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7화 (7/326)

< 파워업 키트 1 >

아티팩트.

던전을 클리어했을 때, 아주아주 희박한 확률로 마력이 담긴 보물이 나타나는데, 그걸 아티팩트라 불렀다.

그 아티팩트가 지금 나온 것이다. 그것도 가장 인기가 많다는 무기 형태로 말이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검을 보며 다들 눈을 빛냈지만 아무도 손을 뻗지 않았다.

아이템은 던전에서 가장 높은 활약을 한 사람의 몫이다. 그것은 플레이어들끼리 정한 규칙이 아니라 던전의 규칙이었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마력이다. 던전에서 활약을 많이 할수록 많은 마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에 그걸 기준으로 아티팩트의 주인이 정해진다.

물론 무한정 시간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티팩트는 그냥 사라져 버린다. 아티팩트에 담겼던 마력의 파동만 남기고서.

게임으로 말하면 약간의 경험치를 남기고 아이템이 사라지는 꼴이었다.

현석이 가만히 검을 보고만 있자, 오히려 최창수 일행이 안달이 나 발을 동동 굴렀다.

“안 잡을 건가? 시간이 얼마 없는데…….”

현석은 주위를 슥 둘러봤다. 이쪽을 주시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지역에 흩어져 있는 사람은 서른 명 정도였는데, 다들 흥미진진한 눈으로 현석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석은 그들 중 누가 플레이어고 누가 일반인인지 보기만 하면 구분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에는 어김없이 이름이 반투명하게 떠 있었으니까.

던전 생성 지역이니 플레이어만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곳의 일반인들은 관리센터의 직원인 경우가 많았다. 또 그저 구경을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다.

사방에 검고 흰 소용돌이가 떠 있는 광경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기에 던전 생성지역 주변은 관광지로 개발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던전에 빨려 들어갈 염려도 없기에 일반인은 오히려 안전했다.

지금처럼 던전이 닫히면서 아티팩트가 나오는 광경을 보는 것도 썩 괜찮은 구경거리 중 하나였다.

현석은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와 일반인, 그리고 던전관리센터의 감시 카메라를 의식하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검을 쥐었다.

쩡!

뭔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검을 쥔 현석을 중심으로 마력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현석은 이 과정이 아티팩트가 현실에 안착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검을 쥔 현석은 그대로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나중에 다시 연락하지.”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던전생성지역에서 나가 버렸다.

최창수는 그런 현석의 뒷모습을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아무리 봐도 스물한 살짜리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쥐뿔도 없던 어린놈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자신들을 막 다룰 수는 없는 법이다.

“어쩔까요?”

근처에 서 있던 박명식이 최창수에게 물었다. 최창수는 그제야 멀어져가는 현석의 등에서 시선을 떼고 일행을 둘러봤다.

다들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당연했다. 그 지독한 던전을 두 군데나 돌았으니까.

‘대체…… 어떻게 딱 그 던전만 찾아낸 거지?’

최창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내고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일단 가서 쉬자. 필요하면 지가 알아서 연락하겠지.”

분배는 아예 말도 꺼내보지 못했다. 최창수는 부디 현석이 자신들을 자주 부르지 않길 바라며 걸음을 옮겼다.

* * *

던전생성지역을 둘러싼 담장에는 총 열 개의 문이 있었다. 센터에서 직접 관리하는 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 하나가 나오고, 그 방에서 모든 물건을 확인하게 되어 있었다.

몸수색을 하거나 하는 저급한 방식이 아니었다. 마력 측정기를 통해 마력을 품은 모든 물건을 단숨에 파악해낸다.

테이블에 올려둔 물건은 따로 확인과 기록 과정을 거쳐 주인에게 되돌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내려놓지 않은 물건이 걸리면 그건 그대로 압수당한다.

그렇기에 굳이 그런 위험부담을 지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관리센터에서 물건을 빼앗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불이익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파악하고 기록할 뿐이었다. 그러니 다들 확인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관리의 한 방편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실제로 이 과정은 던전에서 나온 물건 중 세상에 위협이 될 만한 것을 가려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현석은 테이블로 다가갔다. 테이블 근처에 눈을 번득이며 지켜보는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일단 그들의 머리 위를 보고 이름을 확인했다.

‘다들 플레이어로군.’

이름이 명확히 보였다. 그 중 김수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현석에게 말을 걸었다.

“던전에서 얻은 것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시면 됩니다.”

현석은 일단 손에 들고 있던 검부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빼도 박도 못한다. 그 검을 현석이 집는 걸 생성지역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봤으니까. 당연히 카메라에도 잡혔을 것이고 말이다.

현석은 허리춤에 매단 칼을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

“이것도 내려놓아야 합니까?”

원래 장착하고 있던 장비까지 검사할 거냐고 묻는 것이다. 김수한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은 부드럽게 했지만 꼭 그렇게 하라는 뜻이었다.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칼을 풀어 테이블에 툭 던졌다.

그리고 등에 멘 배낭을 내려 그 안에서 몇 가지 물품을 꺼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단히 큰 마정석을 구하셨군요.”

김수한이 놀란 눈으로 현석과 그의 손에 있는 마정석을 번갈아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것은 넝쿨귀신을 잡고 나온 마정석이었다.

방에 있는 세 남자는 꾸준히 던전생성지역 내부를 카메라로 확인하고 있기에 눈앞에 있는 현석이 어느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왔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현석은 분명히 브론즈 1등급 던전을 클리어했다. 상당히 빠르게 클리어했고, 특별한 아티팩트가 나왔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한데 막상 현석이 꺼낸 마정석을 보니 최소 골드 5등급에서나 나올 법한 크기였다. 더 정확한 건 마력측정기를 통해 확인해 봐야겠지만, 이 정도면 현 시세로 최소 4억은 넘을 듯했다.

