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244화 (에필로그) (244/244)
  • 244- 에필로그.

    호텔 내에서는 VIP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전문 호텔리어들이 문 앞에 모였다.

    이미 몇 번의 기상콜을 했지만, 안의 손님은 응답이 없었다.

    무례를 무릅쓰고 열쇠로 문을 열었고, 안에서는 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데도 담배냄새가 물씬 풍겼다.

    “저, 회장님?”

    호텔리어가 조심스럽게 다가갔을 때, 책상위에 어제 시킨 룸서비스 음식과 술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소파 위에서 잠들어있는 VVIP손님은 바로 재환이었다.

    “회장님, 회장님!”

    “으으음, 음?!”

    귓가에서 속삭이는 호텔리어의 깨움에 눈을 뜬 재환은 얼굴을 찌푸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으, 어우···.”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피곤해 죽겠네.”

    재환은 호텔에서 일어나 거울을 봤다.

    50이 넘은 자신의 얼굴이 보정 하나 없이 날것으로 드러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좀 씻어야겠다고 욕실로 들어갔다.

    세면대에서 세수하면서 거울을 다시 본 재환은 피식 웃었다.

    “좋은 하루였어.”

    재환은 밖으로 나와서 호텔리어에게 말했다.

    “체크 아웃하고, 호텔 내에 사우나를 좀 이용하려는데, 바로 예약 가능할까?”

    “물론입니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재환은 호텔에서 몸을 완전히 풀고 밖으로 나왔다.

    차에 올라탄 재환은 밖을 보면서 호텔을 보고 피식 웃었다.

    ‘다시 생각해도 기적의 삶이지.’

    과거의 삶.

    부모도 잃고, 부인과도 갈라서고, 자식과도 소원해졌던 자기 자기자신만 신경썼던 때였다.

    하지만 결국 인생을 잘못 산 것 같다고 후회를 했는데, 호텔에서 잠들고 얻은 두 번째 삶.

    과거의 기억을 모두 가진 상태에서 다시 시작한 삶이었다.

    가족도, 결혼도, 회사도, 친구도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 앞만보고 달려나갔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모두의 손을 붙잡은 채로 말이다.

    ‘과거는 과거지. 그리고 다시 생각해도 지금이 더 뿌듯한 삶이었다.’

    재환은 눈을 감고서 양재동 집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비서들과 가정부들이 일제히 달려와 인사를 올렸고, 점심식사를 위해서 분주하게 주방을 움직였다.

    “어머, 왔어요?”

    셋째를 안고 온 미연이 뒤늦게 재환을 맞이했다.

    “때 아닌 호캉스라길래 무슨 일 있는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요.”

    “그냥··· 갑자기 가보고 싶어서.”

    과거의 삶을 떠올리면서 그 추억의 장소에서 똑같은 상황으로 하룻밤을 묵었던 재환.

    달라진건 없었고, 지금의 삶이 유지된다.

    재환은 막내딸 승미를 안으면서 좋은 음식냄새에 미소를 지었다.

    “아, 맞아. 당신 그 비트코인 지갑있잖아요.”

    “그게 왜?”

    “언제 뜯을 생각이에요? 완전 초창기때 샀는데, 개시도 안했다면서요?”

    “그랬었지.”

    과거 육공회 시절에 새로운 화폐가 될거라면서 가상화폐를 이야기 하고 대현이 투자하라고 했던 비트코인 개당 2.7원.

    이런 코인 장난은 낭비할 시간이 아깝다면서, 그냥 그 자리에서 3만원내고 알아서 계좌 만들어달라고 맡긴 것이었다.

    “오늘까지 코인 하나당 6900만원이래요.”

    “필요하면 빼다 써.”

    “어머, 진짜요?”

    “한 11만개 있던가?”

    어차피 재환에게는 의미도 없는 돈이었고, 즉시 사용할 급전 정도의 가치 정도였다.

    재환은 아내에게 그것을 맡기고서 식사를 하러 들어갔고, 뒹굴거리다가 저녁 산책을 하고 모임에 초대 받았다.

    ***

    “와~ 이 인간, 그동안 놀았다고 얼굴 기름진 거 봐.”

    ‘전) 육공회’ 이었던 회장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재환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줬다.

    “살이 좀 쪘어. 그래서 저녁마다 운동하는데, 또 술자리를 부르냐?”

    “그래도 그 정도면 관리 잘된거지.”

    “나이 오십에 늦둥이도 보고 말이야.”

    키득거리는 정인과 문영을 보고서 진짜 자신이 여기 돌아오긴 했다는 감정을 느낀 재환이었다.

