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코가 걸리다.
=재환은 준비된 차에 탑승했다.
기전실장을 포함해 아무도 동행할 필요가 없다고 했으며, 혜성그룹 회장이 호위 한 명 없이 초대받은 곳으로 향한다.
‘옛날 생각나네.’
현금왕이라 불리며 조단위로 대기업에 사채를 융통하던 전설의 영감.
그리고 코드 원의 초대로 향했던 청기와의 집.
옛날 일들이 하나하나 생각나는 걸 보면 자신도 나이를 먹었다고 느끼는 재환이었다.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빌딩, 그 최상층에 있는 펜트하우스에는 현재 한국 제일의 비선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입니다.”
“흐음.”
재환은 안내를 받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갔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드러난 것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명품의 공간이었다.
“···.”
순금 타일에 슬쩍만 봐도 수천~수억대의 도자기와 그림들이 걸려있는 곳.
하지만 비싼 것들만 난잡하게 설치해놔서 미적 감각은 영 꽝인 곳이었다.
“이사장님. 모셔왔습니다.”
“호호호, 그래요?”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노인을 보고 재환은 저 양반을 실제로 보니 순간적으로 표정관리가 안됐다.
단군 이래 최고의 국정농단이라 불렸던 당사자 최순혜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값비싼 프랑스제 명품 정장에 손 여기저기에 꽂힌 다이아 반지와 금목걸이등. ‘걸어다니는 명품 마네킹’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어머, 혜성그룹 회장님이 이 자리까지 오시니 아주 영광이네요. 호호호-”
“아, 네.”
다즐링 홍차에 갚비싼 수제 쿠키가 나오면서 그녀가 하는 말은 입이 마르도록 현 정권에 대한 찬양이었다.
“딱 지금 같은 경제가 제일 좋은 것 아니에요? 정말이지 아버지를 이은 성군이 아닐 수 없어요. 호호호-”
자화자찬에 가까운 지금 정권은 잘하고 있다는 말.
그러면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이 모든건 다 돈 이야기다.
“지금의 정권, 그리고 향후까지 생각해서 우리 신나라당이 계속 오래가는게 기업인 입장에도 좋겠죠?”
“아, 뭐 저야···.”
“어머,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지. 당장에 회장님 장인께서도 여당 소속 아닌가요? 호호호-”
“이제는 국회가 아니라 지자체로 가지만요.”
“아깝네요. 내가 진작에 알았다면 위엣분들에게 부탁해서 도지사 자리도 충분히 가능하셨을텐데.”
“무슨 자격으로요?”
“어머, 우리 같은 나랏일 하시는 분들에 대한 보좌에는 말 못할 이야기가 많답니다. 호호호-”
웃음 소리부터 손짓 하나하나가 딱 벼락부자가 된 철부지 복부인과 같은 이미지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곧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있죠? 아직도 조직위의 예산이 부족한 상황인데 혜성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네요.”
문제는 돈.
재환은 그 말을 듣자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요새 레트로 제품을 만들다 보니 이런것도 구비했죠.”
그 옜날 미니 단파라디오. 그것도 테이프로 녹음이 가능한 모델이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향후 얼마가 오갈지 모르는데, 최소한 증서는 있어야죠.”
그 순간 최순혜의 표정이 일순 바뀌었다.
“신 회장님. 장사 잘 모르시네요. 이런 건 어디까지나 구두로 이야기 해야 나중에 이야기가 안 되죠.”
“하지만 녹음에 대해서는 필요성이 느껴지는데요? 막말로 뇌물죄로 독박은 누가 씁니까?”
“호호호, 나중에 내가 문서로 만들테니까 이건 치우죠.”
최순혜는 곧바로 라디오 내에서 테이프를 빼내고서 녹음 행위가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재환은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만년필을 꺼내 앞에 있는 노트에 적었다.
“언제고 찝찝하게 엮일 일에 대해서는 관여 안하는데, 그럼 하나하나 정리해보죠.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지원이라 하셨죠?”
재환이 만년필로 ‘평창’이라고 쓸 때, 최순혜는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IOC위원하고 FIFA 위원에 대해서 혜성가 사람이 올라간다고 했는데요. 국가 차원에서 그걸 봐줄수 있어요.”
“그건 이미 저하고도 이야기가 되 가는데요.”
“하지만, 보증을 정부가 해주는거죠. 둘 중 택일이 아니라 둘 다 보내드릴수 있어요. 적당한 인재만 추천해주면요. 호호호-”
국제기구 인사이동이 그렇게 쉬운 거였으면, 재환이 발에 땀나도록 뛰지도 않았을거다.
