.
물론 그건 현석쯤 되니까 알 수 있는 정보였고, 다른 조직에서는 그런 상황을 아예 짐작도 하지 못했다.
이건 수면 위로 드러난 정황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미래를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정보였다.
현석은 내심 그걸 기대하며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더 많은 칠성파 놈들을 끌고 가기 위함이었다.
‘시간을 너무 많이 끌면 안 돼. 딱 적당한 시점에서 빠져야지.’
현석은 더없이 냉정하게 계산을 했다. 칠성파만 싹 끌고 가려면 다른 조직이 개입할 여지를 줘선 안 된다. 그리고 그 여지는 시간에서 나온다.
자신이 계산한 정확한 타이밍에 현석이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속 합류한 조직원들에 의해 훨씬 거대해진 칠성파가 그런 현석의 뒤를 쫓았다.
* * *
현석이 선택한 결전 장소는 서울 외곽으로 빠지는 길에 있는 폐건물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쪽에서 싸우려고 미리 봐둔 건물이기도 했다. 호텔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말이다.
근처에 정말 아무것도 없이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었기에 더더욱 이런 일 벌이기가 좋았다.
웃긴 것은 칠성파 놈들도 건물에 아주 익숙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놈들도 이 건물이 얼마나 유용한지 잘 아는 모양이었다. 자주 써먹은 티가 확 났다.
건물이 보이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져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걸 보면 말이다.
아마 혹시라도 근처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통제하고 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겠지.
현석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칠성파에서 부른 조직원들이 이 근처로 맹렬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마 말단 조직원들까지 동원할 모양이었다. 근처를 통제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 인력이 제법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어쨌든 그건 현석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현석이 신경 쓸 건, 저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쓸어 버리느냐였다.
‘뒤처리도 중요하고.’
필연적으로 죽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여기 온 모두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현석을 포함한 미래의 플레이어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일반인보다 훨씬 무감각했다.
던전에서 사냥하다보면 별의 별 일을 다 겪는다.
다른 길드의 플레이어들과 전투를 벌이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심지어 던전에서 등장하는 마수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올 때도 있었다.
‘아니, 그건 분명히 인간이었어. 말은 못 알아들었지만.’
그들은 기사나 마법사 같은 복장을 입고 마수를 사냥하듯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냥 얌전히 목을 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그들 역시 마수는 마수였다. 몸에서 마정석이 나왔으니까.
‘사실…… 그때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
현석이 던전에 대한 의문이 싹튼 것은 그런 일을 몇 번 겪은 다음부터였다.
어쨌든 그런 현석이기에 칠성파 같은 인간 쓰레기에다가 미래에 악연으로 얽혀 자신을 노예처럼 부릴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시체가 생겨날 것이다. 그걸 어떻게 잘 처리하느냐도 중요했다.
물론 방법이야 많다.
‘일단…… 시체를 몽땅 담을 수 있는 주머니나 컨테이너 박스가 필요해.’
던전에 버리고 오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살인을 은폐하는 놈들이 요즘 제법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현석은 나름 차분히 계획을 세우며 건물 곳곳에 새까맣고 작은 구슬을 촥촥 뿌렸다.
깨알만 한 구슬이었는데, 워낙 폐자재나 먼지, 돌이나 흙이 많아서 뿌린 자리가 잘 드러나지도 않았다.
아무리 현석이 인간을 초월했고, 레벨을 89까지 올렸고 보통 플레이어보다 훨씬 좋은 장비로 무장했다고 해도, 저렇게 많은 적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준비한 게 지금 사방에 아낌없이 쫙쫙 뿌리고 있는 이 깨알만 한 구슬이었다.
이게 그냥 보기엔 구슬 같지만, 사실 마수의 알이었다.
그것도 지금 이 상황에서 쓰기에 딱 적당한 마수의 알이었다.
현석은 알을 다 뿌리고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칠성파 놈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석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어딘가 잔혹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럼 쇼타임을 시작해 볼까?”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튀겼다.
따악!
소리와 함께 마력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저 마수의 알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정확한 마력 파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만 쓸 수 있었다.
꽈드드드득!
마력의 파동을 받은 마수의 알이 일제히 부화했다.
깨알만 한 구슬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놈들이었다.
어른 주먹만 한 벌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수백 마리나 되는 벌이 허공에 떠오른 광경은 장관이기도 했지만, 무시무시하기도 했다.
칠성파 놈들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들이 언제 이렇게 거대한 벌을 볼 기회가 있었겠는가.
그건 플레이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이 마수가 등장한 던전은 없었다.
이건 현석이 던전에서 특별히 가져온 놈들이었으니까.
따악! 따악! 따악!
현석은 박자에 맞춰 계속 손가락을 튀겼다. 그 때마다 마력 파동이 건물을 한 차례씩 휩쓸고 지나갔다.
위이이이잉!
벌떼가 분노했다.
그리고 칠성파와 마계에서 온 검은 불꽃 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칠성파 2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