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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3화 (23/326)
  • < 비밀던전 1 >

    콰득!

    현석은 여왕개미의 목 이음새에 정확히 검을 꽂아 넣었다.

    키에에에엑!

    여왕개미가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현석은 검을 꽉 쥔 채 허공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와중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검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여왕개미를 잡는 건 마력 컨트롤 승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력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검을 통해 내부로 흘려 넣느냐가 첫 번째고, 그 마력의 흐름을 잘 통제해 머릿속에 있는 코어를 부수느냐가 두 번째 승부처였다.

    당연히 현석에게는 그 두 가지 모두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현석이 굳이 이곳에 있는 던전으로 레드독 길드를 유인해 온 건 던전 클리어 자체가 가장 간단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퍽!

    코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소리가 들린 게 아니라 진동이 느껴진 것이다.

    여왕개미가 그대로 바닥에 폭삭 주저앉았다.

    현석은 그제야 검을 뽑았다. 여왕개미는 그 한 방에 즉사했다.

    사냥법을 안다면 아주 간단하지만, 모르면 정말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이 철개미인데, 여왕개미는 그것이 더 심했다.

    “이제 진짜 마무리만 남았군.”

    던전 밖에서 대기하던 세 명의 길드원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처리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던 놈들의 레벨은 40이 넘었다. 반면 현석은 고작 32레벨에 불과했다.

    파워업 키트를 복용하고 싸워도 셋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싸움은 꼭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게 아니었다.

    미리 입구 근처에 철개미를 잔뜩 끌어들인 다음, 던전 밖으로 나가 세 명의 길드원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일 자체는 아주 간단했다. 파워업 키트까지 복용했기에 그들은 불의의 기습에 당한 셈이었다.

    일단 던전에 끌어들인 다음은 더 간단했다. 철개미들이 알아서 깔끔히 제거해 주었으니까.

    남은 건 던전 클리어뿐이었다.

    현석은 과거에 철개미굴을 무수히 닫은 경험이 있었다. 철개미들은 약점이 워낙 확실해서 상대하기가 정말 편했다.

    물론 그러려면 절묘한 마력 컨트롤 능력이 필요하긴 했지만 현석의 능력이라면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현석은 여왕개미로부터 마정석을 뽑아냈다. 여왕개미의 마정석은 심장에 있었는데, 지금처럼 정확히 죽이지 않으면 마정석도 함께 파괴될 확률이 높았다.

    물론 마정석이 파괴되면 마력 파동이 강해져서 레벨업에 도움이야 좀 더 되겠지만, 그래서야 사냥의 의미가 없어진다.

    철개미는 잘 모아두면 재료로의 쓰임새가 정말 많았지만 지금은 이걸 가져갈 여유가 되지 않아 다 버리기로 했다.

    “브론즈 등급에서 철개미가 나올 줄은 아마 상상도 못했겠지.”

    아직 이런 개별 던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시절이었다. 간간이 발견된 개별 던전도 지금 이 정도로 등급에 어울리지 않는 마수가 나온 적이 없기에 레드독 길드도 방심했을 것이다.

    아마 개별 던전에 대해 현석과 비슷한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면 결코 지금처럼 무모하게 현석을 추격해 따라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들어왔다 하더라도 그렇게 활개 치며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이다.

    아마 조만간 이런 던전에 대한 정보가 많이 풀릴 것이다. 지금은 정보를 독점하는 놈들이 있지만 곧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개별던전이 발견될 테니까.

    어쨌든 현석은 여왕개미를 사냥하면서 나타난 던전코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던전코어는 던전 중앙에 나타나는 법이다. 아니, 이미 그 위치를 확인해 뒀다. 코어는 보스를 죽이지 않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니까.

    “적당히 쓸 만한 아티팩트나 하나 나왔으면 좋겠군.”

    아마 그렇다면 다음 계획을 진행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석은 왠지 제법 괜찮은 아티팩트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곳 철개미굴은 사실 겉으로는 브론즈 3등급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골드 2등급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리고 아티팩트는 난이도에 따라 제공된다.

    ‘마치…… 시험에 대한 보상처럼 말이지.’

    현석은 던전 시스템이 꼭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다.

    비단 현석뿐 아니라 많은 플레이어들이 오랫동안 던전에서 사냥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식으로 인식이 변해가곤 했다.

    물론 그것은 블랙홀, 그러니까 검은 던전에 한해서였다.

    화이트홀, 하얀 던전은 검은 던전과는 좀 달랐다.

    아마 지금은 하얀 던전을 클리어 하려는 플레이어나 길드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들이나 가끔 들어갈까? 아니, 그들도 아직까지는 하얀 던전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하얀 던전은 검은 던전과는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거기에서는 위험만 있고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한 마디로 가성비가 너무 떨어져서 안 들어가느니만 못 했다. 게다가 클리어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니 지금도 거의 방치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미래에는 하얀 던전의 가능성에 대해 한창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물론 현석은 그 연구의 끝을 보지 못하고 죽어 과거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아마 좀 더 일찍 그곳에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어렴풋이 들었다.

    코어에 도착한 현석은 그 위에 손을 올렸다.

    미래에는 코어를 부수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많이 진척되었다.

    심지어 어떤 플레이어는 코어에서 마정석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현석이 할 수 있는 건 아티팩트가 나올 확률을 조금 더 높여주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리고 던전 생성지역의 던전보다 이런 개별 던전에서 아티팩트가 나올 확률이 훨씬 높았다.

    “아티팩트야 당연히 나오겠지만…….”

    확률이 100%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운이 더럽게 없지 않는 한, 아티팩트가 나올 것이다.

