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도하의 딜!
일정은 만들면 되는 것이다.
재환은 요르단 이후로 두 번째 중동 사업지로 카타르를 골랐다.
그리고 적당한 곳을 찾던 도중 딱 맞아 떨어지는게 나왔다.
[사돈, 이번에 내가 한 건 했소.]
“네, 정말 생각 못했는데 정말로 좋은 기회로군요.”
마이다스 건설이 요르단에서 신도시 공사 이후로 카타르에서도 2천억원 규모의 병원과 주상복합 아파트 공사 입찰을 성공한 것이었다.
계약 이후 착공식을 가기전 카타르 왕실도 참여한다는 말에 재환은 곧바로 연락을 돌렸고, 다행히 그쪽에서도 OK싸인을 했다.
재환은 카타르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 각종 사업 계획서를 준비했고, 기전실장과 같이 비행기를 잡았다.
그곳에 가기 전 카타르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고, 왕실에 대해서도 잘 알아둔 다음 대화로써 문제를 한 번 풀어보려고 했다.
선물을 준비하고, 그다음 초대를 받을 정도로 친분을 쌓고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재환은 하나하나 준비해둔 다음 스케줄에 맞춰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카타르 도하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아랍어로 쓰여진 금색의 글씨였다.
[الخطوط الجوية القطرية](카타르 항공)
중동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항공사로 카타르의 핵심 기업이자, 옆 나라 UAE의 에미레이츠 항공, 에티하드 항공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확실히 아랍 항공이 요새 많이 좋다니까요?”
오현우의 말에 재환 역시도 동감했다.
“앞으로 많이 이용할 것 같군요.”
“우리나라 항공사도 쫌 이런 것은 본받아야 것소.”
특급 서비스를 만끽하면서 기분좋게 나왔던 재환과 오현우였지만, 막상 내리려니 경악했다.
“뭐여, 이거?”
“말로는 들었는데···.”
카타르 국제공항은 탑승교가 없어서 직접 내리고서 밑에 있는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야 했다.
“항공사는 좋은데, 공항은 영 아니구먼.”
“쉿, 우리 사업하러 왔어요. 한국말이라도 조심 좀 합시다.”
공항에서 탑승교 없이 내리는 경우는 90년대 김포국제공항에서나 종종 있었던 일인데, 2010년에 이걸 겪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쨌건 버스를 타고 내리자 그 앞에는 카타르 투자청과 보건부의 간부들이 있었다.
“ٱلسَّلَامُ عَلَيْكُمْ(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وَ عَلَيْكُمُ السَّلاَمُ(예, 안녕하십니까?)”
재환은 간단한 회화로 인사했고, 일단 이번 공사의 주인공은 사돈 오회장이었지만, 자신 또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국의 유명한 오너가 같이 오신다고 했더니 여기서 뵙는군요?”
카타르 투자청 이사 알 마흐무드는 재환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국제공항은 정복을 입은 카타르 군에 의해서 통제되고 고가의 리무진들이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귀빈의 예우로 극진히 대접을 받게 된 카타르의 첫날이었다.
오회장이 병원과 주상복합 건설 착공식을 위해 떠났을 때, 재환은 카타르 호텔 내에서 알 마흐무드와 이야기를 나눴다.
“카타르에 오신 귀한 기업가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은으로 만들고 각종 보석으로 장식한 아랍 전통식 커피포트 달라를 선물받은 재환은 흡족해하면서, 감사히 받아들였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도 준비했습니다.”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것으로 친분을 다지는 아랍 문화는 이미 요르단에서 체험했기에, 이번에는 미리 재환이 준비했다.
재환은 준호가 건넨 것을 받아 마흐무드 이사에게 전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우리 혜성의 스마트폰 코멧폰입니다.”
“오, 역시 첨단을 달리시는 CEO 다우시군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전파인증은 통과됐고, 이곳 통신사의 유심만 낀다면 바로 구동할 수 있는 신형 스마트폰에 마흐무드는 감사인사를 표했다.
선물을 교환한 뒤로 서로에 대한 나라에 칭찬을 이어가고, 본론은 차 한 잔이 반쯤 비웠을때야 시작됐다.
“체어맨 오가 신 회장님과 친분이 있다고 하셔서 왕실에서 초대를 기꺼이 승낙했습니다만, 어쩐 용무이십니까?”
“그 왕실하고 비즈니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허어.”
천연자원으로 유명한 카타르는 그 자본으로 투자청을 설립해서 국가를 운영했지만, 실질적으로 그건 모두 왕실 소유이다.
