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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9화 (19/326)
  • < 마력중독 >

    류혜연은 분명히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아닌 사람의 정보는 확인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한데 지금은 류혜연의 머리 위에 선명히 떠오른 이름이 보였다.

    [류혜연]

    현석은 여기서 더 나아가 눈에 더 마력을 흘리며 그녀의 이름에 집중했다.

    그러자 마치 창이 펼쳐지듯 그녀에 대한 정보가 쭉 떠올랐다.

    [류혜연]

    [타이틀-마력에 중독된]

    [레벨-0]

    [마력-25]

    [힘-2, 민첩-1, 체력-3, 지능-9, 정신력-4]

    현석은 이름 아래로 떠오른 그녀의 정보를 보며 눈을 빛냈다. 이래서야 플레이어나 다름없지 않은가.

    ‘레벨을 1로 만들어주면 플레이어로 각성하는 건가?’

    현석은 자신의 맞았다는 걸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오해한 류지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때요? 괜찮아요? 고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석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론이죠. 마력중독 맞네요. 고치는 건 간단하지만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으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마력중독을 고치는 건 사실 아주 간단했다. 마력을 없애면 된다.

    단, 그 과정에서 몸에 무리가 가면 안 된다. 아주 조심스럽게 마력을 뽑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예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쯤 후의 미래에는 각종 약재를 이용해 조금씩 마력을 뽑아냈다. 몸을 보호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석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력의 주인이라는 칭호를 획득할 정도로 뛰어난 마력 컨트롤 능력을 가졌지 않은가.

    얼마든지 류혜연의 몸에서 마력을 뽑아낼 수 있었다. 물론 몸에 손을 대야한다는 가벼운 문제가 한 가지 남긴 하지만 말이다.

    현석은 일단 타이틀에 집중했다. 사실 타이틀을 가진 플레이어보다 못 가진 플레이어가 압도적으로 많다.

    류지혜도 레벨만 높았지 타이틀은 없었다.

    ‘뭐…… 마력에 중독된이라는 타이틀이 크게 쓸모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마력에 중독된-마력 각성이 이뤄지지 않은 사람이 마력을 받아들였을 때 얻는 호칭. 특별한 조건이 충족되면 마력 각성을 이룰 수 있다.]

    현석은 타이틀을 확인하고는 눈을 빛냈다. 역시 이것도 예상대로였다.

    굳이 애써 여기까지 와서 확인한 보람이 있었다. 문제는 저 특별한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조건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듯했다.

    ‘이거…… 꼭 나를 위해 준비한 퀘스트 같네.’

    마력은 플레이어의 몸 속에서 특수한 길을 따라 흐른다. 일반인이 마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 길이 막혀있거나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길이 있느냐 없느냐가 플레이어로 각성하느냐 마느냐의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그 길은 누군가 강제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류혜연은 애초에 플레이어로 각성할 재능이 있었다는 뜻이지.’

    사실 그게 아니라면 마력중독이라는 게 일어날 리 없었다. 마력은 일반인에게는 그저 자극만 줄 뿐, 결코 몸에 머물지 않으니까.

    거기까지 정리한 현석은 진지한 표정으로 류지혜와 류혜연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의 심각한 표정에 두 자매가 긴장한 눈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현석은 순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현석의 겉보기 나이야 21살이지만, 실제 속에 있는 영혼의 나이는 이미 마흔을 넘었다.

    저렇게 어린 여자 둘이 저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보고 있으니 절로 흐뭇한 감정이 생겨났다.

    “흠, 흠. 자, 이제부터 설명할 테니 잘 들어요. 선택의 시간이 왔으니까.”

    “선택의 시간?”

    현석은 뒤로 살짝 물러나 두 자매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섰다. 그리고 둘을 슥 둘러본 다음 말했다.

    “두 가지 길이 있어요.”

    두 가지 길이라는 말에 류지혜와 류혜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석에게 집중했다.

    “첫째, 약물치료요법이 있어요.”

    두 자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익히 예상하던 바였다. 다만 그 약물이 얼마나 비싸고 귀한지에 따라 그녀들의 운명이 달려 있을 것이다.

    “그리 비싸지도 않고 구하기 어려운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 별로 걱정할 건 없어요. 다만 시간이 오래 걸려요.”

    기본적으로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천천히 마력을 빼내는 것인지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요?”

    “그게 끝인데요?”

    류지혜가 당황했다. 그게 끝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거기에 따른 대가를 아직 말하지 않았다.

    “이상한 대가를 원하는 건 아니죠?”

    현석이 피식 웃었다. 굳이 이런 데 대가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마력중독에 대해 확인해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만으로 충분한 대가를 얻었다.

    “자, 이제 두 번째 길에 대해 들어야죠.”

    “아, 선택할 게 또 있다고 했죠?”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류혜연을 쳐다봤다.

    “여기 이름이 혜연이라고 했나?”

    류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생긴 것과 어우러져 정말 귀여웠다.

    “두 번째 길은 헤연이가 플레이어로 각성하는 거야.”

    두 자매가 그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맴돌았다.

    그리고 이내 두 자매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예에? 플레이어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현석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했다. 굳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1번이랑 2번 중에 선택!”

    현석이 그렇게 말하고는 류지혜와 류혜연을 번갈아 쳐다봤다. 둘이 상의해서 선택하라는 뜻이었다.

    류혜연이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며 현석에게 물었다.

    “정말로…… 정말로 제가 원하면 플레이어로 각성할 수 있는 건가요?”

    현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그럼, 저 할래요.”

    류혜연의 단호한 말에 류지혜가 다급히 나섰다.

    “혜연아! 안 돼!”

    “언니!”

