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24화 (24/326)
  • < 비밀던전 2 >

    현석이 투명 던전을 발견한 것은 눈을 잃은 지 5년쯤 지난 후였다.

    사실 그때는 그게 투명한 던전인 줄도 몰랐다. 당연한 일이다. 눈이 안 보였으니 던전의 존재만 알고 그것이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현석은 블랙홀이나 화이트홀도 마찬가지로 색의 구분을 하지 못했다. 다만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기질이 달라 구분이 가능했을 뿐이었다.

    블랙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훨씬 정제된 느낌이 강했다. 화이트홀의 마력은 블랙홀에 비해 더 거칠고 무질서했다.

    투명 던전에서 나오는 마력의 기질은 블랙홀과 비슷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블랙홀이 도심에 나타난 줄 알았다.

    이곳에 있는 던전의 존재를 당시 길드 마스터에게 말했을 때, 그의 표정을 보진 못했지만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파장을 통해 감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게다가 투명 던전에 들어가는 건 그냥 보통 다른 던전에 들어가는 것과 방식이 전혀 달랐기에 더더욱 그런 취급을 받았다.

    지상에서 3미터 높이에 생성된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 마력까지 이용해 점프했지만 그저 허무하게 허공만 통과했다.

    현석이 그 던전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낸 건, 길드마스터에게 보고를 한 지 열흘이 지날 무렵이었다.

    특별한 마력의 흐름을 캐치해 냈고, 그걸 이용하지 않으면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아냈다.

    마력의 흐름을 비트는 방식을 써야 했는데, 마치 열쇠와 자물쇠 같았다.

    투명 던전은 이곳에 있는 것 외에도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각각의 던전마다 맞춰야 하는 마력의 파장이 달랐다. 마치 각각의 던전이 특수한 마력패턴으로 잠겨 있는 듯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맞을 것이다.

    현석이 던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이 투명 던전이었다.

    어쨌든 당시에도 투명 던전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현석뿐이었고, 그걸 열 수 있는 사람도 현석뿐이었다.

    일단 파장에 맞춰 문을 한 번 열어두면 다른 플레이어도 얼마든지 던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사실 투명 던전은 굳이 여러 번 들어갈 필요가 없는 던전이기도 했다. 다른 던전과는 많이 달랐다.

    현석은 위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안 보이네.”

    이렇게 하나씩 눈으로 직접 확인해 갈 때마다 다시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때 다른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말에 얼마나 황당했을지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요만큼도 저기에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투명했다.

    공기 흐름이라도 달라지면 뭔가가 있나보다 할 텐데, 던전은 그런 것도 없으니 미묘한 위화감조차 들지 않았다.

    현석은 문득 심안으로 저걸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마력을 집중해서 투명 던전을 확인하니 놀랍게도 던전 위에 이름이 떠올랐다. 다른 던전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제12보급창고]

    현석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보급…… 창고?”

    그럼 저 투명 던전이 창고였단 말 아닌가. 보급이라는 말이 들어간 걸 보니 군대에서 쓰던 창고였던 모양이었다.

    설마 그런 건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저 진짜 던전이라고 여겼다. 아주 특별한 던전 말이다.

    ‘하긴, 그러고 보면 특별한 던전이 맞긴 하네.’

    보급창고라는 이름을 가진 던전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현석은 문득 화이트홀의 이름도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들어갈 생각 자체를 안 했기 때문에 굳이 화이트홀에 심력을 낭비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투명 던전의 이름을 보고 나니, 그것도 꼭 한 번 확인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중에는 화이트홀로 들어가야 하니 미리 이름을 통해 대략적인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금도 제법 그럴 듯한 정보를 얻지 않았는가.

    “그럼 그 마수들은 보급창고를 지키는 가디언 같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딱딱 맞아 떨어졌다.

    현석이 지금까지 파워업 키트를 모으고 레벨을 올리고 아티팩트를 마련한 이유가 바로 저 투명 던전에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투명 던전 안에는 정말로 강력한 마수가 서식하고 있었으니까.

