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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5화 (15/326)
  • < 종로 암시장 1 >

    현석은 아는 척을 할까말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쪽에서도 현석을 발견한 것이다.

    정말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한 순간에 고개를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어? 여긴 어떻게 왔어요?”

    현석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처분할 게 좀 있어서요. 그쪽은요?”

    류지혜는 대답 대신 묘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설마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아니, 종로 암시장에 대해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긴, 뭔가 좀 신비한 구석이 있긴 했지.’

    그녀는 밝게 웃으며 미뤘던 대답을 했다.

    “좀 구할 게 있어서요. 구하기 어려운 거라서 혹시나 하고 왔는데 역시 없는 것 같네요.”

    ‘구하기 어려운 거?’

    현석은 그 말을 하는 순간 잠깐이지만 류지혜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지는 걸 봤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지만 현석이라면 충분히 그걸 구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꼭 그게 아니라도 그걸 대체할 수 있는 아이템을 알려줄 수도 있고 말이다.

    미래의 던전관리센터 한국지부장에 오를 귀한 몸인데 그 정도 수고로 인연을 질기게 만들어 놓는다면 그것 또한 남는 장사이리라.

    ‘뭐…… 나중 일은 아직 모르지만.’

    아마 이대로 모른 척 헤어지면 그녀는 예정된 길을 따라 가게될 것이다. 하지만 현석이 개입한 순간부터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녀의 미래가 바뀔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 현석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는 미래를 알고 있는 특별한 자였으니까.

    “구하고 있는 게 뭔데요?”

    현석이 지나가듯 물었다. 대답해주면 좋고 아님 깔끔하게 포기하면 된다는 심정이었다.

    류지혜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 성수요.”

    “성수?”

    “못 들어봤죠? 굉장히 구하기 어려운 거라서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아요.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모든 성수는 한 사람이 관리하거든요.”

    못 들어봤을 리가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성수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바로 현석이리라.

    성수의 역사에 대해 읊으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성수는 미래에 그만큼 많이 쓰이고, 또 오랫동안 연구, 발전 되어왔다.

    “성수는 뭐 하려고요? 어디 아픈 데 있어요?”

    그 말에 류지혜의 눈이 동그래졌다.

    “알아요?”

    현석이 피식 웃었다.

    “게임 좀 해본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겠네요.”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성수의 초기 역사에 대해 떠올려봤다.

    ‘그러니까…… 초기에 성수를 가지고 만든 게…….’

    현석이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엘릭서?”

    물론 그 앞에 프로토타입이라는 말은 빠졌다.

    초기에 성수를 가지고 인간들이 가장 먼저 연구한 것이 바로 그걸 이용한 치료제였다.

    처음 성공한 치료제인 엘릭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나중에는 진짜 탁월한 성능을 가진 엘릭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초기에 만든 엘릭서, 그러니까 프로토타입 엘릭서는 결국 포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약이 되었다.

    물론 포션도 마찬가지로 프로토타입 엘릭서의 발전형이었다.

    힐링포션과 마나포션 두 가지가 있었는데, 힐링포션은 외상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며, 마나포션은 마력 회복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두 포션 모두 베이스는 성수이기 때문에 힐링포션을 마시더라도 마력회복에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고, 마나포션을 먹어도 외상 치료에 제법 도움이 된다.

    그런 내용을 떠올리며 중얼거린 말에 류지혜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엘릭서까지 아세요? 그건 정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건데…….”

    당연하다. 아직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부작용이 있고, 정확한 효능이 뭔지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딱히 그런 약을 쓸 정도로 아픈 데가 있는 것 같진 않은데…….”

    이 시기에 개발된 엘릭서는 마력보다는 외상에 더 치우쳐 있었다. 물론 아직 그런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류지혜의 몸에는 드러난 외상은 없었다.

    “혹시 보이지 않는 곳에 흉터라도 있어요?”

    류지혜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니라 제 동생이 좀 아파요.”

    “동생?”

    현석은 그녀에게 동생이 있을 줄은 몰랐기에 좀 놀랐다. 한국지부장이 될 무렵의 그녀는 혈혈단신이었으니까.

    현석은 그제야 그림이 좀 꿰맞춰졌다.

    ‘그러니까…… 관리센터에 엘릭서로 묶여 있다가 동생이 죽은 모양이네.’

    확실히 그때 봤던 류지혜의 성격과 지금 류지혜의 성격은 많이 달랐다. 마력패턴이 아니었다면 현석도 그녀가 동일인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생이 죽으면서 뭔가가 변한 모양이네.’

    그것이 성격이든 생활이든, 삶의 목표든 말이다.

    “어디가 아픈데 엘릭서까지 찾아요? 엘릭서가 사실 이름처럼 대단한 약은 아닌데?”

    류지혜는 잠시 머뭇거렸다. 말하기 곤란하거나 꺼려지는 듯했다. 현석은 그녀가 말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그저 담담히 있었다.

    그게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던전 병에 걸렸어요.”

    “던전 병?”

    전혀 생소한 이름에 현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병이 있었나? 던전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걸 보면 던전과 관계된 병이 분명한데, 현석은 지금까지 그런 병이 있다는 얘기 자체를 들어보지 못했다.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이 던전에 잘못 노출되면서 걸리는 병이에요. 주기적으로 엘릭서를 먹지 않으면 발작이 심해져요. 의사 말로는…… 발작을 제때 멈춰주지 않으면 죽을 거래요.”

    그녀는 억지로 밝은 미소를 유지하려 애쓰며 담담히 설명했다.

    현석은 그녀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게 무슨 병인지 알아차렸다.

    ‘마력중독이었구나.’

    뭔지 모르니 던전병이라고 칭한 모양이었다. 상당한 희귀병인데 그 병에 엘릭서는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병을 악화시킨다.

