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로 암시장 2 >
류지혜는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방금 두 개의 마정석을 각각 9억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팔아치웠다.
그리고 또 배낭에서 같은 마정석이 두 개 나오는 걸 보니 이젠 놀랄 힘도 없었다.
마정석 가격을 9억 언저리로 정한 셈이었다.
방금 마정석을 사들인 상인도 어이가 없는지 멍하니 현석의 손에 들린 마정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정석을 사지 못한 상인이 눈을 번득이며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9억에 팔지는 못하겠지만 그에 근접한 가격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석은 거기서 두 개의 마정석을 판 다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배낭에서 끝없이 나오는 마정석을 암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팔아치웠다.
류지혜가 정말 놀랐던 건 현석이 귀신 같이 마정석 파는 곳을 찾아다닌다는 점이었다.
마치 암시장 전체 지도를 외우고 있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종로 암시장은 그 규모가 상당했다. 한두 번 와서는 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입구를 다시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정도로 넓고 복잡한 곳을 현석은 거침없이 쏘다니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이 왔으면 저럴 수가 있지?’
그녀가 미리 조사하기로 현석이 플레이어가 된 건 이제 고작 세 달 남짓이었다.
그나마 한 달은 그녀와 거의 함께 하다시피 했다. 계속 쫓아다녔으니까.
하지만 그 동안 현석이 암시장에 간 건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암시장에 팔 물건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보면 볼수록 희한한 사람이었다. 류지혜는 반쯤 해탈한 표정으로 묵묵히 현석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현석이 마정석을 거의 처분할 무렵, 결국 류지혜는 궁금했지만 계속 참아왔던 의문 하나를 물었다.
“대체 그렇게 대단한 마정석들은 어떻게 구한 거예요? 제가 지켜본 바로는 계속 브론즈 1등급 던전만 클리어하지 않았나요?”
그 의문은 현석을 지켜보거나 함께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현석이 암시장에서 팔아치운 마정석들을 보면 일단 마력이 1000 이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판 것들은 2000이 넘어가는 마정석이었다.
2000마력이 넘어가는 마정석을 구하기 위해선 사실 최소 골드 등급 던전을 돌아야 한다.
한데 브론즈 등급 던전에서 그런 마정석을 구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석은 브론즈 등급에서만 사냥을 하는데, 가진 마정석은 골드 등급에서나 볼 법한 것들이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녀가 떠올린 건 다른 루트였다. 어쩌면 마정석을 구할 다른 방법이 있는 게 아닌가 가정한 것이다.
어쩌면 현석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녀는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답을 갈구하는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현석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마지막 한 군데 남았으니 조금만 기운 내죠.”
말을 돌려 대답해줄 생각이 없다는 뜻을 보여준 것이다. 류지혜도 아예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는지라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살짝 툴툴댔다.
“아직도 남았어요?”
현석은 피식 웃으며 손에 든 방패를 통통 두드렸다.
“이걸 팔아야죠.”
그 말과 행동에 류지혜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휙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그걸 팔게요? 아티팩트를요?”
“난 안 쓸 거니까요.”
류지혜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무슨 아티팩트를 자기 안 쓴다고 암시장에 내다 판단 말인가. 나중에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혹시 나중에 쓸 일 생길지도 모르니 그냥 갖고 계시는 게 어때요? 그리고 그거 얻은 지 얼마 안 된 거잖아요. 어떤 능력이 깃들었는지 제대로 파악한 다음 파는 게 나을 텐데요?”
아티팩트는 얻었다고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끔은 저주가 깃든 것들도 있었다. 그러니 확실히 파악되지 않은 아티팩트는 오히려 제값을 받고 팔기 어려웠다.
차라리 관리센터에 파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티팩트의 기능 따위 생각하지 않고 측정한 마력을 기준으로 정해진 가격으로 매입하니까.
류지혜의 진심어린 조언에 현석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상대의 진심을 확인하면 이쪽에서도 한 번쯤 진심을 보여주는 게 예의 아니겠는가.
“이 방패에 대해서는 대충 파악이 끝났어요.”
“예? 벌써요?”
류지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석과 그의 손에 들린 방패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티팩트의 성능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전문적인 아티팩트 연구자의 능력이 필요했다.
던전관리센터 산하에는 전문적으로 아티팩트만 주무르고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었다. 당연히 거기 소속된 연구원들 중에는 플레이어도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마력을 이용해 아티팩트를 여러 방법으로 자극하고 그에 따른 변화를 살펴 아티팩트의 성능을 확인한다.
또한 그런 일을 발전시켜 던전에서 나온 물품을 이용해 아티팩트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물건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였지만 나중에 이것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될지 현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기에 아티팩트의 성능을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리센터에서 구매하는 것이다.
얻은 건 그냥 팔고 말이다.
관리센터에서 보관하는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는 상당히 등급이 높은 기밀이었다.
그것은 관리센터가 가지는 또 하나의 힘이기도 했기에 절대 쉽게 유출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쪽에 확인을 문의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구매를 통해서 성능을 설명 받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이었다.
그래서 상당수의 플레이어들은 얻은 아티팩트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보관하곤 했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정보를 얻어 필요하면 쓸 수 있게 하려고 말이다.
“그냥 무작정 마력을 이용해 확인하신 건 아니죠?”
류지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가끔 그런 플레이어들도 있다. 하지만 제법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런 식으로 하다가 사고로 큰일을 겪곤 했다.
저주에 걸리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나왔고, 주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때도 있었다.