    “굳이 너까지 이 위험한 곳에 뛰어들 필요 없어. 아니, 그래선 안 돼.”

    “그럼 언니를 그 위험한 곳에 그냥 혼자 두란 말이야?”

    류지혜가 부드럽게 웃으며 류혜연의 머리를 만져주었다.

    “난 별로 안 위험해. 위험한 일은 안 하거든. 그러니까 절대 걱정할 필요 없어.”

    하지만 류혜연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대로 있으면 결국 언니 발목을 잡게 될 거야. 나…… 언제까지 집에서만 살 수는 없어, 언니.”

    류지혜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애쓰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류지혜는 다시 동생을 말려보려다가 류혜연의 눈빛을 보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저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예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저 생긴 것이 예쁜 게 아니었다. 거기에 담긴 빛이 너무나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 감정이고 빛인지 알기에 더는 동생을 말릴 수 없었다.

    결국 류지혜가 한 발 물러났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굳이 말이 필요치는 않았다.

    류혜연은 얼른 달려가 언니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언니, 고마워. 내가 정말 잘할게. 언니 걱정 안 시킬 거야. 두고 봐.”

    류지혜는 그런 동생을 가만히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자자, 우애는 나중에 나누고 이쪽부터 마무리 하죠? 나도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현석의 말에 두 사람은 얼른 떨어졌다. 그리고 얼굴을 살짝 붉혔다.

    외간 남자 앞에서 왠지 못 볼꼴을 보여준 것 같아서 좀 부끄러웠다.

    “자, 그럼 각성하는 걸로 하고…… 좀 아플 테니까 참아야 돼. 할 수 있지?”

    류혜연은 현석의 말에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고통을 견뎌왔는데, 잠깐을 더 못 버티겠는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피도 좀 토할 거야. 괜찮은 거니까 놀랄 필요 없고.”

    류혜연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현석에게 물으려다가 이내 입을 닫았다.

    ‘우리 언니랑은 무슨 관계지? 그냥 단순한 동료 같지는 않은데…….’

    류혜연은 현석이 지금까지 자신에게는 계속 반말을 했다는 것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왠지 어른이 말하는 것 같아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다.

    어쨌든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현석이 다가와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류혜연이 깜짝 놀라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어마어마한 고통이 파도처럼 온몸을 뒤덮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너무 아파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만일 그게 이렇게 아픈 건 줄 알았다면 한 번쯤 다시 고려해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사라졌다.

    “푸확!”

    류혜연의 입에서 시커먼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현석은 능숙하게 그녀의 얼굴을 옆으로 돌려 피가 바닥에 쏟아질 수 있도록 조치했다.

    시커멓게 죽은피가 그녀의 입에서 콸콸 쏟아졌다.

    그걸 지켜보는 류지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현석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마력을 류혜연의 몸으로 밀어 넣었다.

    타인의 마력을 컨트롤 하려면 두 배의 마력이 필요했다.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류혜연에게 끔찍한 말을 했다.

    “이제 첫 번째 단계가 끝났어. 그럭저럭 참을 만했지? 그런데 이제부터는 진짜 아플 테니까 이 악물고 참아.”

    류혜연이 그 말에 지독하게 아픈 와중에도 경악을 했다. 그냥 그만 두겠다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었지만 결국 그걸 내뱉지 못했다.

    너무 아파서 말도 잘 안 나왔고, 또 이걸 참았는데 여기서 포기하기가 너무 아깝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언니의 모습 때문이었다.

    류혜연은 독기 어린 눈으로 어금니를 꽉 물었다.

    하지만 그 독기와 결심을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거대한 고통이 그녀의 등에서 시작되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핏줄을 타고 고통을 주는 무언가가 온몸을 돌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점점 정신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그런데도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 * *

    “으음.”

    류혜연은 힘겹게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정신을 차린 순간 몸서리를 쳤다. 머리가 맑아지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그 지독한 고통이었다.

    “아으으.”

    류혜현은 진저리를 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 방에 자신 혼자였다.

    “가만, 설마 실패한 건가?”

    류혜연은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폈다. 몸은 아주 멀쩡했다. 그뿐 아니라 날아갈 것처럼 상쾌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몸이 가벼웠던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녀는 온몸에서 힘이 넘친다는 걸 깨달았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했다.

    ‘성공했구나!’

    플레이어가 되면 마력을 쓸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녀를 중독 시켰던 마력이 이제는 그녀의 힘이 되었을 것이다.

    류혜연은 벌떡 일어나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보고 점프도 해보고 하다가 이내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막상 플레이어가 되긴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문이 살짝 열렸다. 그리고 류지혜가 안으로 들어왔다.

    “언니!”

    너무나 반가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갑자기 뭔가가 북받쳐 오르더니 눈물로 변해 쏟아졌다.

    류지혜는 눈물을 흘리는 동생에게 다가가 가만히 그녀를 보듬어 주었다.

    이제 남은 건 류혜연을 차근차근 성장시키는 것뿐이었다.

    ‘내가 바닥부터 도와줄게.’

    그렇게 다짐하는 류지혜의 머릿속에 몇 시간 전 현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청난 재능과 잠재력을 가졌다고? 우리 혜연이가?’

    류지혜는 오늘 평생 놀랄 일을 다 놀란 듯했다. 아마 당분간은 이보다 더 놀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일을 마치자마자 다급히 떠난 현석을 떠올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조만간 다시 만나자고요.”

    다른 건 몰라도 동생을 구해준 보답은 꼭 해주고 싶었다. 아니, 무조건 해야 한다.

    두 자매의 마음에서 결연한 의지 하나가 단단한 땅을 뚫고 불쑥 돋아나 싹을 틔웠다.

    < 마력중독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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