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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8화 (8/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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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수는 멍하니 쓰러진 넝쿨귀신을 바라봤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언덕 위에서 천천히 이쪽으로 오고 있는 현석을 바라봤다.

    “형님, 이거 뭡니까?”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박명석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게. 이게 뭐냐? 고작 사흘인데…….”

    두 사람뿐 아니라 나머지 동료들도 마찬가지 시선으로 현석과 쓰러진 넝쿨귀신을 번갈아 바라봤다.

    천둥잠자리를 상대할 때는 예전에도 워낙 쉽게 상대를 해서 그런지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이 넝쿨귀신은 얘기가 좀 달랐다.

    고작 사흘 안 봤을 뿐인데 갑자기 몇 배나 더 강해져서 나타난 것이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최창수는 넝쿨귀신을 상대하느라 거의 죽기 일보직전까지 갔었다.

    한데 오늘은 몇 번 칼을 휘둘러보기도 전에 넝쿨귀신의 목이 떨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현석은 넝쿨귀신의 목을 자른 후에 탈진해서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사흘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한데 지금은 당장에라도 넝쿨귀신 한 마리를 더 사냥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 정도로 쌩쌩했다.

    어떻게 사람이 고작 사흘 만에 저렇게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넝쿨귀신으로부터 마정석을 뽑아내는 현석의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최창수는 멍하니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현석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일단 마정석을 어떻게 뽑아내는지 확인해야 했다. 계속 보다보면 뭔가 나와도 나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최창수가 본 것은 빈손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현석의 모습뿐이었다.

    ‘뭐야, 벌써 끝났나? 설마 이번엔 마정석이 안 나온 건가?’

    사실 그게 정상이다. 마수를 잡는 족족 마정석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던전에 관계된 상식에 따르면 그랬다.

    최창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현석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무래도 배낭이 좀 의심스럽긴 한데…….’

    현석은 항상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 안에는 그동안 잡은 마수의 마정석과 부산물이 들어 있었다.

    현석뿐 아니라 최창수 일행도 각각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그들 역시 그 안에 마수의 부산물을 넣어뒀다.

    천둥잠자리로부터 채취한 부산물들이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마정석 눈에서 뽑아낸 체액은 현석이 따로 보관했지만 말이다.

    ‘젠장. 너무 달라져서 지켜보는 것도 쉽지가 않네.’

    천둥잠자리의 사냥이 끝났을 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축을 해서 부산물을 잔뜩 뽑아내긴 했는데, 그 안에 마정석이 있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천둥잠자리를 해체하는 현석의 손이 너무 빨라 그것을 구분해 낼 수가 없었다.

    마정석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이긴 했다.

    뽑아낸 마정석을 주머니에 슬쩍 넣어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지켜봐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제법 떨어진 곳에서 봐야 하니 더더욱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대체 오늘 마정석을 몇 개 뽑은 거지?’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던전을 네 번 정도 클리어 하면 마정석을 하나쯤 얻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도 브론즈 1등급 정도라면 보통 마력이 500 이하인 보잘 것 없는 마정석일 경우가 태반이었다.

    마력 500 이하는 시세가 천만 원 이하라고 보면 된다.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마정석이 500마력 이하였다. 500마력이 넘어가면 가격이 갑자기 두 배 이상 뛰어오른다.

    그래서 보통 브론즈 등급 던전 사냥은 대박의 기준이 500마력이었다.

    한데 최창수가 보기에 사흘 전 현석이 뽑아낸 마정석은 고작 그 정도 크기가 아니었다.

    ‘최소 1000. 그리고 넝쿨귀신에서 뽑아낸 건 2000이상.’

    1000마력은 실버 등급 던전을 사냥할 때의 대박 기준이고, 2000마력은 골드 등급의 기준이다.

    말이 기준이지, 실제로 실버 등급에서 사냥을 한다고 해도 500마력 이하의 마정석이 나올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물론 브론즈 등급보다는 마정석 자체가 나올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돈은 훨씬 많이 벌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런 상식을 놓고 생각해 보면 사흘 전의 사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연속이었다.

    ‘그게 우연이라고? 그럴 리가 없지.’

    한두 번이라면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무려 수십 번이나 연속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연히 우연일 리 없었다.

    그래서 분배가 아예 없었지만 불만을 꾹 눌러 참았다.

    “나가자.”

    현석의 말에 최창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따랐다. 사냥을 여기서 끝낼 리 없으니 언젠가 확인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날이 오늘만 있는 건 아니잖아?’

    사흘 전의 일만 떠올리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참았다.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 믿었다.

    현석은 정말 간단히 던전의 코어를 찾아냈다. 마치 원래 알고 있는 길을 이동하듯 망설임 없이 빠르게 이동해 코어 앞에 섰다.

    현석이 코어에 손을 올렸다.

    쩡!

    단숨에 코어가 박살 났다.

    최창수 일행은 그걸 보며 또 눈을 크게 떴다. 코어까지 이렇게 빨리 부숴 버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놀라야 할 건 그게 끝이 아니었다.

    던전이 무너지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간 그들의 눈앞에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작은 방패 하나가 보였다.

    “아티팩트가 또 나왔다고?”

    모두의 경악어린 시선을 받으며 현석이 방패를 집었다.

    쩡!

    마력 파동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최창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머릿속이 온통 뒤엉켜 버렸다.

