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재벌의 삶!-181화 (181/244)
  • 181- 고기는 어느나라던 다 맛있어.

    재환은 순식간에 엄청난 스타가 되었다.

    그가 이제까지 언론에 친화적인 대기업 회장인것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이제는 남녀노소 모든 층의 지지까지 받으면서 재벌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었다.

    미디어에 흔히 나오는 재벌=왕족. 같은 이미지에 돈으로 사람 판단하고 그들만의 리그라 생각한 선민의식의 존재들이라는게 대다수 국민들의 반응.

    하지만 티비에 자주 나오면서 소탈한 모습에 국민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업을 하면서, 능숙한 언론플레이와 기분파 적인 결정으로 사내 복지 충족까지,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잘 나오는 얼굴이니 이제는 익숙해진 인상이었다.

    "승윤아, 아빠가 용감한 시민상을 다 받았어요."

    재환이 기자들 앞에서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 진짜로 먹혀서, 서울시장이 주는 용감한 시민상.

    오현우를 포함해 숭례문 인근에서 진화작업을 다 같이 한 시민들과 같이 단체로 받게 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주변에서는 축하 전화와 함께 '이새끼 ㅋㅋㅋ'하는 웃음도 많았다.

    ***

    "내가 살다살다 경영인상이나, 수출 훈장 같은 거 받은 CEO는 봤어도, 용감한 시민상 받은 회장님은 처음본다!"

    "그만큼 제가 남들보다 좀 더 용감하단거죠."

    "아, 이 새끼 진짜.... 크크큭, 어쨋든 마셔!"

    축하연은 역시나 육공회.

    게다가 재환이 지난번 게임 릴레이로 약속한 덕분에 당분간 이 모임의 술값은 모두 재환이 대 주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히 재환이 가족들까지 다 불러서 경기도 교외에 있는 전원주택에 초대해 거기서 바베큐를 굽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호텔에서 맨날 시가 물고 포커다, 당구다 치는 것보다 이런 게 더 좋지 않아요?”

    재환이 오늘 모임은 어떠냐는 물음에 문영이 답했다.

    “나는 완전 만족! 그러니까 육공회도 갑갑한 호텔 말고 이런 바깥자리 좀 마련 하자니까?”

    육공회 멤버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인과 자녀들 까지도 재환이 초대해 방 안에서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글세? 저러다가 육공회 부인회도 생길 것 같은데?”

    정인은 특히 자신의 와이프가 수다스럽게 다른 회장 부인들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이럴 때 다 같이 오붓하게 모이고 좋지 뭘 그래요?”

    재환이 새 고기를 가져와 굽자, 영롱한 마블링이 인상적인 꽃등심이 그릴에 구워졌다.

    “아, 근데 이 고기 진짜 맛있네?”

    “그러게 말이야. 한근에 20만원 정도 하냐?”

    질 좋은 소고기는 살짝 구웠을 때 약간의 우유나 치즈 맛이 난다고 했는데 이 고기가 딱 그랬다.

    특히 그 우유맛 나는 고기는 강원도 횡성이나, 충남 예산 같은데서 특등급 쇠고기나 먹을 때 나왔다.

    재벌이라도 남들과 다 똑같이 밥먹고, 고기먹고, 물 먹지만 먹지만, 품질 하나 만큼은 특 고급.

    그들의 까다로운 입맛에도 재환이 가져온 쇠고기는 정말로 특급이었다.

    “이번에 대량으로 들여왔어요. 요새 고기 값이 워낙 비싸야지.”

    그러자 진용이 거들었다.

    “재환이 너, 그렇지 않아도 말 잘했다.”

    유통업에서 경쟁은 하지만, 혜성에게 거의 따라 잡혔다가 에버홈 인수로 1위자리를 빼앗긴 신누리쇼핑.

    그래도 아직 백화점은 신누리, 마트는 혜성이라는 양분의 상태였다.

    “경쟁사 CEO가 나한테 뭐 물어보려고?”

