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29화 (29/326)
  • < 귀환 >

    후웅!

    강남에 있는 높은 빌딩과 빌딩 사이에 있는 골목. 허공 3미터 지점에 바람이 한 차례 불더니 공간이 쩍 열리고 누군가 그 안에서 툭 떨어졌다.

    현석이었다.

    주위를 재빨리 살핀 현석은 벽에 바짝 붙었다. 몇 시간 전에 잠깐 나와서 상황만 살피고 다시 던전에 들어갔다가 적당한 시점에 다시 나왔다.

    지금은 새벽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새벽이라도 강남은 강남이었다. 번화가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였다.

    현석은 지금 알몸 위에 아티팩트만 걸친 채였다.

    그래도 아티팩트는 어느 정도 모양이 망가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예 벌거벗은 건 아닌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 상태로 밖에 드러내 놓고 다닐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속옷은 남아 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 상태로는 아무데도 못 간다.

    사실 현석은 투명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가지고 있던 대부분을 정리했기 때문에 돌아갈 집도 없는 상태였다.

    투명 던전에 들어가 장비를 착용하고 그곳과 연결된 마계로 가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겠다는 계획은 잘 달성했는데, 그 다음 계획을 세워놓지 않은 바람에 이 꼴이 되었다.

    그래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현석은 일단 위로 높이 점프했다. 그리고 벽을 박차고 또 위로 뛰어올랐다.

    빌딩과 빌딩 사이의 좁은 골목이었기에 그런 식으로 몇 번 점프하니 옥상으로 올라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옥상에 올라온 현석은 방향을 잡았다. 일단 이 복잡한 강남을 벗어나는 것이 먼저였다.

    그 다음 대충이라도 걸칠 수 있는 옷을 구하면 된다.

    현석은 아공간에서 커다란 병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파워업 키트가 가득 들어 있었다.

    레벨을 100까지 올렸다면 다시 쓸 일이 없을 약이었지만, 아무리 마계에서 개고생을 했어도 레벨을 100까지 올리는 건 불가능했다.

    현석은 일단 방향을 잡은 다음 파워업 키트를 하나 먹었다. 온몸에서 마력과 힘이 끓어올랐다.

    “그럼 가볼까?”

    탁탁탁탁!

    현석은 빠르게 달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었다. 그런 식으로 거의 허공을 날아다니듯이 이동했다.

    어찌나 빠르게 달렸는지 강남을 벗어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강남을 벗어난 현석의 눈에 옥탑방들이 보였다. 눈이 번득였다. 옥상에 널어 놓은 빨래들을 발견한 것이다.

    아직 밤에 가까운 새벽이었다. 옥탑방 불은 꺼져 있었다.

    현석은 적당한 옥탑방을 찾았다. 아마 거기에는 남자 혼자 살고 있을 것이다. 빨래만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제법 잘 마른 옷을 한 벌 챙겼다.

    그리고 아공간에 보관해 뒀던 지갑을 꺼내 거기에 있던 5만원권 지폐를 여러 장 꺼냈다.

    옷을 집어뒀던 빨래집게에 5만원권 뭉치를 고정한 현석은 옷을 들고 다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동네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으슥한 장소로 가 서둘러 옷을 입었다.

    옷이 살짝 작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

    현석은 그제야 몸에 장비했던 아티팩트들을 아공간에 다시 보관하고는 천천히 대로로 걸어갔다.

    이제 진짜 당분간 편히 쉴 만한 곳을 찾을 시간이 되었다. 얼른 떠오르는 건 호텔뿐이었다.

    현석은 근처에서 가장 가까이 있을 호텔을 떠올리며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호텔에 방을 잡은 현석은 무려 사흘 동안 잠만 잤다. 물론 중간에 일어나 간단하게 밥을 먹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채웠다.

    사실 피로는 첫 날 24시간을 내리 자면서 다 풀렸다. 안 그래도 여러 번의 레벨업을 통해 육체가 강해졌고, 체력이나 회복력도 엄청나게 올라간 상태였기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정신적 피로는 고작 그것만으로 풀 수 없었다. 마계 던전에서 어찌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마음 같아서는 한 달 내내 잠만 자고 싶을 지경이었다.

