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공익 제보 후 돌아온 것.
이른 아침 재환은 빼도박도 못할 자료들을 가지고 여러곳에 전화를 돌렸다.
‘공익정보 하나 제보하려고 하는데요?’
‘아! 이거 비밀이 보장되는 거죠?’
‘이걸 알리는 순간 영원히 그 방송국과 우리의 인연은 사라지는 겁니다.’
‘누군데 그런 말을 하냐고요? 글쎄요?’
까놓고 말해서 혜성그룹 회장의 세컨폰으로 하는 연락망을 언론사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재환은 알아도 모르는 척 식으로 능글맞게 그 소중한 공익제보를 알렸다.
[회장님, 그게 진짜입니까?]
“네~ 익명의 제보자가 혜성문화재단에 보고를 올렸네요.”
[그, 그게 누굽니까? 어디서 그런 정보를?]
“그걸 알면 익명의 제보가 왜 있게요? 그냥 팩스 보내지 말까요?”
[아닙니다! 바로 보도하겠습니다.]
재환은 오늘 9시 뉴스에 일제히 보도를 기다리면서 방송국 3사에 종편 4사까지 합쳐서 소중한 제보를 했다.
옛날 같았으면 석간신문에 올리는게 직빵이었겠지만, 시대가 바뀌어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기사 하나만 올라와도 메이저 신문사가 바로 물어서 어디든 올리는 정보화의 세상이다.
그리고 9시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눈치를 보다가 갑자기 저녁 6시에 선빵을 치는 기사들이 올라온 것이었다.
[네, A채널 저녁뉴스입니다. 오늘은 충격적인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달하겠습니다. 나라의 안보와 과학기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인공위성, 그 주파수와 기지국까지 모두 외국에 불법 매각하려는 시도가 벌어져 A채널이 보도합니다.]
24시간 방송 중 정치쇼와 뉴스의 비율이 80% 가량이었던 종편이 결국 먼저 보도했다.
8시와 9시의 뉴스를 기다리던 지상파 뉴스는 다급히 속보 자막 뉴스만 먼저 보냈다.
[속보: KT, 인공위성 해외 매각 추진. 9시 뉴스데스크에 보도]
[속보: 한국 인공위성 중국에 팔린다. 오늘밤 8시뉴스에 보도.]
[속보: KT의 국가 인공위성! 해외에 몰래 매각!]
재환은 성냥 하나로 쏘아올린 불꽃이 화려한 폭발의 쇼가 되는 역사적인 상황을 퇴근 후 집에서 관람하기로 했다.
***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우리 기술로 만들고 주파수에 대한 중요한 전략자원인 인공위성의 매각시도··· 도대체 사건의 내막이 뭔지 지금부터 보도하겠습니다.]
삑-
[네, 여기계신 패널 위원님들께서는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KT가 지난 2002년 공식적으로 민영화가 된 이후 사실상 민간기업인 상황에서 아직도 나라의 물자를 보관하고 있다는 겁니다.]
삑-
[믿기지 않은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번 KT의 인공위성 매각건에 대한 보도. 지금 SBC에서 시작합니다.]
“어머머, 무슨 뉴스가 전부 인공우성 이야기야?”
“저게 그만큼 엄청난 기사라는거지.”
“세상에, 그 우주에 있는 위성 그거를 해외에 판다고요? 그것도 15억 정도에?”
“미친거지.”
재환은 자신이 던진 제보의 파급력에 피식 웃었다.
철저히 비밀로 붙인 보도였으나, KT의 임원들이 해외 여러 투자자문사에 매각 이후 국제법 변호사와 매각자들의 해외법인 설립에 대한 보도를 낱낱이 긁어댔다.
그리고 그 기사에 따라서 자신에게 오는 연락은 단 하나도 없었다.
재환은 9시 뉴스 이후로 드라마가 끝날때까지 혹여라도 여기에 관련된 인물이 육공회 내에서 나올까 생각했지만, 다행히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읏차! 오늘은 시원한 것도 봤으니 일찍 잘까?”
기지개를 켠 재환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그날밤 아주 편하게 잠들었다.
***
다음날이 되고 신문에서도 대서 특필을 할 때, KT가 아침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사를 내리라고 압력을 넣기에는 너무도 큰 건이었고, 결국 대표이사 이성재가 나와서 해명을 해야 했다.
11시에 하는 공식 기자회견은 이미 30분전부터 수많은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이성재 대표가 나오자 카메라 셔터소리가 스피커 전체에 울렸다.
[이성재: 네, 먼저 국민의 정보화 시대를 책임지는 KT가 이런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사과도 아니고 ‘유감’이다.