    “이 새끼! 까는 소리 말고, 대답 잘해라?”

    진용은 한숨을 쉬면서 고기를 먹다 재환에게 말했다.

    “너 이번에 FTA 어쩔거냐?”

    2008년 가장 큰 떡밥.

    “농산물 수입 말이야. 관세 없어진 건 좋은데, 이거 냅다 매장에 깔면 문제 많지 않겠냐?”

    비교적 현실적인 고민에 재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지. 가뜩이나 농산물 수익이다 뭐다, 신토불이 마케팅으로 꿀 많이 빨았는데.”

    기존에는 아무리 수입산 농축산물이 싸다고 해도 ‘국산이 제일’이라는 풍조로 인해서 좀 더 비싸도 국산 농산물이 많이 팔렸다.

    특히 고기는 아예 브랜드화 돼서 한우, 그리고 조만간 돼지고기도 한돈이라고 이야기가 나올거다.

    이 상황에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었으니 대형 유통업을 하는 CEO들 입장에서는 고민이 컸다.

    “돈 생각하면, 당연히 수입품 깔아야지. 근데, 고객 반응이 어떻겠냐고?”

    진용의 말에 대현은 낄낄거리며 말했다.

    “뭘, 그런걸 다 고민하냐? 못 팔면 네가 다 먹어치우면 될걸.”

    “아, 대현 형님! 이거 장난 아니에요.”

    FTA 이야기에 슬슬 몰려들며 일 이야기가 시작된 육공회였다.

    “이 자리에 현규 왔으면 입이 귀에 걸렸을텐데.”

    “솔직히 저희도··· 자동차는 많이 팔게 생겼습니다.”

    현규 대신 선길이 나와서 이번 FTA 협상에 대해 말했다.

    정인도 말은 못하지만,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소비재 기업들은 값싼 칠레산에 이어 미국산까지 준비해야 할 상황.

    반면 역으로 중공업이나 철강, 자동차, 휴대폰 등의 사업을 하는 제조업 기업들은 미국 관세가 없어져서 아주 행복 사업을 할 수 있었다.

    “어쩔거냐?”

    “뭘 어째? 싼 값에 들여와서 잔뜩 팔면 돼지. 박리다매 몰라?”

    “얌마, 너 기업 이미지 신경 안쓸거야?”

    “써야지. 질 좋고 값싼 수입산이 이렇게나 좋다는 것을.”

    “되겠냐?”

    진용의 말에 재환은 웃으면서 말했다.

    “형제분들? 다들 봐바. 지금 우리가 고급 쇠고기 구워 먹으면서 국산보다 싼 농산물 수입 어떻게 하나 논의하잖아?”

    다른 멤버들은 재환이 녀석이 또 무슨 기똥찬 아이디어를 짤까? 하는 생각에 몰렸다.

    재환은 거기서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셀카를 찍었다.

    찰칵!

    “!?”

    “얌마, 지금 뭐하냐?”

    찰칵!

    두 장 찍은다음에 안에서 차를 마시는 부인들을 불렀다.

    “여보~ 여보!!! 마누라!!!”

    재환의 부름에 미연이 헐레벌떡 다가오고 재환은 그녀에게 카메라를 주며 말했다.

    “여기 이 고기들 사진 찍어주고, 우리들좀 찍어줘.”

    “예?”

    “얼른.”

    그때 최대현이 일어났다.

    “야, 신재환!”

    대현의 외침에도 재환은 찍으라고 했고,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갑자기 플래시가 터지자 거기서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얼굴이 바뀐 대현이나 문영이 재환을 붙잡았다.

    “야 임마,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사진전이야? 블로그 올리려고 하냐?”

    재환은 웃으면서 고기를 들었다.

    “홍보라는게 말이죠.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모델 아니에요?”

    “뭐?”

    재환은 덜 익은 쇠고기를 으적으적 씹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죠. 여기 있는 고기들 전부 국산 아닙니다.”

    “뭣?!”

    “미국산~ 그것도 30개월 안 팍!”