    사흘 째 되던 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현석은 일단 아공간에 보관 중이던 노트북을 꺼냈다.

    마계에서 보낸 시간이 무려 6개월이었다. 슬슬 정리해야 할 주식들이 있을 것이다.

    주식 동향을 확인하고 정리할 주식을 정리한 다음, 그 돈으로 쇼핑도 하고 집이랑 차도 사야 했다.

    “일단…… DM케미칼은 정리하는 게 낫겠네.”

    300일의 영광이 시작된 지 꽤 됐다. 현석이 마계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정석 기술을 발표한 모양이었다.

    이제 200일 가까이 되었으니 슬슬 정리하고 신경을 끄는 편이 나았다.

    주식은 이미 처음 산 가격의 수백 배로 치솟은 상태였다.

    DM케미칼의 주식을 헐값에 쓸어담았으니 그걸로만 어마어마한 차익을 남겼다.

    아마 희대의 뻘짓을 하지 않는 한, 평생 돈 걱정할 일은 이제 없으리라.

    현석은 DM케미칼의 보유 주식을 차근차근 매도하기 시작했다.

    워낙 보유한 주식이 많아서 한꺼번에 매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며칠 안에 모두 정리가 가능할 듯했다.

    워낙 아직도 인기가 좋아서 주식을 팔겠다는 사람은 없고 사겠다는 사람만 많아 처분에 어려움은 없었다.

    현석은 그 외에도 몇 가지 주식을 처분하고 그렇게 불린 자금으로 새로운 주식을 매입했다.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살피니 이런 가격에 거래될 만한 주식이 아닌데 말도 안 되는 헐값에 나온 주식이 부지기수였다.

    던전에서 나오는 물품을 통한 산업이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지라 그런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런 걸 보면 미래에 대한 지식은 사기에 가까웠다.

    당장 DM케미칼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익을 안겨주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곳은 300일의 영광을 뒤로 하고 사라져 버릴 회사라는 점이었다.

    어쨌든 대충 주식을 정리하고 막대한 현금을 통장에 넣은 현석은 노트북을 아공간에 넣고 일단 몸부터 씻었다.

    호텔은 오늘로 끝이다. 체크아웃하고 나면 집부터 구할 생각이었다.

    샤워를 마친 현석은 자신의 정보를 확인해 봤다.

    [이름-채현석]

    [타이틀-마음의 눈을 뜬, 과거로 되돌아 온, 마력의 주인, 마족 처단자]

    [레벨-89]

    [마력-1020]

    [힘-101, 민첩-123, 체력-89, 지능-34, 정신력-92]

    [물리-153, 화염-24, 냉기-53, 독-42, 전격-72, 빛-18, 어둠-81]

    [스킬-심안, 아공간, 자연회복]

    일단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레벨이었다. 무려 89레벨까지 올렸다. 아마 이 시기쯤을 생각해 봐도 저 정도 레벨이면 세계에서도 순위권 안에 들 수 있으리라.

    그리고 레벨이 오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가는 마력과 스탯의 변화가 있었다.

    사실 레벨에 비해 스탯과 속성력이 많이 오른 경향이 있었다. 현석은 그것이 마계의 영향이라고 여겼다. 물론 타이틀과 아이템의 영향도 있었지만 말이다.

    마계라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빛 속성이 거의 오르지 않았고, 어둠 속성이 큰 폭으로 올랐다.

    어쨌든 저 정도 스탯이면 굳이 마력을 쓰지 않아도 초인 같은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이제 초인의 영역에 발을 들인 진정한 의미의 플레이어가 된 셈이었다.

    다음으로 새 타이틀을 얻었다. 저건 마계19지역을 평정한 순간 얻은 타이틀이었다.

    [마족처단자-마계지역을 평정했을 때 주어지는 호칭. 레벨이 낮은 마족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다. 힘+7, 민첩+7, 체력+2]

    이 정도면 굉장한 위력의 타이틀이 아닐 수 없었다. 자그마치 스탯 증가가 16이나 된다.

    마지막으로 새 스킬을 얻었다.

