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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0화 (20/326)
  • < 레드독 1 >

    현석은 커피숍에 앉아 노트북을 통해 주식거래를 하고 있었다.

    일단 새로 만든 계좌에 있는 돈을 증권계좌로 옮긴 다음, 유망주를 골라냈다.

    현석이 노리는 건 일확천금이 아니라 마정석을 팔아 모은 돈을 확실히 불려줄 안전한 투자처였다.

    그리고 현석의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투자정보가 있었다. 그건 과거로 돌아온 자의 특권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현석은 가끔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미래의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온다는 건 절대 평범한 사건이 아니었다.

    한데 그런 중요하고 특별한 사건을 겪었는데, 그 원인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다는 건, 상당히 불안한 일이었다.

    이러다가 언제 다시 불쑥 미래로 돌아가 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현석이 죽음을 경험하며 겪는 주마등의 일종이라든지 말이다.

    ‘뭐…… 이게 꿈이 아닌 진짜 현실이라는 건 확실하지만.’

    꿈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현실감이 넘쳤다.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다시 미래로 가게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이건 왜 드는지 모를 확신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그 원인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봤지만 딱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개입했다는 정도가 현석이 쓸 수 있는 최대한의 가정이었는데, 아무래도 거기에 던전이 끼어있는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남은 건 던전을 더 열심히 돌아야 한다는 거지. 일단 돈에 연연하지 않도록 준비도 좀 하고 말이야.’

    이 주식 거래는 그 기반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현석은 돈에 휘둘려 던전의 비밀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벌어진 일을 제대로 확인하려면 그래야만 했다.

    그것이 현석이 내린 결론이었다.

    “이 회사가…… 아직 이 가격밖에 안 되면 이거 대박 아닌가?”

    현석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가진 돈으로 주식 하나를 최대한 매입했다.

    “이건 타이밍이 중요한데…….”

    현석이 매입한 건 DM케미칼이라는 곳의 주식이었다. 미래에는 아주 유명한 곳 중 하나였다. 물론 20년 후 미래에는 없는 회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현재 주식의 가격은 그야말로 바닥이었다. 아마 회사는 휘청거리는 중이리라. 곧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심리 때문에 매물도 많았고, 가격도 당연히 낮았다.

    현석은 그걸 말 그대로 쓸어 담았다. 가격이 조금씩 올랐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건 타이밍만 잘 맞추면 지금 산 가격의 수백 배를 받고 팔아치울 수 있게 될 테니까.

    정확한 시기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DM케미칼은 마정석의 이용법 중 하나를 제대로 확인해 대박을 터트린 회사였다.

    던전이 발견되고 플레이어가 등장한 지 이제 고작 3년이었다.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던전에서 나오는 물품을 제대로 연구하기에는 사실 짧은 시간이었다.

    가능성만 무수히 발견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유용하게 쓰이는 분야는 잔뜩 있었다. 그렇기에 마정석 가격이 이렇게 높은 것이다.

    하지만 진짜 마정석의 가장 큰 가능성 중 하나인 에너지로의 이용은 아직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었다.

    그 미지에 발을 들인 곳이 바로 DM케미칼이었다.

    그들은 마정석에서 나오는 마력을 전력으로 변환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도 아주 높은 효율로 말이다.

    마정석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해 그걸 통해 전력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 곳은 있어도, 마력 자체를 전력으로 바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것은 DM케미칼이 최초였다.

    그 대박으로 DM케미칼은 순식간에 회사의 모든 위기를 박살 내고 위로 쭉쭉 올라가게 된다.

    “300일의 영광이지.”

    현석은 노트북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은행에 남은 잔고는 이제 300만원 정도였다.

    어차피 돈 쓸 일도 없을 테니 잔고야 없어도 그만이었다.

    어쨌든 DM케미칼은 300일 동안 고공행진을 하다가 결국 고꾸라지고 만다.

    진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DM케미칼이 개발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효율을 가진 에너지 추출법이 개발된다. 그것도 거대 석유 자본의 힘을 등에 업고 말이다.

    그러니 그 300일 안에만 주식을 차근차근 처분하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

    물론 그거 하나에 올인한 건 아니었다. 그것 말고도 현석의 머릿속에는 주식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수두룩했다.

    그 정보들은 모두 던전과 관계되어 있었다. 주식 흐름에 대해 잘 몰라도 된다. 현석의 머릿속에 있는 던전과 관계된 지식은 진짜 알짜배기였으니까.

    사실 마음먹고 돈을 벌겠다고 작정하면 훨씬 좋은 방법들이 많이 있었다.

    마정석 추출법만 잘 이용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현석이 원하는 건 계속 머릿속 한구석을 간질이는 이 기묘한 예감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그 둘은 잘 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현석은 류지혜, 혜연 자매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과연 나중에 자신이 다시 그들을 만났을 때, 어디까지 성장해 있을지 기대가 컸다.

    류지혜의 재능도 대단하긴 하지만, 류혜연의 재능은 정말 굉장했다. 물론 심안이라는 스킬을 통해 확인한 것이긴 하지만 그저 그녀에게서 흐르는 마력만 봐도 충분한 재능이 느껴졌다.

    ‘게다가 그녀석이 가진 재능은 그거 하나가 아니거든.’

    현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노트북이 든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커피숍을 나섰다.

    이제 최근 벌인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을 해결하러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 * *

    레드독 길드의 마스터인 주경철은 다급히 들어온 길드원의 보고에 눈을 번쩍 떴다.

    “찾았답니다!”

    주경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가자!”

