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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2화 (22/326)
  • < 레드독 3 >

    “여기 분위기 생각보다 너무 음산하지 않습니까?”

    주경철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분위기만 음산한 게 아니었다. 뭔가 계속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 굴 뚫린 거 지도로 그린 거 좀 보십시오. 이거 완전 개미굴처럼 생겼습니다.”

    “개미굴?”

    주경철은 안색이 변해 길드원에게서 패드를 빼앗아 그가 지금까지 그린 지도를 확인했다.

    지도의 모습은 정말로 개미굴과 비슷했다. 물론 진짜 개미굴보다 더 복잡하긴 했다. 길도 많았고, 꼬인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모양새는 분명히 개미굴이었다.

    “설마…… 설마 철개미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주경철의 나직한 중얼거림을 들은 길드원들은 흠칫 몸이 굳었다.

    철개미는 이름 그대로 강철처럼 단단한 몸을 가진 개미였다. 크기는 사람 두 배 정도였고, 입에 달린 집게는 칼처럼 날카로웠다.

    여섯 개의 다리로 기어 다니는데, 어찌나 빠른지 모습을 발견한 순간 돌진에 대비해야만 했다.

    철개미는 적을 보면 그대로 돌진해 몸으로 받아버린다. 입에 달린 칼날집게가 그때 굉장한 위력을 발휘한다.

    정면으로 철개미의 돌진을 받아내려면 뱃가죽이 칼에 꿰뚫릴 위험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어쨌든 이런 지형에서 철개미를 만나면 정말로 위험했다. 그래서 다들 잠깐이나마 동요했다.

    물론 동요의 순간은 아주 짧았다.

    “에이, 형님도. 그럴 리가 있습니까? 여기 던전 등급을 생각해 보십쇼. 브론즈 3등급입니다. 철개미가 가당키나 합니까?”

    “그렇지?”

    다들 살짝 긴장이 풀어졌다. 철개미가 최초 발견된 건 골드 3등급부터였다. 그 이하 등급에서 철개미가 발견되었다는 얘기는 한 번도 없었다.

    즉, 최소 골드 3등급에 오르기 전에는 철개미 같은 마수를 만날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곳 브론즈 3등급 던전에도 당연히 철개미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주경철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계속 주위를 살피고 긴장을 놓지 않았다.

    ‘촉이 안 좋아. 이럴 때 꼭 대형 사고가 터지곤 했는데…….’

    주경철이 그 생각을 한 순간, 동굴 저 멀리서 뭔가가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음? 뭐지?”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반짝임 자체가 워낙 순간적이었는지라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방금 저쪽에서 뭔가가 반짝였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말입니다.”

    “아까 내가 볼 때는 분명히……!”

    주경철은 채 말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피해!”

    그렇게 외치며 옆으로 몸을 날린 주경철을 스치고 거대한 무언가가 휙 지나갔다.

    더럽게 빠른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희미하게 째각거리는 소리만 살짝 들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 거대한 무언가가 레드독 길드를 덮쳤다.

    뻐버버버버벅!

    푸확!

    길드원들이 사방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한 명은 그 거대한 괴물과 함께 사라졌다. 배가 꿰뚫린 채로 말이다.

    “처, 철개미! 방금 그거 철개미 맞지? 그렇지?”

    주경철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자 주경철과 거의 동시에 몸을 날려 피했던 곽명진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 맞습니다. 여, 여긴 분명히 브론즈 3등급인데…… 대체 어떻게 철개미가…….”

    주경철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어쩐지 처음 들어올 때부터 촉이 안 좋았다. 사방을 꽉 채운 묘한 불길함을 느낀 순간 밖으로 나갔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어.’

    아직 입구에서 그리 멀리 오지 않았다. 그러니 이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철개미가 떼로 몰려오기 전에 말이다.

    “서둘러! 당장 여기서 나간다. 다들 빨리 일어나!”

    주경철은 호통치듯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이 상황을 정리하기 쉽지 않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길드원들이 비척비척 일어났다. 다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돌진하는 철개미에게 부딪히며 다들 몇 군데가 부러졌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뼈 좀 부러졌다고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픈 건 똑같지만 말이다.