    [자연회복-회복력을 대폭 상승시켜준다. 육체적 손상을 빠르게 치유하며 마력에 의한 손상을 느리게 치유해준다.]

    상당한 위력의 스킬이었다. 게다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항상 적용되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아이템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무기가 좀 바뀌었을 뿐이었다.

    현석이 원래 쓰던 검은 흑영검이었다. 어둠속성이 깃든 검으로, 상당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검이었는데, 새 검은 그보다 훨씬 대단했다.

    마계19지역의 보스나 다름없는 대마족을 처단하고 얻은 검이었다.

    [진마검-마왕의 갈비뼈를 가공해서 만든 검. 마왕이 직접 하사한 갈비뼈를 마계 최고의 대장장이인 페브릭이 다듬어 만들었다. 공격력을 크게 증폭시킨다. 힘+20, 민첩+30, 체력+10, 정신력+10]

    마왕의 갈비뼈를 가공해 만든 검이라니. 이름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번 마계 토벌의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이 진마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아공간 아이템을 아공간 주머니가 받아들이며 아공간 주머니의 공간이 더 크게 확장되었다. 그것 역시 크다면 큰 수확이었다.

    100칸에 불과했던 아공간 주머니가 130칸으로 늘어났으니까.

    덕분에 현석은 마계에 그냥 버려두고 올 뻔했던 많은 것들을 담아올 수 있었다.

    커다란 마수의 가죽을 벗겨 그걸로 거대한 주머니를 만들었고, 그 안에 마계에서 얻은 각종 마정석과 마수의 부산물들을 담아서 아공간에 넣어왔다.

    아마 그걸 꺼내려면 엄청나게 거대한 공간이 필요하리라.

    ‘이제 기본적인 힘을 얻었으니 슬슬 다시 세상에 뛰어들어야지.’

    이번에 마계지역을 평정하면서 던전의 비밀을 아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훨씬 더 막대한 정보가 필요해.’

    던전이라는 것이 예전 현석이 생각했던 것처럼 세상에 새로운 물질을 전해주기 위해 등장한 건 절대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굉장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위험을 말이다.

    예전에는 지금으로부터 20년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이번에도 똑같이 그러라는 법은 없었다.

    ‘이미…… 균열이 생겼어.’

    그것은 현석 때문에 생긴 균열이었다. 현석이 과거에 와서 미래를 바꿀 행동을 했기 때문에 생겨난 균열이 아니라, 현석이 그저 과거로 이동하는 그 자체의 사건 때문에 생겨난 균열이었다.

    ‘대체 어떤 놈이 날 과거로 돌려보냈는지 모르지만…… 좋은 의도는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현석은 불안하지 않았다. 그 어떤 시련이나 위기가 다가와도 모두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 다진 기반이었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뤄나갈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나가볼까?”

    현석은 정보를 없앤 다음 힘차게 호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형님! 형님! 나타났습니다!”

    “뭐가?”

    강중태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호들갑을 떠는 김상우를 살짝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김상우도 강중태의 그런 표정이나 심정을 다 알지만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꼭 해야 할 말을 얼른 던졌다.

    “그놈 말입니다! 채현석! 그놈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뭐?”

    강중태는 커다래진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깔끔하게 포기했는데, 포기하자마자 나타나다니 이 무슨 공교로운 일이란 말인가.

    “지금 그놈 어디 있어!”

    현석이 레드독 길드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알든 모르든 상관없었다. 일단 잡아와서 불 때까지 괴롭히면 된다. 아마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자신이 아는 모든 걸 토해낼 거라고 자신했다.

    “애들 다섯 명 붙이고 추가로 애들 몇 명 더 보냈습니다. 섣불리 나서지 말고 따라만 다니라고 했습니다. 주변을 더 파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강중태가 씨익 웃었다.

    “잘했어. 역시 믿을 만해. 그놈 잡을 준비해. 그놈 뒤에 종로 영감이 있으니까 아주 철저히 준비해야 되는 거 명심하고.”

    “예. 형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아주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김상우가 그렇게 대답하고 나가자, 강중태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맺혔다.

    이제 피를 볼 시간이 되었다.

    < 귀환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