[현재 KT에서는 해외에 국내 인공위성인 무궁화 1.2.3호에 대한 불법 매각에 대한 건에 대해 내부 조사가 들어갔으며, 본격적인 보고가 들어온 것은 아니라고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일단은 잡아뗀다.
그리고 대표이사까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어물쩡거리는 순간 기자들이 날카롭게 물어뜯었다.
[해외 투자자문에 인공위성 매각건을 알아본게 사실입니까?]
[홍콩의 ASL사의 법인하고, 매각담당 임원이 그곳으로 이적한다는 계약서는 뭡니까?]
[여러 투자자문사가 공개한 이 계약이 맞는 겁니까?]
기자들의 공세에 쩔쩔매던 이성재 대표는 준비한 멘트만 말하고 나머지는 알아보겠다고 하면서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
그리고 며칠간 KT와 인공위성 매각에 대해 7개의 방송국들이 앞다투어 보도를 아끼지 않았다.
종편 입장에서는 필사적인 시청률 상승을 위한 뉴스이고, 지상파 3사 나름대로 9시 뉴스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기자들을 총동원했다.
***
콰앙!!!
보고를 받은 ‘그 분’은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분노에 쌓여있었다.
“어우, 어우우우!!! 그 망할 것들이 그랬단 말이야?”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기자들이 긁어대는데, KT도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번 사업 건에 있어서 인공위성을 헐값에 사들이고, 그 통신망을 해외에 제공할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ASL은 이번 일로 인해서 그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다 된 밥이었는데, 어떤놈이 재를 거하게 뿌려서 공든 탑을 전부 무효화시켜버렸다.
[아아아악! 진짜!]
히스테릭한 그분의 목소리에 전화를 받는 일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강 실장!]
“네, 회장님.”
[그놈들 자문료가 얼마야? 한 푼도 못준다고 해. 병신같이 그걸 흘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다시는 한국 기업하고 투자 문제 이야기 못할거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그분의 극대노로 인해 이번 일은 이렇게 접을 수 밖에 없었다.
***
한편 재환은 오랜만에 육공회에 참여한 뒤로 큰 떡밥 이야기 없이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었다.
“세상이 말세다. 어떻게 그런 일이 다 있냐?”
“원래 정권 초기에는 좀 어수선한 사건사고도 나고 그러는 거죠.”
“여러모로 박여사 정권 수습하느라 진땀 좀 빼겠네?”
대현이나 정인, 진용, 선길, 문영 모두 한 마디씩 하면서 이번 정권에 대해 1년차부터 우려를 보였다.
“김동인이는 아직 공식 직함 받은거 없지?”
“글세, 언제고 공정위나 금융위, 경제부총리 이런 자리 올 것 같기는 한데.”
“경제민주화 문제로 시끌시끌 할 거야.”
재환은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서 그냥 묵묵히 맥주만 마셨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흐르자 결국 다른 멤버들이 나섰다.
“근데 우리 신 회장은 아까부터 왜 저렇게 말이 없냐?”
“그러게, 무슨 일 있어?”
재환은 남은 맥주잔을 비우고서는 말했다.
“다들 뭐 하나 좀 묻자.”
“또 뭔데?”
갑자기 진지해진 분위기가 된 것 같아 모두가 재환에게 집중했고, 그가 모두에게 물었다.
“정권 초창기에 기업 길들이기 한다면 뭐가 우선순위지?”
“음?”
“그거야··· 역시 세무조사 아닐까?”
“어우, 생각만들어도 소름끼친다.”
새 정권이 생길 때마다 언제나 하는 것이 딱 세 개 있었다.
첫 번째는 경제련을 방문해서 간편한 복장으로 대통령 외 10대기업 총수들이 모여서 식사 자리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새 경제부총리의 금리와 환율조정이었다.
금리와 환율의 앞에 ‘저’가 붙냐 ‘고’가 붙냐에 따라서 서민경제와 기업경제가 천지차이로 벌어졌고, 그로 인해 촉각을 곤두서는 것은 새 정권의 초대 경제관료들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세무조사였다.
기업을 때리는 것으로 정권 지지율을 높이는 것은 언제나 먹히는 유효타였고, 그로 인해서 절세건 탈세건 상관없이 일단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쳐서 시퍼런 박스안에 서류 한가득 담고 다니는건 연례행사가 된다.
재환은 그 세가지를 두고서 세무조사가 먼저 올 것이라 예상했다.
“가장 위험한게 어디지? 일단 작은 기업부터 치려나? 바로 5대그룹 치려나?”
세무조사에 대해서는 불안해하는 오너들 앞에서 재환은 새 맥줏잔을 들고 말했다.
“아무래도 세무조사가 먼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재환아, 너 혹시 어디서 들은 소스 있는거냐?”