마흐무드 역시 투자청 실세 중 한 명으로 귀빈을 맞이할 수 있는 몸이지만, 어디까지나 왕실에 고용된 사람중 하나였다.
“이거, 처음부터 큰 일을 진행하시려고 하나봅니다.”
“그렇게 됐는데, 제가 올 것을 알았으니 만나뵙겠다는 분이 있나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이야기를 드렸을 때 왕자님께서 관심을 보였습니다.”
“호오?”
현 카타르 국왕 하마드 빈 알타니에게는 수많은 자식이 있었는데, 그 중 셋째 아들 카심 알타니가 현 세자이다.
“어떤 분인지 알수 있겠습니까? 미리 알아두어야 그분과 이야기가 수월할 것 같군요.”
“폐하의 넷째 아들인 타밈 알타니 왕자전하이십니다.”
“!”
순간 재환은 놀라면서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군!’
그리고 현 세자는 훗날 국왕의 눈 밖에 나서 세자 자리에서 물러나고 다음 국왕이 되는자가 바로··· 지금 말한 타밈 알타니다.
재환은 이 엄청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
“이곳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오. 형제여.”
보통 ‘중동 왕족의 어마어마한 저택’에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척박한 사막위에 콘크리트를 깔고, 오아시스를 만들어 나무를 가꾸고, 이슬람 풍이 가미된 서양식 석조 저택으로 된 곳.
게다가 수제 카페트가 깔린 양옆으로 전통복을 입은 수많은 시종이 안으로 재환을 모셨다.
내부에는 갖가지 도자기와 황금으로 된 검 등 수많은 보물이 가득했다.
“회장님, 선물 모두 챙겼습니다.”
뒤에서 준호가 속삭이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준비해 주세요. 부디 좋아해줬으면 좋겠는데.”
재환이 안내를 받고서 그 자리에서 아랍식 토브가 아닌 깔끔한 정장 차림에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타밈 왕자가 나왔다.
190에 육박하는 큰 키에 엄청난 덩치, 영국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인재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위압적인 모습과 달리 활짝 웃으면서 진심으로 재환을 반겼다.
“ٱلسَّلَامُ عَلَيْكُمْ!”(알라의 평화가 당신에게 깃들기를!)
재환은 그 인사를 받으면서 이후로는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저녁 초대를 받았는데 내부는 한산했다.
그리고 테이블에는 가볍게 대추야자 열매와 차가 왔다.
재환은 분주히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준호에게 선물을 준비하게 했다.
이번에도 선물 교환을 하면서 타밈 왕자에게 화려한 이슬람 전통의 도자기를 선물 받았고, 재환은 지금 대세를 이루는 코멧탭북 신형을 건네줬다.
아랍의 문화상 저녁식사를 초대받고 난 뒤에는 선물을 교환하고 차를 마시다가 2-3시간 있다가 그제서야 밥을 먹는다.
그리고 이제 재환은 거기에 대해 진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유럽쪽의 마케팅을 위해서 맨체스터의 축구 클럽을 하나 인수하려고 합니다.”
“흐음? 그 이야기를 왜 저에게···.”
“카타르 투자청과의 이야기를 통해서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호오, 우리와요?”
점잔빼면서 전혀 모른다는 눈치지만, 카타르 투자청이 유럽의 빅 클럽, 그것도 딱 집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노리는 건 이미 퍼진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타밈은 남은 차를 마시고는 새 것을 가져오라 명하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폐하께 그런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향후 카타르에서 월드컵 유치를 위해서 적당한 마케팅 구단을 알아보라고 말이죠.”
“네, 그래서 많은 클럽들을 알아보시는 것 같군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
재환은 시치미를 뚝 떼는 타밈에게 곧바로 직구를 던졌다.
“현재 40억달러를 준비한 상태이고, 곧바로 제가 인수하려고 합니다.”
“!”
순간 타밈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사실 석유와 천연가스 일대를 독점하는 왕족들이 그 정도 돈이 없겠는가?
하지만, 자신들이 들었던 투자자문들하고는 전혀 다른 금액의 규모에 대놓고 선언하는 경쟁자가 그닥 달가울리 없었다.
물론 재환역시 이건 블러핑이었다.
실제로 맨유가 40억 달러라면 그 돈 가지고 적당한 EPL구단 하나를 사고, 이탈리아, 스페인에 하나씩 살 거니까.
그걸 안 타밈은 굉장히 언짢아 하면서도 생각이 복잡했다.
