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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5화 (5/326)

< 변종 천둥잠자리 1 >

최창수의 불길한 예감은 아주아주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들이 먹은 것은 해약이 아니었다. 오히려 독약에 더 가까웠다.

오히려 던전에서 먹고 마력을 없애 주었던 것이 훨씬 몸에 좋은 약이었다.

‘저게 무슨 초짜 플레이어야! 저 사악하고 나쁜 놈!’

최창수는 속으로 절규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억지 미소를 열심히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여섯 사람의 눈빛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현석은 오히려 빙긋 웃었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최창수가 이를 부득 갈았다. 말은 맞다. 현석이 마음만 먹었다면 던전에서 자신들을 다 죽여 버릴 수도 있었다.

사실 던전에서 죽으면 사인을 밝히기도 쉽지 않다. 죽인 다음 시체를 들고 밖으로 나와 던전관리센터에 신고하지 않는 한 말이다.

던전에 시체를 방치하면 결국 어딘가에서 다시 나타난 마수에 의해 모조리 뜯어 먹히고 말 테니 시체를 굳이 감추거나 할 필요도 없었다.

아니면 던전을 모두 클리어 해버리면 시체는 던전과 함께 사라질 테니 마찬가지로 시체를 찾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을 고마워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를 노예처럼 부려먹겠다 이건가?”

“자업자득이라고 했잖아? 난 너희가 내게 하려던 걸 똑같이 되돌려줄 뿐이야.”

최창수는 대체 자신들이 하려던 게 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을 가만히 보고 있는 현석의 눈빛에 또 주눅이 들었다.

‘분명 이제 시작한 초짜인데…… 마력도 보잘 것 없는 게 확실한데…… 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거지?’

플레이어들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만 상대의 마력이 월등히 많으면서 그가 의도적으로 감추고자 한다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분명한 위화감이 감돌기 때문에 어렴풋이는 알 수 있었다.

최창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상대인 현석의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 너무나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초짜 중의 초짜였다.

아무래도 플레이어가 된 지 기껏해야 한 달을 넘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저렇게 매섭게 쏘아볼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꼭 베테랑 플레이어 중에서도 사선을 밥 먹듯 넘나드는 고수를 앞에 둔 기분이었다.

“어쨌든 일단 반마환(反魔丸)을 먹었으니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추가로 먹어주지 않으면 마력이 사라진다는 거 절대 잊지 말도록.”

최창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반마환이라는 이름은 생전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못 들어봤다고 해서 없는 약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던전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로 상식 안에서 벌어지는 일보다는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훨씬 많아졌으니까.

“대체…… 뭘 원하는 거지?”

“별 거 아니야. 앞으로 변종 천둥잠자리 사냥을 좀 해볼까 해서.”

최창수의 얼굴이 또 일그러졌다. 이제 더 이상 천둥잠자리 사냥은 하지 않으려 했다. 한데 또 그 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솟구쳤다.

‘가만, 한데 대체 어떻게 사냥을 한다는 거지? 우리끼리 그걸 사냥하려면 벼락꽃 진액을 먹은 미끼가 필요한데?’

최창수가 불안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현석의 얼굴에 떠오른 예의 그 미소를 보며 가슴이 또 한 번 덜컥 내려앉았다.

왠지 어떻게 사냥을 하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진짜…… 제대로 똥 밟았구나.’

최창수와 그의 동료들이 절망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푹 떨궜다.

* * *

“피해!”

최창수의 외침에 그의 동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 어김없이 벼락이 쏟아졌다.

꽈르르릉!

최창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마터면 저 지독한 벼락을 정통으로 맞을 뻔했다.

아마 죽지는 않겠지만 한동안 꼼짝도 못한 채 천둥잠자리에게 몸을 자근자근 뜯어 먹혔을 것이다.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최창수의 외침에 답이라도 하듯 현석이 천둥잠자리의 아래로 파고들었다.

