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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화 (프롤로그) (1/326)
  • < 프롤로그 >

    앞이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난 시력을 잃었으니까. 그래서 항상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뭔가에 충격을 받았는지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이 아팠다. 아, 맞다. 나 죽었지.

    한데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숨은 쉬는 거 같은데?”

    “정신도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아.”

    “야, 눈 좀 떠봐!”

    눈을 뜨라고? 지금 그 말 나한테 하는 건가? 내가 눈을 어떻게 떠?

    라는 생각과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헉!”

    눈을 통해 세상이 들어왔다. 보인다. 눈이 보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슥 둘러봤다.

    눈빛만 봐도 알겠다. 저들의 감정을 말이다. 저건 절대 호의나 염려가 담긴 눈이 아니었다.

    한심함, 비웃음, 경멸.

    “괜찮나?”

    한 발 다가온 사내가 물었다. 그를 쳐다봤다. 왠지 낯이 익은 것 같으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주 먼 기억 속에 있는 뭔가를 억지로 끄집어내는 듯한 느낌?

    그리고 사내의 머리 위에 보이는 생소한 것.

    “최창수?”

    사내, 최창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최창수? 내가 니 친구냐? 이 새끼가 정신 한 번 잃더니 감을 상실했네?”

    난 아무 잘못 없다. 그저 네 머리 위에 반투명하게 쓰여 있는 글을 읽었을 뿐이니까.

    그제야 난 주위를 다시 둘러봤다.

    날 둘러싸고 있는 여섯 남녀의 머리 위에 각자의 이름이 보였다.

    난 그들을 차분히 둘러보며 내가 처한 상황을 정리해 봤다.

    첫째, 사람들 머리 위에 이름이 보인다.

    둘째, 난 원래 눈이 멀었는데, 갑자기 눈이 보인다.

    셋째, 난 원래 죽었다.

    넷째,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천국인가? 아니면 지옥인가?

    “그냥 두고 갑시다. 저런 놈 달고 다니면 다 죽어요. 던전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알아서 살라고 하고 우린 갑시다.”

    난 그제야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던전이었다.

    던전에서 죽었더니 다시 던전에서 살아난 것이다. 물론 내가 죽은 던전이랑은 좀 많이 달라 보였지만.

    최창수가 잠시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날 보며 물었다.

    “계속 따라올 수 있겠나?”

    당연히 난 대답하지 않았다. 널 뭘 믿고 따라가? 게다가 다른 놈들이 날 보는 눈빛을 보니 더 못 믿겠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최창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깊이 들어오지 않았으니 조심해서 돌아가면 나갈 수는 있을 거다. 할 수 있겠지?”

    날 버리기로 한 모양이다. 난 거기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내가 뭘 어떻게 할지 결정한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저쪽은 이미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다들 천천히 물러나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진 다음, 난 잠시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잠시 후, 더 당황스러운 일이 닥쳐왔다.

    < 프롤로그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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