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중국에서 화성인을 다 보네?
재환은 가까스로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홍콩을 경유해서 17시간 동안을 비행기에서 있었는데, 좀이 쑤셔 죽을 것 같았다.
“엑스포 끝나면 휴가 좀 줄까요?”
“아, 아닙니다.”
준호 역시도 시차 적응이 안 돼 녹초 상태였지만, 회장인 재환 앞에서는 몸을 추스르며 다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상하이 국제 엑스포 센터에 도착한 재환은 대문에 써진 [城市,让生活更美好] 글씨를 보고 천천히 읽어봤다.
“더 나은 도시, 더 나은 삶이라···.”
21세기에 들어 환경 문제와 기술에 발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면서 각국이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장님, 이곳이 한국관입니다.”
“오우!”
창밖에 보이는 대한민국의 기술이 모인 한국관은 한글 폰트를 모자이크 양식으로 장식한 건물이었다.
재환이 내렸을 때, 공무원들과 혜성그룹 임원들이 도착했다.
“어서오십시오. 신 회장님.”
재환을 반긴 것은 문화관광부 장관 박민우였다.
그 뒤로 국토교통부 장관 이해룡이 재환에게 인사했다.
“VIP도 며칠 뒤 도착하실겁니다.”
“그렇군요.”
대통령에 각종 경제사절단이 모두 모이는 자리에서 재환은 경제련 소속으로는 빨리 도착한 편이었다.
내부로 들어오자 한국관의 컨셉은 문화와 환경, 첨단기술등을 친 전시물품이 가득했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탈춤, 한복, 판소리, 태권도 등이 대형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삼신과 GH의 최신형 3D TV, 광섬유로 만든 조형물 등이 보였다.
“좋은 기술이 많군요?”
“하하하, 혜성 역시도 좋은 기술을 선보인다고 들었습니다?”
박 장관의 말에 재환은 한국관 야외에 전시하고 있는 버스를 기다렸다.
“저희는 이번에 친환경 자동차를 선보이기 위해 직접 움직이는 버스를 준비했습니다.”
“네, 그 이야기 들었는데··· 정말 기름 매연 없이 가는 겁니까?”
“물론이죠. 이곳에서 선보이고, 엑스포 본관에서 한국관까지 셔틀버스로 쓰게 됐습니다.”
‘1분기가 국제가전 박람회라면, 2분기는 엑스포다!’라고 말했던 혜성의 두 번째 프로젝트였다.
상하이 엑스포는 굉장한 규모로 엄청난 반응을 보였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국제행사 엑스포중 하나겠지만, 국제정세로는 그동안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일본을 중국이 제치고 확고한 이인자로 오른 것을 알리는 자리기도 했다.
재환 역시 중국을 생각하면 전생에 워낙 당한게 많아서 골치아픈 시장으로 여겼지만, 오너로써 완전 외면 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
이틀 뒤 대통령이 중국에 왔을 때,휘하 경호실과 민정수석, 외교부 직원들 수많은 인파가 한국관을 둘러봤다.
이상명 대통령은 많은 제품을 보고서 한국을 알릴 좋은 기회라며 경제련 회장들에게 틀에 박힌 칭찬을 해 주면서 사진을 같이 찍는 것으로 대충 넘어갈 것 같았다.
근데 밖에 나와서 셔틀버스를 보고는 관심을 보였다.
“호오, 엑스포에서 큰 화제라는 무공해 버스가 저건가요?”
기름 한 방울 없이 굴러간다는 전기 버스를 보고 흥미를 가진 이상명은 한국관에서 내리는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고 곧바로 경호원들을 보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타서 관광객들과 같이 엑스포 본관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시승해 봤다.
재환은 그 모습을 보고 ‘국내에서 뉴스거리 하나 생겼다’고 쾌재를 불렀다.
“대통령이 저희 전기버스에 관심이 많은가 보군요.”
“황사다 미세먼지다 말이 많잖아요.”
재환은 그렇게 말하면서 희뿌연 상하이의 하늘을 바라봤다.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보면 이 동네는 어떠겠냐마는···.”
재환은 자신도 뒤따라가 버스에 올라타고 대통령의 부름에 옆 자리에 앉았다.
“현재 기술개발은 완료됐고, 정식 생산화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호~ 당장에 가능하단 말이오?”
