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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1화 (21/326)

< 레드독 2 >

“저 새끼 진짜 가만 안 둔다. 헉헉헉!”

레드독 길드의 마스터인 주경철은 산 아래에서 현석을 쫓아가며 연신 씩씩거렸다.

현석은 택시를 타고 가다가 강원도 중간쯤에서 무작정 내리더니 그대로 도로를 벗어나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연히 주경철도 다급히 차를 버려두다시피 하고 현석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중간에 택시를 들이 받아서라도 일을 저질렀어야 했는데, 강원도 쪽으로 움직이는 걸 보고서는 좀 더 지켜보기로 한 것이 이런 결과를 불러왔다.

이쪽으로 오면 아무래도 보는 눈이 적기에 흔적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생각보다 근처를 달리는 차가 많았다는 것과,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는 곳을 지날 때 현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려 산으로 올라가 버렸다는 것, 두 가지를 제외하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주경철은 갑자기 산을 타게 되는 바람에 입고 있던 양복과 구두가 엉망이 되어 버리는 걸 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게 얼마짜린데.”

주경철은 고개를 들어 위쪽을 올려다봤다. 저 멀리 현석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산 중턱쯤 올라간 듯했다. 등산로가 아니었는지라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도 없고, 또 이동하기도 쉽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뭐 하는 거지? 쉬는 건 아닌 것 같고…….’

척 보기에도 현석은 여유롭게 주경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불어 주경철 뒤에 줄줄이 따라오는 레드독 길드의 길드원들까지 모두 말이다.

주경철은 경각심이 들었다. 저런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상대에겐 함부로 달려들어선 안 된다는 걸 몇 번 뼈저리게 겪은 경험이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사이 길드원들이 속속 합류했다. 산 아래에는 남은 길드원이 하나도 없었다. 길가에 차를 바짝 대고 몽땅 올라온 것이다.

어차피 차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석이라는 먹잇감을 잡는 게 더 중요했으니 그렇게 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석에게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형님, 저놈 쉬고 있을 때 얼른 가서 잡아버리죠?”

조금만 힘내면 잡을 수 있는데 여기서 뭐 하느냐는 물음이었다.

플레이어가 일반인과 다른 점은 아주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력의 존재여부였다.

그리고 모든 신체능력이 올라간다.

하지만 신체능력이 올라가는 건 상식 밖으로 초인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플레이어가 초인의 힘을 발휘하는 건 오직 마력을 이용할 때뿐이었다.

물론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신체 능력이나 두뇌 능력이 올라가 고레벨 플레이어가 되면 결과적으로 인간을 초월한 힘을 얻게 되긴 하지만, 그게 50레벨 언저리에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까지 올라온 레드독 길드원들 역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이렇게 길도 없는 산을 뛰어올라오면 지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다들 눈에 독기가 어려 있었다. 또한 이렇게 여기서 시간을 끄는 주경철에게 불만이 생겨나고 있었다.

주경철도 그런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부하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보다 위험요소를 없애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그래서 유심히 현석을 관찰한 결과 그가 왜 거기에 서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던전?”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저거 던전 아니냐?”

주경철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현석의 뒤쪽이었다. 현석의 몸에 가려져 있기도 했고, 산속이기에 그림자가 져서 얼핏 보면 잘 안 보였지만, 제대로 인식하고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라? 정말이네? 형님! 저거 던전 맞습니다!”

“크기를 보니 브론즈 등급 같은데, 맞나?”

현석이 바로 앞에 서 있었으니 그걸 기준으로 지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히 브론즈 등급이었다.

“던전이 생성지역이 아닌 곳에 따로 생겨나기도 한다는 얘길 듣긴 했는데, 보는 건 처음입니다.”

길드원이 신기한 눈으로 그걸 봤다. 하지만 이내 그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저건 관리센터는 전혀 모르는 던전이었다. 그러니 저걸 잘만 이용하면 관리센터의 눈을 피해 음성적인 방법으로 마정석을 비롯한 던전 물품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이 제법 되는 조직과 길드는 저런 던전을 몇 개 정도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식인 모양이었다.

“명진아.”

“예, 형님.”

“저 새끼 꼭 잡아야겠다. 생각보다 아는 게 많은 놈이야.”

“그러려고 이렇게 몰려온 거 아닙니까. 흐흐. 이제 다 잡았습니다. 저놈이 왜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던전으로 숨어보겠다 이거 아닙니까?”

“그렇지.”

“밖에서 지키기만 해도 도망갈 데가 없습니다.”

주경철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던전에 들어가면 다시 입구로 나오거나 아니면 던전을 클리어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클리어 한다고 해도 어차피 원래 던전 입구가 있던 곳에 다시 나타날 뿐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도망칠 구석이 없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건 주경철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저놈 레벨이 몇이라고 했지?”

“모릅니다. 하지만 추측은 가능합니다.”

곽명진은 고개를 돌려 최창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최창수가 얼른 앞으로 나섰다.

“레벨이 문제가 아니라 실력이 대단합니다. 아마 레벨로 따지면 40은 될 거 같습니다.”

“40? 확실한가?”

“확실치 않습니다. 어쩌면 실력을 더 숨기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경철은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숨길 실력이 있으면 애초에 최창수 일행과 함께 일할 필요가 없었다.

즉, 그들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40 언저리라 이거군. 많이 쳐줘봐야…… 45에서 50사이.”

견적이 끝났다. 주경철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말했다.

