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가족 건드리기 있냐?
재환은 웨스턴 호텔에서 가족들을 모두 초대해서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오늘은 아버지의 희경의 생신.
그로 인해서 혜성가 사람들이 모두 모였고, 즐거운 가족 파티가 벌어졌다.
“자~ 승윤이 승아! 할아버지한테 편지 읽어야지!”
“네~”
손주들이 읽는 편지를 보며 이제는 백발이 성성해진 혜성그룹 초대회장 신희경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뒷방 늙은이가 된 뒤로 자신이 설립한 회사 커져가는 것과, 손주들의 재롱만 봐도 행복했다.
“만수무강하세요. 아버지.”
“고맙구나.”
일흔이 넘은 아버지의 눈물에 재환은 웃으면서 좋은 와인을 대접했다.
“옛날 생각나네요.”
“호호호, 많은 일이 있었지.”
어머니 명숙의 이야기에 재환 역시도 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가끔은 전화기 속의 호통소리나, 재떨이 던지는 소리가 그립네요.”
“아이고, 이 녀석이!”
그 옛날 성격 괄괄한 폭군이란 칭호를 받은 신희경 회장은 없었다.
이제는 손주들 앞에서 녹아내리면서 화도 잘 안낸다는 호호할아버지만 있을뿐이다.
재환은 그 외에도 숙부들이나 사촌들과 같이 술 한잔 하면서 즐거운 자리를 가졌다.
와인을 좀 과하게 먹어서 잠시 바람좀 쐬러 나왔을 때, 한 의원이 있었다.
“아, 장인어른.”
“그래. 사돈어른 생일잔치가 아주 화려하구만, 허허허!”
“다음번엔 장인어른 생신때도 잘 챙겨드리겠습니다.”
“아니, 나는 됐어. 그냥 손주들 데리고 집에서 밥해먹는게 더 편하네. 허허허!”
재환은 장인과도 이야기를 하면서 일체 기업이나 정책에 관한 것은 언급하지 않고 오늘은 편히 즐기기로 했다.
웨스턴 호텔 일대에는 자제를 했는대도 1천개가 넘는 화환이 있었다.
“칠순도 아니고, 일반 생일인데도 이 정도라니···.”
“그만큼 우리 사위가 그룹을 이만큼 키웠다는게 아닌가?”
재환 역시도 싫지만은 않아서 일렬로 널려 호텔의 벽을 장식한 화환의 행렬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러는 와중에 바깥에서는 수많은 기자들이 있는 자리라고 한다.
재환은 통제를 잘해주는 진용에게 고맙다는 연락을 한 번 해주고, 실내에서 흡연실을 찾았다.
그때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오는 인물이 있었다.
“회장님, 의원님!”
“···.”
그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만 슬며시 다가온 인물이었다.
“아니, 정 실장?”
“하하하,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정은규, 그 친구가 다시 돌아왔다.
박 대통령의 의원시절 비서였으나, 지금은 아무 직책도 없을텐데 정치권과 기업인들 사이에 은근슬쩍 모습을 드러내는 미친 존재감의 로비스트.
재환은 그를 보고서 미간에 삼지창이 올라왔지만, 일단은 손님으로 왔으니 대우는 해 줬다.
“초대는 안 했는데, 화환까지 준비했나요?”
“하하하, 세계적인 대기업 혜성그룹을 만드신 창업주의 생신잔치인데 당연히 하나 바쳐야겠지요.”
“마음만 받고 싶다고 하고 싶은데, 돌려보내는것도 예의가 아니죠.”
재환은 일단 감사하다는 말 정도는 한 다음 돌아갔다.
하지만, 정은규는 그 모습을 보고 재환의 뒤에 대고 말했다.
“저희와 너무 거리를 두려는 모습, 서운합니다.”
“···.”
재환은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들어갔다.
그리고 정은규는 정중하게 올린 인사 속에서 무시를 받았다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철부지 녀석이 아직도 상황을 모르고···.’
***
재환은 지난 생일 잔치 이후로 뭔가 그룹 내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여기저기서 무슨 행사에 지원 요청이 이리도 많아?”
“회장님, 이게 다 산하 재단에 관련된 요청이라고 합니다.”
“쓰읍.”
재환은 자신이 실소유자지만 컨트롤 하기 애매한 유니콘 기술재단, 혜성문화재단, 혜성의료재단 등이 지원금 등으로 나가는 것이 신경 쓰였다.
“이게 다 잔잔바리인데, 신경이 쓰인단 말이죠.”
어디 재단에 몇천만원, 어디 재단에 또 몇 백만원, 또 어느 법인에 몇천만원 등이 나간다.
대다수는 정부 산하에 있는 외부 법인, 혹은 정권의 높으신 분들이 감투 하나 받아서 나온 자리들이었다.