    * * *

    던전관리센터는 세계적인 조직이었다. 사실상 각 국가의 정부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각 국가의 관리센터는 개별적으로 운영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름만 통일되어 있다뿐이지, 사실상 연계하는 경우도 많지 않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였다.

    한국 던전관리센터의 책임자는 추광열이라는 플레이어였는데, 레벨이 무려 98이나 되는 괴물이었다.

    미국의 라이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레벨이었다.

    물론 레벨이 높다고 반드시 강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레벨이 높을수록 더 강할 확률이 높은 건 너무나 당연했다.

    더구나 고 레벨로 갈수록 레벨업도 힘들어지고,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늘어나는 마력의 양이 어마어마해진다.

    그러니 추광열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하다고 해도 크게 틀릴 일은 없었다.

    물론 아티팩트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추광열은 아티팩트도 굉장한 걸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꿀릴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추광열의 사촌인 추경훈이 한국 던전관리센터의 경기도지부장으로 있었다.

    추경훈은 사촌형의 입김으로 지부장에 오른 인물이었다. 당연히 공을 세워 낙하산의 오명을 벗고 싶어했다.

    그저 사냥을 통해 레벨만 올리는 걸로는 부족했다. 솔직히 그렇게 할 만한 재능도 없었다.

    그의 레벨은 57에서 정체되어 있었다.

    물론 57도 엄청나게 높은 레벨이었다. 하지만 다른 지부장들과 함께 있을 때는 주눅들 수밖에 없는 레벨이기도 했다.

    보통 한국에서 지부장이 되려면 레벨이 70은 넘어야 하니 말이다.

    그 추경훈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보고서 하나를 읽고 있었다.

    다른 지부장과 달리 추경훈은 던전생성지역이나 그곳을 이용하는 플레이어들, 그리고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통해 뭔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가 위로 올라갈 돌파구가 거기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뭔가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다고 봐도 되는 거 아닌가?”

    추경훈의 물음에 옆에 공손히 서 있던 그의 비서가 즉시 대답했다.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조사할 가치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추경훈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도 딱 그랬으니까.

    “채현석이라…… 정말 미친 듯이 던전을 도는군. 플레이어로 각성한 지 이제 고작 두 달인데…… 던전 클리어가 100번이 넘었다니 대단해.”

    추경훈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비서를 바라봤다.

    “한데 레벨이 안 써 있군? 빼 먹은 건가?”

    비서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채현석이 아직 레벨 측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뭐? 레벨 측정을 안 했다고? 대체 왜?”

    추경훈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벨이 높으면 따라붙는 특혜가 많기에 웬만한 플레이어는 낌새만 느껴도 바로바로 레벨을 측정한다.

    한데 던전을 100번이 넘게 클리어 했으면서도 레벨 측정을 한 번도 안 했다는 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없고서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모르겠습니다. 출입구 관리 직원들에게 넌지시 언질을 해 봤는데,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 이상하군. 어쨌든…… 접촉은 해 봐야 할 것 같아. 누가 적당하겠나?”

    “아무래도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이니…….”

    비서의 말에 추경훈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가 부릴 수 있는 여자 플레이어 리스트를 떠올린 다음, 적당한 사람을 찾아봤다.

    “류지혜는 어떤가?”

    “훌륭한 선택입니다. 다만 그 여자가 제안을 받아들일지 확신이 어렵습니다.”

    “아마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야. 그 녀석이 원하는 걸 내가 갖고 있거든.”

    비서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즉시 연락해 보겠습니다. 한데…….”

    “왜 그러나?”

    추경훈은 살짝 어두워진 비서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일 그냥 운이 만들어낸 결과라면…… 류지혜라는 패 하나를 허투루 쓴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추경훈이 피식 웃었다.

    “별 걸 다 걱정하는군. 진위를 가려내는 것만으로 충분히 얻을 게 많으니 괜찮아. 그리고…….”

    추경훈은 다시 보고서로 시선을 돌리고는 눈을 번득였다.

    “아마 분명히 뭔가가 있을 거야. 너무 절묘하게 애매해.”

    그 말에 비서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니 한 번쯤 조사할 가치가 느껴졌다. 마정석 발견 확률이 너무 절묘하게 조절이 되어 있었다.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비서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추경훈을 바라봤다.

    아마 다른 사람이 이 보고서를 봤다면 이렇게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냥 운으로 치부하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자신조차 추경훈이 짚어주지 않았다면 긴가민가하고 있었을 테니까.

    ‘얘기를 듣고 나니까 위화감이 느껴져.’

    만일 추경훈이 운에 더 가까울 거라고 얘기했다면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정도로 숫자 조절이 절묘했다.

    비서는 새삼 이 채현석이라는 자에 대해 호기심이 짙어졌다.

    ‘만일 정말로 스스로 조절한 거라면…… 보통이 아니겠는데?’

    비서의 눈에 채현석의 나이 부분이 눈에 틀어 박혔다.

    ‘21살이라…… 대단해.’

    비서는 추경훈의 시선을 느끼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추경훈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추경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비서가 밖으로 나가자 추경훈은 눈을 빛내며 다시 한 번 보고서를 확인했다.

    “이걸 나만 봤을 리는 없고…… 어디어디가 움직이려나?”

    나직이 중얼거리는 추경훈의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맺혔다.

    < 파워업키트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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