    이런 일은 복잡하게 처리해선 안 된다. 단순무식하게 접근해서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깔끔하고 안전한 법이다.

    플레이어는 국가의 재산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플레이어를 납치하는 일인데 어물쩍 거리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창수는?”

    “벌써 대기 중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알지?”

    “물론입니다. 이번에 제대로 된 건수 하나 물어왔으니 이제 묻어야지 말입니다.”

    주경철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맺혔다.

    “그래, 이번 기회에 우리도 독립 좀 해보자.”

    두 사람은 서둘러 길드 건물을 나섰다.

    밖에는 이미 길드원들이 잔뜩 대기 중이었다. 지금 던전에 사냥을 나간 길드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였다.

    “레벨이 몇인지는 모르지만 한가락 한다고 하니까 다들 마음 단단히 먹어.”

    “염려 마십시오. 어디 장사 하루이틀 합니까? 흐흐흐.”

    열다섯이나 되는 험상궃은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잠시 후, 그들에게 최창수 일행이 합류했다.

    최창수 일행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레드독 길드원들이 그녀들을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훑어봤다.

    하지만 그녀들도 이런 쪽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들이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콧방귀만 뀌었다.

    그렇게 스물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대로를 따라 움직였다.

    * * *

    현석은 자신을 감시하는 두 명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빠르게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딱 예상한 시간이로군.’

    현석이 모습을 대놓고 드러낸 지 한 시간 만에 감시자가 붙었고, 20분 후 그 중 한 명이 사라졌다.

    아마 레드독 길드가 슬슬 움직일 것이다.

    ‘최창수도 같이 움직이겠지?’

    고작 두 달 정도지만 최창수 일행을 이용해 천둥잠자리와 넝쿨귀신 사냥을 하면서 그들의 성향을 제법 많이 파악해 뒀다.

    최창수는 이런 일에 절대 빠질 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면 그의 부하들도 당연히 함께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다. 이번 일의 주체는 그들이 아니라 레드독 길드니까.

    ‘레드독 길드라는 이름을 이렇게 듣게 될 줄이야.’

    현석이 기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레드독 길드는 현석의 기억 속에 제법 깊이 각인된 놈들이었다.

    20년 전 과거, 그러니까 첫 번째 삶에서 지금 이 시기쯤에 레드독 길드에 들어갔다.

    사실 자의로 들어간 게 아니라, 반쯤은 타의였다.

    레드독 길드는 뼛골이 빠질 정도로 현석을 이용해 먹었다. 고작해야 6개월 남짓이었지만, 절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혹사당했다.

    현석은 매일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고, 그러다가 얼토당토않은 위험한 작전에 투입되면서 눈까지 잃어야 했다.

    즉, 과거 현석의 시력을 앗아간 놈들이 바로 레드독 길드였다.

    ‘정황을 대충 파악해 보면…… 그때도 최창수가 날 레드독에 팔아먹은 모양이네.’

    거의 확실했다. 그리고 그 악연은 과거로 되돌아온 뒤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상황만 약간 달라졌을 뿐, 본질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현석이 이번 일을 계획한 건, 우연히 들은 레드독이라는 말 하나 때문이었다.

    최창수 일행을 이용해 먹기 시작한 지 보름쯤 되었을 무렵, 그들의 대화 중에서 레드독이라는 말을 스쳐들었다.

    솔직히 최창수 일행에 대한 기억은 아주 희미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는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레드독은 다르다. 레드독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순차적으로 당시 기억들이 딱딱 꿰맞춰지며 최창수 일행에 대한 기억도 상당부분 되살아났다.

    아마 현석이 인간을 초월할 정도로 예민한 오감을 지니지 않았다면 결코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이상,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레드독 길드는 현석과는 정말 지독한 악연으로 묶인 사이였으니까.

    심지어 현석이 눈을 잃은 다음에도 잠시 방치하다가 플레이어의 몸을 연구하는 미친 곳에다가 팔아먹었다.

    정말 뼛골까지 우려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현석에게 경험시켜준 놈들이 바로 레드독 길드였다.

    그래서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바로 최창수 일행을 조사하고 감시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획했다.

    지금까지는 현석이 의도한 대로 모든 계획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

    최창수 일행의 성향과 레드독 길드의 성향을 정통으로 꿰고 있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아차하는 순간 현석에 대한 정보가 외부로 새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석은 이들의 성향을 믿었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정보가 차단된 채로 레드독 길드와 최창수가 움직였다.

    마르지 않는 화수분, 현석을 잡기 위해서.

    현석은 자신이 원래 살던 원룸 근처 커피숍에 들어갔다. 아직 약간 더 시간을 끌어야 한다.

    가볍게 커피 한 잔을 마신 현석은 커피숍에서 나와 빠른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한 최창수 일행이 조심스럽게 현석의 뒤를 멀찍이서 쫓아가기 시작했다.

    현석은 그들을 이끌고 도심지에서 벗어났다. 현석은 이번 일을 벌일 장소를 미리 생각해 뒀다.

    그리고 차질이 있어선 안 되기 때문에 은밀히 그곳에 답사까지 다녀왔다.

    그 장소는 기억 속 그대로였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현석은 긴장감을 잃지 않은 채 빠르게 움직여 택시를 잡아 탔다.

    멀리서 소란이 일어났다. 설마 현석이 이렇게 갑자기 택시를 잡아 탈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내 빠르게 차를 공수한 레드독 길드와 최창수 일행이 현석이 탄 택시를 뒤쫓기 시작했다.

    현석을 태운 택시가 향하는 곳은 강원도 쪽이었다.

    < 레드독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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