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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화 (2/326)
  • < 다시 살아나다 1 >

    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무거운 듯하면서도 가벼웠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일단 상황파악이 먼저다. 던전이라는 것만 알지 여기가 어떤 던전인지, 또 방금 그놈들이 누군지 전혀 모르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현석은 주위를 둘러봤다. 한데 그 순간 저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봤다.

    현석은 눈을 잃는 대신 다른 감각을 얻었다. 청각이든 촉각이든 후각이든 엄청나게 예민했다. 특히 마력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민감했다.

    눈이 다시 보이게 되었어도 그 감각들은 여전히 날 선 칼처럼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설마 나간 건 아니겠지?”

    “그럴 놈으로 보였어? 아직 그 자리에 그냥 있을 테니까 걱정 마!”

    현석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저거 날 두고 하는 얘기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꽈르릉!

    현석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저 미친놈들!”

    틀림없다. 저놈들 지금 마수를 이쪽으로 끌고 오는 중이다. 그것도 벼락을 쏟아내는 마수를 말이다.

    그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여섯 명의 남녀가 맹렬히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쪽에 거대한 잠자리 한 마리가 쫓아오고 있었다.

    그 잠자리는 온몸이 뇌전에 휩싸여 있었다.

    “천둥잠자리!”

    저건 분명히 천둥잠자리였다. 게다가 크기와 상태를 보니 변종임이 틀림없었다.

    “브론즈 1등급쯤 되는 던전인가?”

    그럴 것이다. 그리고 저놈과 관계된 아주 불쾌한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변종 천둥잠자리가 갑자기 온몸에서 뿜어내던 뇌전을 거둬들이더니 속도를 높여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놈이 향하는 방향은 아주 명백했다.

    “목표가 나였어?”

    현석은 방금 떠오른 불쾌한 기억과 아주 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에 이를 갈았다.

    “최창수! 내가 저놈 이름을 잊고 있었다니.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그렇지……!”

    갑자기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슬쩍 옷을 들춰보니 흉터는 없었다.

    아주 오래전 저 미친 변종 천둥잠자리 때문에 생긴 흉터였는데,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아주 명백했다.

    현석은 일단 허리춤에 매달린 짧은 단검을 뽑았다.

    날카로운 마력이 날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아주 희미했다. 썩 좋은 아이템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정도면 저 미친 잠자리 하나 상대하는 데에는 별 문제 없을 테니까.

    “게다가 빌어먹을 기억이랑 똑같이 내가 벼락꽃의 진액을 먹은 모양이니까.”

    정신을 잃은 이유도 아마 그걸 먹어서일 것이다. 벼락꽃의 진액을 무방비로 먹으면 정신이 나가 버릴 정도의 쇼크가 찾아오니까.

    그리고 그것이 저 천둥잠자리가 미친 듯이 현석에게 날아오는 이유이기도 했다.

    과거의 현석은 이 상황에서 뒤돌아 도망쳤다.

    하지만 지금의 현석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는 그대로 천둥잠자리를 향해 내달렸다.

    천둥잠자리가 자신들을 지나쳤기에 속도를 확 줄인 여섯 남녀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설마 현석이 이쪽으로 달려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다들 준비해. 슬슬 사냥 시작한다.”

    “오케이.”

    다들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변종 천둥잠자리는 벼락꽃의 진액을 먹은 사람을 보면 정신줄을 놔 버리고 달려든다.

    말 그대로 미쳐 버리는 것이다.

    평소에는 지칠 줄 모르고 끝없이 쏟아내는 벼락 때문에 사냥이 버거운데, 저렇게 미쳐 버리면 그저 고기방패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벼락꽃의 진액을 먹은 사람은 만신창이가 되겠지만.

    최창수 일행은 그걸 이용해 몇 번이나 천둥잠자리를 사냥했다.

    어느새 현석과 천둥잠자리가 마주쳤다.

    “자, 가자!”

    최창수 일행이 일제히 천둥잠자리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그들은 천둥잠자리의 아래를 칼로 한 번 슥 긋고 그대로 지나쳐 이쪽으로 달려오는 현석을 볼 수 있었다.

    빠지지지지직!

    천둥잠자리의 온몸에서 벼락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뭐야! 저거 왜 저래!”

    “눈이 빨개졌어!”

    “다들 튀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천둥잠자리가 갑자기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극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저럴 때 근처에 있다간 그야말로 벼락 맞아 뒈진다.

    꽈릉! 꽈릉! 꽈릉!

    벼락이 최창수 일행을 향해 마구 쏟아져 나갔다.

    “으악!”

    “흩어져!”

    여섯 남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흩어져 도망치는 것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현석은 어느새 근처 나무와 바위 사이에 들어가 모든 기척을 지운 채 숨어 있었다.

    ‘살아남길 기도해 주지.’

    현석은 몸을 숨긴 채 천둥잠자리가 벼락을 쏟아내며 최창수 일행 중 하나를 쫓아가는 광경을 지켜봤다.

    아마 저들도 슬슬 깨달을 것이다. 도망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돌아서서 힘을 모아 맞서 싸우는 게 낫다는 걸 말이다.

    천둥잠자리의 분노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석이 그의 역린을 건드렸으니까.

    현석이 한 일은 천둥잠자리의 꼬리에 숨겨져 있는 그놈의 알을 푹 찌른 것뿐이었다.

    그 단순한 한 방으로 미쳐버린 천둥잠자리를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만들고 저렇게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좀 미안하긴 하네.”

    현석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최창수의 판단력은 생각보다 빨랐다. 어느새 일행이 다시 모여 천둥잠자리와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제법인데? 30분은 너끈히 버티겠어.”

    물론 저 전력으로는 절대 분노한 천둥잠자리를 이기지 못한다. 아마 다들 죽기 일보직전까지 갈 것이다.

