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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236화 (236/244)
  • 236- 꼬여드는 하이에나 무리.

    늦은 새벽 서해안고속도로로 수많은 대형 세단들이 달렸다.

    그 선두에 선 차량에는 잔뜩 굳어있는 재환과 가족들이 있었다.

    “엄마, 할아버지 많이 아파?”

    “쉬잇, 지금 그래서 문병을 가는 거 아니니.”

    미연은 아들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줬고, 재환은 그 상황에서도 말이 없었다.

    승윤은 조용히 엄마의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했고, 조용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번엔 딸인 승아가 말했다.

    “할아버지 저번에 혈압 있으시다고 이제 술 안드신다고 했는데.”

    단체 건강검진으로 혜성병원때 있었던 일을 딸이 말하자 재환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나한테도 이야기 안했는데, 할아버지가 그러셨어?”

    “응.”

    “승아야 아빠한테는 네!라고 해야지.”

    미연의 말에 재환은 조용히 승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요새 화도 안내신다고 하시고, 아빠가 아시면 뭐라고 한다고 말하지 말랬어.”

    “노친네 진짜···.”

    옛날에 비해서 얌전해진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한게 사실은 건강이 좋지 못했던 것 같았다.

    과거의 삶에선 죽도록 싫어서 의절한 양반이고, 현재에도 처음 3년은 정말 꽉 막힌 꼰대라고 투닥거렸지만, 그래도 결국은 다 화해하고 봉합된 갈등이었다.

    재환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고, 어느새 차는 광주로 향했다.

    그때 재환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음··· 으음. 알았어요. 주치의 양반 그곳에 있죠? 내가 직접 물어보면 되겠네.”

    재환은 통화를 마치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수술 이제 끝났대. 지금 집중 치료실 들어가셨다고.”

    “후우, 잘 됐대요?”

    “가서 확인해 봐야지.”

    재환은 광주 혜성병원에서 긴급 이송된 전남대병원으로 도착해 아버지를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재환 일가 뿐만 아니라 두 숙부들도 모두 모여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혜성그룹 일가가 전부 달려오자 VIP를 맞이한 전대병원 의사들은 TF팀을 꾸려서 맞이했다.

    “회장님.”

    “아, 원장님.”

    지난날 혜성그룹의 전담 주치의이자 혜성그룹이 의료재단 진출 이후 은퇴해서 광주에 병원을 차려 원장으로 임명해준 김 박사였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시죠.”

    “안에 갈 수 있어요?”

    “절대 안정을 취하셔서 창문 너머로만 뵈실수 있습니다.”

    재환은 전남대병원 의사들과 김 박사와 같이 그 병실로 향했다.

    그리고 VIP 병실 너머로 붕대가 머리에 칭칭 감긴 채로 호흡기에 의존하는 희경이 보였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제가 수술을 집도한 신경외과 과장 이현호라고 합니다.”

    “아, 네.”

    “환자분께서는 뇌동맥류, 그중에서도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광주혜성병원에서 전문 장비와 의료진의 부재로 이곳에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쾌유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일단 파열된 혈관을 잡아내긴 했으나, 다시 깨어나시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지 능력이 제대로 돌아오실지는···.”

    “후···.”

    재환은 그 상황에서 씁쓸한 얼굴로 나섰다.

    혜성그룹의 이름으로 최상급 의료시설을 서울에서부터 가져와 아버지를 집중치료를 명했고, 전대병원이 혜성병원간의 협력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다른 가족 친척들도 모두 달려갔고, 명숙은 아예 광주에 숙소를 잡고서 간병을 하겠다고 준비했다.

    다른 일가친척들이 하나씩 준비하고 있을 때, 재환은 김 기사를 따로 불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담배를 한 대 물면서 이야기 했다.

    “기사님이 아버지 모시면서 많은 일이 있으셨죠?”

    “···.”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된 겁니까? 말 좀 해 봐요.”

    “저 그것이··· 명예회장님께서 분기별로 한 번씩 광주에 들리셔서 지역구 의원들이나 도지사, 시장 등을 만나시곤 했습니다.”

    “정치권 사람들하고 사적으로요?”

    “네, 조금 전에도 제가 대기하고 있으실 때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신지 몰라도 말리는 정치인들과 화가 나신 명예회장님이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분노하시다가 갑자기 혈압이···.”

    “다함께민주당 출신들 맞죠?”

    “네, 일부는 무소속이나 정계 은퇴한 사람들도 있었던 걸로 압니다.”

    “후우, 저 영감님이 술잔 던지고 나올 정도면 뭔가 엄청난걸 들었다는 건데···.”

    여당도 아니고 텃밭인 야당 의원들과 무슨 이야기가 나오고, 거기서 쓰러질 정도로 흥분했다.

    재환은 가뜩이나 최순혜 건으로 인해서 스트레스가 받았는데, 이 참에 김대준 정부 이래로 엮였던 민주계 놈들과도 그만 정리하기로 했다.