하지만 최순혜는 자신이라면 분명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자부했고, 실제로 이 인간은 외교부 대사나 차관이나 외청장 자리는 자기 전화 한통으로도 임명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
“거기에 맞춰서 여기 비서실장하고, 민정수석, 정무수석 등에 자리좀 마련하고, 그러면서 필요한 정치자금이 있는데 그건 국제기구 자리 두 개 요청하는 데 문제 없겠죠?”
“후우, 그 다음은요?”
“이번에 창조문화재단에서 올림픽 외에도 한류 문화사업을 하는데, 거기에 대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금액이 얼마나요?”
“삼신이 187억 정도를 줬으니, 혜성도 그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요?”
“···.”
“그 대가로 혜성에게 필요한 것을 지원해 드리죠. 호호호.”
“제가 뭘 필요로 하는 줄 알고요?”
“흐음, 일단 해외에서 반도체 산업으로 고생하시는데, 국내 세액 절세가 있을테고 특허와 규제안 몇 개를 풀어드릴 수 있어요.”
“그걸 본인이요?”
“전화를 한다면 금방 풀릴수 있다니까요? 전 그저 위에 알리고 그것을 해결할수 있는 수고비를 요청하는 겁니다.”
이런식으로 최순혜 일가가 대기업들에게 높으신 분에 대한 알선, 그리고 떨어지는 수고비를 차지한 금액이 수천억에서 수 조원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재환은 오히려 이런 상황이니 웃음이 나왔다.
고상하게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정권에 높으신분들 사이에서 알선해주고, 의뢰 받아줄테니 돈 줘’ 이걸 기업 단위로 하는 일이 아닌가?
이게 만약에 7-80년대의 상황이었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재환은 그 외에도 많이 있냐고 묻자, 최순혜는 아예 서류를 가져와서 무슨 어린이재단, 뫄뫄 영재센터, 어쩌구 문화재단등의 수많은 법인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대해 혜성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청구했다.
“이것들 다 있으면 있죠. 정기 조사 외에는 VIP내의 임기 내에 기습적인 세무조사도 없고, 계열사 위기시에 국가에서 현금지원도 가능해요. 호호호.”
나랏돈을 자기집 금고에서 돈 빼 쓰는 것처럼 말하는 이야기.
게다가 거기에 필요한 금액과 거기에 따른 제안까지도 문서를 검토한 재환은 불편함 가득한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만남으로 인해 확실히 증거는 잡았다고 여긴 재환은 신사동 건물에서 나와 바로 본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최씨 일가의 차에 탈 때, 저 멀리서 그것을 보고 있는 의문의 그림자가 있었다.
‘저거 혜성그룹의 신재환 회장 아닌가?’
‘저 양반도 그쪽에 포섭이 됐나보군요.’
‘저 양반은 비자금이나 탈세 문제도 없었고, 그나마 상식적인 기업인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상식적인 재벌이 어딨겠습니까? 다 이권에 따라 움직이는 장사치들이죠.’
그들은 재환의 모습을 몰래 촬영하고서 곧바로 보고를 올렸다.
현재 여당과 대적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양당이 과반수가 안 되는 상황에서 현 정권에게 비수를 노리는 세력이 말이다.
***
한편 오랜만에 광주에서 연락을 받은 희경은 가족들을 놔두고 고향 사람들을 만나러 왔다.
“회장님, 한 잔 받으시지요.”
“회장은 무슨, 내 아들녀석이 그 자리에 있지. 난 은퇴한지 오래라우.”
“하하하, 그래도 지금의 대제국 혜성을 만드신건 회장님이 아닙니까?”
“이 사람 오늘따라 왜 이렇게 비행기를 태워?”
한때는 새정치당, 이름을 바꿔 우리당, 그 뒤로 민주연합, 민주통합한국당 등의 이름을 바꾸다가 야권 분열 이후 지금은 여당을 넘어 원내 1당을 차지한 다함께민주당.
그리고 이 사람들의 이름이 몇 번이 바뀔때까지 후원해왔던 것은 희경이었다.
‘뭐, 아들놈 돈을 쓴 건 없으니까.’
올드스쿨의 마인드로 그래도 기업인이 어느정도의 후원자금을 보내는 건 법적인 선에서 운영을 위해 필요하다 생각했던 신희경 명예회장.
그리고 그런 이들은 이번에 아주 큰 건을 가지고서 딜을 준비했다.
“최근 정권이 너무 막 나가는 것 아닙니까?”
“이 사람들. 앓는 소리 하고 있구만? 임기 2년 가까이 남은 정권에서 여소야대 했으면 대성공 아니요?”
“제 3당의 그곳을 저희 편이라 생각하십니까?”
“흐음~”
대선 후보이자 현 더불어당 문준영 대표와 갈라선 닥터 안, 안현수 대표의 신국민당이 문제였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130석 언저리에서 팽팽할 때 중간에서 40석을 가져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희경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 소주를 들이켰다.