벼락을 쏟아낸 찰나 파고들었기에 천둥잠자리는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

서걱! 촤악!

“키에에에에엑!”

천둥잠자리의 목 이음새가 갈라지는 소리, 체액 쏟아지는 소리에 이어 괴성이 던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최창수는 그제야 안도하며, 천둥잠자리의 등을 타고 달려가는 현석의 모습을 바라봤다.

벌써 몇 번째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장면은 볼 때마다 감탄이 나왔다.

‘아마…… 원래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졌거나, 특수한 훈련을 받았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저 민첩하고 정교한 움직임을 설명할 수 없다. 더구나 저렇게 절묘한 시점에 딱딱 정확히 개입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니 말이다.

콰득!

현석의 칼이 천둥잠자리의 미간을 꿰뚫었다.

이로써 일곱 번째 천둥잠자리 사냥이 끝났다. 그것도 그냥 천둥잠자리가 아닌 변종 천둥잠자리 사냥이 말이다.

‘그것도 이상해. 변종 천둥잠자리가 이렇게 흔했나?’

이 던전은 정말로 이상했다. 등급은 분명히 브론즈 1등급이었다. 이 정도 등급의 던전에서 변종 천둥잠자리의 역할은 보통 보스였다.

한데 지금 이곳 던전에서는 변종 천둥잠자리가 마치 일반 마수처럼 등장하고 있었다.

덕분에 최창수 일행만 죽어나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이나 벼락에 정통으로 맞았는지 모른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석이 그에게 먹인 초록빛 알약이 전격 속성을 상당히 높여줬다는 사실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벌써 죽어 뻗었을 것이다.

“끄응.”

최창수는 바닥에 앉아서 쉬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근처에서 같이 앉아 있던 동료들도 최창수를 따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천천히 현석에게 다가갔다.

현석은 능숙하게 천둥잠자리의 몸에서 마정석을 뽑아내고 있었다.

최창수는 그걸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마정석이 또 나왔다고? 대체 얼마나 운이 좋은 거야?”

사실 이쯤 되면 이건 운이 아니라 현석이 뭔가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일곱 번 사냥해서 마정석을 일곱 번 채취했다고 말하면 아마 아무도 안 믿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그건 현실이었다.

오늘 던전에 들어온 지 이제 고작 다섯 시간이었다. 현석은 그 다섯 시간 동안 무려 7억 이상을 번 것이다.

게다가 아직 사냥이 다 끝나지도 않았다.

‘이 던전에 천둥잠자리가 몇 마리나 남았을까?’

보통 던전에 일반 마수는 10마리 정도 흩어져 있다. 많은 경우 20마리가 넘을 때도 있지만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이곳에도 최소 10마리에서 20마리 사이의 천둥잠자리가 있다고 보면 된다.

최창수는 마정석을 뽑아낸 다음 천둥잠자리를 능숙하게 해체하고 있는 현석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던전…… 클리어하지 않을 생각인가?”

“당연히 클리어 해야지. 그게 상식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최창수는 묘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던전을 클리어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플레이어는 마수와 싸우면서 마력을 쌓는다. 더 정확히는 마력을 저장할 수 있는 그릇을 키운다.

그릇이 커지면 커질수록 담을 수 있는 마력의 양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 그릇은 서서히 성장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급격히 성장한다.

마치 원래 그릇을 깨 버리고 새 그릇을 끼워넣는 것처럼 말이다.

마수와 싸우고, 그것들을 죽이다보면 마력의 파동이 그릇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력이 쌓이고 쌓여 그릇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마력의 그릇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던전을 클리어 하는 것이었다.

던전을 클리어 하는 순간 막대한 마력의 파동이 온몸을 한 차례 씻어내듯 휩쓸어 버리는데, 그때 그릇이 성장할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러니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이 플레이어에겐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던전은 얘기가 좀 달랐다.

