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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9화 (9/326)
  • < 파워업키트 3 >

    최창수는 조용한 커피숍에 일행과 둘러 앉아 있었다. 물론 현석은 없는 자리였다.

    현석과 함께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초록빛 알약을 먹은 지 한 달이 지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최창수를 비롯한 나머지 다섯 사람도 어제 새로 약을 먹었다.

    “슬슬 대책을 마련해야지. 안 그래? 언제까지 이렇게 노예처럼 부려지면서 천둥잠자리나 잡으러 다닐 수는 없잖아.”

    최창수의 말에 다들 머뭇거렸다. 그렇기도 하지만 또 안 그렇기도 했다.

    “다들 반응이 왜 이리 미지근해? 설마 지금 이 상황이 괜찮다는 거야?”

    “그게…… 형님. 사실 그렇잖습니까?”

    눈치를 살피던 박명석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최창수는 최대한 담담하려 애쓰며 박명석을 바라봤다.

    “우리가 그놈이랑 엮이기 전까지 어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최창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굳이 저 얘기를 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때의 그들은 그야말로 쓰레기들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리 좋은 놈들이라고는 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쓰레기 짓을 해서 벌어들인 거라고 해봐야 한 달에 마정석 서너 개와 자잘한 마수의 부산물들이 전부였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그리고 요즘이랑 비교해 보십시오. 사냥은 좀 빡세도 하루에 한 사람당 오백 이상 꼭 챙기지 않습니까.”

    물론 현석이 가져가는 마정석을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액수이긴 했다.

    하지만 예전 그들의 상황과 비교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예전에는 마정석을 가장 많이 얻었을 때가 한 달에 5개였다.

    또한 그렇게 구한 마정석에 담긴 마력은 500 전후였다.

    500마력 전후의 마정석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마정석었다. 당연히 가격도 얼마 안 나간다.

    1000마력이 넘으면 1억을 호가하지만 500으로 내려오면 천만 원을 좀 넘는 정도였다.

    다른 부산물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걸 다 해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그들이 한 사람당 가져갈 수 있는 돈은 고작해야 천만 원에도 못 미쳤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비록 일은 좀 빡세고 힘들지만 매일 오백 이상 챙겨간다. 한 달이면 산술적으로 1억5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래저래 쉬는 날이 있으니 그보다야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1억은 넘는다.

    월 1억을 벌 수 있는 플레이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현석과 함께 하는 나날은 꿀을 빠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최창수가 그런 동료들의 반응에 눈을 부라렸다.

    “그래서 계속 이렇게 노예처럼 살겠다는 거냐?”

    사실 노예처럼 산다기보다는 열심히 살고 있는 거지만 박명석은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괜히 최창수와 싸워봐야 얻을 게 하나도 없었다.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았다. 최창수는 동료들을 슥 둘러봤다.

    말이 동료지 사실상 최창수의 부하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창수도 막나갈 수는 없었다.

    저들이 대놓고 반기를 들면 제압할 뾰족한 방책이 없었다. 그러니 이럴 때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나도 지금 이 생활이 싫다는 건 아니야. 열심히 살면 좋지.”

    최창수의 말이 의외였는지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반짝이는 시선을 보내왔다.

    그걸 본 최창수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저들의 마음은 이미 돌아선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걸 건드릴 방법은 많았다.

    “내가 원하는 건, 공정함이야.”

    다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창수를 바라봤다.

    최창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들 지금 이 상황이 공정하다고 여기는 거야? 뭐 빠지게 미끼 역할을 하는 건 우리라고. 잘 생각해 봐. 그놈이 뭘 하고 있는지.”

    그 말에 다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미끼 역할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변종 천둥잠자리가 쏟아내는 벼락은 무시무시했다.

    물론 레벨업을 하면서 그들도 제법 강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버거운 건 사실이었다.

    반면 현석이 하는 건 몰래 숨어 있다가 빈틈을 찔러 천둥잠자리를 죽이는 것뿐이었다.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가장 안전하고 쉬운 일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그들이 보기엔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도 가져가는 몫은 현석이 제일 많았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현석이 마정석을 얼마나 뽑아내는지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

    그 부분이 긴가민가했다.