재환은 이때쯤 해서 ‘제게 10분의 시간을 주신다면~’이라는 영업 멘트를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왕실의 저녁초대에 식사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고, 두 시간은 되야 음식이 나올테니 말이다.
재환은 거기에서 그들에게 한 가지 떡밥을 또 던졌다.
“만약 제가 인수한다면, 그때는 카타르에 대해 많은 것을 돕고 싶습니다.”
“뭘 말이요?”
“제가 요르단에서 그랬듯이 저는 혜성그룹과 카타르 왕실과도 평생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흐, 흐음~ 안 될 건 뭐··· 없지요.”
한껏 위엄있는 중동의 왕자지만, 실제 나이는 자신의 와이프보다 고작 한 살 많은 청년이었다.
게다가 이거저거 일은 많이 해도 자기 형님이 차기 국왕이니 이럴 때 왕실 내 실적이라도 좀 올려야 했다.
“카타르 항공, 오늘 서비스를 겪고 많은 감동을 했습니다. 앞으로 전세계 항공 시장은 중동이 가져갈 것 같군요.”
실제로 메가톤급 항공사인 아부다비, 에미레이츠, 에티하드 항공등의 규모가 유럽 항공사들을 뛰어넘었고, 카타르 역시 카타르 항공으로 응수해 그 대세에 따랐다.
“카타르 항공에 투자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맨유를 인수하는 순간 유니폼에는 카타르항공의 스폰서가 박히면 둘의 우정이 좀 더 돈독해지지 않겠습니까?”
“!”
재환의 말에 타밈은 다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어차피 상대는 세계구 단위로 노는 경영자, 그런 자를 경쟁자로 삼느니 인수는 그들에게 돕고, 자신들은 적당한 다른 구단 인수한 다음 월드컵 유치를 노린다.
“참고로 저희 역시 축구를 엄청 좋아합니다. 한국 내에 프로축구연맹 총재는 제 숙부이시고, 이후로 한국축구협회 자리도 생각하고 있죠.”
“···그, 그말은?”
“소중한 한 표 카타르 월드컵에 지지하겠습니다.”
“하, 하하! 먼 한국에서 오늘 진귀한 손님이 온 것이 다 알라신의 뜻이군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연달아 터지자 하맘은 드디어 웃음꽃을 피웠다.
중동에 이름도 생소한 나라가 국제대회 몇 개 유치한 걸로 월드컵까지 노린다고 말이 많았는데, 거기에 든든한 동반자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타밈은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내친김에 왕실의 골칫거리도 한 번 던져봤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신 회장께서는 오늘 왔던 카타르의 국제공항에 대해 어찌 생각하셨소?”
‘보딩 브릿지도 없는 그 낡은 공항이요?’라고 말했다간 당장에 찻잔이 깨질 것 같았다.
재환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지금은 작아도, 곧 카타르의 품격에 맞는 중동의 허브가 생길 것입니다.”
“하하하! 맞소! 새로운 신공항을 준비하고 있지. 이봐 마흐무드!”
하밈은 그제야 투자청에 있는 자신의 측근을 불러 그것을 가져오게 했다.
마흐무드가 가져온 것은 카타르의 신공항 설계도였다.
“현재 기존 공항을 대체할 신공항이요. 터는 다 잡았고, 5년 안에는 이곳이 카타르의 관문이 되겠지.”
그곳이 바로 미래의 도하 하마드 공항이 될 것이다.
“나의 친구, 신재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으시오?”
“얼마든지 말해주시지요.”
“이곳이 완공 되는대로 쇼핑을 할 수 있는 대형 몰이 필요하오.”
“공항 면세점을 말하시는 건가요?”
“그렇소! 지난날 내가 한국에 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인천의 그 큰 공항부터 서울에 기차역에 있는 혜성의 대형쇼핑몰들이었소. 무릇 한 나라의 관문에서 사업을 한다면 믿을 수 있겠지!”
“즉시 검토해보지요.”
“으하하핫! 친구여. 그럼 우리 이제 카타르의 음식을 먹으며 더 이야기 해 봅시다.”
막히던 문제들이 뚫리니 세상 시원시원한 쿨가이가 된 하밈 왕자.
그리고 준호가 모든 것을 듣다가 몇 번이고 재환에게 간언하던 것을 말했다.
“회장님, 공항 면세점 사업은···.”
그걸 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있는대 재환이 냅다 콜을 한 것이다.
“아, 뭘 말하는지 알겠는데 이 식사 끝나고 다시 이야기 하죠.”
물론 재환 역시 그 일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거래는 마쳐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