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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3화 (13/326)
  • < 길드 2 >

    현석의 천둥잠자리 사냥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그 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그야말로 막대했다. 또한 쌓인 파워업 키트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슬슬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현석은 침대에 앉아 창밖을 내다봤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여름이었는지라 해가 제법 높이 떠 있었다.

    가만히 하늘을 바라봤다.

    새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군데군데 떠다니고 있었다. 평범한 하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이렇게 하늘을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시는 잃지 않으리라.’

    다시 얻고 나니 시력의 소중함이 훨씬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걸 잃는다는 생각만으로 온몸이 조각조각 찢어질 것만 같았다.

    현석은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켰다.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걸 뇌리에 각인시켰다.

    그는 미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와 관련된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는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다시 눈을 잃을 일이 없었다. 물론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얼마든지 극복 가능했다.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니까.’

    아주 여러 가지 의미로 예전의 현석과는 다르다.

    일단 예전 이맘때의 현석과 비교해 월등히 강하다. 시력을 상실한 채 20년 가까이 던전에서 마수와 싸우며 체득한 감각만 해도 엄청난 무기였다.

    또한 그렇게 20년 동안 쌓은 전투감각은 또 어떠한가. 아마 현 시점에서 그 어떤 플레이어도 현석의 전투감각에 비견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타고난 싸움꾼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20년간 생사를 오가며 다져진 현석의 전투감각과 싸움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이 있었다. 어쩌면 앞의 두 가지보다 훨씬 중요하고 강력할지 모를 능력이었다.

    현석은 마력을 움직여 눈으로 보냈다.

    그의 앞에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정보가 빼곡히 채워진 창이었다.

    마치 게임에 등장하는 상태창 같은 모습이었다.

    [이름-채현석]

    [타이틀-마음의 눈을 뜬, 과거로 되돌아온, 마력의 주인]

    [레벨-32]

    [마력-420]

    [힘-21, 민첩-27, 체력-20, 지능-21, 정신력-35]

    [물리-46, 화염-5, 냉기-5, 독-5, 전격-36, 빛-5, 어둠-5]

    [스킬-심안]

    단순한 상태창이었지만 현재 자신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더구나 이건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현석은 스킬의 심안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그러자 새로운 창이 펼쳐졌다.

    [심안-마음의 눈을 뜬, 과거로 되돌아온, 마력의 주인 타이틀이 있어야 획득 가능한 스킬. 능력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마력이 담긴 모든 것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심안이라는 스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력을 제대로 집중한다면 상대방의 상태창도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레벨이 너무 심하게 차이나면, 그러니까 현석이 가진 마력 컨트롤 능력으로도 적의 마력패턴을 파악할 수 없으면 확인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건 쓰기에 따라서는 정말 대단히 유용한 힘이 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처음 보는 마수로부터 정보를 얻어내, 가장 효과적인 공략법을 유추해 낼 수도 있었다.

    물론 당분간은 그런 마수가 존재할 리 없다. 현석의 레벨이 어지간히 높아지지 않으면, 그가 처음 접하는 마수를 보기는 정말 쉽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회귀 전의 지식만으로 먹고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현석은 이번엔 타이틀에 집중했다. 그러자 새로운 창이 또 촤르륵 펼쳐졌다.

    [마음의 눈을 뜬-시력에 의지하지 않고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호칭. 오감과 마력 감지를 이용해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정신력+10]

    [과거로 되돌아온-미래의 죽음을 통해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온 자에게 주어지는 호칭. 모든 저항+5]

    [마력의 주인-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호칭. 손발을 움직이거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마력을 다룰 수 있다. 마력+100]

    하나하나 대단한 타이틀이었다. 또한 타이틀의 효과도 제법 쓸 만했다.

    현석의 목표는 제법 높았다. 그는 죽기 직전 사냥하던 던전으로부터 받은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분명히 뭔가가 있어.’

    이 세상에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는 던전에는 분명히 어떤 비밀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은 결코 세상에 이롭지 않을 것이다.

    현석은 그 비밀을 반드시 캐낼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위기가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내가 죽던 시점에는 이미 늦은 거였을 수도 있고.’

    되살아나 과거로 온 이후,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되면 너무 늦는다고.

    현석은 자신의 감을 믿었다.

    “자, 그럼 슬슬 오늘 일과를 시작해 볼까?”

    조만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현석은 과연 최창수 일행이 어떻게 나올지 생각해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 * *

    “잘 못 들었습니다?”

    최창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평소와 다르게 현석에게 존댓말까지 했다. 그의 눈은 휘둥그레진 채 다시 작아지지 않았다.

    “오늘이 마지막 사냥이라고. 앞으로는 함께할 일이 없는 거지.”

    “가, 가,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하지. 왜? 내가 뭐 서운하게 한 거라도 있어? 우리 제법 괜찮았잖아? 안 그래?”

    최창수는 내심 찔리는 게 있었다. 얼마 전 동료들과 보수에 대해 논의했던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다.

    ‘설마 누가 그걸 찌른 거야?’

    최창수는 고개를 휙 돌려 동료들을 순간적으로 노려보듯 쭉 훑었다.

    하지만 다들 하나같이 비슷한 표정이었다. 놀람과 불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원하던 것 아닌가? 자유 말이야.”

    현석의 말에 최창수의 몸과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그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의 동료들 역시 비슷한 표정이었다.

    “자유라고? 완벽하게 해독해 주겠다는 뜻인가?”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을 이용해 이 정도 헐값에 부려먹었으면 충분했다. 파워업 키트도 충분히 모았다.

    아직 혼자서 변종 천둥잠자리의 무덤을 완벽 깔끔하게 클리어 하는 건 버거웠지만, 조만간 그렇지 않게 될 것이다.