    현석은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마력측정기로부터 마정석을 숨길 수 있는 게 분명했다.

    “어쨌든 다들 아무 말 없는 거 보니까 공정치 못하다는 거에는 동의하는 거지?”

    역시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최창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오늘 사냥할 때 내가 나서서 얘기해 볼 테니까 다들 한 마디씩 힘을 실어줘. 알겠지?”

    최창수의 말에 다들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해약으로 우릴 얽으려 하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그러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거야. 그러니 걱정 말고 나만 따라와.”

    결국 다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실 최창수도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충분히 현석을 관찰해서 성향을 파악했다.

    막무가내의 제안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충분히 수용할 거라는 결론이 이미 나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끝까지 납작 엎드렸을 것이다.

    “자, 시간 됐다. 가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던전생성지역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모두의 표정이 점점 결연해졌다.

    * * *

    현석은 던전들을 쭉 둘러보고 있었다. 각 던전 위에 반투명한 글이 있었는데, 그걸 확인하는 것이다.

    -거대개미 굴.

    -고블린 언덕.

    -칼날늑대 계곡

    현석은 제목을 쭉 살폈다. 이내 원하는 제목을 찾았다.

    -천둥잠자리의 둥지.

    이젠 저걸 변종으로 만들 차례였다. 천둥잠자리의 둥지를 변화시키는 법은 간단했다.

    현석은 일행을 기다리며 변종 천둥잠자리의 알에서 뽑아낸 진액을 던전에 덧씌웠다.

    물론 대놓고 한 게 아니라 마력을 이용해 적절히 조절하며 진액을 뿌린 것이다.

    작업을 모두 끝낸 현석은 그 앞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잠시 후, 최창수 일행이 던전생성지역 안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현석을 발견하자마자 빠르게 다가왔다.

    현석은 최창수 일행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은 현석 앞에 도착한 다음 잠시 뜸을 들였다. 다짜고짜 말을 꺼낼 수 없으니 분위기를 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최창수는 일단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했다. 그리고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누군가 다가와 현석을 불렀다.

    “저기…… 안녕하세요?”

    현석은 고개를 돌려 다짜고짜 인사부터 날린 사람을 쳐다봤다. 현석뿐 아니라 최창수 일행도 다들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엄청나게 매력적인 여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서 있었다.

    최창수는 갑자기 엄습한 위기감에 현석 앞을 가로막으며 먼저 나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인, 류지혜는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쪽한테 볼일 있는 거 아닌데요?”

    류지혜의 시선이 최창수 뒤쪽에 있는 현석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 만만하게 눈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살짝 들어 현석을 가리켰다.

    “저쪽 잘생긴 오빠랑 얘기하고 싶은데.”

    최창수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왠지 이 여자를 가까이 하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계속해서 엄습했다.

    “저쪽이랑 얘기하고 싶으면 일단 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류지혜가 생긋 웃었다.

    “그건 저쪽 오빠가 결정하는 거 아닐까요?”

    최창수가 피식 웃으며 현석과 류지혜를 번갈아 바라봤다.

    “어딜 봐서 오빠야? 아무리 봐도 그쪽이 한참 누나 같은데?”

    순간 류지혜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더욱 환하게 미소 지었다.

    ‘좀…… 무서운데?’

    지금 미소는 어딘가 좀 무서워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나선 안 된다. 최창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류지혜는 일단 현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창수가 아무리 이렇게 나와도 현석이 대화를 원하면 어쩔 수 없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판단은 아주 정확했다. 결국 현석이 나선 것이다. 당장 던전에 들어가 사냥을 해야 하니 더 지체하기 싫어서였다.

    “무슨 일입니까?”

    현석이 나서자 류지혜가 그것 보라는 듯 최창수를 향해 씨익 웃어주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현석에게 눈웃음을 살살 치며 말했다.

    “요즘 자주 보는 것 같아서요. 혹시 저랑 같이 사냥하실래요?”

    현석은 그 말에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최창수를 쳐다봤다.

    “오늘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보이던데, 할 말 있으면 지금 해.”

    촤창수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저 여자랑 말하다 말고 난데없이 왜 자기를 끌어들인단 말인가.