    “한 번 해치우고 나면 다시 나타나지 않으니 망정이지 아마 그게 아니었다면 여럿 죽어나갔을 거야.”

    그때는 던전을 계속 들락거리면서 마수를 하나씩 유인해 죽였다. 현석은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다.

    충분히 가능했다.

    그때도 레벨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이번에 변종 천둥잠자리 둥지를 미친 듯이 돌아서 레벨업을 했기에 이 정도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사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결코 이런 식으로 빠른 레벨업을 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어쨌든 현석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손을 위로 뻗었다.

    현석의 손에서 마력이 뭉클뭉클 뿜어져 나갔다. 마력을 이렇게 외부로 뽑아낼 수 있는 플레이어도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다.

    그리고 현석은 그런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힐 정도로 능숙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오히려 마력 컨트롤 능력이 훨씬 좋았다. 그때에 비해 모자란 건 마력의 총량뿐이었다.

    마력을 다루는 일을 잠시도 쉰 적이 없으니 실력이 점점 늘어나는 게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도 운이라면 운이라고 해야겠지.’

    예전에는 마력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컨트롤 능력이 정체되어 있었다.

    한데 레벨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마력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현석의 마력 컨트롤 능력을 한 단계 위로 이끌어 주었다.

    아마 이 상태에서 예전 같은 마력을 보유하게 된다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현석의 손에서 뽑혀 나간 마력이 던전 입구에 스며들었다.

    스스스스스.

    현석은 신중하게 마력을 움직여 패턴을 만들었다.

    패턴을 만들어 가던 현석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투명 던전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꼭 일부러 암호를 걸어 놓은 것 같지 않은가. 자신은 그 암호를 깨뜨리는 해커가 된 듯하고 말이다.

    현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어떤 멍청한 놈이 암호를 저렇게 누구나 쉽게 풀 수 있게 만들어 놓는단 말인가.

    패턴이 저렇게 단순하면 마력의 흐름만 느낄 수 있고, 컨트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열 수 있다.

    잠그지 않은 문의 문고리를 돌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다.

    현석이 손바닥을 옆으로 빙글 회전시켰다. 그러자 마력도 옆으로 빙글 회오리치듯 돌았다.

    “열렸다.”

    던전 입구가 열렸다. 당연히 열린 입구도 투명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들어가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현석은 무릎을 굽혔다가 강하게 힘을 주며 위로 뛰어올랐다.

    쑤욱!

    몸이 던전에 닿는 순간 어딘가로 쑥 빨려들어갔다.

    잠시 후, 던전 입구가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물론 보이는 건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 * *

    현석은 던전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슥 둘러봤다. 저 멀리 거대한 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문 앞에 마수 네 마리가 서 있었다. 마치 석상처럼.

    마수들은 현석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저들은 일정 범위 안에 무언가가 들어가야 작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작동을 시작하면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의 강력함을 보여준다. 또한 어찌나 마력의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정말 상대하기 버거운 놈이었다.

    현석은 심호흡을 했다.

    “하나씩, 하나씩. 일단…… 이거부터 먹고.”

    현석은 옷 곳곳에 파워업 키트를 넣어뒀다. 위급할 때 하나씩 꺼내 먹기 위함이었다.

    파워업 키트는 부작용 없이 마력과 힘을 뻥튀기 시켜준다.

    이번에 정확히 알게 된 사실인데, 마력을 비롯한 모든 스탯을 2.5배 늘려준다. 정말 어마어마한 버프였다.

    파워업 키트의 단점은 딱 하나, 유지시간뿐이었다.

    먹으면 정확히 3분 동안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먹고 나면 다시 먹을 때까지 20분의 쿨타임이 필요했다.

    쿨타임이 지나기 전에 또 먹어선 안 된다. 그러면 효과 없이 쿨타임만 더 늘어날 뿐이었다.

