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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6화 (26/326)
  • < 보물창고 (1권 끝) >

    이곳의 마수는 참으로 특이했다. 마치 그림자가 자라난 것 같았다.

    형체가 정해지지 않았고, 가끔 연기처럼 흩어지기도 한다. 당연히 상대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하지만 그래도 밖을 지키는 마수에 비하면 상당히 약한 편이었다.

    더구나 현석은 혼자서 사냥하니 훨씬 더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 여기 왔을 때는 정말 고생했다. 저 그림자 마수들이 가끔 동료의 정신을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역시 혼자 싸우는 게 답이었어.”

    현석은 막 죽은 마수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마력파동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일단 대충 첫 번째 웨이브는 정리했다. 이제 수확의 시간이 다가왔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이곳에서 예전 길드마스터가 아공간을 얻었다는 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반드시 얻어야 해.’

    그걸 얻으면 다른 것도 다 얻은 거나 다름없었다. 아공간에 모조리 담아 나가면 되니 말이다.

    현석은 빠르게 벽을 훑으며 장식된 아티팩트들을 확인했다.

    그에게는 이럴 때 정말 유용한 무기가 하나 있었다.

    눈에 마력을 집중한 현석은 아티팩트의 이름을 먼저 확인했다.

    별의 별 아티팩트가 다 있었다. 아직 성능까지는 확인하지 않고 이름만 보고 넘어갔지만,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아티팩트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복도를 따라 걸어가며 빠르게 아티팩트들을 훑던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찾았다!’

    모양이 정말 특이한 아티팩트였다.

    그것은 아티팩트를 위해 마련된 공간 안에 둥둥 떠 있었다. 시커먼 소용돌이였는데,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작은 던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던전 입구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건 던전 입구 따위가 아니었다.

    [공간의 주머니]

    이름만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저게 바로 그때의 길드마스터가 획득했던 바로 그 아공간 아티팩트라는 것을 말이다.

    당시 현석은 길드가 어떤 아티팩트들을 획득했고, 또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아티팩트들을 보관했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분배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현석에게는 길드 차원에서 철저히 정보를 은폐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조차 몰랐다. 현석에게 떨어진 아티팩트들도 몇 개 있었으니 적절히 분배했다고 믿었다. 처음에는 말이다.

    나중에야 자신이 얼마나 착취를 당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길드에 너무 깊숙이 관계되어 있었고, 또 약점 잡힌 것도 너무 많았다.

    현석의 유용한 능력을 아는 길드마스터가 그를 쉽게 놔줄 리도 없었고 말이다.

    그래서 순응하듯 착취당하며 살았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이젠 달라져야지.”

    현석은 공간의 주머니를 확인하고는 복도 벽을 따라 장식된 아티팩트들을 쭉 둘러봤다.

    이제 저 모든 보물이 자신의 것이 될 터였다.

    “그럼 우선…… 이것부터 장착해 볼까?”

    현석은 공간의 주머니라는 아티팩트를 본 순간 이것이 다른 아공간 아티팩트와는 좀 다르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아티팩트가 담고 있는 마력 자체가 달랐고, 또 이런 모양의 아티팩트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일반적인 아공간 아티팩트는 반지나 팔찌, 혹은 목걸이나 허리띠의 버클 형태를 띤다.

    그게 갖고 다니기 편하니까.

    현석은 이 기묘하고 신기한 아티팩트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공간의 주머니]라는 이름을 더 집중해서 확인했다.

    [공간의 주머니]

    [차원 사이의 빈틈을 이용해 만든 주머니. 다차원 공간의 빈틈을 이용해 보관장소를 확보하기 때문에 보관품의 크기가 아닌 개수가 제한된다. 100개의 물건 보관 가능.]

    “그런 거였구나.”

    현석은 아공간 아티팩트의 실체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간을 창고로 쓰는 건 줄 알았다.

    한데 개수에 제한이 있을 줄이야.

    “이거 개수를 늘릴 수도 있나?”

    100개가 많은 것 같지만 이것저것 넣다보면 금방 찬다. 더구나 작은 물품을 보관하는 거라면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

    ‘아니지. 다른 창고나 금고를 이용해서 정리하면 되겠네.’