    ‘뭐야 이건! 귀신도 아니고!’

    최창수는 어안이 벙벙하고 난감했다. 그는 동료들의 표정을 슬쩍 둘러봤다. 다들 맹렬히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나도 알아 이 자식들아.’

    최창수도 바보가 아닌데 지금 그 말을 꺼낼 리 있겠는가. 다만 다음 기회는 그리 가까이 있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그런 거 없는데?”

    최창수가 살짝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님 말고.”

    이제 현석의 시선은 다시 류지혜에게 향했다.

    “우리 팀에는 더 사람이 필요치 않을 것 같군요.”

    워낙 단호한 말투였는지라 류지혜가 순간 찔끔 놀랐다. 설마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에이, 그러지 말고 생각 좀 해보세요. 저, 생각보다 실력 제법 되거든요?”

    당연하다. 그녀의 레벨은 지금 40에 가까우니까. 현석 일행이 주로 사냥하는 브론즈 1등급은 보통 레벨 20전후의 플레이어들이 파티를 이뤄 사냥하는 던전이었다.

    그녀가 브론즈 1등급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던전이 품은 마력 자체가 워낙 낮아서 레벨업에도 별 도움이 안 되니 말이다.

    그래서 일단 함께 사냥을 한 번만 하면 계속 이 파티에 남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한데 그 한 번의 사냥조차 불가능하게 생겼으니 마음이 좀 달아올랐다.

    하지만 현석의 반응은 변하지 않았다.

    “됐습니다.”

    현석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류지혜가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지 마시고 한 번 생각이나 해보시라니까요?”

    류지혜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따라 들어가는 수가 있어요.”

    그 말에 현석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돌아서서 류지혜를 쳐다봤다.

    정해진 팀이 들어간 던전에 몰래 따라 들어가는 건 비매너 플레이였다.

    사실 그런 식으로 몰래 들어가 뒤통수를 치는 경우도 있기에 던전관리센터에서 엄금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냥 한 번만 같이 가자고요. 정말 큰 도움이 될 거라니까요?”

    “그쪽은 팀으로 등록이 안 되어 있다는 거 명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현석의 말에 류지혜의 표정이 굳었다.

    등록된 팀이 아닌데 따라 들어간 경우 즉시 정당방위가 성립된다. 솔직히 무슨 짓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협박 한 번 끝내주게 하시네.”

    류지혜가 굳은 표정으로 한 발 물러났다. 일단 포기하겠다는 뜻을 행동으로 내비친 것이다.

    “너무 까칠하신 거 아닌가요? 그냥 한 번만 같이 돌자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현석은 류지혜를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을 굳이 팀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있습니까?”

    “예? 제가 거짓말을 했다고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지난 한 달 동안 한 번도 이곳에 온 적이 없잖습니까.”

    류지혜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뻔뻔하게 대꾸했다.

    “여기 오는 모든 사람을 일일이 다 확인하시나요? 제가 왔는지 안 왔는지, 혹은 숨어서 몰래 지켜봤는지 어떻게 알아요?”

    현석은 주위를 슥 둘러봤다.

    “보다시피, 숨을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전 여기 누가 있는지 항상 확인합니다.”

    류지혜는 말문이 막혔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어떻게 던전에 있는 사람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현석의 말은 좀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틀리지 않았다. 현석은 사람을 기억할 때 얼굴이 아닌 다른 감각을 이용해 기억한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특유의 마력패턴을 통해 기억한다.

    그렇기에 류지혜처럼 특이한 마력패턴을 가진 사람이 이 안에 있었다면 최소한 한 번이라도 눈을 돌렸을 것이다.

    물론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지만, 굳이 거기까지 말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현석은 당황한 류지혜를 보며 씨익 웃었다.

    “외모가 너무 화려해서 눈에 잘 띄어야 하는데, 다음엔 좀 더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 오시길.”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던전으로 향했다.

    최창수는 현석이 들어간 던전으로 몸을 던지기 전 류지혜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류지혜는 현석 일행이 들어간 던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좋아, 이번 일은 시작부터 흥미가 팍팍 도는데?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고.”

    류지혜의 눈에 오기가 맺혔다.

    < 파워업키트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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