    “이 새끼!”

    진용도 그 말을 듣고서 한 마디 하려고 했다.

    하지만 재환은 어깨를 으쓱했다.

    “뭘 그렇게 놀라요?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게 괜히 있나? 2시간 동안 맛있다고 고기 더 없냐고 하시던 분들이 미국산 쇠고기라는 말에? 내가 무슨 개고기를 소고기라고 숨기기라도 했대?”

    맞는 말이었다.

    “아우! 아주 처맞을 소리만···.”

    “자! 들으세요. FTA다 광우병 위험이다 하는데, 여기서 미국 출장 한 번도 안가고, 거기서 스테이크 안 썰어본 분만 나를 때릴 권한 주겠어요.”

    “때, 때려요?!”

    갑자기 격해진 반응 속에서 미연이 깜짝 놀라 묻자 재환은 웃으면서 돌아가라고 손짓했다.

    잠시 후 육공회 멤버들은 찝찝한 분위기였지만, 그다음으로 온 살치살하고, 알등심을 보고서 한 점 또 구웠다.

    그리고 고기를 먹던 진용이 뭔가를 깨달았다.

    “아!”

    “깨달음이 너무 늦어.”

    재환의 말에 갑자기 문영도 뭔가를 느꼈다.

    “···그렇네?”

    그러자 대현이 외쳤다.

    “야, 68따리들 지들끼리 뭐 알아낸척 하지 말고 말해봐. 어쩌려고?”

    그러자 재환은 웃으면서 진용을 가리켰고, 그가 답했다.

    “브랜드화 시키면 되겠네요?”

    “뭐?”

    “미국산 소고기 논란 많다고 시끌시끌 하잖아요? 근데 재벌들이 와서 직접 먹는 모습 보여줍시다. 공식이 아니라, 이렇게 따로 모여서 서로 파티하는데 썼다고요.”

    “···그래서?”

    “그래서는요? 얼마나 맛있으면 재벌들이 따로 먹는 부위다. 그리고 위험성 있으면 쟤들이 먹겠냐? 이런 식으로요.”

    “그게 뭔···.”

    그리고 문영이 답했다.

    “대현 형님, 형님이랑 저희는 무역회사 대량으로 운영하지 않습니까? 효령 인터내셔널과 KS 네트웍스요.”

    “으음.”

    “FTA 기회 삼아서 고기 유행 한 번 시키자고요.”

    “나는 뭔가 삘이 탁 왔어! 텍사스식 스테이크 집! 전부 미국산으로 미국식 스테이크 정식! 땅콩이랑, 감자튀김해서 아메리칸 스타일로!”

    진용이 외식업 하나 여기서 결정하겠다고 했고, 문영이 대량으로 쇠고기 유통을 알아보겠다고 하자, 대현도 뒤늦게 머리가 돌아갔다.

    “그러니까··· 지금 이런 거 사진 올리고, 우리 자체를 물건 사는데 마케팅으로 쓰자?”

    재환은 예시로 들기 위해 이 자리에 없는 현규에 대해 말했다.

    “형님, 한 5년 전부터 눈 안좋은 사람들 라식이다 라섹이다. 시력교정 수술 유행했잖아요?”

    “갑자기 또 왜 눈 수술 이야기야?”

    “근데, 왜 현규는 그런 수술이 있는데 안 하고 안경을 고수할까요? 그것도 국내에서 안쓰는 안경 브랜드 쓰면서.”

    “!”

    대현도 그 이야기를 하니 뭔지 알 것 같았다.

    “알만한 사람만 안다··· 이런 마인드로 마케팅을 하자고?”

    “골든 정답!”

    아직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 시위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서 광우병에 대한 논란거리들이 올라오지만, 딱히 정부의 제스처도 없다.

    30개월 이후냐, 이전이냐 이전에 아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은 ‘신토불이 한우 두고, 무슨 미국산이냐?’ 정도의 생각이 전부였다.

    그러니 시위나 논란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나기 전에 손을 쓴다.