이상명이 흥미를 보이자 재환은 떡밥을 슬쩍 던졌다.
“일단 지자체 보급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열심히 해 보세요. 기존의 낡은 디젤 버스 교체하는데 쓰면 환경 보호에는 도움이 되겠군요.”
그저 힘내라는 말만 하지만 차라리 그러는게 나았다.
여기서 어디 뭐 ‘내 측근에 비슷한 사업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라거나 ‘그 부품 만드는 협력체 하나 추천한다.’ 같은 비리만 안 나오면 말이다.
재환은 그렇게 대통령도 오고간 자리에서 한국관을 둘러보고 내친김에 다른 나라의 전시관들도 둘러보며 엑스포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마 이곳에서 사흘 정도 머문 다음 한국으로 돌아와 일처리 마치고 맨체스터의 계약도 끝낼 것이다.
***
그날 저녁 오늘의 행사가 파하기 전 한국관에는 이상한 관람객이 한명 있었다.
생긴 것은 분명 백인인데, 어썸! 카와이! 등의 각 나라 언어로 감탄사를 연달아 뱉어내는 희안한 외국인이었다.
재환은 그에게 다가가 뭐하나 슬쩍 바라봤다.
앞머리가 살짝 벗겨진 너드 스타일의 그 백인은 근처에 있던 재환을 보면서 싱긋 웃더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가리켰다.
“정말 이거 멋져요! 당신 한국 사람인가요?”
“으, 으음? 그런데요?”
“오! 어썸! 한국은 정말 멋진 물건을 많이 만드는 것 같군요. 이 광섬유로 만든 물건 정말로 최고예요!”
연신 오도방정을 떨어대는게 첨단 문물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뭐가 됐던 간에 이제 슬슬 여기 행사 끝날 시간일텐데 말이죠.”
“아, 실례! 혹시 이곳 관리자이신가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잘 됐네요! 그럼 나가는 김에 저 버스도 같이 타 보죠! 내가 개발하는 전기차의 시대를 완전히 이해한 제품이야!”
전기차라는 말에 재환은 그 미국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봤다.
저 이목구비, 그리고 씰룩거리는 엉덩이 턱, 오도방정 떠는 기행스런 모습인데 어딘가 모르게 기술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인물.
‘분명 그 친구라면··· 머리 저거 뭐냐고?’
재환이 아는 ‘그 사람’의 대중적인 이미지가 가발이었거나, 아니면 모발이식을 한 것 같았다.
어쨌건 재환은 난처한 얼굴로 자신이 만든 버스에 올라타서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설명을 들었다.
“이 버스가 말이죠. 매연이 하나도 안나고 오직 전기 배터리 팩으로만 움직인단 말이죠. 물론 그 전기를 만드는 것도 석유겠지만, 그래도 획기적인 시스템이에요. 인류는 그렇게 에너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거든요?”
“하하하.”
재환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그 사람의 버스 원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본관으로 향했다.
“그래서 말이죠. 이 기술을 가지고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뭔지 아세요?”
“···.”
“모른다면 설명 드리죠. 거대 우주센터를 만들어서 화성으로 가는 겁니다. 그리고 화성을 테라포밍해서 인류가 살 수 있는 거죠. 그렇게 우주 시대를 여는 것! 이거 얼마나 멋집니까?”
재환은 확실히 이 자가 누구인지 알았지만, 실제로 만나니 입에 모터 단 것처럼 쉬지 않고 나불거리면서 갖가지 TMI를 남발하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그래도 인연은 인연이니 버스에서 내린 뒤로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너무 제 이야기만 했군요! 언젠간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원합니다.”
“네, 그래요.”
“아이고고고고! 내 정신, 내 이름도 안 말했네요!”
“애런 리브 머스크. 페이팔 CEO이자 지금은 스페이스 코퍼레이션 창업주죠?”
“왓!? 어떻게 아셨습니까!”
“만나서 반가웠어요. 후배.”
펜실베니아 대학교 3년 후배 애런을 만난 재환은 그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그리고 재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애런은 곧바로 눈이 터질 것 같이 튀어나왔다.
“Oh··· OH?!?!!?!!”
뒤늦게 재환을 알아보고는 그야말로 황송해서 두 손을 잡았다.
“어썸! 미스터 신 맞지요? 펜실베니아의 전설! 라스베가스의 스타!”