“그 정도 레벨에다가 싸움도 잘하면 브론즈 등급 던전 하나 클리어 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지. 몇 등급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야.”

“맞습니다, 형님.”

곽명진은 주경철이 원하는 게 뭔지 즉시 파악하고는 원하는 대답을 했다.

“입구 지킬 놈 셋만 남기도 싹 따라 들어가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주경철이 씨익 웃으며 현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래. 절대 클리어 하게 두면 안 된다. 저 던전은 우리 거야. 알아들었지?”

“저 명진입니다, 곽명진.”

“그래, 너만 믿는다. 가자.”

주경철이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러자 그 뒤로 레드독 길드원들이 우르르 따라갔다.

현석은 던전 앞에서 그들을 보며 차분하게 달려오는 자들을 확인했다.

‘스물다섯 명. 레벨은 최고 54에서 최저 28. 최창수가 그세 또 레벨업을 했네.’

최창수 일행이 28레벨로 올랐다. 그리고 레드독 길드원들은 최소 33레벨 이상이었다.

마스터인 주경철의 레벨이 무려 54였다. 정말 칠성파에서 제대로 밀어준 모양이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으로 나쁘지 않아.”

현석은 레드독 길드는 물론이고 그들을 만들다시피 한 칠성파도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그런 놈들을 남겨두면 두고두고 뒤통수가 따가울 것이다. 그럴 때는 그냥 싹 정리해 버리면 그만이다.

현석은 주경철이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지척에 도달했을 무렵 던전 안으로 몸을 던졌다.

‘따로 떨어진 던전이 어떤 건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던전에 들어가는 현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뒤따라 몸을 던진 주경철을 비롯한 레드독 길드원들과 최창수 일행은 현석의 그 의미심장한 미소를 볼 수 없었다.

그렇게 겉보기 브론즈 3등급 던전이 모두를 삼켰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엔 불길한 검은 소용돌이만 남았다. 그리고 잠시 후, 뛰어올 필요가 없어 천천히 걸어온 레드독 길드원 세 명이 던전을 둘러싸고 감시를 시작했다.

각각 40레벨에 달하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이었다. 혹시라도 현석이 뛰쳐나오면 언제든 잡을 수 있도록 일부러 실력이 뛰어난 자들을 남긴 것이다.

“긴장 풀지 마.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만일 여기서 현석을 놓치기라도 하면 그들은 살아도 산목숨이 아닐 테니까.

그렇게 긴장감 넘치는 시간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 * *

현석은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원래 계획된 포인트로 이동했다.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조만간 이 안에 들어올 레드독 길드원들과 싸우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입구를 옮기는 일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두지 않으면 분명히 도망치는 사람이 나올 테니까.

이번 작전의 핵심은 한 명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밖에서 던전 입구를 지키게 될 플레이어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입구 근처에 참으로 교묘한 장소가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곳이면서 근처에 가서 유심히 관심을 갖고 살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을 만한 곳이었다.

현석은 거기에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던전 안으로 주경철을 비롯한 레드독 길드원들과 최창수 일행이 들어왔다.

“젠장. 이거 뭐야? 이런 던전도 있었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곳인데?”

주경철은 들어오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동굴 한가운데였다. 게다가 동굴 구조도 그리 단순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미로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는 것 같았다. 그냥 제자리에서 주변만 슥 둘러봐도 다른 곳으로 갈 만한 구멍이 다섯 개나 보였다.

각각이 또 다른 몇 개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얼마나 복잡한 구조일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지끈거렸다.

“일단 길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겠군. 그놈이 왜 이 던전으로 우릴 끌어들였는지 알겠어. 다들 기습에 주의해. 알겠나?”

“예.”

길드원들이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확실히 이런 구조의 던전이라면 기습에 대처하는 게 중요했다.

다음으로 언제든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것도 타인이 지우거나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말이다.

마침 적당한 것이 있었다.

“여기가 좋겠군.”

주경철은 벽 아래쪽을 깊이 판 다음 둥글게 생긴 기계장치 하나를 넣고 묻었다.

겉으로 보기에 표시가 안 나도록 감쪽같이 처리해서 자세히 살펴도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것은 강력한 신호를 뿜어내는 장치였다. 어디에 있건 신호가 미치는 곳이라면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미로 같은 구조의 길을 정확히 착착 찾는 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방향만 알고 있어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만일 이 동굴 구조가 사람을 엿먹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미로가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그런 미로라 하더라도 신호만 포착하면 언젠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안전장치를 마련한 주경철은 일행을 이끌고 동굴 안쪽으로 이동했다. 가면서 표식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누군가 패드 하나를 꺼내 지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치밀한 팀이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근처에 숨어 있던 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슬슬 체계가 잡혀가기 시작하는군.”

이 시기에 현석도 레드독 길드의 일원이었다. 그때는 체계가 잡혀가는지 아닌지 판단하고 알아볼 겨를도 없었다. 그저 혹사당하는 몸을 간수하느라 힘겹기만 했으니까.

“자, 그럼 입구부터 옮겨볼까?”

현석은 씨익 웃으며 입구로 다가가 검은 소용돌이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 순간 놀랍게도 소용돌이가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석이 미리 깔아둔 마력의 길을 따라 마치 굴러가듯 움직인 것이다.

그렇게 검은 소용돌이는 느리지만 확실히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석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맴돌았다.

이제 진짜 사냥의 시간이 돌아왔다.

< 레드독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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