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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4화 (4/326)
  • < 다시 살아나다 3 >

    “대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내 몸에 무슨 짓을 해 놓은 거야?”

    “다른 사람은 안 왔나? 별로 절실하지 않은 모양이로군.”

    현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리자, 최창수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씹어 뱉듯 말했다.

    “근처에 숨어서 대기 중이다. 우리가 기습하면 네놈 하나 없애는 게 어려울 것 같아? 좋게 말로 할 때 내놔.”

    “뭘?”

    “뭐긴 뭐야! 해약이지! 설마 영구적이라는 개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랬다면 그따위 제안은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상황 판단이 아예 꽝은 아니군.”

    “그딴 소리나 들으려고 온 게 아니다. 네 뒷조사도 끝냈으니까 도망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알겠나? 채현석?”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주니까 편하긴 하네. 그런데 무슨 수로 날 기습할 건데? 이제 마력도 없잖아? 일반인 여섯이 플레이어를 상대로 기습을 하겠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인데?”

    최창수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현석을 노려봤다.

    “왜 없겠어? 플레이어는 사람 아닌가? 총 맞고 칼 맞으면 뒈지는 건 다 똑같아.”

    현석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렇게 해 보든가. 이거 좀 안타깝긴 하네. 아직 늦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뭐?”

    “너희들 마력이 사라진 거, 해약만 먹으면 바로 되돌아오거든. 한데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되돌리기가 어려워지지. 날 죽이고 마력 없이 평생 그렇게 살아보든가.”

    최창수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현석을 노려봤다. 현석은 그걸 보며 오히려 씨익 웃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잖아. 어떻게든 적응은 되지 않겠어? 아마, 몇 달 고생하다보면 제법 살만해질 거야.”

    현석은 그 말을 끝으로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곧장 커피전문점에서 나가 버렸다.

    최창수는 크게 당황했다. 설마 저렇게 그냥 가버릴 줄은 몰랐다. 그는 다급히 일어나 현석을 뒤쫓아갔다.

    “기, 기다려! 멈추라고 이 자식아!”

    문밖으로 나온 최창수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곧 분노한 눈으로 현석을 노려봤다.

    현석은 빙긋 웃으며 문 옆 벽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커피를 아직 다 안 마셨네.”

    현석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 원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후륵 마셨다.

    어찌나 느긋해 보이는지 그걸 지켜보는 최창수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섣부른 말과 행동을 쏟아내지는 못했다.

    “참고로 30분 안으로 해결 못하면 마력의 절반을 영구적으로 잃어버리게 될 거야. 안타까운 일이지.”

    최창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누르며 나직이 말했다.

    “시키는 대로 할 테니 해약을 줘라.”

    “잘 안 들리는데?”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슥 둘러봤다. 최창수 혼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다른 동료 다섯 명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이런 긴장감, 나쁘지 않군.’

    어쩌면 저들이 기습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마력은 없지만 총칼을 들면 얼마든지 플레이어도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그런 총칼을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현석이 수십 년 세월 동안 갈고 닦은 감각은 여전히 그의 생각대로 움직였다.

    아마 앞으로도 그가 놓아버리지 않는 한, 계속 유지되거나 오히려 더 날카롭게 벼려질 것이다.

    ‘일단…… 네 놈은 찾았는데, 하나가 아직 안 나타나는군.’

    최창수의 동료는 모두 다섯이었다. 그러니 이곳에 온 자들도 최창수를 제외하고 다섯이어야 한다.

    아무리 감각에 집중해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발견한 건 넷이 전부였다.

    ‘이럴 때의 답은 딱 하나지.’

    현석의 감각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난 곳에서 대기 중이라는 뜻이었다.

    아마 멀리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저격을 준비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정말 철저히 준비했네.’

    현석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저격은 누구에게나 무서운 공격 방식이다. 하지만 현석은 예외였다.

    저격을 시도하는 순간의 살기가 마치 노려지는 포인트를 관통하는 듯한 감각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석이 훨씬 난감해 하고 어려워하는 공격 방식은 난사였다.

    기관총 같은 걸로 무지막지하게 쏟아 부으면 그건 피하고 자시고 할 틈 자체가 없었다.

    그럴 때는 그저 능력으로 막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직 현석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조만간 생기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석은 상대의 위치를 모두 파악한 다음 최창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했나?”

    현석의 눈빛이 어찌나 날카롭고 서늘한지 최창수는 순간 움찔 놀랐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이 새끼 진짜 스물한 살 맞아? 이제 막 각성한 초짜 플레어이어가 뭐 이래?’

    방금 순간적으로 베테랑 플레이어를 앞에 둔 걸로 착각을 했다.

    사실 베테랑이라고 해봐야 플레이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지 이제 고작 3년이 지났을 뿐이니, 3년차일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3년 동안 던전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싸워 온 경험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럽게 주변을 짓누르는 아우라가 흘러나온다.

    지금 최창수가 현석의 눈빛을 보고 느낀 것이 바로 그 아우라였다.

    “그럼 지금 당장 일행을 모두 모아. 아까 말했지? 30분 안에 해약 안 먹으면 마력 절반이 사라진다고.”

    “그거 농담 아니었나? 정말이야?”

    “내가 농담이나 할 사람으로 보였어?”

    최창수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만일 정말이라면 큰일이었다. 해약을 먹으면 뭐하나, 마력을 절반이나 잃는데.

    마력은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마력이 크면 강하고, 마력이 적으면 약하다.

