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드 3 >
레드드레곤 길드는 100명이 넘는 길드원이 소속된 큰 길드였다.
물론 현석이 죽을 무렵인 20년 후에는 100명짜리 길드는 소규모에 불과하다. 레드드레곤 길드는 그때가 되면 길드에 소속된 사람의 수가 3000명을 훌쩍 넘어간다.
물론 그 3000명이 전부 플레이어인 것은 아니고, 일반 직원들도 엄청나게 많긴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 규모는 되어야 거대 길드라 불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길드가 활성화되는 초창기였다. 그러니 길드원이 100명만 되어도 상당히 큰 길드라 할 수 있었다.
그 레드드레곤 길드의 마스터는 한중현이라는 플레이어였다. 레벨이 83이나 되는 초고렙 플레이어였는데, 그는 플레이어 초기부터 삼현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가 삼현그룹 회장의 손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무려 재벌3세가 만든 길드이니 레드드레곤 길드가 가지는 힘과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 레드드레곤 길드의 마스터인 한중현은 비서실장의 보고를 듣고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제법 재미있는 정보로군요.”
“그렇습니다. 정보 제공자가 다름 아닌 추 지부장이니 신뢰도도 제법 높을 테고 말입니다.”
사실 안 그래도 최근 현석에 대한 정보 중 일부를 입수해 조사 중이었다. 레드드레곤 길드뿐이 아니라 다른 유력 길드들도 현석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한데 그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가 도착한 것이다.
“이 정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중현의 질문에 비서실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영입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향후 길드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중현이 살짝 놀란 눈으로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진 실장님께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내리는 걸 왠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한중현이 놀랄 만했다. 그의 비서실장은 한중현을 평가할 때도 신랄하기 그지없었다. 어찌나 평이 박한지 순간 짜증이 날 정도였으니까.
그의 능력을 잘 알기에 드러내놓고 짜증을 내진 않았지만 내심 서운해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 그를 더 겪게 되면서 그게 얼마나 큰 그의 장점인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대체 뭘 보고 그런 평가를 내리는지 말이다.
“아직 직접 보지 못했으니 정보만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실제로 보고 겪으면 얘기가 또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긴……. 그럼 이 정보가 제대로라면 정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겁니까?”
비서실장이 눈을 빛냈다.
“이 정보가 진짜라면 아마 이 채현석이라는 자는 마수로부터 마정석을 뽑아내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한중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연 그럴까요?”
“거의 확실합니다. 게다가 마력감지기로부터 마정석을 감추는 방법도 알고 있을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한중현은 더 믿기 힘든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생각과는 좀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허투루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지금까지 비서실장이 보여준 판단력이 너무 뛰어났다.
“일단 최고 대우를 해서라도 데려와야겠군요.”
“제 판단은 그렇습니다.”
한중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위에 놓인 서류에 직인을 찍었다.
쾅!
“즉시 시행하세요.”
비서실장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서류를 받아 밖으로 나갔다.
“채현석이라…….”
한중현은 책상위에 흩어져 있는 현석에 관한 자료를 슬쩍 내려다봤다.
만일 최고 대우를 약속하고 데려왔는데 정작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쭉정이라도 상관없었다.
나름대로 처리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하여간…… 피곤한 자리야.”
한중현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피곤했지만 무슨 수를 쓰든 해내야만 했다. 그래야 할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을 테니까.
“날 무시하던 놈들…… 나중에 보자 누가 웃고 누가 무릎을 꿇게 될지.”
한중현은 섬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의자를 뒤로 젖혀 누웠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지금은 일단 좀 쉬고 싶었다.
* * *
현석은 커다란 배낭을 어깨에 걸쳤다. 그의 방에는 던전에 관계된 것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동안 모은 모든 것을 배낭에 쓸어 담은 것이다.
현석의 허리춤에는 초반에 던전을 클리어 하면서 얻은 검이 매달려 있었다.
두 번째 얻은 아티팩트인 방패는 손에 들고 있었다.
현석에게는 사실 방패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이걸 관리센터에 팔 생각은 없었다.
관리센터에는 최소한의 마정석만 팔아도 충분했다.
현석은 그동안 던전 생성지역에서 나오면서 등록한 모든 마정석을 관리센터에 팔아치웠다.
그렇게 해서 생긴 돈은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
어차피 당분간은 돈을 쓸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유망주에 투자해 놓는 것이 훨씬 나았다.
주식 판에 전문적으로 뛰어들 생각이라면 미래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전체적인 기업들의 흐름이라면 대충 파악하고 있기에 얼마든지 효과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투자한 돈이 벌써 수십억에 달했다.
‘빨리 아공간을 만들어야겠어. 이거 불편해서 살겠나.’
현석이 살던 미래에도 아공간을 가진 플레이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손에 꼽을 정도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현석의 팀장이었다.
현석은 그 생각만 하면 이가 갈렸다. 사실 그 아공간은 원래 현석의 것이 되었어야 했다. 한데 팀장이 선수를 쳐서 가로챈 것이다.
아티팩트의 형태가 아닌, 아공간 자체가 플레이어에게 귀속되는 형태였기에 다른 아공간보다 훨씬 가치가 높았다.
아마 그 팀장은 이제 그걸 얻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현석과 함께하지 못할 테니까.
현석이 모든 물건을 들고 집을 나서는 이유는 현석의 주변에 접근하는 자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마 레드드래곤 길드의 인물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였으니 경쟁 길드에서도 움직였을 확률이 높았다.