“이 황금알을 낳는 던전을 그냥 포기한다고? 정말 그럴 건가?”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으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자연스럽게 마수들이 다시 생겨난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게임과도 같다고 해서 던전을 클리어하는 능력자들을 플레이어라 부르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변종 천둥잠자리가 일반 마수로 등장하는 던전을 찾는 건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니 이런 던전은 그냥 유지하는 것이 훨씬 이로웠다. 물론 지금 현석이 하는 것처럼 천둥잠자리를 아주 능숙하게 잡을 수 있다는 가정 하의 일이지만.

현석은 최창수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고 천둥잠자리를 마저 해체했다.

변종 천둥잠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단 마정석이었고, 그 다음은 가슴 부분에 있는 벼락주머니였다.

세 번째로 가치 있는 건 날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을 이루고 있는 육각형 조각들이 가치가 높았다.

나머지는 쓸모가 없다고 보면 된다.

천둥잠자리는 다른 마수에 비해 비교적 쓸 만한 부분이 적었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값어치가 상당했기에 다른 어설픈 마수를 잡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더구나 그것이 변종 천둥잠자리임에야.

변종의 경우 벼락주머니의 가치가 월등히 높다. 마정석이나 눈 조각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석은 그 모든 걸 꼼꼼히 해체해 주머니에 담았다. 그리고 눈알을 꽉 채운 체액도 따로 모았다.

사실 현석에게 있어서 마정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초록빛 액체였다.

“정말 닫는다고? 이 던전을?”

“남은 놈들을 다 잡은 다음, 바로 보스를 사냥하고 던전을 닫는다.”

최창수는 현석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돈 버는 방법을 알려줘도 싫다고 손을 내젓는데 굳이 더 말을 섞을 필요는 없었다.

‘생각해보니 우리한테 얼마나 분배해 줄지도 아직 모르고…….’

최창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노예처럼 부려지는 처지에 분배를 제대로 받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차라리 관리센터에 확 찔러버려?’

최창수는 잠시 떠올린 생각을 고이 접었다. 그건 절대 안 될 말이었다. 그렇게 하면 더 곤란한 꼴을 겪는 건 분명 자신이 될 테니까.

진퇴양난이었다.

최창수는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맹렬히 날아오는 천둥잠자리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시 일할 시간이었다.

* * *

쩌엉!

후우우웅!

던전이 닫히는 광경은 언제 봐도 경이로웠다.

마치 유리가 깨지듯 세상이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쏟아진 조각들은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 불지도 않는 바람에 날려 회오리친다.

가루가 더 잘게 부서지며 마력으로 변했다. 그리고 마력의 파도가 일행을 향해 밀려들었다.

최창수는 온몸에 스며드는 마력의 청량감을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플레이어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 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날아갈 것 같은 고양감,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충족감, 그리고 온몸이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 청량감까지.

마치 새로 태어나는 것 같았다.

클리어 후의 마력샤워가 끝났다. 최창수는 눈을 뜨고 현석부터 찾았다. 그리고 순간,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또 뭐야?’

현석의 표정은 참으로 묘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좀 웃겼다.

‘뭐라고 딱히 꼬집어 설명할 수가 없는 표정이로군.’

그래도 가장 근접한 표정을 찾으라면 던전 클리어를 처음 보는 사람의 표정에 좀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현석의 표정에는 뭔가가 더 있었다.

아련함이라든가 놀라움이라든가. 아무튼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어쩔 거지? 마정석과 부산물을 팔러 갈 건가?”

최창수는 살짝 몸이 달았다. 방금 던전을 닫으며 왠지 마력의 그릇이 커진 것 같았다.

이 느낌은 때론 아주 명확했지만 대부분 지금처럼 어렴풋했다. 그렇기에 던전관리센터에서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다음 던전으로 간다.”

그 말에 최창수와 일행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오늘 사냥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 변종 천둥잠자리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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