현석은 그 마정석 옆에 조금 작은 마정석 두 개를 나란히 내려놓았다.

김수한의 얼굴에 어린 놀람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

“굉장히 운이 좋으셨군요. 던전 하나에서 마정석이 세 개나 나오다니.”

현석은 더 이상 마정석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마수의 부산물을 꺼냈다. 그것도 전부 꺼낸 게 아니라 그 쓰임새가 익히 알려진 것들만 꺼냈다.

천둥잠자리에서 나온 벼락주머니와 눈알의 조각들, 그리고 넝쿨귀신의 열매가 차례차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이게 전부입니까?”

김수한이 물었다. 의례적인 물음이었다.

던전 하나를 클리어하면 부산물 몇 개가 나오는 게 보통이었다. 운이 좋으면 마정석이 나오고, 그보다 훨씬 더 운이 좋으면 지금처럼 아티팩트가 나온다.

김수한이 보기에 지금 현석은 그가 가진 평생의 운을 이번 던전에서 다 쓴 것처럼 보였다.

현석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김수한이 커다란 돋보기처럼 생긴 마력측정기를 들어 올렸다.

그가 한 일은 테이블 위의 물건이 아닌 현석의 몸을 돋보기로 찬찬히 훑어보는 것이었다.

혹시 숨겨서 나온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거의 그런 일이 없기에 이것 역시 의례적인 일이었다.

돋보기로 현석의 몸을 대충 슥 스캔한 김수한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 끝났습니다. 이제 나가셔도 좋습니다.”

현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테이블 위의 물건을 다시 배낭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 유유히 방을 나섰다.

* * *

던전생성지역에서 나온 현석은 일단 관리센터로 향했다. 원래 살던 원룸에는 이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관리센터 근처에 새로 집을 얻는 게 나았다.

현석은 관리센터에서 세 개의 마정석을 팔았다.

5억이라는 돈이 추가로 통장에 꽂혔다.

그리고 즉시 근처 부동산으로 가서 적당한 오피스텔을 구했다.

돈이 풍부하니 당장 입주가 가능한 오피스텔을 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여기서도 오랫동안 살 생각은 없었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임시로 쓰는 공간이었다.

마력을 좀 더 키워 성장하면 자신만의 공간을 구할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석은 그것이 가능했다.

텅빈 오피스텔에 들어간 현석은 거실 한가운데로 가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 배낭 안에는 아직 팔지 않은 30개의 마정석과 각종 부산물들이 들어 있었다.

현석이 내용물을 들키지 않고 가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특유의 마력 컨트롤 능력 때문이었다.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배낭 안의 마력이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게 조절한 것이다.

그건 현석만의 능력이었다. 죽기 전에도 현석 외에 그것이 가능한 플레이어는 없었다. 적어도 현석이 만나거나 겪어본 자들 중에서는 그랬다.

현석이 마정석과 부산물들을 굳이 들키지 않게 빼낸 것은 지금부터 만들려는 아이템 때문이었다.

“이걸로 얼마나 만들 수 있으려나…….”

바닥에 늘어놓은 재료의 양이 상당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재료가 아니라 마정석이었다.

고작 1200마력짜리 마정석이 30개 정도 있으니 아무리 많이 만들어 봐야 90개가 한계일 것이다. 그것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만들었을 때의 얘기다.

현석은 필요한 재료를 들어 가볍게 마력을 흘려 넣었다.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마력의 조절이었다. 그게 안 되면 재료가 적절한 비율로 혼합되지 않아 원하는 아이템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현석은 실패하지 않고 잘 할 자신이 있었다. 과거에는 수천 번이나 반복했던 익숙한 작업이었다.

그때는 이것이 사냥 준비의 일환이었다.

재료와 마정석을 손에 든 현석은 마력을 절묘하게 조절해 나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마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힘이었다. 그 신비한 힘이 재료와 마정석을 하나로 이어 버무렸다.

현석은 이마에서 땀을 흘릴 정도로 집중해서 마력을 조절했다.

익숙한 작업이긴 했지만 워낙 가진 마력의 양이 적어서 작업이 그리 쉽지 않았다.

이내 작업이 끝났다. 현석은 숨을 몰아쉬며 작업의 결과물을 내려다봤다.

오피스텔 바닥에 물컹물컹한 초록빛 젤리 세 개가 놓여 있었다.

크기는 어른 엄지손가락만 했는데, 안에 짙은 마력이 담겨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마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건 현석이 아니면 쉽게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마력이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고 젤리 안에 갇혀 있었으니까.

현석은 젤리를 집어 안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잘 만들어졌군.”

사실 마력이 모자라서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데 예상보다 잘 만들어져서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이래서 이걸 언제 다 만드냐…….”

바닥에 늘린 재료와 마정석을 보는 현석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정석 하나를 써서 아이템 세 개를 만든 게 전부였는데도 진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소모한 마력을 다시 채우려면 두어 시간은 걸릴 듯했다. 넝쿨귀신의 목을 잘라냈을 때와 비슷한 탈력감이었다.

“그래도 해야지.”

무조건 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미래의 기반을 닦을 테니까.

지그시 눈을 감은 현석이 마력 회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 현석이 만든 초록빛 젤리는 10년 후 던전 사냥의 판도를 바꾼 아이템이었다.

또한 당시만 해도 절대 공략이 불가능할 거라 여겼던 다이아몬드 1등급 던전을 클리어하게 만든 1등 공신이었다.

현석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그를 중심으로 마력이 천천히 소용돌이치며 몸으로 스며들었다.

빠르게 마력이 회복되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 파워업 키트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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