    머뭇거리다가 힘이 반토막 나면 다들 얼마나 최창수를 원망하겠는가.

    그는 서둘러 커피전문점 밖으로 나가 다급히 손을 마구 휘저었다. 미리 약속한 신호 중 하나였다.

    일단 신호 자체는 공격을 뜻하지만 그냥 모이는 신호 자체가 없기에 어쩔 수 없었다.

    네 명이 사방에서 달려왔다. 최창수는 그들이 섣불리 현석을 공격하기 전에 외쳤다.

    “멈춰! 그냥 이쪽으로 와!”

    그렇게 외친 최창수는 모인 동료들을 보며 눈이 커다래졌다.

    “아차! 명석이!”

    최창수가 다급히 고개를 돌려 박명석이 숨어 있는 건물 옥상을 바라봤다.

    그 순간 날카로운 소음과 유리 깨지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핑! 쨍그랑!

    공격 신호와 동시에 준비하고 있던 박명석이 저격을 한 것이다. 그의 저격 실력은 정말 대단했으니 아마 명중했을 것이다.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한데 결과적으로는 상대를 안심시키고 긴장감이 살짝 풀어진 상태에서 저격을 한 셈이 되었다.

    “아…… 젠장!”

    최창수는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뻐억!

    “크으윽!”

    격통이 밀려왔다. 마력이 남아 있었다면 아마 건물이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력이 없어 괜히 주먹만 혹사시킨 꼴이 되었다.

    더럽게 아팠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아픔을 잊게 만들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잃어버린 마력을 대체 어떻게 찾지? 명석이 이 자식!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총을 쏘면 어쩌자는 거야!”

    물론 박명석은 미리 약속한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최창수는 그런 생각 자체가 아예 떠오르지도 않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화가 치밀었다.

    “그게 연기가 아니라면 너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

    최창수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뻣뻣해진 목을 억지로 돌려 방금 말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으헉!”

    기겁을 하며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현석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몸 곳곳에 먼지가 묻어 있었으니까. 마치 바닥을 한 바퀴 구른 것처럼.

    ‘설마 그걸 피한 거야? 명석이의 저격을? 그 상황에서?’

    놀라 말도 못 꺼내고 있는 최창수를 보며 현석이 말했다.

    “저놈 저대로 내버려 둘 건가?”

    현석의 턱짓에 최창수는 반사적으로 건물 옥상을 바라봤다.

    박명석이 이쪽으로 소음기가 달린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현석은 최창수를 이용해 박명석의 조준을 교묘하게 벗어난 상태였다.

    최창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맹렬히 양손을 크게 휘휘 저었다.

    이내 박명석이 총을 거뒀다. 최창수는 그런 박명석을 향해 어서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동작이 어찌나 컸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최창수를 보고 있었다.

    현석은 슬그머니 거리를 벌렸다. 일행이 아닌 척.

    그리고 최창수의 나머지 동료들도 현석과 똑같은 선택을 했다.

    나중에 상황을 파악한 최창수가 얼굴을 붉히며 동료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물론 그런 상황은 길지 않았다. 어느새 도착한 박명석과 함께 다시 커피전문점으로 들어가야 했으니까.

    * * *

    “이게…… 해약이라고?”

    최창수는 손바닥 위에 놓인 초록빛깔의 구슬을 가만히 살피며 중얼거렸다.

    나머지 그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해약은 왠지 꺼림칙한 빛깔을 띠고 있어 선뜻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대체 뭘 믿고 이걸 입에 넣는단 말인가.

    다들 그런 의심의 눈초리로 해약과 현석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현석은 그런 최창수 일행의 태도를 보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댔다.

    “이제…… 한 5분 남았으려나?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으니 어쩌면 벌써 늦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 말이 결정타였다. 이들은 마력이 사라진 그 허탈감과 탈력감을 뼈저리게 겪고 있다.

    아직도 절망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기분으로는 아마 평생 이 절망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좀 더 선택이 쉬웠다. 지금이 바닥인데 여기서 더 떨어질 곳이 어디 있겠는가.

    여섯 명이 일제히 입에 해약을 넣었다.

    “크윽!”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해약은 정말 지독할 정도로 썼다.

    하지만 효과도 그 쓴맛만큼이나 확실했다.

    ‘젠장. 어떻게 뱃속까지 쓴맛이 느껴지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해약으로부터 끊임없이 쓴맛이 느껴졌다. 혀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식도 자체가 쓴맛을 느끼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쓴맛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향기로운 마력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흐으으.”

    없던 마력이 온몸 구석구석에 스며드는 기분은 정말 끝내줬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쾌락이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다들 절로 터져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참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입밖으로 새 나왔다.

    참으로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현석은 그런 최창수 일행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잠시 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최창수가 의자에 널브러지듯 앉은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현석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사납게 번득이고 있었다.

    “정말로 해약이로군. 확실하게 마력이 모두 돌아왔어.”

    최창수의 동료들도 하나둘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다들 온몸에 넘쳐흐르는 마력을 주체하지 못한 채 현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 우리 순진한 플레이어님은 이제 어쩌시려나?”

    최창수가 사납게 웃으며 살기등등한 눈으로 현석을 노려보며 한 자 한 자 씹어 뱉듯 말했다.

    그러자 현석이 씨익 웃었다.

    “누가 순진하다고?”

    최창수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현석이 지은 미소와 똑같은 걸 던전에서 본 기억이 뇌리를 후려쳤다.

    “꿀꺽.”

    최창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어마어마하게 불길했다.

    < 다시 살아나다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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