“대다수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에 필요한 자금 조달이라고 합니다.”
“후우,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따지고 싶긴 했는데, 그걸 이야기 한게 전부 숙부들 아니면 혜성의 OB들에게 준 자리들이었다.
어느 정도의 꼬다리 던져주는 것은 예상했어도 이 정도까지 오니 신경이 쓰였다.
“감사팀 운용해서 이것들 전부 확인하게 하고요. 좀 줄입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재환은 혹시 모를 호미로 막을 것들은 미리 다듬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또 다른 것들이 연달아 폭탄으로 다가왔다.
***
와장창창창!
재환은 갑작스런 소식에 홧김에 서랍장을 걷어찼다.
“줬다뺏는게 가장 치사한짓인데, 그 짓거리를 해 버리네?”
지난번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에 대해서 풀어준다는 말을 듣고 확장 공사를 하는데, 환경부가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같은 국가공무원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분명 정은규와 관계 있는 녀석들이 혜성에 재를 뿌린 것이다.
재환은 분노해서 씩씩거리다가 바로 장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 사위.]
“장인어른, 제가 지금···.”
그때 한 의원은 혼자만 있는게 아니었는 듯 했다.
새한국당의 의원들이 있는 가운데 누군가가 거친 목소리로 ‘나 바꾸라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위, 혹시 다른 의원님과 대화 되겠나?]
“···.”
[허허, 이 사람. 어떻게 사위한테 그러나, 장인이 하라면 하는거지.]
그러면서 전화를 빼앗듯이 받은 인물은 걸걸한 사투리가 묻어나는 의원이었다.
[아이고, 신 회장님. 잘 지내시죠?]
“!”
[나, 최성환이올시다!]
현재 여당 내에서 최고의 거물로 평가받는 4선의원 최성환.
당대표를 맡다가 곧 경제부총리겸 재경부 장관으로 오른다는 설이 파다한 인물이었다.
“아, 최 의원님. 지난번에 한 번 인사 드렸었죠?”
[신 회장! 이거 장인이 속한 정당이고, 우리 다 아는 사이인데 요새 너무 섭섭한거 아니요?]
“그, 섭섭하다는게··· 혹시 정치자금 이야기입니까?”
[아이고~ 큰일날 소리를!]
혹시라도 이게 녹음될까봐 미리 한 발 빠지긴 했지만, 저놈들 요구하는건 똑같다.
이전부터 명예회장인 희경이 돈 대신 값어치가 있는 도자기나 족자, 산수화 등을 눈치껏 여당과 야당의 중진들에게 바치던걸 재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거 안해도 잘 되갔는데, 이번 정권 들어서 노골적으로 떡고물을 원하는 손들이 많았다.
재환은 그것을 알고서 적당히 대화에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
“네, 의원님. 나중에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벌써 끊으시려고? 내 장인 바꿔 드릴까요?]
“아닙니다. 퇴근하시면 그때 이야기 드리죠. 집안 일입니다.”
재환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고, 오늘 육공회 모임에 대해서 이 일을 이야기 하려고 했다.
적어도 경제련이라도 움직이면,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해답이 나올수 있을거다.
하지만, 그쪽 역시도 똑같았다.
***
“이번에 경제련에서 정부에 각출하기로 했다.”
“뭔 개소리야? 어떤인간이 그딴 안건을 냈는데요?”
대현의 말에 격하게 반대하는 재환의 반응.
하지만 다른 오너들 역시도 이번 일은 어떻게 피해갈 수 없을 거라면서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재환은 그 말에 맥주를 쭉 들이키고 탁자를 내리쳤다.
쾅!
“뭐야? 이거?”
“···진정해 재환아.”
“우리가 이제껏 여기서 만나 한 프로젝트가 몇 개지? 서로 합심해서 세계 시장 노린건 또 몇 개고? 그러면서 동맹을 맺은 것은 잊었어?”
재환은 그런 상황 속에서 담배를 물고 다시 외쳤다.
“근데 뭐야? 우리가 정부에게 삥이나 뜯기자고 매일 모였던거냐?”
“···.”
그들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연장자인 대현이 지금 상황에 대해 말했다.
“이번에 KS는 세금폭탄으로 추가 납세 2300억 받았다.”
“!”
“뭐, 다 냈으니 딱히 검찰청 들릴 일은 없는데 말이지. 분기 수익 하나 조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정인도 말했다.
“이번에 우리 원자력 발전소 진출하려는거, 정부가 막아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인수한 중장비 회사 ‘서벌캣 인더스트리’ 국내 상장하려는걸 막았어. 세무조사 추가로 들어온다고 한다.”
정인에 이어 다음엔 선길이었다.