    그 부분만 조심하면 파워업 키트는 세기의 발명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보여준다.

    마력과 모든 스탯이 두 배로 상승한다는 건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효과가 더 커진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파워업 키트의 한계는 버프가 된 마력 총량이 1000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레벨 50 이상이 먹으면 효과가 점점 줄어들고, 100레벨이 먹으면 아무 효과도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던전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을 현석만 이용할 수 있고 말이다.

    현석은 미리 준비한 쇳덩이 하나를 손에 들었다. 이걸 이용해 한 놈만 유인할 계획이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손에 마력을 보냈다. 그리고 쇳덩이에 마력을 담았다. 사물에 마력을 담는 건 이번 생에 들어와 얻은 능력이었다. 물론 마력 컨트롤의 힘이었다.

    예전에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리고 현석의 길드에는 그렇게 쓰고 버릴 패가 무수히 많았다.

    ‘생각해보니 진짜 쓰레기 같은 놈들한테 엮여서 개고생 했네.’

    물론 이번에는 그놈들과 엮일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둘 생각은 없었다. 언젠가는 그놈들에게도 인생의 쓴맛을 한 번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잡생각을 하며 현석은 마력이 담긴 쇳덩이를 있는 힘껏 던졌다.

    콰우우우!

    마력까지 담긴 던지기에 쇳덩이가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현석은 즉시 파워업 키트를 입에 넣고 삼켰다.

    마수 한 마리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꽈앙!

    거대한 고릴라 형태의 마수였는데, 그 마수의 손에 쇳덩이가 잡혔다.

    꽈드득!

    마력이 담긴 쇳덩이는 그대로 우그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키이이잉!

    마수의 시선이 현석에게로 돌아갔다.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더욱 밝아졌다.

    쿵! 쿵! 쿵!

    마수가 현석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현석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자 속도를 더 높였다.

    쿵쿵! 쿵쿵! 쿵쿵!

    현석은 뒤로 돌아 빠르게 달려갔다. 그러자 마수도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쿵쿵쿵쿵쿵!

    바닥이 흔들리는 듯했다. 마수는 그 육중한 무게의 몸을 잘도 움직여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키이이이잉!

    기이한 소음이 들려온 순간 현석은 그대로 몸을 옆으로 날렸다.

    지이잉!

    꽈아아앙!

    광선 한 줄기가 뻗어 나오더니 현석이 방금 있던 자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현석은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몸을 움직이며 달렸다.

    지잉! 지잉! 지잉!

    꽈과과과과광!

    사방에서 빛과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현석은 그 모든 공격을 교묘하게 피하며 달려갔다.

    ‘여기까지!’

    현석은 원하던 지점까지 달려온 다음 그대로 반전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마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현석의 머리가 있던 부분을 광선이 훑고 지나갔다.

    꽈아아앙!

    현석은 뒤에서 일어난 폭발의 힘을 이용해 더욱 빠르게 몸을 날렸다.

    어느새 현석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일단 저기부터!’

    현석은 눈을 빛내며 마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머뭇거려선 안 된다. 이 마수는 온몸이 무기였으니까. 심지어 몸에 난 털까지 말이다.

    콰득!

    현석은 마수의 사타구니 사이에 있는 빈틈에 검을 쿡 찌른 다음 그대로 다리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투두두둥!

    정면에 있던 마수의 털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갔다. 수백 개의 침이 정면을 휩쓸고 지나갔다.

    퍼버버버벅!

    바닥에 무수한 침이 박혔다. 아마 잠시만 머뭇거렸어도 벌집이 되었으리라.

    현석은 이를 악물고 마수의 옆을 돌아 이동했다. 아무리 약점을 알고 있어도 절대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

    그 정도로 무시무시한 마수였다.

    ‘남은 시간 1분!’

    현석은 눈을 빛내며 검을 꽉 쥐었다. 마수가 현석의 움직임에 따라 몸을 돌리고 있었다.

    < 비밀던전 2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