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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6화 (6/326)
  • < 변종 천둥잠자리 2 >

    던전은 아무데나 막 생겨나지 않는다. 자주 생성되는 지역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역들은 던전관리센터에서 직접 관리한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던전을 관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가끔 외따로 떨어진 곳에 생성되는 던전도 있었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생성지역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 현석이 있는 곳은 센터에서 관리하는 던전 생성 지역 중 하나였다.

    최창수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차분히 던전을 고르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경기도 북부에 있는 농지였다. 한데 던전화 되면서 커다란 담장이 세워졌고, 지금은 센터에서 관리하는 던전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던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그것은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확연했다.

    현석이 느긋하게 던전 사이를 거닐었다.

    허공에 뜬 소용돌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이 지역에 생성된 던전의 수는 총 78개였다.

    하지만 매일 클리어 되는 수가 제법 많기에 평균 40개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대로 방치한다고 해도 던전의 수는 더 늘어나지 않는다. 마치 이 지역에 할당된 던전은 모두 78개라고 정해진 것처럼 말이다.

    허공에 뜬 소용돌이는 마치 안으로 모든 걸 빨아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실제로 안으로 빨아들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공기조차 그저 무심히 근처를 흐를 뿐이었다.

    소용돌이는 검은색과 흰색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던전의 종류를 말해준다.

    검은색 던전이 훨씬 많았다. 실제 대부분의 지역에서 검은 던전의 수는 흰색 던전의 열 배에 달했다.

    변종 천둥잠자리가 나왔던 던전은 당연히 검은색 던전이었다. 그리고 현석이 찾고 있는 것도 검은 던전이었다.

    “이거로군.”

    현석은 던전 중 하나를 앞에 두고 멈춰 섰다.

    브론즈 1등급짜리 던전이었다.

    던전의 등급은 소용돌이의 크기와 회전속도로 알 수 있었다.

    소용돌이의 회전속도는 다섯 단계로 나뉘는데, 아무리 감이 둔한 사람이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컸다.

    5등급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1등급은 반대 의미로 멈춘 것처럼 보인다. 속도가 워낙 빨라 마치 소용돌이 문양을 선으로 쭉 그어 그린 것처럼 보였으니까.

    중간 단계도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세 단계 속도로 회전했다.

    브론즈 등급의 던전은 크기가 어른 키의 절반쯤 되는 지름을 가진 던전들을 일컫는다.

    어른 키만 한 지름을 가지면 실버 등급, 그리고 그 두 배가 되면 골드 등급이 된다.

    현재 이 지역에 있는 던전은 골드까지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명한 지역으로 가면 골드 위의 등급인 플래티넘이나 다이아 등급까지 존재했다.

    다이아 윗 등급인 킹 등급은 세계에 단 두 개 존재하고, 그 윗 등급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어딘가에 킹을 넘어서는 등급의 던전이 있을 거라고 다들 확신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 현석은 브론즈 1등급 던전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최창수 일행을 돌아봤다. 먼저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쉴 시간이나 좀 주고 사람을 돌리는 게 어때?”

    현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최창수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최창수는 체념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며 소용돌이를 향해 걸어갔다.

    마치 빨려 들어가듯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진 최창수에 이어 나머지 동료들이 던전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네. 오늘은 여기까지가 한계겠군.”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던전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중얼거린 말과 달리 표정은 밝았다. 아마 며칠 지나면 최창수 일행도 사냥에 익숙해질 테니 속도가 점점 빨라질 것이다.

    현석의 목표는 하루에 던전을 다섯 번 이상 도는 것이었다.

    던전 하나에 마정석을 15개씩 얻을 수 있으니 단순히 산수 계산만 해도 하루에 75억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던전관리센터 쪽의 시선도 의식해야 하고, 마정석의 시세도 고려해야 하니 그렇게 한꺼번에 팔아치우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씩 처분하기만 해도 꾸준히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었다.

    사실 현석에게는 마정석을 팔아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노림수가 있었다.

    현석은 소용돌이 위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반투명한 글자를 힐끗 확인하고는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변종 천둥잠자리의 둥지.

    던전 위에 쓰여 있던 글자였다.

    * * *

    “젠장! 튀어!”

    최창수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동료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촤아아악!

    채찍처럼 날아든 길고 날카로운 넝쿨이 사방을 휩쓸었다.

    최창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저기에 걸렸으면 아마 몸이 두 동강 났을 것이다.

    ‘젠장! 이놈은 대체 뭐 하는 거야?’

    최창수는 앞으로 데굴데굴 몸을 굴리며 현석을 찾았다. 저 멀리 서서 이쪽을 향해 손을 겨누고 있는 현석의 모습이 보였다.

    꽈드드드득!

    방금 최창수가 있던 자리를 넝쿨이 긁고 지나갔다. 바닥이 길게 파였다.

    지금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넝쿨귀신이라는 마수였다. 이 던전의 보스이기도 했다.

    아까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다. 현석도 함께 이놈을 상대했기 때문이다.

    현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칼을 잘 썼다. 그가 가진 칼은 50센티쯤 되는 길이의 단검이었는데, 그걸로 달려드는 넝쿨을 썩둑썩둑 잘도 잘라냈다.

    그래서 비교적 수월하게 보스를 잡을 수 있었다.

    한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현석은 아예 싸움에서 빠져 버렸다.

    변종 천둥잠자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최창수 일행이 유인하고 현석이 빈틈을 파고들어 사냥했는데, 보스인 넝쿨귀신은 나 몰라라 하니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최창수는 마음 같아선 아까 현석이 했던 것처럼 칼을 휘둘러 저 넝쿨을 싹둑싹둑 잘라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넝쿨 다발이 날아왔다. 최창수는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나며 칼을 휘둘렀다.

