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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5화 (25/326)
  • < 비밀던전 3 >

    현석은 차분히 마수의 움직임을 살폈다. 파워업 키트의 유지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두르는 것이 훨씬 위험했다.

    저 고릴라 마수를 상대하는 건 정확한 빈틈을 노려야만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 빈틈이 생긴다. 저들은 다른 마수와는 좀 달랐다.

    그리고 현석은 그 다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 마수들을 상대한 경험이 아주 많으니까.

    ‘지금!’

    마수의 사타구니 사이에서 마력이 뭉텅 쏟아졌다. 아까 현석이 찌른 지점이었다. 그곳은 마력의 주요 통로 중 하나였는데, 마수가 급격한 움직임을 할 때 엄청난 마력이 통과하는 길이었다.

    현석은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느새 현석은 마수의 턱밑을 파고들어 검을 위로 찌르고 있었다.

    꽈득!

    마수의 두 번째 약점 목과 턱이 이어지는 부분에 현석의 검이 깊숙이 들어갔다.

    현석은 즉시 검을 뽑으며 마수의 오른쪽으로 돌아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가볍게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꽈득!

    마수의 겨드랑이에 정확히 검이 파고들었다. 그곳이 바로 마수의 세 번째 약점이었다.

    쿠구구궁!

    마수가 격렬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더 이상 눈에서 광선을 쏘지는 못했다. 턱밑 마력 통로가 부서지는 바람에 마력을 이용한 공격수단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겨드랑이를 당하는 바람에 오른쪽 팔도 원활히 움직이지 않았다.

    “자, 이제 차포 뗐으니 본격적으로 어울려 볼까?”

    마침 파워업 키트의 유지시간이 끝났다. 앞으로 20분 동안은 원래 실력만으로 싸워야 한다.

    하지만 현석은 전혀 두렵거나 곤란해 하지 않았다. 이러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약점을 찔러 빈틈을 만들어 놓았으니까.

    현석이 마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수도 현석에게 달려들었다.

    꽈과과과과광!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석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 * *

    마수를 한 마리씩 유인해서 차근차근 해치운 현석은 마지막 남은 마수를 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꺾었다.

    이젠 굳이 유인하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익숙한 장소에서 싸우는 게 낫기에 똑같은 방식으로 사냥하기로 했다.

    저쪽 동굴 입구에서 싸우다가 동선이 꼬여 벽에 막히기라도 하면 큰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었으니까.

    현석은 문득 저 마수들의 정보를 아직 한 번도 확인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일단 그 생각이 들고 나니 정말 궁금했다. 이곳은 제12 보급창고였다. 그렇다면 저 마수들은 보급창고를 지키는 가디언일 확률이 높았다.

    과연 진짜 그런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현석은 눈에 마력을 집중해 마수의 정보를 확인했다.

    [SG-00345]

    현석의 뇌리에 물음표가 툭툭툭 찍혔다.

    ‘저건 대체 뭐지?’

    이름이 무슨 기계에 시리얼넘버 적어놓은 것 같지 않은가. 생김새나 싸울 때의 모습을 보면 마수가 분명하다. 한데 이름은 왜 저모양이란 말인가.

    ‘무슨 강철고릴라나 그쯤 될 줄 알았더니…….’

    고릴라 모양의 마수였으니 이름도 그럴 거라 예상했다. 강철처럼 단단한 개미는 당당히 철개미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던가.

    현석은 눈에 마력을 추가하며 마수의 이름에 더욱 집중했다. 지금까지는 절반의 성공률을 가진 마수 정보 확인이었다.

    [SG-00345]

    [보급창고를 지키기 위해 배치한 생체병기.]

    현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보를 읽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생체병기라고? 그럼 마수가 아니란 뜻인가? 아니면 인위적으로 마수를 만들었다는 뜻인가? 그것도 아니면…… 애초에 마수 자체를 누군가 만들어냈다는 건가?’

    현석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생체병기는 이제 없애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굳게 닫힌 강철문을 열고 저 동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석은 손에 든 쇳덩이에 마력을 가득 불어 넣었다. 그리고 저 멀리 입구에 덩그러니 서 있는 마수를 향해 그것을 힘껏 던졌다.

    * * *

    칠성파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조직이었다. 칠성파와 비견될 만한 조직은 기껏해야 두 개 정도였다.

    게다가 서울 쪽은 칠성파의 세력이 가장 컸기에 사실상 한국 최고의 조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칠성파의 보스인 강중태는 그런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사람 치고는 제법 젊은 축에 들었다.

    그는 조직의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강중태가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바로 던전이었다.

    몇 개의 길드를 암중으로 지원해서 휘하에 두고 그들을 이용해 던전을 공략하고, 조직의 일에 은밀히 써먹었다.

    그 중에서도 레드독 길드는 강중태가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 키운 길드였다.

    “아직도 연락이 없나?”

    강중태의 물음에 그의 심복이자 칠성파의 두뇌라 할 수 있는 김성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예. 계속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레드독에 그놈만 있어? 딴 놈한테 연락해서 위치 알아보면 되잖아!”

    “계속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모르고 있습니다. 마침 사냥 중이었다고만…….”

    강중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사냥에 안 나선 모든 길드원을 데리고 잠적하셨다? 내 이 새끼를 그냥!”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게다가 주경철은 우리 손에서 벗어나 잠적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사람 마음을 어떻게 알아? 그놈 여자관계부터 캐.”

    “주경철의 여자는 모두 파악된 상태입니다. 새 여자가 생겼을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강중태는 불길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김성우를 노려봤다.

    “내가 그따위 대답을 원하는 거 같아?”