    현석에게는 정말 중요한 비장의 수가 하나 있었다.

    최창수 일행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막상 자유를 얻게 된다니 좋으면서도 더 이상 꿀을 빨 수 없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지난 두 달 동안 돈을 쓸 시간도 없어서 현석에게 받은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그 액수가 몇 억이었다.

    거기에 아직 채 처분하지 않은 마정석도 여러 개 있었다.

    “정말…… 정말 더 이상 천둥잠자리는 안 잡을 생각이야? 정말로?”

    현석이 차가운 눈으로 최창수를 쳐다봤다. 최창수는 그 눈빛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네 한계는 고작 여기까지인가?”

    그 말에는 사람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최창수가 발끈해서 현석을 노려봤다.

    “내가 지금까지 보고 겪은 거 싹 불어 버릴 수도 있어. 원하는 사람이 아주 많을 거 같은데?”

    최창수의 말에 현석이 피식 웃었다.

    “맘대로 해봐. 아니, 꼭 그렇게 해. 정말 기대 되는데?”

    지나칠 정도로 여유로운 현석의 모습에 최창수는 또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뭐야? 거기까지 대책이 마련되어 있는 거야? 대체 저건 뭐 하는 놈이야?’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렇게나 철저하고 능수능란하단 말인가.

    “저, 정말 말한다?”

    “그러라니까? 그럼 굳이 오늘 사냥은 필요 없겠군.”

    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최창수는 딱 이 정도 인물이었다. 처음 본 판단이 정확했다.

    사실 그가 무슨 말을 퍼트리건 상관없었다. 세상에 그 말을 믿고 확인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변종 천둥잠자리가 일반 마수로 나타나는 던전이라니. 그런 건 실버나 골드 등급에 가도 없었다.

    아주 특별한 처치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던전이었다.

    처음 변종 천둥잠자리를 봤을 때, 현석이 눈을 번득였던 이유도 거기 있었다.

    현석이 알기도 그렇게 던전 자체를 오염시켜서 내부의 마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딱 세 가지뿐이었다.

    천둥잠자리의 둥지는 그 셋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낮으면서 유용한 던전이었다.

    나머지 두 개는 위험도는 극도로 높아지는데 막상 쓸모가 없어서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레시피였다.

    ‘물론 난 나중에 그것도 써먹을 생각이지만.’

    현석은 죽을 무렵에 그 두 던전을 어떻게 쓸지 구상해 뒀다. 죽는 바람에 써먹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마력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면 알아도 써먹을 수 없기에 현석이 아니면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아무튼 현석은 최창수 일행과는 여기까지라고 결론을 내리고 품에서 초록색 알약 여섯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완벽한 해약이야. 좀 쓰긴 하겠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할 거야.”

    사실 완벽한 해약이라는 것도 가짜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최창수 일행은 중독된 게 아니었다. 그들은 현석의 심리전과 듣도 보도 못한 아이템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것뿐이었다.

    어차피 현석은 이들과의 인연이 여기까지일 거라고 처음부터 예상하고 모든 일을 계획했다.

    최창수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의 알약과 현석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현석이 막 돌아섰을 때, 최창수가 다급히 그를 불렀다.

    “정말 이대로 끝이야? 우릴 이렇게 버려두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그 말에 현석이 돌아서서 최창수를 쳐다봤다.

    최창수는 현석의 눈빛을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걸 보니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석의 눈빛을 받으니 마치 칼로 몸을 푹푹 쑤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대하지.”

    현석의 얼굴은 정말로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최창수는 그걸 보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좌중에 싸한 긴장감이 흘렀다.

    현석이 돌아서서 나가 버리자 최창수는 숨을 몰아쉬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축 늘어졌다. 평생 쓸 심력을 다 소모한 기분이었다.

    “젠장. 죽는 줄 알았네.”

    다들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방금 그들이 느낀 위압감과 살기는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형님, 이대로 끝낼 겁니까?”

    박명석의 물음에 최창수는 의자에 늘어진 채로 눈을 깜빡였다.

    “글쎄다.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이거부터 먹죠.”

    일행 중 한 명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위에 놓인 알약을 입에 넣었다. 즉시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말 이렇게 써도 될까 싶을 정도로 썼다.

    “우웩! 진짜 다신 먹기 싫은 맛이야.”

    “이제 먹을 일도 없잖습니까.”

    “이거 왠지 그동안 먹었던 것보다 더 쓴 거 같지 않아?”

    “기한 늘리는 게 아니라 완벽하게 해독하는 약인데 더 쓴 게 정상 아닐까요?”

    다들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해약을 먹고 나니 다음 일이 고민되었다.

    “어쩌지?”

    “뭘 어쩝니까? 우리 갈 길 가야지.”

    “그렇지? 그럼 우리 갈 길이 어디지?”

    최창수의 물음에 박명석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정보를 잡아 뽑아야지요.”

    “그래. 그거지. 그럼 누구랑 손을 잡아야할까?”

    박명석이 씨익 웃었다.

    “이미 알아봤죠. 아시죠? 레드독 길드.”

    레드독 길드는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조폭인 칠성파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길드였다.

    최창수가 눈을 빛내자 박명석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 제가 아는 놈이 길드원으로 있는데, 잘만 얘기하면 아마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최창수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거 제대로 정리해서 돈줄로 남겨두고, 실버로 가자.”

    다들 동의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커피전문점 밖 골목에 가만히 서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현석이 피식 웃었다.

    “역시 한 번 쓰레기가 되면 달라지지 않는군.”

    현석은 차갑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조만간 저들은 오늘 한 일의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 길드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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