아마 저들은 현석이 사라지면 집부터 뒤질 것이다. 한데 거기에 파워업 키트나 마정석들을 그냥 방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파워업 키트가 하나라도 풀리면 아마 현석은 뭘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감금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을 토해낼 때까지 모진 고문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반면 마정석은 얘기가 좀 다르다. 현석은 교묘하게 마정석을 풀었다. 아마 눈치가 좀 있고 감이 뛰어난 자들이라면 대번에 뭔가 있다고 판단했으리라.
사실 좀 더 철저히 감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난 두 달 간 현석이 한 일을 생각하면 어차피 관심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의심으로 끝날 정도로만 조절했다. 어차피 암시장을 이용하면 저들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행동에 옮길 때쯤에는 이미 늦지. 난 여기 없을 테니까.’
현석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지난 생에서는 눈이 안보였기 때문에 정말 어이없이 공개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걸 혼자 독점할 것이다.
최소한의 힘을 갖춰야만 한다. 그래야 향후 현석이 하려는 일이 조금이나마 안전해질 테니까.
현석은 생각을 정리하며 걸음을 재촉해 차에 올랐다.
돈을 벌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차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집과 던전, 그리고 관리센터를 빠르게 오가려면 차는 필수였다.
다만 좋은 차를 사진 않았다. 어차피 조만간 버리고 새로 사야 할 테니까.
부우웅!
차가 출발했다. 현석은 능숙하게 운전해 종로로 향했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종로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암시장이 열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종로에 도착한 현석은 대충 차를 주차한 다음, 검을 허리에 차고, 배낭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패를 손에 든 다음, 걸음을 옮겼다.
‘지금쯤 집은 난리가 났겠군.’
아마 그를 감시하던 자들은 먼저 집부터 뒤졌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모은 아티팩트나 재료를 보관하기 위해 금고에 가까운 창고를 비밀스럽게 보유하고 있었다.
‘최초로 아공간을 얻은 사람이 누구였더라…….’
현석이 살아 있을 때도 아공간을 보유한 사람은 전 세계를 통틀어 백을 넘지 않았다.
최초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기는 어렴풋이 떠올랐다.
‘한…… 5년쯤 후로군.’
그만큼 난이도가 높은 마법이라는 뜻이다. 등급이 아주 높은 던전을 완벽하게 클리어해야 얻을 수 있는 아티팩트였으니까.
아직 골드 등급에서 허덕이고 있는 지금의 플레이어 수준으로는 아공간의 ‘아’자도 못 볼 것이다.
적어도 플래티넘을 넘어서 다이아 등급에는 발을 걸쳐야 아공간 아티팩드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난 예외고.’
현석은 그 생각을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물론 웃고 있다고 긴장을 푼 건 아니었다. 지금도 그를 쫓아오는 감시의 눈이 있었으니까.
아마 그들도 대충은 눈치챘을 것이다. 현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현석은 주변의 마력을 감지하는 일을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직 힘이 없는 지금은 무조건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었다.
현석은 자연스럽게 종로에서 가장 복잡한 거리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중간쯤 있는 노래방에 들어갔다.
카운터에 있던 주인이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0번 방 비었습니까?”
이 노래방에는 없는 방번호였다. 하지만 주인은 주위를 슥 살피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었다.
현석은 능숙하게 주인의 뒤로 돌아가 교묘하게 가려져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문을 열고 안으로 슥 들어갔다.
그곳이 바로 종로 암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안은 캄캄했다.
‘여기가 원래는 이렇게 어두웠구나.’
예전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그때는 이미 눈이 안 보일 때라서 이렇게 어두운지 몰랐다.
정말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현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대체 다른 플레이어들은 여길 어떻게 지나갔을지 궁금했다.
‘아무리 플레이어라 해도 안 보이면 계단을 구를 것 같은데…….’
이곳 계단은 높이가 모두 제각각이라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내려가다가 잠시만 방심해도 그대로 균형을 잃고 구를 것이다.
‘나야 상관없지만…… 여기가 눈이 안 보이는 사람만을 위한 곳도 아닐 테고 말이야.’
그렇게 의아해 하는 순간 갑자기 천장에서 빛이 쏟아졌다. 누군가 등을 켠 것이다.
현석은 뒤를 돌아봤다. 막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그도 당황한 눈으로 현석을 보고 있었다.
‘아하, 벽에 마력을 흘리면 불이 들어오는 구조였군.’
현석은 사내가 손을 짚은 곳으로 흐르는 마력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의 흐름은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현석은 당황한 사내를 향해 피식 웃어주고는 다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저 사람이 바로 지금까지 자신을 쫓아오던 감시자였다.
‘나머지는 밖에서 대기 중인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는데 하나만 내려온 걸 보면 나중에 현석이 밖으로 나갈 때를 대비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현석은 별 거리낌 없이 암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하군.’
지하 깊은 곳에 만들어진 곳치고는 상당히 쾌적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화려한 불빛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마치 야시장을 보는 듯했다.
‘이런 곳인 줄은 몰랐네.’
아무도 얘기를 안 해주니 야시장 같은 분위기인 줄은 몰랐다. 예전의 현석에게 이곳은 그저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시장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게 암시장에 발을 들인 현석은 살짝 놀란 눈으로 한 쪽을 쳐다봤다.
그곳에 아는 사람이 있었다.
< 길드 3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