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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재벌의 삶!-229화 (229/244)
  • 229- 전초전에 주고받는 장갑.

    매우 긴 싸움이 될 것이다.

    이제껏 신제품을 가지고 그것에 대한 PR과 실시간 판매량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싸움은 많이 해 봤지만,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는 덤핑으로 버티기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 싸움을 준비하면서 재환은 돌고돌아 결국은 이게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에 피식 웃었다.

    “옛날 생각나네.”

    “무슨 옛날 생각?”

    현규의 물음에 재환은 관악구 녹두거리 골목식당에서 치맥하던 과거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 옛날 펩리스 반도체 전문회사인 디스램 먹겠다고 네가 준비했고, 내가 그거 모르고 지분 인수하다가 나 찾아온거.”

    “아···.”

    생각해보면 삼신과 혜성의 반도체 역사는 거기에서 분기점이 되었다.

    그동안 아성전자나 동원전자 등의 위탁생산 파운드리 위주의 개발에서 펩리스 회사들을 인수하려고 했고, 완전인수가 아니라 대주주 선에서 끝났지만, 그 뒤로 벌어진 반도체 삼국지.

    IDM, 팹리스, 파운드리를 모두 차지하려던 삼신전자는 동맹으로 혜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 뒤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돈독했던 회사 A-컴퍼니와는 척을 지게 되었고, 이후 미국의 반도체 회사들이 부품을 전부 대만쪽으로 보내서 나온 구도가 이 상황이다.

    만약 혜성이 없었면, 확고한 2위로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추격했겠지만, 그건 이미 지난 삶에서 재환이 알고 있었다.

    ‘4:1로 싸운데다가 내외적으로 충돌해서 결국 내리막길이 됐지.’

    하지만 이제는 ‘삼신이 둘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커진 혜성전자가 같이 있으니 승산이 있는 싸움이었다.

    “해볼만해! 일단은 확장공사부터 시작해야겠지.”

    “지난번 수도권 총량규제 허락받은거··· 용인하고, 수원쪽 쪼금만 떼 줘라. 전부 삼신의 이름으로 지불할게.”

    “공장부지라도 엄~~청 비싸겠지만, 특별히 염가로 해 주마.”

    물론 재환 역시도 반도체 공장인 평택사업소를 2배가 아니라 3배로 규모를 키울 것이고, 반도체로 전자부품을 조립하는 안산공장과, 화성연구소에 대해서도 추가 확장 공사를 준비할 거다.

    ***

    2주 후

    판교 경한대병원에 도착한 재환은 꽃다발과 선물을 가지고 들어왔다.

    “어디보자. VIP 병동이라고 했지?”

    재환은 기전실 임원들의 안내를 받고서 그곳으로 찾아갔다.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을 때, 그 안에는 몸 이곳저곳에 심박기를 덕지덕지 붙인 이기남이 있었다.

    “아이고, 몸 좀 괜찮습니까?”

    “회장님!”

    “가만 계세요. 안정을 취하셔야지.”

    옆에서 병수발을 들고 있던 노부인이 황급히 일어나 인사했다.

    “안사람입니다.”

    “그래요. 오랜만에 뵙네요? 작년 골프 모임 이후로요.”

    “네, 회장님!”

    지난날 혜성이 임원진들 모아서 골프모임때 봤던 이기남의 부인을 반갑게 대했다.

    재환은 꽃다발을 주고 가져온 혜성백화점제 견과 세트를 건넸다.

    “심장에는 견과류가 좋다고 하네요. 몸 관리 잘하셔야죠.”

    “면목··· 없습니다. 회장님.”

    “사람이 아픈데 면목을 따집니까?”

    긴급 수술 이후로 닥터헬기로 빠른 치료를 했어도 의식이 없던 이기남 부회장은 겨우 깨어나서 재활을 준비했다.

    “건강관리 잘 하셔야죠. 부회장님도 곧 있으면 일흔이 아닙니까?”

    “늙은이가 회사에 너무 오래 있었습니다.”

    “그런 말씀 마시고, 몸 건강히 돌아오세요.”

    “앞으로 술은 다 먹었군요. 하하하.”

    재환은 이기남 부회장의 문병 속에서 그를 데리고 잠시 옥상의 공원으로 향했다.

    “후우, 좋군요.”

    재환이 지은 하얀 거탑 위에 따사로운 햇볕을 받는 이기남 부회장.

    재환은 그를 향해 음료수를 건네며 말했다.

    “몸 아픈 분에게 일 이야기 하는게 그렇긴 하지만···.”

    “아닙니다. 회사가 우선이지요.”

