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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1화 (11/326)

< 염탐 2 >

던전에 몰래 들어온 사내, 박근한은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믿었다. 또한 자신이 갖고 있는 장비를 믿었다.

그는 지금의 장비를 구하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했다.

박근한이 주로 맡게 되는 임무가 이런 식으로 몰래 던전에 침투해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기에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은밀함이었다.

그래서 그가 가진 장비도 대부분 은밀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일단 그가 입은 가죽갑옷은 골드 5등급 던전에서 주로 출몰하는 카멜레온 드레이크의 가죽을 가공해 만든 것이었다.

카멜레온 드레이크로부터 뽑아낸 마정석을 장착했기에 그 마수가 가진 능력을 일부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박근한은 주변색과 동화되어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얼핏 보면 투명인간처럼 보일 정도로 성능이 뛰어났다.

물론 자세히 보거나, 박근한이 움직일 때 나타나는 위화감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장비 중 하나였다.

또한 그가 신은 가죽장화는 흑표범의 발바닥에서 채취한 특수한 성분을 섞어 만들었다.

덕분에 그가 움직일 때 나는 소리나 기척이 대부분 사라졌다.

박근한이 주로 맡는 임무는 염탐이나 암습이었다.

그가 가진 두 가지 장비만으로도 웬만한 사람이나 팀을 염탐하는 데에는 차고 넘쳤다.

그리고 그가 가진, 카멜레온 드레이크의 뿔을 가공해 만든 칼은 암습에 특화된 무기였다.

그렇기에 그는 던전에 들어오며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의 레벨이라면 실버 1등급 던전에 가도 충분한 활약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고작 브론즈 1등급 던전에서 그가 위험에 처할 일은 없다고 봐도 된다.

그래서 이번엔 좀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

보통은 그보다 더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의 감시를 주로 하는데, 이번에는 류지혜가 걸려 있어서 흔쾌히 맡았다.

당연히 아주 간단히 임무가 끝날 거라 여겼다.

“하여튼 너무 얼굴만 믿어서 탈이라니까.”

류지혜는 자신의 외모가 뛰어나다는 걸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걸 제대로 이용할 줄 알았다.

박근한이 보기에 그녀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그거였다.

“뭐, 외모도 달리 보면 실력이라 할 수 있긴 하지.”

그래도 이럴 때는 레벨 차이가 제법 나니, 직접 능력을 발휘해 임무를 수행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어쨌든 박근한은 류지혜가 이렇게 시간을 끈 것이 그녀의 성향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마음이 더 가벼웠고 말이다.

던전에 들어온 박근한은 일단 현석 일행의 위치부터 찾았다.

추적에도 일가견이 있기에 그들이 어디쯤 있는지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던전에는 마수가 나타난다. 그들의 레벨을 생각해볼 때 마수를 신경 쓰지 않고 던전 안을 막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박근한은 모습을 감춘 채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여기저기 흔적이 보란 듯이 남겨져 있었다.

“하긴, 던전에서 굳이 흔적을 지우거나 하진 않지. 보통은.”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코어를 부수면 된다. 그리고 보스를 죽이면 코어가 드러난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그러니 굳이 흔적을 지울 정도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던전에 들어갈 때,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하고, 자신의 레벨에 맞는 등급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너무 등급이 낮은 곳에 들어가면 사냥은 쉬울지 몰라도 발전 가능성이 없고, 너무 높은 곳에 들어가면 항시 죽을 위험에 처한다.

그러니 자신의 레벨에 맞는 적절한 던전을 찾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어쨌든 그렇기에 던전에서 나오는 마수가 추적과 은신에 특화된 존재가 아닌 한, 굳이 흔적을 지우는 수고를 하는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일반적 성향은 박근한 같은 감시자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간단히 흔적을 찾았고, 그들이 이동한 방향까지 정확히 파악했다.

던전에 들어온 지 고작 몇 분 만에 만들어낸 결과였다.

박근한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급할 게 없었다. 어차피 던전 클리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하고 빠르게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지켜볼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류지혜는 열흘 동안 아무 성과도 못 냈다. 그러니 박근한이 몇 시간 만에 임무를 끝내지 못했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몇 시간이면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박근한은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일단 타겟은 빨리 찾는 편이 나중을 위해서도 좋으니 말이다.

잠시 걷던 박근한은 문득 들려온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아야 유능한 추적꾼이자 감시자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어느새 걸음까지 멈추고 소리에 집중했다.

“날갯짓 소리?”

곤충 날갯짓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상당히 멀리서 들려오긴 했지만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던전이 어떤 던전인지 확인하지 않고 왔다. 물론 큰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정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대충 어떤 마수들이 나오는지만 알아도 훨씬 큰 도움이 될 텐데.”

하지만 이미 늦었고, 또 대충이지만 짐작이 갔다. 이 지역 던전 중에서 날아다니는 곤충 종류 마수라고는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천둥잠자리 둥지겠군.”

천둥잠자리의 특징을 떠올려봤다. 별 것 아니었다. 가끔 온몸에 전류가 흘러 접근한 상대에게 충격을 준다는 것 외에는 별 볼일 없는 마수였다.

“그런 놈들 쯤이야 떼로 몰려와도 문제될 거 없지.”

박근한의 자신만만한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멀리서 천둥잠자리떼가 보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열 마리가 넘는 듯했다.

“가만있자…… 하나, 둘, 셋…… 열두 마리인가?”