“휴우, 박 정권에서 이번에 문화한류 사업한다고 지원한거 무시했다가, 삼성동에 입찰한 11조원 땅을 놀리게 생겼어요. 미친놈들이 그걸 인허가를 안해주네?”
하나하나가 각자의 그룹 내에서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우린 서초 우성하고, 신반포 10차,11차 아파트 재개발. 그거 추진위 입찰까지 다 끝냈는데 삽도 못 푼다!”
효령그룹, 그리고 그 뒤로 면세점 문제에 어깃장을 받았다는 신누리 그룹까지 모두가 하나씩 엿을 먹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걸 종합해서 대현이 말했다.
“우리가··· 길거리 동네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 걸린것들이 수천억에서 조 단위다. 근데 떡고물좀 달라고 몇십억, 몇백억 요구를 한다. 이거 안 낸다고 기업 하나하나를 조지고.”
“···.”
“신 회장. 우리가 어째야겠냐? 그냥 세금이라고 쳐야지. 그거 아끼다가 수조원 사업 다시는 못 할래?”
“막말로 우리가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정권 남은 기간 생각한다면 언제고 터질 일이었어.”
“게다가 직접 내는 것도 아니야. 경제련에서 각출한 다음 내는 방식이니 나중에 캐내는 것도 안나와.”
“다음 정권 바뀐다 하더라도 묻힐테고.”
재환은 이미 체념하면서 ‘더러워서 내고만다.’라는 분위기인 육공회를 보고 혀를 찼다.
“당분간 경제련 얼씬도 말아야겠네.”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은 누구하고도 2차 가서 안 먹는다면서 일찍 빠져나갔다.
그렇게 떠나갈 때 자신이 잘 말하겠다며 다른 멤버들에게 말한 현규가 재환을 따라가 말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붙잡힌 재환은 그에게 이야기를 드렸다.
“그래, 너는 뭐 달라대?”
“···마사회 지원.”
“···.”
“추가로 기존 전 회장님이 가지셨던 페이퍼 컴퍼니와 비자금을 모두 없던걸로 해준단다.”
재환은 네가 그것 때문에 슬기로운 감빵 생활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오늘 상황 보니 이미 각출은 끝난 것 같았다.
“뭐가 어쨌건 선 넘는 짓은 이번 한번으로 하련다.”
“정 안 되면, 네 몫은 내가 대신 내줄까?”
둘의 사이라면 정말로 그럴수도 있다는 말이었지만, 재환은 웃으면서 차에 올라탔다.
***
그날 저녁 집에 왔을때는 온 손님들이 많았다.
“사위, 왔는가?”
“아니, 장인께서 여기를···.”
“여보. 아버님도 오셨어요.”
“오랜만에 너네집에서 사돈이랑 술한잔 하러 왔다.”
희경까지 오자 재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자리에 참여했다.
그런데 거기에 끼는 것은 와이프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들이 자고 있을 때, 나온 이야기는 차마 재환이 다 들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니까··· 재계와 정계에서 모이는 클럽이 있고, 거기에서 부인회가 결성되서 로비가 있었다고?”
“네, 네···.”
그 이야기를 들은 재환은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여당의 실세들과 재계의 사모님들,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비선들 까지도 개입해서 관련자들에게 정치자금을 끌어올린다고 하는 말이었다.
재환은 자신의 아내까지 개입될 것 같아서 인상을 찌푸렸고, 그 상황을 알아차린 희경이 물었다.
“아가, 그놈들이 얼마 달라디?”
“저, 그···.”
“괜찮아. 나도 알아야 따지기라도 하지.”
한 의원까지 말하자 미연은 다 털어놨다.
“몇 년 뒤에 있을 평창올림픽이··· 정권 내 마지막 업적이 될거라면서, 문화 한류 사업 지원하고, 동계올림픽 홍보 비용해서 육백···.”
“6백?”
“···만 달러···.”
“이것들이 어디 삥뜯을데가 없어서!”
희경이 오랜만에 혈압이 확 올랐다.
옆에 있던 재환 역시도 이전까지 안 보였던 살기 가득한 눈이었다.
한 의원은 그 상황에서 고개를 숙였다.
“사돈어른, 그리고 사위! 이건 내가 사과하겠소. 기업들 자금으로 정치자금 만든다는 거, 막으려고 했지만 윗선에서···.”
“그 윗선에 더 윗선이겠죠.”
재환은 조용히 말하면서 술잔을 집어들었다.
“아버지 생신때 온 그놈이 마지막 경고였군요. 그 뒤로 우리 와이프까지도 건드리다니, 어디까지 피를 빨아댈지는 모르겠는데··· 안 넘어갑니다.”
그룹과 자신에게 코를 걸려는것도 열받을 짓인데, 가족들을 건드렸다.
거기에 대해 재환은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었고, 죄다 뒤집어엎어 버리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