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222화 (222/244)
  • 222- 뻐꾸기 날려봐야 좋을거 없어요.

    “정은규?”

    “그래. 네 이름을 팔더라.”

    “그런 사람 몰라.”

    “그렇지? 맞지?”

    한국에 돌아온 뒤로 현규를 만난 재환은 박근희 캠프에 소속된 사람이라면서, 다가온 존재에 대해서 물었다.

    당연하지만, 삼신과 혜성 사이에서 이름을 판 그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처리하고 싶었다.

    “대선 앞두고 있다고 여기저기서 여당이고 야당이고 손 벌리는 놈들이 있는데 말이지.”

    “정치자금은 1:2이 좋아.”

    “지금까지 낸 거 없는데?”

    “!”

    재환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과거 초대 회장 신희경 시절에는 혜성도 나름 정치자금을 여기저기 대 줬다고 하지만, 재환은 아니었다.

    장인이 현역 정치인이어서 지역구에 계열사 지원 정도 해주는게 그의 마지막 배려였다.

    “너 그러다가 하나 잘못 걸리면 된통 정 맞을거다.”

    “재주껏 털어보라지. IMF 이후로 비자금도 전부 탈탈 털었던 우리다.”

    과거 재환과 혜성그룹 역시도 정치권에 상당히 휘둘린 적이 있었다.

    특히 대학 재단 학장 하나 건드렸다가, 동문회 이하 부총리까지 달려들어서 긁겅이질 당했던건 혜성과 재환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런 일이었다.

    그 이후로 정치와는 거리를 벌렸고, 이제는 어디 세력이 어떻네, 누가 실세네 그래도 끄떡 없을 위상을 만들어놨다.

    “미국에서 부동산 잔뜩 산다는 건 어떻게 된 거야?”

    “너 그거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지. 맨하튼에서 산 네 아파트··· 우리 회사 미국법인장이 소유했던거니까.”

    세상이 좁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미국까지 와서 그게 퍼질 줄은 몰랐다.

    재환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 육공회 골프 약속있는데 갈 거야?”

    “별로 흥미는 없지만··· 대현형님이 부른 건데 가야지.”

    “그때 보자고.”

    재환은 현규와 인사를 하면서 신누리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차에 탔을 때 준호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정은규라는 인간 찾아봐요.”

    “네?”

    “박근희 캠프 소속이라는데, 어떤 뉴스에도 나오지가 않았어요. 분명 어딘가에서 본 거 같은데 그게 아니라니까.”

    재환은 이 기회에 정치권에서 손을 내민다면 그대로 비틀어버리겠다는 의지로 움직였다.

    ***

    춘천 아레나 골프클럽은 두성그룹 산하의 높으신 분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골프 한 게임 치는 자리가 되었을 때, 재환은 라운딩을 돌면서 대현에게 한 마디 들었다.

    “앞에 팀이 시간 좀 걸리나 보네?”

    “천천히 기다리죠.”

    벌써 몇 번째 앞 라운딩의 사람들이 시간을 질질 끄는지라 오래 걸리는 순간이었다.

    “원래 골프는 인내의 스포츠야.”

    정인의 말에 재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멤버들 역시도 하나둘씩 자신의 골프채를 다듬었고, 재벌 회장님들을 보고 조마조마하는 캐디들이었다.

    재환은 잠시들 쉬라면서 손을 흔들었고, 평소보다 긴 시간에 대해서 겨우 라운드를 다 돌았다.

    돌아와서 클럽하우스에 모인 멤버들은 시원한 아이스티를 기다렸다.

    그때 잔을 가져온 직원이 공손하게 인사하며 말했다.

    “실례합니다. 이건 앞 라운딩을 하시던 분들이 사는 거라고 합니다.”

    “음?”

    “앞에서 너무 시간을 끌었다고 사과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뭐, 이런걸···.”

    요새 골프 인구가 늘어났다더니, 아직도 매너 챙기는 문화는 있나보다.

    “어쨌건 주는 거니 고맙게 마셔야지.”

    재환은 아이스티를 쭉 들이켰고, 대현, 현규, 정인 등의 다른 육공회 친구들도 클럽하우스에서 시간 좀 보내다가 이따 KS호텔에서 남은 멤버들도 다 모이기로 했다.