    “어떤 놈들인지 좀 알아봐 줄 수 있나요?”

    “네, 알아보겠습니다.”

    재환은 김 기사에게 부탁한다면서 품 안에서 봉투를 꺼내 금일봉으로 건네줬다.

    “당분간 제 오더 맡으려면 좀 필요할 겁니다.”

    “회장님, 이건···.”

    “받으세요. 특근수당이니까.”

    재환은 강제로 주머니 안에 금일봉을 넣어주고, 김 기사에게 최근 희경이 움직이면서 일대 정치인들에 대해 알아오기로 했다.

    그리고는 늦은 밤 기전실장에게 바로 연락했다.

    [회장님, 지금 이야기 들었습니다.]

    “음?!”

    [사모님께서··· 명예회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시고, 혜성문화재단에 일을 당분간 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회장보다 먼저 와이프가 회사 일대에 알려준 일이었고, 덕분에 명예회장님이 위독하시다는 말에 임원들도 잔뜩 긴장한 상황이었다.

    “뭐, 그렇게 됐으니까 당분간은 광주에 머물려고 합니다.”

    “네, 회장님!”

    재환 일행은 모두가 광주에서 묵게 되었다.

    다행히 사돈 집안에서 소식을 듣고 광주 일대의 호텔을 임대해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돈 어른.”

    “아이고, 아닙니다. 빨리 쾌차하셔야죠.”

    오현우 회장의 동생 오성우 마이다스 호텔 사장은 재환 내외와 친척들이 쓸 고급 객실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그리고 재환은 홀로 방 하나를 잡아놓고서 노트북을 펼친 채, 전화를 이곳저곳에 돌렸다.

    ***

    한편 그 이야기를 들은 다함께당 전남도당에서는 쓴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나가서 쓰러졌다고?”

    “네, 뇌졸중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그 형님 성격 좀 죽이시지.”

    박시현 의원은 돋보기를 벗으면서 미간을 부여잡았다.

    사실 그가 기획한 공작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 또한 정치라고 생각하고 아쉽지만, ‘그 게이트’에 대해서는 진행시키기로 했다.

    “좋은 게 좋은거라고, 내 말 따라서 같이 협공했으면 얼마나 좋아? 새 정권 공신이 되면 차기 VIP가 안챙겨주겠냐고.”

    박시현은 혀를 끌끌차면서 깨어나는대로 문병은 가겠다고 비서에게 알렸다.

    그리고는 윗선에 전화를 올렸다.

    “아, 이 의원. 나 박시현이오.”

    [네, 박 의원님.]

    6선 당선의 정치 거물은 이번 일에 그림을 처음으로 그린 인물이었다.

    “이번에 말이지. 한 번에 몰아쳐야 하는데 말이지. 지역구와 비례대표 중에서 국정감사쪽으로 야무진 친구들이 좀 필요할 것 같소. 허허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동안 키워놓은 인재들이 많지 않습니까? 지금 대통령 지지율도 그렇고 이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럼, 그럼~ 사실 그쪽 정권이 10년이면 오래 해먹긴 했지.”

    [맞습니다. 게다가 경제련의 꼬리를 잡았으니, 이제 그 놈들도 한큐에 보낼 수 있습니다.]

    두 야당의 거물은 이번 게이트를 앞두고서 궤도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

    한편 광주에서 자료를 모으던, 재환은 그동안 호남에서 터를 잡은 혜성과 지역구 출신의 거물들과의 유착관계를 보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후우, 이런 거 하지 말라니까···. 명예회장 자리에서도 정치자금을 따로 보내셨어?”

    확실히 옛날 사람이어서 그런지 수첩에 후원 장부까지 보관된 것을 보고서 한숨만 나오는 재환이었다.

    이게 드러나는 순간 혜성그룹과 정치권에 대한 핵폭탄이 될 수 있었다.

    재환은 그것을 전부 숙지한다음 김 기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주 만났던 인물들은요?”

    “전남도당 위원장인 박시현, 전남도지사 이남혁, 광산 지역구의 유명철 전 의원 등입니다.”

    “호남 일대 거물은 다 잡은건가.”

    “거기에 수도권쪽으로 공천을 한 호남 출신 의원들에 대해서도 많은 후원을 하셨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죠.”

    재환은 김 기사가 알아온 정보를 가지고,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생각했다.

    분명히 그쪽도 움직일 것이다.

    혜성그룹 회장이 이 자리에 머문다는 이야기로 벌써부터 지역에 거물들이 신경쓰고 있었다.

    아마도 빠른 시일내에 문병을 빙자해서 자신을 찾을테고 그러다보면 분명 찾아오는 녀석이 있을거다.

    그때 재환에게 휴대폰이 왔다.

    “여보세요?”

    [어머머, 회장님. 최 이사장이에요. 호호-]

    “···아, 네.”