    “인트라넷에서 보안 프로그램 내가 다 봤습니다.”

    “···.”

    “삼신과 같이 대만 파운드리 업체들 친다는 계획, 부회장님이 저한테 올리려고 한 거였죠?”

    “···.”

    “덕분에 내가 다시 현장 뛰게 됐습니다.”

    “그 건은 아직··· 내부 임원의 조율이 필요하고, 삼신과 확실히 이야기가 끝나면 그때 올리려던 안건이었습니다.”

    “네~ 그래서 제가 현규 불러서 바로 쇼부봤죠.”

    밑의 경영진이 입씨름 하면서 전략을 준비했던, 긴 시간이 걸렸던 프로젝트인데 오너가 그 자료를 보고는 곧바로 회장들끼리 술 한 잔에 도장 찍고 시작한 일이 됐다.

    이기남은 그 말을 듣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 이것을···.”

    환자복 앞주머니에서 USB 메모리를 하나 꺼낸 이기남 부회장이었다.

    “원래는 제가 가지고 있는 기획안이었지만, 이제는 회장님이 가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이거.”

    상무급 이상으로 특수보안 프로그램이 깔리 USB 메모리를 제공하고, 자료들을 관리하게 했는데, 그들의 위에 있는 이기남의 자료라면 분명 엄청난 아이디어가 넘칠 것이다.

    “잘 보관하고 있죠. 몸 관리 잘 하시고 퇴원 때 뵙시다.”

    “네, 회장님.”

    재환은 문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USB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다음날 재환이 출근해서 자료들을 열람했을 때, 그 안에는 향후 혜성의 백년대계가 가득했다.

    “평택 반도체 공장 확장··· 이건 나도 생각했던거고, 40만평의 청주 산업단지에 제 2반도체 연구소··· 이것도 생각한거고···.”

    그 외에는 수량을 잔뜩 늘린다음에 판매처에 관한 것이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이후로 수많은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등을 판매할 곳들.

    재환은 거기서 이용할 수 있는 시장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재미난 것을 발견했다.

    [혜성전자 제2 반도체 공장 기획안]

    “호오?”

    평택의 규모 역시도 탑 클래스지먼, 그 이상으로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이 아니었다.

    수많은 해외법인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한 곳이 여러개 있었다.

    “하, 나야 다 아는거지만···.”

    과거를 한 번 살고 온 재환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납득될만한 공장부지들을 선정해서 올린 것이다.

    재환은 그것을 보고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한 번 시작해볼까?”

    재환은 기전실에 연락해서 곧바로 혜성전자 임원 회의에 들어갔다.

    ***

    “이번에 삼신하고 동맹을 맺고, 대만 시장하고 한 판 붙을 거라는 건 모두 알 겁니다.”

    이제는 확정된 전쟁. 선전포고는 혜성이 하고, 물자 제공은 삼신이 한다.

    “어차피 10년전에도 일본 시장하고 붙으면서 D램 덤핑하던게, 이제는 플래시메모리로 바뀔 뿐이에요. 그리고 이번엔 혜성도 참여하는 겁니다.”

    재환은 그것을 위해 하나하나 임원들에게 임무를 맡겼다.

    “먼저 강석찬 전무.”

    “네, 회장님.”

    “지금 사업 정리하시고, 곧바로 유럽으로 가셔야겠습니다.”

    “!”

    “네덜란드의 탈리스, 그리고 독일 시멘스 등의 사업체에서 군용 마이크로 칩 개발이 있다는데 그쪽 입찰을 따내야 될 것 같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해군 군함에 쓰이는 레이더에 쓰이는 핵심 기술의 반도체를 위탁생산한다는 막중한 임무였다.

    이미 대만의 TMC나 USM은 미국의 스텔스기 반도체도 파운드리로 받는데, 혜성이 그쪽 길로 가는건 조금 늦은 경향도 있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 했지.’

    재환은 뒤에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보이며 말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대중적인것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스마트폰과 태블릿, MP3 플레이어 등의 자체생산에만 몰두한거죠.”

    하지만 이제는 스케일을 키워야 할 때,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입찰을 더욱 더 받아내야 한다.

    “네,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회장님!”

    재환은 런던 지사에도 연락해서 그쪽하고 협업을 준비하게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그리고 영국 외에 유럽에 새 전자 사업부를 만들 생각입니다.”

    “!”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임원들도 놀란 얼굴이었다.

    이미 유럽 사업부는 런던에 혜성 EU법인이 다 잡고 있었는데, 거기서 또 세분화를 시킨다니 뭔가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재환은 거기에 대해서 추가로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에 브렉시트다 뭐다 해서 영국이 EU 독립한다고 하는데, 이게 단순히 뻥카로 끝날거 같지는 않아요.”