    현석은 딱 그 시점에 나서서 마지막 일격만 가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쓰러진 놈들을 탈탈 털어줄 생각이었다.

    저들은 그런 꼴을 당해도 싸다.

    “그나저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먼저 알아봐야겠는데?”

    방금 천둥잠자리와 한 번 부딪히면서 알아낸 건데, 지금 자신의 몸에 남은 마력이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바닥 수준이었다.

    천둥잠자리에게 일격을 먹이고 이렇게 달아나기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현석의 초인적인 마력 컨트롤 능력 때문이지 마력이 남아돌아서가 아니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상황을 그렇게 간단히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분노한 변종 천둥잠자리는 비록 브론즈 1등급에 등장하는 마수이긴 하지만, 실버 등급의 던전을 도는 자들도 상대하기 꺼려하는 까다로운 마수였으니까.

    최창수 일행이 저렇게 선전하는 걸 보면 저들도 곧 실버 등급 던전을 돌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력은 바닥이고, 장비는…… 초짜 티가 팍팍 나고. 이거 뭐지?”

    사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상황 하나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말이 안 된다.

    “설마 죽었다가 깨어나니 과거로 돌아오고 이런 얼토당토않은 상황이 벌어진 건 아니겠지?”

    하지만 딱 그 상황이라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

    다시 눈이 보이는 것도, 또 마력이 바닥인 것도, 그리고 저 미친 최창수 일행을 만난 것도.

    “그러고 보니 최창수 저놈, 2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더럽게 젊네.”

    마치 시간이 멈춰 있었거나 되돌려진 것처럼 말이다.

    * * *

    현석은 천천히 걸어 최창수 일행이 싸우는 쪽으로 다가갔다. 슬슬 끝이 보인다. 아마 조만간 다들 쓰러질 것이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현석이 마지막에 천둥잠자리를 처리해 준다면 말이다.

    꽈릉! 꽈릉! 꽈르르릉!

    마치 천둥잠자리가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내듯 벼락을 뿜어냈다.

    “크윽!”

    “꺄아악!”

    그 일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다들 전격에 휩싸여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현석은 그 틈을 타서 천둥잠자리에게 달려들었다.

    천둥잠자리는 높이 날지 않는다. 그래서 그럭저럭 상대할 만하다.

    그리고 저렇게 과도한 힘을 쏟아낸 천둥잠자리는 아주 잠깐 빈틈을 드러낸다.

    “이렇게.”

    현석은 천둥잠자리 밑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머리와 몸통을 이어주는 이음새를 칼로 그었다.

    서걱!

    푸확!

    머리 아랫부분에 있던 이음새가 벌어지며 그 안에서 체액이 확 튀어나왔다.

    현석은 그대로 미끄러져 천둥잠자리 아래를 빠져나갔다. 당연히 체액은 묻지 않았다.

    “키에에에에!”

    천둥잠자리가 괴성을 내질렀다. 목에서는 체액이 계속 쏟아졌다.

    딱 거기가 천둥잠자리의 약점이었다. 그것도 방금처럼 벼락을 쏟아낸 직후에만 잠깐 드러나는 약점이었다.

    현석은 다시 천둥잠자리를 향해 달려갔다. 약점을 잘라내긴 했지만 저것만으로는 죽일 수 없다.

    휙!

    현석은 점프해 천둥잠자리의 꼬리에 올라탔다. 그리고 등을 타고 달렸다.

    탁탁탁탁!

    천둥잠자리가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현석은 그 와중에도 용케 균형을 잡아 빠르게 달렸다.

    순식간에 머리에 도착했다.

    현석은 양 손으로 칼을 꽉 쥐고는 천둥잠자리의 미간을 그대로 내리 찍었다.

    “키에에에에엑!”

    천둥잠자리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날뛰었다. 목에서 쏟아지는 체액의 양이 몇 배 늘어났다.

    현석은 칼을 꽉 쥔 채 끝까지 버텨냈다. 지금 찌른 부분이 바로 두 번째 약점이었다.

    첫 번째 약점을 잘라냈을 때에야 비로소 효과가 있는 약점이기도 했다.

    “키에에에에!”

    천둥잠자리는 그렇게 마지막 단말마를 외치고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현석은 그 순간 위로 몸을 띄운 다음 가볍게 착지했다.

    누가 봐도 초짜 플레이어라 할 수 없었다. 저 정도 몸놀림과 판단력을 보여주려면 이 바닥에서 최소 몇 년은 굴러먹어야 가능했다. 아니, 십 년은 굴러야 할지도 모른다.

    최창수는 바닥에 쓰러진 채 그 광경을 보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젠장. 제대로 똥 밟았군.”

    상대를 미끼로 써먹으려다가 도리어 역으로 당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벼락에 오지게 당하는 바람에 온몸이 마비 상태였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게 용했다. 다른 동료들은 다 기절 상태였다.

    그런 최창수를 향해 현석이 다가갔다.

    “벼락꽃 진액은 잘 먹었다. 아주 맛있던데? 덕분에 진귀한 경험을 했어.”

    현석의 말에 최창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 더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내가 말이야. 왜 하필이면 딱 이 시점인지 고민을 잠깐 했거든.”

    최창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대체 저게 무슨 말인가?

    “그런데 이제 답이 아주 어렴풋이 나오더란 말이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천둥잠자리를 쳐다봤다.

    다른 것도 아니고 변종 천둥잠자리가 나오는 곳이었다.

    현석은 천둥잠자리의 사체와 바닥에 누워 눈만 크게 뜨고 있는 최창수를 번갈아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최창수는 그 웃음에 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뭔가…… 잘못 걸렸다는 예감이 심장을 쿡쿡 찔렀다.

    < 다시 살아나다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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