    김성우는 그 말에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강중태의 분노가 고스란히 온몸으로 느껴졌다.

    아마 여기서 한 마디만 더 하면 자신이 아무리 칠성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해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았다.

    “어떻게든 찾아내겠습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군. 딱 하루 준다. 당장 그새끼 찾아서 내 앞에 대령해.”

    분노가 살짝 누그러진 강중태의 말에 김성우는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강중태는 김성우가 나가자 표정을 풀고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상하단 말이지…….”

    김성우에게는 여자관계를 캐라느니 하는 말로 난리를 피웠지만, 사실 주경철이 잠적할 리 없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강중태가 제일 잘 알았다.

    “그놈에게 뭔가 사고가 터진 모양인데…….”

    이럴 때는 다른 쪽으로 알아보는 게 훨씬 나았다. 강중태는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지요?”

    강중태의 말투는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얼굴에는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은 미소가 끊임없이 흘렀다.

    “다름이 아니라 부탁드릴 일이 하나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쪽 일입니다.”

    강중태의 눈이 번득였다.

    “경철이가 실종된 거 같아서 말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강중태는 그 뒤로 몇 마디 인사를 더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었다.

    “역시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최고지.”

    방금 연락한 사람은 던전 쪽 전문가이자 정보 전문가였다. 아무리 칠성파의 보스라도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인맥과 금력, 그리고 무력은 정말로 대단했다.

    그의 휘하에 있는 플레이어만 해도 레드독 길드의 몇 배나 되니까.

    어쨌든 그런 그가 나서 준다고 했으니 주경철의 흔적은 분명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걸 칠성파가 감당할 수 있느냐는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고 말이다.

    ‘어설픈 놈들이 건드린 거라면…… 처절한 응징이 뭔지 보여주지.’

    강중태의 눈에 섬뜩한 살기가 번득였다.

    * * *

    “후우우우.”

    현석은 마지막 마수의 사체에 걸터앉아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나하나 힘겨운 싸움이었다. 승산은 확실했지만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어서 정말 힘들었다. 싸움이 다 끝나고 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현석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보이는 동굴 입구를 쳐다봤다.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고, 문의 재질이 단순한 철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문을 여는 법은 단순했다. 저것 역시 마력만 제대로 다룰 줄 알면 얼마든지 열 수 있었다.

    과거에 저 문을 열었던 사람도 바로 현석이었다. 물론 그때는 문을 열기 위해 사흘이란 시간을 투자해야 했지만 말이다.

    현석은 무릎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로 끙소리가 났다. 온몸이 삐걱거렸다. 하지만 금세 괜찮아질 것이다. 플레이어란 그런 존재니까.

    온몸으로 마력이 힘차게 휘돌고 있었다. 마력은 강력한 힘도 주지만,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엄청난 회복력도 준다.

    지금 현석의 몸은 급속도로 회복되는 중이었다.

    천천히 걸어 동굴 입구에 도착한 현석은 문의 한가운데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기본적으로 문을 여는 방법은 아까 던전 입구에 들어오던 것과 비슷했다. 마력의 패턴을 맞추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문의 패턴은 던전 입구와는 좀 달랐다. 던전 입구가 잠기지 않은 문이라면 이 문은 자물쇠가 채워진 문이라 할 수 있었다.

    훨씬 복잡한 마력패턴이 특별한 규칙에 의해 계속 변화하는데, 그 규칙을 알아내지 못하면 절대 열 수 없었다.

    만일 강제로 이 문을 부수려고 하면 안에 있는 물건은 얻을 수 없었다. 모조리 사라져 버릴 테니까.

    현석은 이 문에 걸린 마력패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과거에 한 번 풀었던 것이기에 간단히 해체할 수 있었다.

    마력 패턴이 정확히 맞물렸다. 그걸 확인한 현석은 아까처럼 손바닥을 옆으로 빙글 돌렸다.

    쩡!

    마력 파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문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현석은 얼른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이내 문이 활짝 열리고 안이 드러났다.

    “후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지.”

    이곳이 보급창고라는 건 이제 충분히 알았다. 하지만 이 보급창고는 그냥 단순한 창고가 아니었다.

    안에 있는 물건을 얻기 위해선 상당한 대가가 필요했다. 목숨 건 싸움이라는 대가가 말이다.

    현석은 마지막으로 주머니 속 파워업 키트를 점검한 다음 힘차게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파바바바박!

    현석이 들어간 순간 동굴 천장에 빛나는 덩어리가 연이어 생겨났다. 마치 복도를 따라 전등을 박아 놓은 듯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절대 전등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전등은 저렇게 허공에 둥둥 떠 있지 못할 테니까.

    “이런 걸 보면…… 그냥 창고 같기도 한데 말이야.”

    들어온 자를 적대하는 장소라면 저런 빛을 제공해줄 이유가 없었다. 적을 상대하는 데에는 어둠이 더 유리할 테니까.

    마수 중에는 어둠 속에서 훨씬 강해지는 놈들도 많다. 그러니 이곳을 그런 마수로 꽉 채워 놓고 저 빛을 없애면 훨씬 효과적으로 적을 막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저렇게 아티팩트들을 전시하듯 장식해 놓을 필요도 없을 테고.”

    복도 중간 중간에 벽을 파내 만든 공간에 아티팩트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포스를 줄줄 뿌리는 아티택트 들이었다.

    하지만 저건 그냥 얻을 수 없다.

    동굴 끝에서 불길한 마력을 풀풀 날리며 뭔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부터…… 진짜 보물사냥 시작.”

    현석의 눈이 번득였고,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걸렸다. 신명나는 전투 시간이 돌아왔다.

    < 비밀던전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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