    “회장님, 그렇다면 유럽에 준비하는 모바일 2공장 업체를 새 법인으로 올리는게 어떻겠습니까?”

    안승철 사장의 말에 재환은 그게 낫겠다고 생각하며 채택했다.

    “좋아요. 그러면 딱 이 조건을 채울 수 있는 유럽 제 2법인을 만듭시다.”

    재환은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첫 번째, EU내의 국가일 것, 두 번째는 그쪽 정부에서 세액공제와 인프라 충원 확답을 받을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치안이 안정되어서 증오범죄를 확실히 통제할 공권력이 있는 곳입니다.”

    재환의 말에 따르면 그런 곳을 찾으려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오더는 떨어졌고, 이제부터는 회장님을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 외에 각종 파운드리 입찰에 대한 오더를 내려 임원들이 국제적으로 움직이는 자리가 되었다.

    ***

    한편 재환은 미국에 있는 엘리사 수에게 화상전화를 걸고 물었다.

    “지금 본사에서는 반도체 산업을 올리고 있는 생각하고 있는데, 군용이나 우주산업용 CPU만드는거 가능할까요?”

    [네?]

    엘리사 수는 자신들의 CPU가 아니라 군용과 우주산업용을 만든다는 말에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사업 중에서 떠오르는게 하나 있었다.

    [회장님, 이번 RX 시리즈에서 한 가지 준비한게 있습니다.]

    “뭐죠?”

    [최근 미 국방부 내에서 신형 슈퍼컴퓨터에 대한 입찰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은요?”

    [70%로 봅니다. 최근 중국과의 경쟁에서 신형 슈퍼컴퓨터에 대한 생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호오, 그렇군요.”

    [거기에서 핵심 부품을 담당할 N디아하고 협상을 해서 그쪽 반도체 공정을 저희가 위탁생산하는 입찰에 들어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런 기회가 있다면 당장에 준비해야죠!”

    일단 공식 발표도 아니고 70%의 확률로 입찰을 받을거란 소문이었지만, 재환은 여기에도 배팅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북미, 유럽, 동남아, 중국, 일본 등 각종 지역에서 돈되는 반도체 입찰이라면 뭐든지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CPU등은 IDM으로 하고, D램과 그래픽카드에 대해서는 파운드리 공정으로 움직였던 혜성전자가 작정하고 그쪽 시장을 파고 들자 수많은 대만 업체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혜성전자, 세계 반도체 시장에 대한 전쟁! 선언?]

    [파운드리 시장, 더 이상 삼신 하나만이 대한민국 대표가 아니다.]

    삼신은 하던대로 계속 움직이고, 거기에 혜성이 제트 엔진을 달았다.

    그리고 이 상황은 곧바로 세계 반도체시장을 뒤흔들었다.

    “회장님.”

    [뭡니까?]

    혜성전자 임원들과 기전실장 준호가 같이 와서 해외 신문을 건넸다.

    “이런건 카톡 링크로 걸면 될 것을 굳이 다들 와···서···?”

    재환은 영자신문을 읽으면서 눈이 점점 커졌다.

    [TMC의 반격, 삼신과 혜성을 막아내고 왕좌를 차지할 것인가?]

    [300mm 웨이퍼 공정, 5년 안에 연간 1천만장 시대를 연다.]

    “미친···.”

    현존하는 300mm 반도체 웨이퍼가 전 세계 모든 공장을 합쳐도 2000만 장이 될까 말까 한다.

    그런데 거기서 1천만장 규모의 생산을 한다는건, 대놓고 절반 이상의 과점을 만들겠다는 거다.

    현재 삼신하고 혜성의 파운드리를 다 합쳐도 300만 장이 될까 말까인데, 급이 다른 생산량을 시도한다는 말에 재환은 그 신문을 불끈 움켜줬다.

    “제대로 하자는 거군.”

    “회장님, 지금 단가를 최저로 맞춘 상황에서 저렇게 박리다매로 나온다면···.”

    당장에 매출은 올라도, 수익이 와장창 깎일 속빈 강정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시작한 전쟁에 겨우 카운터가 한 방 날아왔을뿐이다.

    “이런거 무서워했으면 애초에 선전포고도 안 했죠.”

    재환은 그렇게 말하면서 임원들이 다 모인김에 나갈 준비를 했다.

    “평택반도체공장 현장이나 한 번 가 봅시다. 3배로 늘린다는 규모. 얼마나 잘 되는지 보자고요!”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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