현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요. 원래 알던 아티팩트일 뿐이니까. 사실 브론즈 등급에서 나오는 아티팩트야 뻔하잖아요?”
“그건 또 그렇긴 하네요.”
류지혜는 현석의 손에 있는 방패와 그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번갈아 바라보며 대답했다.
사실 검은 그녀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걸 쓰는 사람도 봤고 말이다. 흔하다면 흔한 검이었다. 하지만 모양이 같다고 같은 아티팩트라고 단정하면 큰 코 다친다.
현석은 마력이 깃든 눈으로 방패를 확인했다.
[마력을 이용한 공격을 막을 때 쓰는 방패. 100마력의 힘을 중화시킨다. 마력의 작용으로 기동력이 하락한다.]
아주 단순한 방패였다.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방패였으니까. 게다가 기동력이 하락하는 건 현석의 전투 스타일을 봤을 때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절대 쓸 일이 없는 아티팩트였다. 너무 성능이 낮기도 했고.
반면 현석이 가진 칼은 좀 달랐다.
[예리한 강철 검]
[검 날을 항상 예리하게 만들어주는 마력이 깃든 검. 공격 시 300마력의 타격을 추가로 집중해 준다. 손에 들고 싸울 때 민첩+1의 효과가 있다.]
사실 이렇게 아티팩트에 이름이 따로 붙어 있다는 사실은 이 검을 보면서 처음 알았다. 사실 예전에는 이런 정보 자체가 아예 보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하여간…… 신기한 능력이야.’
심안이라는 스킬이 가진 능력은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그저 마력을 이용해 그것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그런 단순한 스킬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처음에는 마력에 깃든 정보를 자동으로 분석하고 읽어내 현석 자신이 가진 기억과 융합해 정보를 출력하는 줄 알았다.
한데 겪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뭔가 더 깊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유용하게 써먹어 주지.’
여전히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류지혜를 보며 현석은 한 번 피식 웃어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감시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분노, 그리고 허탈함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심경이 복잡하게 담겨 있었다.
현석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아티팩트를 팔 만한 곳으로 향했다.
이곳 종로 암시장에서 아티팩트를 팔려면 단연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 다른 곳은 다 사기꾼이나 다름없으니까.
현석과 함께 나란히 걷던 류지혜의 얼굴에 점점 의아함이 깃들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거죠? 이쪽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암시장의 규모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 엄청난 넓이의 암시장이 모두 꽉꽉 채워져 있는 건 아니었다.
부스는 만들어져 있지만 텅 비어 있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빈 부스의 창고를 옆 부스에서 이용하기도 했다.
현석이 걷고 있는 곳은 텅 빈 부스가 줄줄이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빈 곳이었다.
그러니 류지혜가 의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또 뒤쫓아 오던 감시자는 어떻겠는가.
그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저 멀리 서서 이쪽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부스와 부스 사이로 난 골목으로 현석과 류지혜가 들어가 버리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물론 대놓고 길을 따라 걷지는 못하고 빈 부스에 몸을 숨겨가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어쨌든 현석은 감시자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는 데 또 성공했고, 그렇게 골목을 몇 번이나 돌고 나서야 한 부스 앞에 멈춰 섰다.
류지혜는 놀란 눈으로 그 부스 안을 들여다봤다.
“여기에도 이런 게 있었네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빈 부스였는데, 딱 여기만 판이 벌려져 있었으니까. 게다가 부스를 꽉 채우고 있는 건 모두 아티팩트였다.
“이런 데서 저런 걸 파는데 장사가 되나요?”
“당연하지.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니까.”
그뿐이 아니라, 나중에는 이 근처가 이 부스 때문에 번성하게 된다. 물론 최소 5년은 지나야 벌어질 일이었지만, 이곳은 암시장 내의 아티팩트 거리가 될 테니까.
현석이 부스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서 밖을 유심히 살피던 노인이 눈을 날카롭게 번득였다.
“못 보던 놈인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노인의 말에 현석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암시장인데 그딴 게 중요합니까? 물건만 있으면 되지.”
그렇게 말하며 방패를 탁자 위에 턱 올려놓은 현석의 모습에 노인이 요놈 봐라? 하는 표정으로 현석을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봤다.
“당분간 안 올 거니까 지금 봐도 별로 쓸 일 없을 걸요? 눈도장은 나중에 다시 왔을 때 찍으시는 게 나을 겁니다.”
노인의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번쩍 치는 듯했다. 그의 화끈한 눈빛에 현석 옆에 있던 류지혜가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났다.
‘뭐, 뭐지? 저 할아버지?’
류지혜가 멍하니 노인을 보고 있는 사이 현석이 전혀 위축되지 않은 표정과 태도로 한 발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방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얼마 쳐주실 겁니까?”
노인은 방패를 슥 내려다본 다음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여기가 무슨 관리센터도 아니고 가격 너무 후려치시는 거 아닙니까?”
노인이 또 요놈 봐라? 하는 표정으로 현석을 뜯어봤다. 하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대체 어떤 놈한테 무슨 소리를 듣고 왔는지 모르지만…… 이런 허섭스레기 같은 방패에 돈 낭비할 생각 없다.”
현석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황노인이었다. 실제로 그의 얼굴을 본 건 처음이고, 만난 시점도 사실 5년 뒤의 일이지만 실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선물로 드리죠.”
“뭐?”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눈으로 노인이 현석을 노려봤다.
그리고 류지혜 역시 놀란 눈으로 노인과 현석 그리고 방패를 번갈아 바라봤다.
한동안 부스 안에 싸한 공기가 감돌았다.
< 종로 암시장 2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