    그때 낮에 적당한 시간을 보내던 차에 다가오는 인물이 있었다.

    “아이고~ 차 맛 괜찮으냐고 여쭤보러 왔더니 이거이거···.”

    “?!”

    고개를 돌리자 다가온 인물은 뜻밖의 존재였다.

    전 국무총리 겸, 통합한국당 총재 이현찬이었다.

    “···.”

    그럼 아까 육공회 멤버 앞에서 라운딩을 했던 모임이 야당의 거물이 낀 정치인들이었나보다.

    “아이고, 이거 한국 재계의 거인들이 모두 계시군요.”

    이현찬 옆으로 훗날 지자체 거물이 되는 김영수와 송원찬 등이 있었다.

    “하하, 이거 나랏일 하시는 분들과 이런 자리에서 만나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겹칠 줄 알았다면 같이 한 게임 칠 걸 그랬습니다? 하하하하!”

    ‘얍살하기는···.’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육공회의 존재는 몰라도 재벌 회장 여럿이 골프 치러 온다고 했는데, 그 자리 바로 앞에서 일부로 시간을 끌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낸 거겠지.

    그리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대현이나 현규는 정치계에서 인맥이 있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했고, 재환은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리고는 클럽하우스 직원들을 향해 물었다.

    “여기 흡연실이 어디있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좋은 대화는 그네들끼리나 하라고 하고, 재환은 자리를 슬며시 피했다.

    그리고 밖에 나와 있는 곳에서 줄담배를 태웠다.

    속이 쓰리건 말건, 저 자리에서 잘난 정치인 분들 대화나 계속 하라고 하고 빠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이고, 여기 계셨군요?”

    “···.”

    문준영 캠프의 대선후보 수행팀장이자 전 참여정부의 청와대 비서관 김영수의 등장.

    재환은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가 먼저 다가와 담배 한 대를 물자 별수 없이 안쪽을 바라봤다.

    ‘징하게도 오래 이야기하네. 뭔가 확답을 받아내러 온 거겠지?’

    “대선이 얼마 안 남았는데, 기업인 여러분들께서도 좋은 결정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선거 뭐하러 합니까? 비밀 투표가 국민의 권리인데요.”

    “하, 하하 그렇습니다. 저 또한 회장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담배를 태우면서 편하게 접근하던 김영수는 넌지시 말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건 지난 일로 인해서 회장님께 한 가지 말씀드리려 왔습니다.”

    “짧게 말하세요.”

    “플로리다에서 박 캠프 사람들이 왔다죠?”

    “!”

    “그쪽에서 사실상 같은 편이 되었다고 여기던데 말입니다. 특히 저쪽 선거특보에 있는 정유희가 말입니다.”

    “정유희? 그게 누구요? 난 그런 사람 본 적이 없는데?”

    “플로리다에서 그 사람은 회장님을 만났다고 했는데··· 설마 박 캠프의 거짓말일까요?”

    그 순간 재환은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서 정유희라는 인물을 꺼냈다가 이름만 언급되고,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그 존재를 찾기 위해 계속 검색했다.

    그리고 아주 옛날 사진에서 보이는 사진 하나를 겨우 찾았다.

    “···!”

    98년 박근희의 첫 국회의원 출마때 비서라고 나온 인물인데, 꼭 역술인처럼 생긴 얼굴에 검은 개량 한복을 입고 국회에 찍힌 사진이었다.

    그 인물은 지난번 재환에게 명함으로 소개를 한 ‘정은규’였다.

    “하, 진짜···.”

    “네?”

    “좋은 소식 알려줘서 고맙군요. 남은 대선기간 열심히 하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재환은 김영수와 이야기를 끝내고서 조용히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다른 멤버들에게는 문자로 미리 KS 호텔에 가 있겠다고 하고 일방적으로 떠난 것이었다.

    차에 올라탄 재환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회장님, 그 알아오라 하신 정은규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정은규가 아니라 정유희라더군요.”

    “네, 아무래도 그 사람이 맞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개명을 한 듯 합니다.”

    재환은 준호의 말을 듣고서 박 캠프가 비밀 에이전트를 쓰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걸 지금 폭로해봤자, 딱히 남는게 없었다.

    ‘비선실세라는게 이렇게 움직이는 거구만, 음지에서 킹 메이커를 만드는 놈들.’