    개별 던전인 데다가 코어를 부술 때 아티팩트가 나올 확률을 높여주는 방식의 마력 컨트롤을 할 테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야에서의 마력 컨트롤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현석은 죽기 전에도 코어 부수기 컨트롤은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뛰어났으니까.

    그동안 변종 천둥잠자리 둥지를 클리어 하면서는 일부러 아티팩트가 안 나오게 하느라 상당히 애썼다.

    처음 한 번을 제외하고 말이다. 두 번째 나왔던 아티팩트는 말 그대로 그냥 운이었다.

    어쨌든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만 좋은 아티팩트가 나오길 기대할 뿐이었다.

    클리어 시 나오는 아티팩트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복불복이었다.

    심지어 브론즈 5등급에서 정말로 희귀하고 훌륭한 아티팩트가 나올 수도 있었다.

    물론 등급이 높을수록 더 좋은 아티팩트가 나올 확률이 올라가긴 한다. 하지만 등급이 낮다고 반드시 질 낮은 아티팩트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반대로 등급이 높다고 꼭 좋은 아티팩트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뭐…… 어쨌든 당분간만 쓸 거니까.”

    어차피 좋은 아티팩트가 나와도 오랫동안 쓸 생각은 없었다. 잠깐 쓰다가 팔아치울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석은 블랙홀의 아티팩트는 큰 의미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진짜 제대로 된 아티팩트를 얻으려면 좀 다른 던전을 털어야 한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는 좋은 아티팩트가 필요하니 현석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코어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쩌엉!

    코어가 깨지며 거친 마력의 폭풍이 현석의 몸을 휘감았다. 현석은 직감적으로 레벨이 올라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풍경이 바뀌었다. 던전 입구가 있던 산속으로 말이다.

    그리고 입구가 있던 자리에 아티팩트가 나타나 있었다. 허공에 둥둥 뜬 채로.

    현석은 눈을 빛냈다. 상당히 보기 드문 아티팩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팔찌 형태는 잘 안 나오는데 득템했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은 심플하게 생긴 청동팔찌였다. 현석이 그것을 집으니 사방으로 마력 파동이 퍼져 나갔다.

    쩌엉!

    현석은 기분 좋게 마력을 받으며 팔찌를 확인했다.

    [대지의 팔찌]

    [착용자의 힘을 늘려주는 팔찌. 힘+10]

    “대박이네.”

    힘을 무려 10이나 올려주는 팔찌였다. 힘이 올라가면 공격할 때 파괴력을 올릴 수 있다. 단순히 힘이 세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힘을 10증가시키려면 최소 다섯 번 이상의 레벨업을 해야만 한다. 레벨을 하나 올릴 때마다 랜덤하게 수치 중 한두 개를 1에서 2정도 올려준다.

    운이 나쁘면 수치 자체가 안 올라갈 수도 있었다. 물론 이번 생에서 레벨업을 하면서 얻은 정보였다.

    사실 예전에는 그저 레벨이 올라가면 마력이 올라가고 아주 조금씩 몸 자체가 강해진다는 정도밖에 몰랐다.

    그건 플레이어에 대해 세밀히 연구하는 사람들도 제대로 된 이론을 내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단순히 비밀이라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잘 알려진 지식이나 정보는 아니었다.

    현석은 이번에 심안이라는 스킬을 통해 그 수치의 증가에 대해 알아냈다.

    그러니 힘을 10증가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효과이겠는가.

    현석은 즉시 팔찌를 착용했다. 단숨에 힘이 늘어났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주먹을 꽉 쥐어 본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더없이 만족스러운 사냥이었다.

    “다시 생기려면 한 달쯤 필요하려나?”

    개별 던전이 생성지역의 던전과 다른 점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자리에 똑같은 던전이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 기간이 길 뿐이었다.

    이 부분에서도 개별 던전은 겉보기 등급보다 실제 등급이 중요했다.

    아마 지금 이 철개미굴은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의 주기로 다시 생겨날 것이다.

    ‘원래 우리 길드 소유가 아니었으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쯤 되겠지.’

    현석은 유명한 개별 던전에 대한 정보를 따로 기록해둘 필요성을 느꼈다.

    더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말이다.

    ‘소유하기 편한 던전이 어디어디였더라…….’

    일단 지금은 기록만 해두고 처리는 나중에 해도 충분하다. 아직은 시간 여유가 충분했다.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었다.

    “자, 그럼…… 장비를 맞추러 가 볼까?”

    현석은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왠지 일이 술술 풀려 나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 * *

    현석은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했다. 그 차는 레드독 길드에서 현석이 탄 택시를 쫓기 위해 수배한 차였다.

    목적지는 다시 서울이었다.

    서울에 진입한 현석은 적당한 곳에서 차를 버렸다. 그리고 대중교통과 도보를 이용해 이동했다.

    진짜 목적지는 강남이었기에 이동에 제법 시간이 걸렸다.

    강남에 도착한 현석은 사방에 즐비하게 서 있는 빌딩들을 슥 둘러봤다.

    사실 눈으로 보고 길을 찾는 건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눈이 안 보일 때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쯤인지는 안다. 현석은 일단 목적지 근처로 이동했다.

    희미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찾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 중간쯤에 원하던 것이 있었다.

    현석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중간쯤 서서 위를 올려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것은 던전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던전은 두 가지다. 블랙홀과 화이트홀.

    하지만 현석은 그 외에 한 가지 던전이 더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 있는 투명 던전이었다.

    허공에 떠 있는 투명한 던전을 올려다보는 현석의 눈이 여러 감정을 담아 담담히 빛났다.

    < 비밀던전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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