    [이야기 들었어요. 명예회장님이 쓰러지셨다고요? 나이도 있으신분이 어쩌나··· 제가 잘 아는 병원이 있는데, 서울로 올라오셔서 집중치료를 받으시는게 어떤가요?]

    “조금의 충격도 있어선 안되는 상황이니 사양하겠습니다.”

    [아이고, 빨리 깨어나셔야 하는데 어째? 그럼 일단 회장님과의 투자 이야기는 비서실에 연락하면 될까요? 호호호-]

    “후우, 일단 정리하고 다시 전화 드리죠.”

    정말이지 여기저기서 귀찮게 하는 것들을 재환은 한 번에 다 쓸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재환은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을 봤다.

    “죄송합니다. 아직 환자분께서는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아, 그래서 면회가 안된다면 병간호 하시는 가족분들이라고 뵌다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저희가 알 수 없습니다.”

    “허~ 이거야 원!”

    인천에서 광주까지 먼 길을 왔던 다함께당의 송현길 의원은 투덜거리면서 재환을 찾았다.

    그리고 재환은 이왕 온 사람이니 그대로 들이받기 위해 조용히 자리에서 나왔다.

    “아, 회장님!”

    “송 의원님이시군요.”

    “명예회장님의 쾌유를 빕니다. 정말 한국 경제사의 큰 어른이신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준비한 꽃다발을 건네주자, 재환은 김 기사에게 그것을 맡기고서 조용히 자리를 나섰다.

    “아직 못 깨어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을테고, 저를 보러 오신거 아닙니까?”

    “하, 하하! 그건 아니지만, 겸사겸사 송도 혜성바이오 개발단지에 대해 이야기드릴게 있긴 하군요.”

    당황하는 송현길을 향해 재환은 피식 웃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전남대병원 인근에 있는 커피숍에 앉은 재환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은 이쪽에다가 밑밥을 던져야겠지.’

    재환은 그것을 계산하고서 살기어린 눈으로 송현길을 노려봤다.

    “저, 저기 회장님?”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좀 막 말할 수 있군요. 사실 저 역시 다 알고 왔습니다.”

    “네? 무슨 말씀을···.”

    “아버지가 쓰러진게 다함께당 의원들 때문인데 말이죠.”

    싸늘한 눈에 이번 일에 자신의 당이 관여됐다는 말에 송현길이 움찔했다.

    “하, 하하! 저는 인천에서 막 온지라 자세한 상황은 모르는데, 실례지만···.”

    “송 의원님도 고향이 이쪽이시죠? 여수인가 고흥인가 하셨는데 말이죠.”

    “그, 그렇습니다만.”

    “저는 정치자금 같은 거 신경 안썼는데, 아버지께서 그동안 많이도 후원하셨더군요. 심지어 총선 이후 지난 분기까지 알차게 말입니다.”

    “!”

    “이래도 모르신다고 하겠습니까? 심지어 아버지는 그때 이후 다함께당 지역구 사람들과의 분쟁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혈압이 올라 쓰러지신겁니다.”

    “회장님!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중앙당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고 그런 일이 있다면 당 차원에서···.”

    “민주당계 성지인 호남에서 일어나는걸 중앙당이 몰라요? 정치판 돌아가는걸 제가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재환은 그 상황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잡고서 송현길에게 선언했다.

    “그동안 다함께당과 있던 관계는 제가 청산할 겁니다. 이 이상 정치자금 후원 같은 것도 없을 거고요.”

    “회장님! 뭔가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만 재환은 자신의 할 말만 하고 그 자리에서 나갔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면서 담배를 꺼내물었다.

    ‘1시간, 아니 30분 내에 바로 보고가 되겠지. 모르는척 하는거라면 바로 연락해서 돈줄 사라진다고 회의를 할거고, 진짜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재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치짬밥 헛 먹었으니 다음 공천에서는 민간인이겠지.’

    재환은 그렇게 생각하고 하나하나 정리에 들어갔다.

    ***

    “박의원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신희경 명예회장과 저희 당 사이에 일이라는데, 신 회장이 그것 때문에 노발대발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허허, 그래요?]

    “5대기업 중에서는 우리 당에 가장 큰 후원을 해준 곳인데, 이거 어쩝니까? 총선 이후 다음 대선 준비가 한창일텐데 말입니다.”

    [혜성의 그 젊은 회장, 회사는 잘 키우더니만 정치판에선 아주 썩은 동앗줄을 잡았구만.]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의원님?”

    [됐소. 아예 이쪽이랑 갈라서겠다는 것 같은데, 썩은 동앗줄 잡은 곳을 더 봐줄 필요가 있나?]

    이 순간 여당이고 야당이고 혜성그룹에 대해서는 한 번 봐야 할 존재로 찍히게 되었다.

    그것이 호의건 적의건 간에 재환과 엮일 정치인들은 많을 것이고, 그로 인해 게이트가 열릴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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