“정치하는 친구들이어서, 오자마자 정치 이야기인가? 미안하지만, 내가 뭐라 한다해야 달라지는게 없을거요.”
“하하하, 왜 그러십니까? 신 회장님.”
“내가 뭐 힘이 있나.”
그런 이야기 속에서 오늘 희경을 찾아온 정치권의 거물이 나타났다.
목포 지역구의 4선의원이자, 희경과는 막역한 사이였던 박시현 의원이었다.
“아이고, 형님 오랜만이십니다.”
“아, 그래. 요새 의정활동 잘 하고?”
“네, 그렇죠. 하하하!”
다시 자리가 무르익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을 준비했다.
희경은 그 이야기를 듣다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조용히 물었다.
“자네들··· 미쳤나?”
“지극히 정상입니다.”
콰앙!
희경은 책상을 내리치며 외쳤다.
“미치지 않고서야 탄핵이라니! 어디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가?”
“형님, 이미 증거자료까지 다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절대 벗어날 수 없게 전국민 앞에 언론으로 폭로가 될겁니다!”
현역 대통령의 탄핵 준비.
다함께당은 그것을 위해서 2중, 3중으로 증거들을 모았고, 총선 이후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단 한방에 뒤집을 계책을 마련한 상태였다.
“내가 정치인이 아니어도 그게 얼마나 난리가 될 거라는 건 알고 있네!”
“그렇지가 않습니다. 기존의 적폐세력을 몰아내고, 새정치를 위해서는 이번 게이트의 증거자료로 쓸어버리는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자네들이 차지하고?”
희경은 혀를 끌끌 찼다.
“이제껏 내가 후원했던 게 자네들의 그 공작에 쓰이는 줄 알았으면, 오늘 이 자리 오지 말 것을 그랬구만!”
하지만 박시현 의원은 그런 상황에서 지금 이야기에 불쾌해 하는 희경을 향해 말했다.
“형님,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어서 신재환 회장은 빼 주려고 하는데, 왜 이리 역정이십니까?”
“!”
“이미 비선실세와 국정농단의 증거자료에 회장님의 아드님이 있는데 말입니다.”
“너, 너··· 지금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내가 그런 헛소리 들으려고 온 줄 알아?”
하지만 박시현은 이미 비서실에서 받은 관련 자료를 내밀었다.
“작년 정은규-최순혜라는 로비스트 집단에 대해 아시죠? 민간인에 가까운 이들이 인사권과 정부 정책안을 두고 대통령과 기업 사이에서 줄을 대주는 인물들입니다.”
“그게 어쨌···!?”
그순간 희경 역시도 봐 버렸다.
분명 최순혜의 자택인 신사동 펜트하우스에서 초대받은 재환, 그리고 거기에 대한 사진들.
이후 다음으로 내민 것은 혜성도 속해있는 경제련에서 올림픽 발전기금과 문화재단에 대한 기증이라면서 100억 단위의 차떼기가 이뤄진다는 증거자료들이었다.
“아시겠습니까? 혜성 역시도 이 태풍 안에 있다는 것을요.”
“이, 이익···.”
희경은 수십년간 후원해오면서 형님동생한 사이에서 이런 일에 자신의 아들을 엮은 것에 굉장히 분노했다.
“형님, 우리 사이니까 말하는 겁니다. 이번 게이트 키운다고 하더라도 신재환 회장과 혜성그룹에 대해서는 최소한으로 벗어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나한테 아들놈 설득해서··· 정치자금이라도 더 내놓으라고?”
“하하, 저희 이야기는 아직···.”
희경은 더 못듣겠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됐네, 이 사람아! 어디서 우리 집안에 코를 걸려고 하고 있어? 그동안 여기 후원한게 후회스러울 정도구만!”
“회장님, 회장님!”
“시끄러, 이 새끼들아!!!”
아직 이야기 다 끝나지 않았는데, 나가려는 희경을 다함께당 광주당과 전남도당의 중진급 정치인들이 말리려고 했지만, 오랜만에 그 당시 폭군이라 불린 분노가 치밀은 그를 말릴자가 없었다.
“허억··· 허억··· 으하아아!!!”
“괘, 괜찮으십니까? 회장님?”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희경을 보고 김 기사가 황급히 물었지만,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나 달라고 하면서 분노의 연기를 내뿜었다.
“하여간··· 여당이고 야당이고··· 꼬투리잡아서 더러운 공작질은···.”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부들부들 떨고 있는 희경.
김 기사는 황급히 호텔로 모시고, 혜성가 전담 주치의에게 연락해서 명예회장님 혈압을 체크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희경은 머리가 깨질듯한 충격에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렸다.
“으윽, 으으윽···.”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머리를 부여잡고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희경.
그 순간 김 기사는 호텔이 아니라 인근 병원을 급하게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