    그리고 현규와 대현은 그때처럼 트럼프 카드를 꺼내서 한판 하자고 했다.

    거기에 선길까지 끼어서 오랜만에 4인 포커. 그것도 재계 1,2,3,4위 회장들이 모인 판이 되었다.

    “진용이 안 온게 아쉽네.”

    “하필 이때 공항 면세점 사업이라고 카타르로 갈게 뭐야.”

    “그것도 내가 뚫어준건데.”

    재환은 피식 웃으며 카드를 집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현규는 자신의 금테 안경 너머로 재환에게 넌지시 말했다.

    “그동안 우리가 같이 협력하면서 말이다. 한 가지 궁금한게 있었다.”

    “뭔데?”

    “너와 나의 차이는 뭘까? 왜 계속 내가 밀리는 느낌이지?”

    “···.”

    그때 대현이 김 샜다는 듯이 말했다.

    “기만자 소리하고 자빠졌다. 이 형 놔두고서 제낀 둘이.”

    “할아버지때는 1인자였지만, 지금은 밀린 저희 집안도 있습니다.”

    아성차그룹 회장과 KS그룹 회장의 말에 멋쩍게 웃은 현규였지만, 그래도 그 궁금증은 해결하고 싶었다.

    재환은 시큰둥한 얼굴로 카드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를 뛰어넘고, 압도적인 국내 1위의 시가총액 그룹을 만든 삼신 회장님께서 나에게 열등감이라도 있으셔?”

    “회사는 몰라도 개인재산이나 경영능력은 네가 한 수 위인 것 같다는 느낌이 계속 드니까.”

    “재계에 적을 안 만들면 돼.”

    “네가 해온 일을 생각하고?”

    “그건 적이 아니라 라이벌이지.”

    재환은 카드를 두고서 조용히 말했다.

    “사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너무 경쟁만능주의였어. A가 자동차를 만들면, B도 따라만들고, C도 만들지.”

    “흐음···.”

    “각자의 장단점이 있을텐데 무조껀 1인자가 되고 그 밑의 경쟁자를 제거하려고만 했지. 그러다보니 올라갈수록 적이 생기는 구도야.”

    “그거야 자본주의에서 당연한거 아니냐?”

    “그럼 만약 내가 30년 전, 자동차와 반도체, 재단에 바이오를 만든다고 했을 때, 여기 있는 사람들과 싸웠으면 어떻게 됐을까?”

    “···.”

    “난 그런 제끼는 스타일이 취미가 아니어서 말이지. 인화단결 중시를 한거야. 넘버1이 아니라 온리1을 선택했지.”

    넘버1을 선택한 삼신, 온리 1을 선택한 혜성.

    둘의 차이는 그거였고, 그러니 누가 더 우위에 있다는 비교는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기라고 말하는 재환.

    “그런 의미로··· 나 3페어 떴다.”

    “아, 이놈! 갠세이 걸다가 꼭 높은 패 나오더라?”

    “오랜만에 했는데, 또 이겼네?”

    패를 까보니 또 다시 재환의 승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모여서 술 한잔씩 하고 50대의 중늙은이들이 된 회장들은 예전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 사진을 찍은다음 각자로 돌아갔다.

    이제는 2차 가자는 말도 없고, 특정 집에서 들어와 회사 비전을 논하지도 않는 친목자리로 끝이 난 모임이니 말이다.

    ***

    [인천 청라지구에 완성된 혜성바이오 연구센터는 그동안 우리 농산물의 종자 보전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여러분 집에서 청양고추, 배추김치, 시금치 다 먹나요?”

    “네~~~”

    우렁찬 아이들의 말, 인솔교사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네~ 그래요. 우리가 먹는 그 채소의 씨앗을 바로 여기서 만들었어요.”

    국내 종자권 80%를 독점하고 있으면서, 회장의 명에 따라 사회적 가치로 마음껏 덤핑을 하여 농사짓기 쉬운 시대를 만들어준 혜성바이오.

    그곳은 연구소 자체로도 탑급의 기술력이었지만, 은근히 지역 학생들의 견학으로 생기는 이미지도 쏠쏠했다.

    재환은 그 모습을 보고서는 피식 웃으면서 차량 윈도우를 올렸다.

    “가시지 않으십니까?”

    혜성유통 부회장 자리에 오른 김준호의 질문에 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한 번 멀리서 보려고 한 거에요. 굳이 가서 뭐 방침 전달할 것도 없고.”

    “알겠습니다. 그럼 곧바로 부평 자동차 공장으로 향하겠습니다.”