    속속 예전 길드마스터가 했던 짓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별 관심도 없었다. 한데 당시 길드마스터가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를 몇 개나 구입하는 걸 봤다.

    그걸 어디에 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현석은 모른다. 관심이 없었으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한데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아마…… 컨테이너 박스 말고 좀 더 규모가 작은 것도 구했을 것 같은데…….”

    지금이야 다들 낮은 등급의 던전에서 사냥을 하니 대부분 당일치기로 클리어가 가능하지만, 나중에 높은 등급의 던전은 그게 불가능하다.

    다이아 1등급만 되어도 특별한 곳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이다.

    보통은 입구가 개방되어 있으니 들락거리면서 보급을 하면 되지만, 가끔 특수한 던전 중에는 정해진 인원이 들어가면 입구가 닫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던전은 클리어하거나 안에 들어간 모든 인원이 사라지기 전에는 다시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다이아 등급으로 넘어가면 아공간 아티팩트가 필수라고 했던 거로군.’

    보급품을 가득 채운 컨테이너 박스 한 개만 있어도 몇 달은 너끈히 버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뭐…… 이 공간의 주머니가 좀 더 특별한 아공간인 것 같긴 하네.’

    아마 다른 아공간 아티팩트는 이것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기억을 더듬어 그때 얻은 아공간에 대한 지식을 떠올리면 그랬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얻나…….”

    보아하니 그냥 손으로 집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듯했다. 뭔가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게 분명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길드마스터도 제법 오랫동안 이걸 얻으려 고생했던 것 같았다.

    물론 그걸 직접 확인하진 않았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때 현석은 일주일 동안 매일 이 던전을 열어야 했다.

    마수 토벌이 모두 끝난 던전인데도 말이다.

    ‘일주일이나 걸려서 이걸 얻었다는 뜻인데…….’

    현석은 일단 좀 더 가까이 가서 공간의 주머니를 잘 살펴보았다.

    정말 작은 던전 입구처럼 생겼다.

    ‘이거 던전 입구 옮기듯 마력으로 잡아 옮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석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공간의 주머니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마력을 이용해 던전 입구를 이동시키듯 그것을 끌어당겼다.

    쑤욱!

    손바닥으로 공간의 주머니가 쑤욱 빨려 들어왔다. 현석을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뺐다.

    하지만 이내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방법이 이거였어?”

    현석은 멍하니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여기를 통해 공간의 주머니가 들어온 건 확실했다.

    “어떻게 쓰는 거지?”

    사용법부터 익혀야 할 듯했다. 사용법을 익히는 건 아주 간단했다. 근처에 아공간에 담을 만한 것들이 아주 많았으니까.

    현석은 문득 자신의 정보를 떠올려봤다.

    [이름-채현석]

    [타이틀-마음의 눈을 뜬, 과거로 되돌아온, 마력의 주인]

    [레벨-34]

    [마력-440]

    [힘-31, 민첩-29, 체력-21, 지능-21, 정신력-35]

    [물리-48, 화염-5, 냉기-5, 독-5, 전격-36, 빛-5, 어둠-5]

    [스킬-심안, 아공간]

    “역시!”

    아공간이 아예 스킬로 등록이 되었다. 아티팩트를 몸으로 받아들여서 이렇게 된 모양이었다. 아니면 애초에 이런 식으로 쓰도록 만들어진 아티팩트이거나.

    현석은 아공간 정보를 열었다.

    [아공간-공간의 주머니를 몸으로 흡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스킬. 다차원 공간의 빈틈을 보관창고로 쓸 수 있다. 1/100]

    마지막에 있는 숫자는 칸을 채울 때마다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한데 왜 1이 있을까?

    “한 칸이 채워져 있다는 뜻인가? 그건 어떻게 확인하지?”

    현석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력을 더해 숫자에 집중했다. 그러자 100개의 칸이 나타났다.