    아직까지는 서로 안면 인식만 했지만, 훗날 어떻게 움직일지는 두고봐야 했다.

    ***

    골프장에서 일방적으로 나갔던 재환을 두고 뭐라 할 친구들은 없었다.

    그들이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듣고 온 이야기가 원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당이 야당보다는 기업 활동하기 편해서 밀어주려고 했는데 말이지.”

    대현은 입맛을 다시면서 이번 일에 대해 떡밥을 꺼냈다.

    “박 캠프에서 영입한 경제특보가 ‘김동인’이란다.”

    “어이구~”

    “···하아.”

    김동인이라는 말에 탄식을 내뱉는 재벌회장이 한둘이 아니었다.

    재환 역시 그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독일 유학파 출신의 경제관료로 70년대부터 2010년대를 관통하는 정치계의 거물이자 ‘경제민주화’를 슬로건으로 내건 인물이었다.

    특히 문어발식으로 퍼진 재벌의 그룹화를 막고, 금산분리에 엄격히 규제를 하는 방식은 그간 재계의 돈줄을 말렸었다.

    물론 그로 인해서 기업 회장들이 알아서 비자금을 탈탈 털고, 세무조사에 울며 겨자먹기로 밀린 세금 문제를 내어서 긍정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재환과 혜성에 있어서는 정말 원수 중 하나였다.

    ‘IMF 전에 택지소유상한제 만들어서 그때 아버지가 날린 땅이··· 휴우우.’

    그 땅들을 모두 국가가 토지개발에 개입할 수 있는 ‘토지 공개념제도’로 만들려고 했지만, 가까스로 거기까지는 안 갔다.

    “재벌 해체 슬로건으로 건 대선후보 캠프가 한두개인가요? 난 그래봤자 오래 못갈거라 생각하는데?”

    “경제련 해체도 내걸었다고 하더라.”

    “···.”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혀를 차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대선이 오긴 왔구나. 여기저기서 정치 이야기에···.”

    “왜 강건너 불구경 식으로 말하냐? 정권 따라서 규제 해지 논의로 움직이던 녀석이.”

    “맞아. 장인어른도 여당 쪽 의원이시잖아?”

    살면서 가장 싸움나는게 정치, 종교, 운동이라고 했던가?

    재환은 엮이기는 싫지만, 혜성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어쨌건 소용돌이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재환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인회?”

    “네, 문광부 출신들이라거나, 어디 문화예술계 재벌 부인들 모이는데라는데 저도 참여할 수 있냐고 하네요.”

    재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참여하는거야 당신 자유지. 근데 그런게 은근히 정치단체랑 엮일수가 있으니까 적당히 거리는 벌려.”

    “네, 뭐 저도 정치인 딸이니 그런거 돌아가는 사정은 어느정도 알고는 있어요.”

    재환은 알아서 잘 할거라 생각하는 와이프를 안아주고 그날 밤 잠시 서재로 들어갔다.

    “아예 대선 기간동안 해외만 돌 수는 없고, 뭔가 제대로 된 사업을 하나 해서 얘네들을 따돌려야 할텐데···.”

    하필 직접 경영 안한다고 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니 굉장히 성가신 일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언론에 대고 자신한테 뻐꾸기 날리는 여,야 대선캠프의 인물들을 싹 다 제보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다른 친구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신중히 생각해야 했다.

    “어디보자.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진영논리에 속하지 않을 사업이라···.”

    ‘좋은 재벌 이미지’라는게 상당히 힘든거고, 재벌과 좋은 이미지라는게 과연 양립할 수 있냐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이런 이미지 관리에 제일 좋은 건 역시 역사를 알아보는건데···.”

    친일파 집안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독립운동 같은 이야기도 없어서 과거에 대해 말한다면 상당히 수수한게 나올거다.

    그리고 혜성그룹의 역사라고 해야 ‘국민들에게 달콤한 맛’해서 과자공장에서 시작한 연대기는 이미 하도 써먹어서 신선하지도 않았다.

    “생각좀 해 보자. 이럴 때 가장 국민들을 공분화시킨 일이 뭐가 있었을까··· 그리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재환은 여당이고 야당이고 이쁨 받을 생각 없으니 다른 쪽으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선행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대선 끝나고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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