    회장 2기에 오른 뒤로 말없이 자신의 계열사들을 한번 도는 재환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인천의 바이오, 자동차, 그리고 서해안을 타고 내려간 안산의 컴퓨터 공장.

    화성의 완제품 공장, 평택의 반도체 공장.

    특히 평택은 파운드리 시장 3위까지 올라와서 격려금을 왕창 뿌렸던 혜성 제1의 핵심기업이었다.

    “석찬이 녀석, 해낼 줄 알았다니까.”

    고통받던 대학원생 친구를 끄집어 올려 정성껏 키우니 지금은 혜성전자의 부회장으로 기록적인 매출을 찍고 있는 베스트 프랜드다.

    재환은 그 또한 추억으로 여기면서 다음은 충남으로 향했다.

    아성가를 통해서 인수했던 에어컨, 모터 공장, 그리고 원래 무노조 중심으로 유령계열사를 만들었다가 딱걸려서 재환이 대윤공장과 트레이드로 가져온 서산 경차 공장.

    지금은 경차로 박스카를 넘어 SUV를 만들어서 또 한번 시장에 폭탄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역시 잘 하고 있어.”

    재환은 이번에도 멀찌감치서 공장만 보고 퇴근 이후 노동자들을 수송한 회사 버스를 보고 거기를 향해 엄지를 올려주고 계속 가자고 했다.

    다음은 전라도.

    전주에서 IMF때 빤스랑 난닝구 백화점 앞에서 팔 때 인수한 회사.

    그리고 지금은 전북 일대가 패션 의류산업의 중심이 되어서 혜성패션과 혜성백화점 전주점은 호남권 쇼핑의 중심이다.

    그리고 광주.

    혜성그룹이 처음 시작한 곳이자, 정확히는 재환 아버지의 고향.

    캘리포니아에서 호남에서 농사짓던 것 같이 포도 키우시고, 조만간 와인 만들어서 한국에 보내주겠다고 선언하신 아버지는 잘 계실지 모르겠다.

    재환은 그 중에서도 내려서 자신이 만든 야구장인 광주 혜성타이거즈파크에 차를 멈추고 내렸다.

    그때의 기억이 어제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고, 막 경기중인 곳에서 재환은 바깥에서도 울리는 그 함성을 듣고는 눈을 감은 채 피식 웃었다.

    며칠이 걸리는 혜성그룹 회장의 투어는 계속됐다.

    창원에서 공단 노동자들이 대규모 기차를 크레인으로 올리고, 그것을 KRT공장으로 가져가 국민들의 발이 될 지하철 전동차와 친환경 전기동차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부산에 오니 서면과 해운대의 혜성백화점은 신누리, 샤를로트에 이은 3파전 싸움으로 유통 1인자를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대구로 올라왔을때는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부터였죠.”

    “네, 대구 선언을 말씀하신 것 맞습니까?”

    “자랑스러우면서도, 더 늙어서 들으면 뭔가 쑥스러울 것 같아.”

    그 뒤로 재환과 거래한 많은 향토기업들이 쓰러졌지만, 혜성은 끝까지 남아서 그들을 구제해주고 지역 경제를 위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혜성이 전라도 기업이라 말하는 사람도 없고, 경상도까지 가로지르는 초월적인 대기업으로 군림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노래 진짜 좋다니까?”

    내친김에 자동차 공장을 갔고, 거기에서 1톤 트럭의 물건 차이를 두고 삼신의 명예회장과 이야기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올라가 마지막으로 본 강원도의 의료단지.

    지금은 KTX로 서울에서 1시간대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상급종합병원으로 의료관광의 한축을 차지한다고 한다.

    재환은 전국을 돌면서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 ‘청주 IT산업단지’나 신축 건물을 올리기 위해 통합 타운을 만드는 ‘판교 혜성단지’, 증축하는 ‘호포읍 물류센터’ 등은 전부 완공 되는대로 들리기로 하면서 양재동 집으로 향했다.

    “3박 4일동안, 전국일주 하느라 다들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회장님. 그럼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양재동 자택 앞에서 내린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자신이 만든 존재들을 다시금 확인하고, 집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오는 길에 혜성표 [먼치킨]을 두 손에 가득 포장해서 들고 말이다.

    “남은 시간은 딱 정년까지만 해야지.”

    그리고 남은 인생은 오늘처럼, 또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뿌린 황금의 나무들을 돌아보고 사람들이나 만나면서 평생을 가족여행으로 지낼 거다.

    재환은 그렇게 다짐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세 아이의 아빠이자, 집안의 가주는 두 번째 재벌의 삶을 마음껏 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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