    멀쩡한 사람은 주경철과 곽명진뿐이었다. 두 사람은 그래도 몸을 날려 피했으니까.

    길을 되짚는 건 그나마 머리가 좀 돌아가고 길도 잘 찾는 편인 곽명진이 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경철은 또 올지 모를 철개미에 대비하기로 했다. 주경철은 방패 아티팩트를 들었다.

    애초에 이곳이 철개미굴이라는 걸 알고 들어왔다면 이렇게 처참한 꼴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젠장. 너무 방심했어.’

    레벨이 있는데 고작 철개미 한 마리에 당할 리 있는가. 떼로 몰려오면 모를까.

    이렇게 미리 방패만 챙겼어도 철개미의 돌진을 제대로 막아냈을 것이다.

    철개미가 무서운 건 돌진 때문이다. 일단 방패를 동원해서 멈추게 만들기만 하면 상대할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강철 같은 껍질을 갖고 있어서 무기가 잘 통하진 않지만 움직이지만 않으면 껍질을 뚫고 몸 내부에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망치 같은 무기를 동원해 충격을 주는 것도 방법이고 말이다.

    주경철은 똘똘 뭉쳐 이동하는 일행의 한가운데 있었다. 철개미가 앞에서 올지 뒤에서 올지 모르니 가운데 있다가 상황에 따라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다행이 일행이 원래 있던 곳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 철개미를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철개미가 아니었다.

    “뭐지?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 입구가 없어졌습니다!”

    다들 크게 당황했다. 분명히 길은 제대로 찾았다.

    “신호! 신호는?”

    주경철은 신호를 확인하고 장치를 묻은 곳으로 갔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 건드릴까봐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해뒀는데, 그 표시가 멀쩡했다. 아무도 이곳에 오지 않았고, 건드린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진짜 여기 있던 입구가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대체 입구가 어디로 간 거야!”

    주경철이 당황해서 외쳤다. 입구가 이동한다는 얘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혀, 형님! 일단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곽명진의 말에 주경철이 성질부터 냈다.

    “가긴 어디로 가! 사라진 입구부터 찾아야지!”

    “그게 아니라 여긴 너무 넓습니다. 만일 사방에서 개미가 몰려오면 방어가 불가능하단 말입니다!”

    곽명진도 답답한지 오히려 소리를 질렀다.

    주경철은 마치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싸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째각째각!

    사방에서 째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제법 컸다. 철개미 한두 마리로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주경철을 비롯한 모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방 구멍에서 철개미들이 쏟아져 나왔다. 열 마리가 넘었다.

    “다들 어떻게든 버텨!”

    주경철의 명령에 길드원들이 이를 악물고 무기를 휘둘렀다. 그나마 이럴 때를 대비해 언제든 무기를 휘두를 수 있게 준비했기에 철개미들에 속절없이 휩쓸리지는 않았다.

    채채채채채챙!

    하지만 그들만으로 철개미 떼를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당연히 그건 주경철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내린 선택은 혼자 도망치는 것이었다. 동료들을 철개미들의 먹이로 던져주고 말이다.

    “야 이 나쁜 새끼야!”

    몸을 뺀 주경철의 귓가로 곽명진이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경철은 차가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 나쁜 놈인 거 원래 알았잖아.”

    * * *

    싸움의 흔적은 거의 남지 않았다. 철개미들은 사냥감들을 남김없이 가지고 둥지로 돌아갔다.

    개미굴 안에는 철개미의 방과 철개미 알이 보관된 방,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왕개미가 사는 방이 있었다.

    철개미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꼭 고기만 먹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플레이어가 걸치고 있는 옷이나 장비, 심지어 동료의 시체까지 모조리 먹어치운다.

    그러니 싸움터에 잔해가 남아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현석은 숨어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봤다. 철개미는 레드독 길드원을 모조리 죽이거나 다치게 해서 잡아갔고, 그 와중에 죽은 철개미의 사체까지 모조리 가져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죽은 건 아니었다.