    엘릭서의 베이스는 성수다. 그리고 성수는 마력이 고도로 집약된 마력의 액체였다.

    마력 중독인 사람에게 마력을 주입하면 당연히 일시적으로 증세가 호전된다. 하지만 그건 알콜중독인 사람에게 술을 먹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마 이대로 엘릭서를 먹이다보면 결국 중독 증세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이다.

    현석은 마력중독의 가장 확실한 해결책 하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과연 성공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얼굴에 고민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다.

    류지혜는 의아한 눈으로 그런 현석을 빤히 바라봤다.

    ‘걱정하는 건 아닌 거 같고…… 고민하나? 뭘 고민하지? 설마 엘릭서나 성수를 갖고 있나?’

    류지혜의 머릿속에 번쩍 불이 들어왔다. 만일 그렇다면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서라도 얻어내야 한다.

    추경훈이 모든 성수의 유통을 손에 틀어쥐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가 류지혜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성수의 양은 정해져 있었다. 양이 그리 많지 않았다.

    반면 그녀의 동생인 류혜연은 갈수록 많은 양의 엘릭서를 원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혹시…… 엘릭서나 성수를 갖고 계신 건가요?”

    현석은 그녀의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류지혜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현석은 그걸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동생한테 걸린 병…… 뭔지 내가 좀 알 것 같긴 한데…….”

    류지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방금 말씀 드렸잖아요. 던전 병이라고…….”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 볼일부터 마무리 하고 자리를 옮기죠. 조용한 곳으로.”

    현석의 말투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에 류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는 흠칫 놀라 현석을 바라봤다.

    ‘정말…… 보통 사람은 절대 아니야.’

    그녀는 그 판단 하나만으로 현석을 따라가기로 마음 먹었다.

    현석이 앞장서서 움직이자, 류지혜가 현석 옆으로 가 나란히 걸었다.

    그리고 현석을 감시하던 자가 뒤쪽 멀찍이서 그를 따라갔다.

    현석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여긴 암시장이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고, 또 아무리 추경훈이라도 함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관리센터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바로 암시장이었다. 이들이 마음먹고 분탕질을 치겠다고 나서면 나라가 들썩일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원인을 제공한 추경훈만 곤란해질 텐데 굳이 그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리 없었다.

    암시장은 지하에 마련된 거대한 공간에 상인들이 각각 작은 부스를 가지고 물건을 사고팔았는데, 각 부스마다 특별히 다루는 물건들이 있었다.

    현석이 찾는 건 마정석 쪽이었다. 일단 가진 마정석을 다 처분해 돈으로 만든 다음, 그걸 또 유망주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아마 다음 계획에 따라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죽을 때까지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현석은 부스로 이루어진 복잡한 골목을 빠르게 이리저리 지나쳐갔다.

    갑자기 걸음을 빨리 하는 바람에 류지혜조차 하마터면 현석을 놓칠 뻔했다.

    그러니 쫓아가던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그의 발걸음이 다급해졌다. 하지만 결국 그는 현석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젠장. 이거 잘못하면 난리 나겠는데?”

    그는 서둘러 주위를 살피며 현석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자마자 바로 옆 부스에서 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맙습니다.”

    현석이 부스의 주인에게 인사하자 그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야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뭐. 언제든 필요하면 또 이용하라고.”

    자리를 떠서 사내가 간 방향과 반대로 걸음을 옮기는 현석의 모습을 류지혜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저런 걸 어떻게 아셨어요?”

    현석은 그렇게 묻는 류지혜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앞을 봤다.

    “암시장에 몇 번 온 사람은 다 알아요.”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현석의 모습에 류지혜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럼 암시장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데도 그런 것조차 모르는 자신은 대체 뭐란 말인가.

    “가끔은 옆이나 뒤도 보면서 살아요. 앞만 보고 달리니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겁니다.”

    그 말에 류지혜가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가끔 이럴 때 보면 정말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남자 같지가 않았다.

    현석은 그런 반응을 보이는 류지혜를 보며 피식 웃고는 걸음을 좀 서둘렀다. 감시자가 오기 전에 마정석을 최대한 빨리 나눠 처분해야 했으니까.

    류지혜는 현석을 따라다니면서 놀라고 또 놀랐다. 그의 배낭에서 끝없이 나오는 마정석들 때문에 한 번 놀라고, 또 너무나 능숙하게 그걸 팔아치우는 모습에 또 놀랐다.

    현석은 마치 암시장에서 전문적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 같았다. 값을 후려치려는 암시장의 장사꾼들을 상대로 조금도 손해 보지 않고 후한 값에 마정석을 차례차례 팔아치웠다.

    “대체…… 마정석을 몇 개나 갖고 있는 거예요? 헐…… 또 나오네. 아직도 남았어요?”

    게다가 이번에 나온 마정석은 그 크기가 지금까지 팔아치운 것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최소 2000마력 이상. 저건 여기서 잘만 팔면 7억도 받을 수 있을 거야.’

    아직 질 좋은 마정석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마력이 높은 마정석은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고 있었다.

    현석이 마정석을 꺼내자마자 근처에 있던 부스 두 군데에서 상인들이 튀어나와 현석의 소매를 꽉 잡았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눈싸움을 벌였다.

    현석이 손에 든 마정석은 암시장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매력적인 매물이었다.

    현석은 소매를 붙잡힌 채로 배낭에서 마정석 하나를 더 꺼냈다. 똑같은 마정석이었다.

    상인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자, 가격 좀 제시해 보시죠.”

    현석의 말에 상인들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다시 불똥이 튀었다.

    이건 무조건 내가 사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로를 무섭게 노려봤다.

    < 종로 암시장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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