    채채채채챙!

    이게 보통이다. 넝쿨귀신의 넝쿨다발은 가느다랗긴 하지만, 강철 같은 강도를 자랑한다.

    저런 걸 칼로 잘라낸 현석이 대단한 것이다.

    “젠장! 대체 뭐 하는 거야!”

    결국 최창수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 순간 날카로운 뭔가가 넝쿨귀신을 향해 날아왔다.

    슈각!

    넝쿨귀신의 목이 깔끔하게 잘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넝쿨다발의 움직임이 멎었다.

    최창수는 코앞까지 다가왔다가 멈춘 넝쿨 끝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넝쿨귀신의 목이 있던 곳을 바라봤다.

    솔직히 말해서 최창수는 거기가 넝쿨귀신의 목인 줄도 몰랐다. 그저 넝쿨이 칭칭 감긴 나무의 끝단이 잘려 나갔다고만 여겼다.

    ‘저기가 넝쿨귀신의 약점이었어?’

    문득 소름이 돋았다. 최창수는 고개를 휙 돌려 현석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현석은 살짝 진이 빠진 표정으로 언덕 위에 앉아 있었다. 아마 방금 그 한 방에 마력을 엄청나게 쏟아 넣은 모양이었다.

    최창수는 현석에게 가려다가 멈췄다. 어느새 현석이 일어나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현석은 최창수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넝쿨귀신의 사체로 향했다.

    넝쿨귀신 역시 천둥잠자리와 마찬가지로 쓸모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은 마수 중 하나였다.

    심지어 이 전 던전에서는 마정석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 던전의 보스이니 마정석이 나오면 제법 클 텐데…….’

    이곳은 겉보기에는 브론즈 1등급에 불과하지만, 변종 천둥잠자리가 사는 곳이었다.

    당연히 겉보기 등급이랑은 다른 던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던전을 클리어했을 때 느껴지는 마력의 양이 그렇게 엄청난 것 아니겠는가.

    최창수는 넝쿨귀신의 사체를 뒤적이는 현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느새 현석이 볼일을 끝내고 사체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석의 손에는 큼지막한 마정석 하나가 들려 있었다.

    “운빨 진짜 끝내주네.”

    오늘 잡은 모든 마수로부터 마정석을 뽑아냈다. 최창수는 확신했다. 이건 운 따위가 아니었다.

    ‘마정석을 뽑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어.’

    최창수는 앞으로 현석이 마정석을 뽑아내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기로 결심했다.

    분배 따위는 이제 필요 없었다. 저거 하나만 얻어가도 어마어마하게 남는 장사니까.

    ‘내가 얼마나 혹사당하는데, 저 정도는 알아가야지.’

    현석은 최창수의 눈이 번득이는 걸 보고는 피식 웃었다.

    마수에서 마정석을 뽑아내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건 옆에서 그냥 지켜본다고 쉽게 얻을 수 있는 비법이 아니었다.

    마수마다 방식이 달랐다. 마정석 채취는 사냥을 시작한 순간, 함께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냥 방식이 상당히 중요했다.

    넝쿨귀신으로부터 마정석을 뽑아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넝쿨 다발을 하나도 자르지 않고 깔끔히 죽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석이 이번 사냥에 끼어들지 않고 단숨에 목을 잘라낼 틈을 노린 것이고 말이다.

    그런 식으로 마수마다 방식이 따로 있는데, 현석은 최창수 앞에서 변종 천둥잠자리와 넝쿨귀신 외에는 잡을 생각이 없었다.

    아마 최창수가 얻어가는 것도 잘해야 그 두 가지가 다일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얻기가 쉽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가자.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다.”

    현석의 말에 최창수 일행이 터덜터덜 뒤를 따랐다. 마치 패잔병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아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다들 최창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던전을 닫는 건 보스를 잡은 다음 던전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가서 코어를 없애면 된다.

    던전의 코어는 보스를 죽이기 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뭐…… 꼭 모습을 드러내야 없앨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현석은 마력의 흐름에 엄청나게 예민하기 때문에 꼭 눈에 보이지 않아도 코어가 어디쯤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또한 그걸 없앨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던전에 마수가 남은 상태에서 던전을 닫아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코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코어가 품고 있는 마력이 엄청났기에, 굳이 마력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근처에 가면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코어의 크기는 보통 던전의 보스가 지닌 마력과 비례하는 법이다.

    제법 커다란 바위 모양의 코어가 땅에 박혀 있었다.

    그걸 부수면 던전이 닫힌다.

    던전이 닫힐 때 얻을 수 있는 건 비단 마력뿐이 아니었다.

    현석은 던전 코어 앞에 서서 거기에 손을 올렸다. 코어를 부수는 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우우웅!

    현석이 코어에 마력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코어의 색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걸 보는 최창수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진짜…… 저런 걸 보면 초짜라고는 절대 생각 못 하겠다니까.’

    코어를 부수는 건 아까도 봤다. 하지만 또 봐도 놀라운 건 놀라운 거였다.

    초보 플레이어는 저렇게 자연스럽게 마력을 코어에 주입하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플레이어가 된 지 8개월이 넘는 자신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마력을 다룰 자신이 없었다.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코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쩌엉!

    코어가 산산조각 났다.

    후우우웅!

    마력의 폭풍이 밀려왔다.

    현석과 최창수 일행은 어느새 원래 던전이 있던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길쭉한 검 한 자루가 그들 앞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아티팩트!”

    최창수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던전을 클리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또 한 가지가 바로 저 아티팩트였다.

    모두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 변종 천둥잠자리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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