“하하하, 그렇게까지 들리나?”
“만나뵈서 정말로 영광입니다! 진작 말을 하시지! 당장 호텔로 가죠! 오늘은 제가 술 한 잔 사겠습니다!”
***
상하이 국제호텔에서 재환은 머스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중국은 정말 좋은 시장이에요. 아마도 10년 뒤에는 미국과 자웅을 겨룰 겁니다.”
“크게 성장하긴 했죠.”
“한가지 아쉬운건 마리화나가 합법이 안된다는 거죠.”
“···.”
너드스러운 이미지와 다르게 술담배에 거리낌도 없고, 생방송 중에 대마를 태워대면서 예찬론을 펼치는 악동 중의 악동 애런이었다.
그 기행 넘치는 모습에 언제나 애런이 창업한 회사들은 오너리스크에 시달려서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주가에 막대한 영향을 주곤 했다.
‘생각보다 더 괴짜였다.’
재환의 첫 인상은 그랬다.
“그래서 제가 미스터 신을 부른 이유는 바로 우리가 탄 버스 때문입니다. 그거 너무 맘에 들어요.”
“그쪽도 좋은 사업 하고 있잖아요?”
T슬레이 모터스.
전기차로 훗날 세계를 휩쓸지만, 이전까지는 2017년까지 50억달러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한 애물단지였다.
그것을 위해서 페이팔 자금과 스페이스 코퍼레이션 등 각종 다른 사업을 통해서 금액을 메꾸고, NASA등의 연구개발을 같이 하는 것으로 회사를 운영해 나가는 애런 머스크였다.
“네, 지금의 투자는 나중에 숭고한 밑거름이 될 겁니다.”
“어째··· 이야기가 묘한데?”
재환은 설마 자신에게 투자를 원하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혹시 전기 버스 말고 승용차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신적 없습니까? 제가 원하신다면 전기차에 대한 보유 특허를 넘기겠습니다.”
재환은 그 이야기는 약간 땡겼지만, 그러면서도 생각이 있었다.
‘4년뒤에 본인이 알아서 풀어버린 기술 말인가? 막상 그러고 A-컴퍼니와 미시시피가 전기차 사업한다고 하니···.’
이 수다스러운 친구를 이전과 같이 투자하고 친분을 쌓아나가기에는 그 뒤로 벌어질 리스크도 감안해야 했다.
재환은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서 말했다.
“일단은 내가 엑스포에 와 있어서 다른 사업에 대해 논의하기가 힘드니 다음에 이야기하죠.”
“앗, 미스터 신! 지금 이 조건은 오로지 당신에게만 말하는거예요. 와튼의 선배이면서, 당신이라면 내가 꿈꾸는 21세기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요.”
“그 제안 정말 고맙게 받아들이죠.”
재환은 이 대화는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단 품 안에 마침 만년필이 있어서 그것을 꺼내고 명함과 같이 건네줬다.
“나는 엑스포가 끝나는대로 국내 일 정리하고, 영국으로 가서 맨체스터 UTD 인수 문제를 끝냅니다. 그 다음에야 시간이 돼요.”
“아···.”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려요. 만약 그때도 진짜로 미래를 꿈꾼다면 그때 연락해요.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이 만년필로 그대가 친필싸인을 해서요.”
선택은 애런의 몫이었다.
이 상황에서 이 구두계약을 인지하고 보내느냐, 아니면 이걸 거절로 받아들이냐다.
애런은 맥주 한 잔을 비우고 재환이 건넨 만년필과 명함을 받았다.
“좋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 만난 선물로 생각하죠. 하하하! 저는 미스터 신이 블랙 조크를 할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한 달의 시간? 그때 다시 연락드리죠.”
이 친구라면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재환은 애런과 짧았는데 하루 종일 상대한 것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숙소로 돌아갔다.
준호는 밑에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용히 물었다.
“제법 유능한 사람같은데 저렇게 수다쟁이일줄은 몰랐군요.”
“미국 CEO 특징이잖아요? 아무말 대잔치에 드레스 코드 안 맞추는 자유의 상징.”
재환은 배웅을 받으며 숙소로 들어가 침대에 쓰러지듯 누우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전기차는 땡겨도 난 화성침공이나 회삿돈으로 개 그림 코인 같은 거 거래할 생각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