    각각의 칸에 들어간 물건의 그림이 아이콘처럼 뜨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냥 아이콘이 아니라 진짜 그 물건을 축소해 놓은 것처럼 정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한 칸이 무언가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들어 있는 건 반지였는데, 표면에 온통 세밀한 문양이 세공되어 있었다. 좀 더 집중하면 어떤 세공이 들어갔는지도 선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현석은 그 반지를 일단 꺼냈다.

    꺼내는 것도 간단했다. 보이는 반지에 마력을 집중하면 끝이었다.

    현석 앞에 반지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이런 식이구나. 큰 물건은 생각 좀 하고 꺼내야겠는데?”

    아직 반지는 진짜 밖으로 나온 게 아니었다. 현석은 반지가 있는 곳이 다른 차원이라는 걸 그냥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아마 공간의 주머니를 소유한 사람만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현석이 반지를 쥐고 마력을 흘리자, 반지가 차원을 넘어 현석의 손에 소환되었다.

    역시 이번에도 답은 마력이었다.

    [제12보급대장의 증표]

    현석의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번득였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걸 얻었다. 아공간이 특별했던 이유가 있었다. 보급대장의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현석은 서둘러 정보를 확인했다.

    [제12보급대장의 증표]

    [12보급대장을 증명하는 물건. 지능+2, 정신력+2]

    별 거 아니었다. 말 그대로 신분증인 모양이었다. 다만 지능과 정신력을 올려주는 기능은 제법 쓸 만했다.

    현석은 일단 반지를 착용했다. 껴서 나쁠 게 없는 반지였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아티팩트들 중에서 반지 형태로 된 건 보이지 않았으니까.

    “자, 그럼 이제부터 장비를 착용해 볼까?”

    현석은 반지를 끼고는 눈을 빛내며 주위를 슥 둘러봤다. 아직 진짜 던전 탐험은 시작도 안 했다. 여긴 장비를 맞추기 위한 통과지점에 불과하다.

    현석은 복도를 돌아다니며 꼼꼼히 아티팩트들을 확인했다. 물론 당장 쓸 게 아닌 장비는 몽땅 아공간에 보관했다.

    ‘나도 컨테이너 박스 몇 개 사야겠어.’

    최종적으로 현석이 맞춘 장비는 7개였다.

    일단 팔찌가 하나 있어서 그걸 찼다.

    [빙결환]

    [얼음계 마력을 압축해 만든 팔찌. 얼음속성을 올려준다. 공격에 얼음 속성을 담을 수 있다. 민첩+10, 힘+5]

    민첩과 힘을 올려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아티팩트인데, 거기에 얼음속성까지 담을 수 있으니 현 시점에서는 아마 구경한 사람도 없는 종류의 아티팩트일 것이다.

    팔찌가 가장 뛰어난 것이었고, 나머지는 일반적인 장비였다. 하지만 그냥 블랙홀에서 나오는 아티팩트에 비하면 정말 대단한 수준이었다.

    [블랙드레이크의 가죽갑주세트]

    [흑영검]

    일단 블랙드레이크의 가죽갑옷세트는 말 그대로 세트 아티팩트였다. 모이면 모일수록 마력의 상승작용이 일어나 특별한 능력을 부과해 주는 아티팩트였다.

    상의, 팔뚝보호대, 장화, 하의, 장갑으로 이루어진 아티팩트였다.

    그리고 흑영검은 현석이 가진 전투 스타일에 딱 맞는 무기였다.

    민첩을 대폭 올려주고, 절삭력을 높여주는 뛰어난 검이었다.

    이렇게 7개의 장비를 장착한 현석은 심호흡을 한 다음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복도 끝은 막다른 곳이었다. 거무튀튀한 벽으로 막혀 있었는데, 문제는 그 벽에 균열이 나 있다는 점이었다.

    그 균열이 현석이 이 투명던전에 들어온 진짜 목적이었다.

    “여길 혼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떨리네.”

    이 균열 뒤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레벨을 올리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현석은 벽에 다가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력을 담아 냅다 내질렀다.

    쩡!

    쩌저저적!

    균열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이내 벽이 우수수 무너졌다.

    꽈르릉!

    무너진 벽 뒤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그것은 새하얀 색의 소용돌이, 화이트홀이었다.

    < 보물창고 (1권 끝)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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