    처음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도망친 주경철이 살아남았고, 그리고 싸움 도중에 어떻게든 몸을 뺀 최창수도 살아남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도망쳤다.

    “최후는 지켜봐주는 게 예의겠지.”

    현석은 두 사람이 사라진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지금쯤 철개미들은 만찬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즉, 개미굴을 돌아다니는 철개미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현석은 빨리 움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서두르진 않았다. 이쪽으로 가면 무엇이 나오는지 잘 알고 있어서였다.

    이쪽 끝에는 여왕개미가 산다.

    * * *

    쿠웅! 쿠웅! 쿠웅!

    육중한 여왕개미의 움직임에 주경철과 최창수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주경철은 여전히 방패를 들고 있었고, 최창수는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힘을 모아야만 했다. 여왕개미가 들어온 입구를 막고 서 있었으니까.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니까 좋냐?”

    최창수가 이죽거리며 말하자, 주경철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넌 꼭 아닌 것 같잖아. 잔말 말고 칼질이나 똑바로 해.”

    “말 안 해도 잘 할 테니까 너나 잘 막아. 괜히 깔려서 나한테까지 피해 주지 말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어떻게 하면 나머지 하나를 미끼로 자신만 도망칠 수 있을지 궁리 중이었다.

    ‘방패로 막는 순간 아래로 슬라이딩해서 빠져나간다.’

    최창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빛냈다. 충분히 가능했다. 아무리 주경철이 쓰레기라도 방패로 최소한 한 번은 막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도 살 테니까.

    쿠구구궁!

    여왕개미가 빠르게 다가왔다. 굴을 꽉 채우는 거대한 크기 때문에 옆으로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아래로 슬라이딩 한다고 해도 교묘하게 다리가 꺾이는 부분을 통과해야만 한다.

    최창수는 자신 있었다. 그와 비슷한 장면을 두 달 동안 쉴 새 없이 봐 왔지 않은가.

    여왕개미가 지척에 다가왔다. 주경철은 이를 악물고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최창수는 즉시 아래로 슬라이딩 하려고 했다. 한데 그럴 수가 없었다.

    “억!”

    최창수가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슬라이딩하려는 순간 무언가가 가슴을 때렸다.

    확인해보니 작은 돌멩이였다.

    “이런 젠장!”

    쿠웅!

    주경철은 레벨 54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땅따먹기 해서 레벨을 올린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방패 아티팩트에도 마력이 제대로 주입되었다.

    우우우웅!

    여왕개미는 주경철을 조금씩 밀어냈다. 하지만 주경철도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뭐해! 칼질 안 할 거야!”

    “젠장!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최창수는 짜증을 내면서 칼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또 무언가가 가슴을 때린 것이다.

    “커억!”

    이번엔 더 강한 충격이 왔다.

    “뭐 하는 거야!”

    주경철의 외침에 대답한 것은 최창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뭐 하는 거겠어? 너희를 응징하려는 거지.”

    주경철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언제 어떻게 자신의 뒤에 섰단 말인가. 이 방에는 여왕개미 말고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럼 건투를 빌지.”

    현석은 방패를 쥔 주경철의 손등을 주먹으로 퍽 때렸다.

    콰득!

    뼈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크아아악!”

    주경철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고통 때문에 흐릿해진 시야 저 멀리 여왕개미의 다리 틈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현석의 모습이 보였다.

    “야 이 개자식아!”

    물론 공허한 외침이었다.

    여왕개미가 두 사람을 그대로 덮쳤다.

    꽈드드드득!

    거친 파육음이 동굴을 가득 울렸다.

    현석은 거기에서 멀어지며 눈을 빛냈다. 이제 던전을 클리어할 타이밍이 왔다.

    ‘일단…… 밖에 서 있는 놈들부터 처리해야겠군.’

    레드독 길드를 무너뜨리는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이들은 쓰레기 중에서도 악질 쓰레기였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으면 앞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테니까.

    현석은 자신이 감춰둔 던전 입구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 레드독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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