열두 마리나 되는 천둥잠자리라면 방심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그건 맞서 싸울 때의 얘기고, 도망치는 데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던 박근한의 눈에 천둥잠자리들 가장 앞에서 도망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채현석?”

현석이 분명했다. 대체 다른 동료들은 다 어쩌고 혼자서 저 많은 마수를 끌고 이리로 달려오고 있단 말인가.

박근한의 고민은 짧았다. 이럴 때 그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나가야겠군.”

던전에서 나가야 한다. 박근한은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현석을 돕지 않고 도망쳤다고 해도 별 상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들키면 더 문제다. 허락도 받지 않고 팀의 일원도 아니면서 던전에 들어왔으니까.

던전 난입을 하다 걸리면 무슨 짓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뭐…… 내가 저 정도 쪼렙들한테 무슨 짓을 당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길가다 뒤통수라도 맞을 수 있으니 들켜서 좋을 건 없었다. 박근한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던전 입구가 여기서 멀지 않으니 도망치는 것도 정말 간단했다. 180도로 뒤돌아서 똑바로 걸어가면 된다.

“더럽게 빠르네.”

천둥잠자리가 이쪽으로 오는 속도가 상당했다. 박근한은 더 볼 것도 없이 빠르게 뒤돌아 달렸다. 저쪽도 다급한 상황이니 미묘한 위화감 같은 건 아마 못 느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되돌아 달렸을까. 박근한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지? 이거 좀 이상한데?”

아무리 달려도 던전 출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던전의 입구와 출구는 같은 모양이었다. 또한 한 번 생겨나면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

한데 아까 있던 자리까지 온 것 같은데 던전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박근한은 이제 감추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빠르게 달렸다. 천둥잠자리가 쫓아오는 속도가 상당했다.

“젠장!”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 풍경을 보면 방향을 잘못 잡은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던전 출구가 사라진 것이다.

박근한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출구가 사라졌으니 이제 저 천둥잠자리들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놈은 또 어디 간 거야?”

돌아서서 확인하니 현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천둥잠자리들은 박근한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졸지에 혼자 열두 마리나 되는 천둥잠자리와 싸우게 생겼다.

“아…… 진짜. 땀 좀 흘리겠네.”

아직까지 박근한은 이 상황 자체를 별로 대단치 않게 여겼다. 그런 그의 마음이 확 달라지게 만든 건, 가장 앞에서 날아오던 천둥잠자리로부터 쏟아져 나온 벼락이었다.

꽈르릉!

“으헉!”

박근한은 그야말로 초인적인 반사신경을 동원해 벼락을 피했다. 불의의 일격이었기에 피한 것 자체가 거의 운이나 다름없었다.

“뭐, 뭐야, 이거!”

천둥잠자리인 줄 알았다. 아니, 천둥잠자리가 맞다. 다만 변종일 뿐이었다.

박근한은 최대한 냉정을 되찾으려 애쓰며 칼을 꽉 쥐었다. 이럴 때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선택할 틈이 없었다. 뒤에서 날아오던 천둥잠자리들이 연이어 벼락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꽈릉! 꽈릉! 꽈르르릉!

박근한은 기겁을 하며 이리저리 몸을 날렸다.

“뭐야! 설마 저 열두 마리가 전부 변종이라고? 말도 안 돼!”

변종 천둥잠자리는 보스다. 그러니 이 던전은 보스만 열두 마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박근한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어느새 열두 마리 천둥잠자리들이 그를 포위했다. 변종인 데다가 지능까지 높은 놈들이었다.

박근한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무수한 벼락 줄기가 쏟아졌다.

꽈르르르르릉!

“크어어억!”

이건 다 피할 수가 없었다. 처음 두 발은 피했지만 나머지는 모조리 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그나마 전격 저항이 좀 높은 편이라 견뎠지, 그게 아니었으면 벌써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항 좀 높다고 상황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젠장! 몸이 안 움직여!’

벼락을 맞는 바람에 몸이 마비되었다. 박근한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열두 마리의 천둥잠자리를 바라봤다.

천둥잠자리들이 일제히 입을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수없이 보였다. 마치 상어이빨 같았다.

그렇게 박근한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천둥잠자리를 맞이했다.

* * *

최창수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박근한이 천둥잠자리에게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젠장. 소름 돋네.”

그동안 너무 평범해 보여서 잠시 잊고 있었다. 현석은 적에게는 그 누구보다 냉정하고 잔인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수를 몰아서 적에게 던져줄 줄이야.

저런 사람을 적으로 두면 아마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잘 것이다.

최창수는 절대 현석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단단히 했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야지.’

최창수는 그놈들이 빠져나가면서 변수가 생기는 걸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이 상태를 되도록 오랫동안 유지해야 한다.

“뭐…… 벌이도 나름 괜찮고.”

최창수는 박근한의 최후를 확인한 다음 몸을 돌렸다. 이제 저 천둥잠자리들을 다시 사냥할 시간이 되었다.

* * *

던전 클리어는 생각보다 상당히 빨랐다. 박근한이 막판에 몸부림을 치면서 저항하는 바람에 천둥잠자리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마력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맞으며 외부로 나온 현석 일행은 류지혜의 경악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다.

“괘, 괜찮은 거예요?”

류지혜의 물음에 현석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현석의 표정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차갑고 담담하다는 걸 보고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놈 하나가 끼어드는 바람에 열흘 동안의 노력을 허공에 날려 버렸다.

‘이런 식이면 나도 가만히 못 있지.’

류지혜의 눈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 염탐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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