    재환은 이것은 확실히 먹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승낙했다.

    “그럼 내 사진은 최대한 잘 나온걸로 찍어라.”

    “오케이! 그럼 형수님 불러서 찍게 할까요?”

    그날 낮부터 저녁까지 재벌들의 쇠고기 파티는 아주 은밀하게 기자들을 향해 유출됐다.

    ***

    [FTA시국 속, 재벌 회담? 그들이 가평에 모였다.]

    [재벌들의 가든파티. 미국산 와인과 쇠고기 구워먹는 그들의 모임.]

    [경재계 거물들 다 모였다. 그날 밤 쇠고기 회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일제히 퍼지는 기사들.

    재미난건 전부 인터넷 신문사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안 있어서 기자가 내려가고, 종이신문에 격노한 기사가 올라왔다.

    [밥 먹는 모임도 도촬되나? 어디에서 유출될지 모르는 재벌가 사생활.]

    [혜성그룹 신 회장, ‘이런 사진 유출은 곤란하다.’]

    그래서 기사들은 내려갔지만, 그렇다고 사흘간 있었던 사진들이 과연 없어질까?

    각종 커뮤니티에 마구잡이로 퍼지면서 제목도 각양각색으로 나왔다.

    [재벌가 회식 클라스.jpg]

    [???:네? 미국산 소고기가 어째요?]

    [재벌가 애들 먹는 와인과 쇠고기에 대해 알아보자.]

    급기야는 블로그와 칼럼등도 나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재벌가가 미국산 쇠고기랑 와인 먹은것에 대해 알아볼게요!]

    [특히 저 캘리포니아 와인은 국내에 안 들여온 물건이라고 합니다. 아예, 맛이 좋다고 공수해온 노브랜드 와인이라고 하는데요?]

    하나하나 와인이 뭔지까지 분석하는 기사들이 나온다.

    그러자 광우병 논란의 불씨가 생기려다가도 오히려 재벌들 먹는것에 대해 이목이 집중됐다.

    거기에 맞춰 재환은 혜성유통을 두고 말했다.

    [혜성유통: 마트와 슈퍼마켓, 백화점에 쇠고기 보급계획? 당분간 논의 없어.]

    [30개월이냐, 그 이하이냐? 고심하는 유통업계.]

    [국민들 안전이 우선, 일단은 검증받은 고기만 들여오자.]

    자기들은 회식으로 미국산 쇠고기 잘만 먹으면서, 유통으로 들여오는건 고민 중이라고 하니 여론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미국산은 얼마인데, 저렇게 수입이 안되나?’, ‘재벌들이 먹는데 문제 없는건가?’, ‘맛이 얼마나 다르길래 한우 안 먹고 미국산을 먹나?’, ‘원래부터 재벌가는 국산 안 먹고 수입산 최고급 식재료만 가져다 썼다.’

    이런 분위기가 일어나자 갑자기 ‘싸이버 월드’나 ‘블로그’ 등에서도 나오기 시작한 연예인들의 자랑 사진들.

    미국에서 스테이크를 구워먹거나, 여행 중에 먹은 고기들을 인증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미국산 쇠고기는 ‘아는 사람만 먹는 별식’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우병 논란으로 인해 촛불시위를 계획하자는 글들이 나왔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늘 맞나?”

    재환은 인터넷을 보고 하도 광화문 시위 이야기가 나오길래 퇴근하고 슬그머니 나가봤다.

    100명도 채 안 모인 곳에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시민들은 소 닭보듯 하면서 그냥 지나친다.

    누구도 동조하지 않고, 누구도 같이 촛불을 들지 않았다.

    게다가 마트를 가도 찾을 수 없는 미국산 쇠고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냐며 인터넷에서 질문이 나왔다.

    “풋.”

    재환은 그 반응 속에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 오늘 외식할까? 승윤이도 밖에서 고기맛 한번 봐야지?”

    재환은 근처 신누리 호텔로 가족을 초대해서 오붓한 자리를 한 번 가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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