세무조사에 특히 민감한 곳은 효령그룹의 문영과 KS그룹의 대현이었다.
둘 다 정권 차원에서 상당한 조사를 많이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해외법인 비자금이나 탈세, 횡령, 배임 등의 수많은 사건에서 이제껏 많은 조사를 받아서 정권 차원에서 거하게 과징금을 문 적이 수두룩했다.
반면 아성차나 삼신은 지난 정권때 이후로 그쪽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손을 써서 상대적으로 숨 돌릴 틈은 있었다.
“어쩌면 정권 인물들 성향에 따라서 우리 혜성이 첫 빠따일수도 있고.”
“너, 그쪽 대선 캠프에 뭔짓 했냐?”
재환은 그 대답에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뭔가 감추는 게 있는 것 같아 추궁하려고 해도 재환은 여기까지라는 듯이 시크릿을 유지했다.
그날 밤 돌아가는 길에 현규와 대현이 무리해서 재환의 집에 들리겠다고 고집이었다.
“아, 나중에 와요. 나중에. 나 오늘은 진짜 피곤하니까.”
“피곤할만 하겠지. 하지만 꼭 할 말이 많으니 야근한다 생각해.”
대현의 말에 재환은 시계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집에 가야 차릴거 없어요. 집사람 아들딸 데리고 제주도 갔으니까.”
“더 좋네? 음식 시켜가지고 먹자. 와이프 집 비웠을 때가 제일 좋을 때야.”
“아, 진짜 다른 멤버들 미안하게.”
재환은 안된다고 먼저 떠났지만, 기어이 도곡동 집 앞까지 찾아와서 치킨 세 마리에 캔맥주까지 사들고 왔다.
재환은 한숨을 쉬면서 들어오라고 안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최대한 입을 닫고, 혀를 안으로 넣으면서 최근 돌아가는 정세, 그리고 KT 인공위성 매각 이슈 등의 이야기 정도로만 끝내고서 넘어갔다.
결국, 뭔가를 더 캐내고 싶어서 온 둘은 김이 샜다는 듯 적당히 마시다가 뭔가를 숨기는 것 같은 재환을 두고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재환은 새벽이 돼서 둘을 돌려보낸 뒤 아직 남은 캔맥주를 마시며 피식 웃었다.
“미안하다. 같이 엮이면 좋은 꼴 못 볼 것 같아서 말이지.”
분명 공익적인 제보지만, 그 결말이 좋지 못하게 나올거라는 건 재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이미 대비를 하고 있었다.
당장 리엔부터 재환이 거액의 자문료를 미국으로 보내준 뒤로 정부라는 사냥꾼을 피할 동굴을 여러개 파 놓으라고 명한 상태였다.
***
그리고 올 것이 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정부는 그간 절세와 탈세간의 애매한 규정을 정립할 세제 개편을 시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5대 그룹과 경제련은 이번 세법 개정안에 따라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특히 개정된 세법 내에서 첫 조사를 받게된 혜성그룹은 의외로 담담한 분위기입니다. 각 계열사들은 성실히 국가 조사에 임할 것이라고 선언했으며···]
대기업이 가장 두려워 하는 정부의 표적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이쯤되면 그룹 내에서 인맥이 총 동원되어 국세청과 검찰청, 그리고 국회 등에 자리를 대서 어떻게든 조용히 넘어가달라고 물밑 협상이 나와야 하는데··· 혜성은 그런게 없었다.
오히려 ‘하려면 해라’식의 협조에 덤덤하게 임했으며, 역으로 국세청 직원들이 ‘뭐 숨기는 서류 없이 이게 다냐?’ 식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재환은 회장 자리에 있으면서 뭔가 따로 로비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있었다.
[찰칵!]
“와, 잘찍혔다.”
와이프랑 아이들이 있는 제주도로 와서 다같이 사진을 찍고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었다.
“어디보자. 이건 SNS에 올리기 좋겠구만.”
“진짜··· 괜찮아요?”
지금 자기 회사가 칼자루 든 정부와 상대하는데 너무나도 담담한 남편을 보고 미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안 괜찮을게 뭐 있어? 혹시 혜성문화재단은 숨기는 돈 있어?”
“그, 그런게 있을리 없잖아요? 애초에 난 그런 돈관리 잘 모르고.”
“그럼 됐어~”
무섭도록 차분한 재환을 보고서 분명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아내를 포함해서 육공회 멤버들이었다.
그동안의 세무조사 노하우로 다른 기업 회장들의 연락도 참조만 하겠다고 하면서 한가롭게 여행을 즐기는 모습에 분명 뭐가 있다고 믿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어째 파면 팔수록, 맨땅에 의미없는 삽질만 한다는 기분이 드는 정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